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합이합일 분이분일’, 재료(나무)가 내가 하나가 되어야 작업이 이뤄진다. 김윤신의 개인전

기사입력 2024.03.28 00:00 조회수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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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어린 시절(일제강점기)에는 나무가 귀했다. 그때 쓰러진 나무를 보았는데 그것을 세워주고 싶었다. 어릴 때 시골에는 친구도 없고 해서 울타리의 나무를 뽑아서 구르마(수레의 방언)도 만들고 물감이 귀한 시절이라 나무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김윤신 작가에게 어린 시절 나무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이자, 재료고 때로는 친구가 되었고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그때처럼 열린 마음으로 나무를 재료로 조각과 회화로 실험 및 도전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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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작가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1935~, 강원도 원산)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당시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최신 미술 경향을 접하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조형감각을 발전시켰다. 이후 1969년 귀국한 김윤신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전까지 십여 년 동안 1세대 여성 조각가로서 한국여류조각가회의 설립을 주도했다. 1973년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한국 조각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다 1983, 아르헨티나에 여행을 갔다가 한국과는 다른 자연의 풍경에 매료되어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를 결심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단단한 나무는 김윤신이 작품 안에 건축적 구조와 응집된 힘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김윤신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는 멕시코,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브라질에서 머물며 새로운 재료(오닉스)에 대한 탐구를 계속했다. 2022년부터는 한국에 머물면서 왕성하게 작업 중이다.

 

특히 그는 나무와 돌 등의 자연 재료를 사용하며 재료가 지닌 본래의 속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조각의 정통 문법을 구사하며, 디지털 시대에 희미해진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근원적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로 이주, 한국의 주류 모더니즘에서 물리적으로 단절된 채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각문법을 구축한 그가 40년을 뿌리내렸던 곳을 떠나 그가 한국으로 거점을 옮겨 꾸리고 지난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 작가가 1970년대부터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철학에 기반한 목조각 연작과 함께 꾸준히 지속해온 회화 작업을 비롯하여 팬데믹 시기 탄생한 회화 조각등 총 50여 점의 작품을 K1K2에 걸쳐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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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작가

 


()과 분()은 동양철학의 원천이며 세상이 존재하는 근본이다. 나는 1975년부터 그런 철학적 개념을 추구해오고 있고, 그래서 나의 작품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두 개체가 하나로 만나며,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서처럼 계속적으로 무한대적으로 합과 분이 반복된다... 전기톱을 사용하여 분에 의하여 창조된 선과 면은 합이요 동시에 분이다. 나의 정신, 나의 존재, 그리고 나의 영혼은 하나가 된다. 절대자로부터 축복받은 존재이길 염원하면서.” 김윤신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김윤신의 조각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작품의 제목이다. 둘을 합하여도 하나가 되고, 둘을 나누어도 하나가 된다는 이 우주적인 문구는 작가에게 작업의 근간이 되는 철학이자 삶의 태도이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고, 그렇게 만난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의 또 다른 하나가 되는 역학의 반복은 곧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에도 각 나무마다 향기가 있고, 근육의 움직임이 있고 숨을 쉬고 있다. 작업할 나무가 주어지면 며칠 동안 그 나무를 지켜본다. 그 나무에서 어떤 향기가 들어있는지, 나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파악한다. 주어진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는지를...”

 

그의 작업은 자신 앞에 주어진 재료를 관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작업에 앞서 나무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그 대상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다 한 순간 전기톱을 들고 거침없이 나무를 잘라 나간다. 이렇게 조각의 재료인 나무와 작가가 하나가 되며 합()을 이루고, 그러한 합치의 과정은 나무의 단면을 쪼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여러 분()의 단계들로 이루어지며, 그 결과물로서 비로소 또 하나의 진정한 분(), 즉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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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김윤신 개인전 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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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김윤신 개인전 K1

 

 

K1에서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근원이 되는 1970년대 작 기원쌓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작가가 꾸준히 매진해온 원목 조각들과 함께 회화 작업의 일부가 소개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찰하며 초월적 존재에 닿고자 하는 염원의 정서는 일찍이 그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초창기 전통에 대한 ()해석에 유독 관심을 보이기도 한 그는 파리 유학 이후 민간신앙 속 장승의 모습이나 돌 쌓기 풍습 등의 토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한옥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나무를 수직적으로 쌓아 올리게 되었고 이에 대한 형식적 변주는 자연스레 합이합일 분이분일연작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그의 톱질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조는 김윤신 조각의 대표적인 표현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제목을 염두 해두고 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회화는 나의 삶을 투영한 그림이다.

K2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대지, 그 특유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연상시키는 회화와 회화 조각을 대거 선보인다.

 

그림을 해야 조각을 하고, 조각을 함으로써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조각과 회화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규정하는 작가의 회화 역시 조각과 일맥상통, 표면의 분할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남미의 토속색과 한국의 오방색에서 영감 받은 원색의 색감으로 제작되는가 하면, 멕시코 여행을 계기로 아스테카의 흔적을 입기도 하는 등 작가의 환경과 심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그래서 작가는 회화는 나의 삶을 투영한 그림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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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김윤신 개인전 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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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김윤신 개인전 K2

 

 

이루어지다,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기억의 조각들, 진동등의 제목으로 진행되는 회화 작업은 나이프로 물감을 긁는 기법으로 원시적 에너지를 표출하거나, 물감을 묻힌 얇은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찍어내 구사한 다양한 색상의 선과 자유분방한 면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의 본질 및 삶의 나눔을 찬양한다.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는 김윤신의 시각적 문법은 자연스레 목조각에 채색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회화 조각이라 명명한 이 유형의 조각들은 팬데믹 시기에 이뤄졌다. 그는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일상 주변의 나무 조각들을 모아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에 몰두하게 되었다. 목재 파편 내지 폐목을 재활용해 자르고 붙여 색을 입힌 회화 조각은 회화와 조각을 잇고 나누는 작업이 또 하나의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보여주는 작품은 태어나게 되었다. 남미의 토테미즘에서 한국 전통 색상 및 패턴의 유사성을 발견한 그는 앞서 회화 작업처럼 조각에도 색조 및 기하학 실험의 장으로 삼게 되었다.

 

전시는 428()까지 진행되며, 더불어 국제갤러리 서울 K3에서는 강서경 개인전, 한옥에서 김용익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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