[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국제갤러리 부산점, 서울점 한옥에서 김용익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 선보여
기사입력 2024.03.20 00:00 조회수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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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작가 01.jpg
김용익 작가

 

 

‘레트로토피아’을 통해 다시 ‘저엔트로피’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서울문화인] 예술을 하는 작가가 더 이상 물감을 구입하지 않고 물감을 소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작업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작가의 이번 프로젝트에 담긴 의미는 단순 붓을 놓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점의 확장인 원, 그리고 면, 선의 모더니즘적 기하학적 도형의 회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오고 있는 김용익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과 서울 한옥 공간에서 동시에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세 번째 진행되는 개인전이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천착하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전시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그의 2016년부터 최근까지의 근작 46점(부산점 19점, 서울점 한옥 27점)을 다루고 있다.

 

 

김용익_물감 소진 프로젝트 24-14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   [제공=국제갤러리].jpg
김용익_물감 소진 프로젝트 24-14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 [제공=국제갤러리]

 

 

김용익 작가(b. 1947)는 지난 2018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물감 소진 프로젝트(Exhausting Project)’라는 제목의 새 연작을 시작했다. 현재진행형인 이 연작은 지금 작가에게 남아있는 물감, 색연필 등 회구(繪具)들을 그의 여생에 걸쳐 모두 소진(消盡)하는 프로젝트이다. 남아있는 회구(繪具,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물감, 붓 따위)를 색깔별로 골고루 소진하고자 화폭을 잘게 나누어 작업한 결과,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의 모양을 띄며 김용익이 예술가로서 평생 추구해온 ‘저엔트로피(low entropy 에너지 낭비의 최소화)적인’ 삶의 방식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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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_포장되고 지워진 유토피아 #16-2

 

 

작가는 이전 작업을 ‘모더니즘 프로젝트’라 칭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인 추구는 ‘계몽주의로 각성된 인간의 이성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세계를 탐구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진보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는 꿈’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기후 위기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실패를 예증하며 자신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를 살아오면서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의식주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가용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이전의 작업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과 얇게 발린 물감 등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듯 보이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에도 과거의 조형적 특성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광활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인 동양의 ‘주역’ 사상이 내제되어 있다. 종이 혹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들은 실제 『주역』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괘(卦)의 형태를 차용하거나, 중국의 전통 우주론의 바탕이 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개념에서 빌려온 원과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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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_절망의 미완수 22-1, 2016-2022 [제공=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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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_포장되고 지워진 유토피아 #16-2, 2016 [제공=국제갤러리]

 

 

이전 작업에도 도형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더니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가의 철학을 대변할 수 없었는지 작가의 캔버스에는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묻어나는 글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주역’의 철학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담아내었다. 그래서 캔버스 위에 땅을 상징하는 네모와 하늘과 방위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원을 배열하여 음과 양의 균형과 조화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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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 , 서울점 한옥

 

 

 

“50년 이상 작업을 하다 보니 주체성,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이 싸여서 오히려 정보가 혼란스럽다”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가 캔버스에 그려내었던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여러 방면에서 실패하였음을 간접적으로 그 대안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번 작업의 키워드를 ‘레트로토피아’(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라고 정의한다.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주역’이라는 사상을 통해 마지막으로 띄우는 자유와 저항이자 비록 희망이 작가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향한 마지막 그의 희망의 작업이다. 작가는 이를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행위’라 말한다.

 

더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재료에 따라 작품 표면을 이루는 물감의 두께가 얇아 흐릿하거나 때로는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 다소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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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 부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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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작품 가운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레이어 작품에 우연히 앉았다가 물감에 붙어 생명을 다한 모기 한 마리도 그의 작업의 일부가 되어 또 다른 레이어를 형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와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용익 작가는 “나의 삶과 예술이 같이 종말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작가는 자신의 논리에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예술을 한다는 것에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죽음에 대한 자유로워야 하는 제의(祭儀)작업이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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