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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2011년 프랑스에서 임대 형식으로 국내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이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을 통해 모두 공개하였다. 2011년 환수당시 일부를 공개 한 적은 있지만 전체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의궤란, 의궤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을 줄여서 한 단어로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 내내 의궤는 꾸준히 제작되어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의 특징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게 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기록물물로 왕의 결혼, 세자 책봉, 장례 등의 오례(五禮, 나라에서 지내는 다섯 가지 의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행사가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조선 왕조 519년 동안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조선 초기의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없어지고 현재는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 제작된 의궤만이 남아있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산용으로 구분되어 모두 5∼9부가 제작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규장각에 보관하고, 분산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관련 부서와 봉화 태백산, 무주 적상산, 평창 오대산, 강화도 정족산 등의 사고로 보내졌다.
특히 어람용 의궤는 구름무늬, 화려한 연꽃넝쿨무늬가 표현된 초록의 비단에 국화 모양의 장식 등 일반 서책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장황으로 특별하게 제작되어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또한, 어람용은 글씨를 잘 쓰는 전문 관원(사자관)을 선발하여 반듯한 글씨체(해서체)로 정성껏 쓴 반면에 분상용은 각종 글씨 쓰기를 담당하는 관원(서사관)이 일반 글씨체로 쓰여졌다. 그림도 분산용은 나무에 새겨 도장처럼 찍은 후 채색하였지만, 어람용은 화원이 손으로 일일이 그린 후 채색을 한 것에 차이가 있다. 이 외에도 어람용은 두껍고 매끈한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측에서 일부 비단 표지를 문양이 없는 비단으로 교체해 놓았다.
이 어람용 의궤는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에는 보관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1866년) 당시,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군대의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면서 의궤를 비롯하여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함께 소실되었다고 판단하였으나,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故(고) 박병선 박사가 거의 1세기가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던 외규장각의궤의 행적을 밝혀내어 이 사실을 한국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들어났다.
그러나 우리에게 귀중한 이 외규장각 의궤가 국내에 들어오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1993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TGV의 대한민국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하면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 1권을 반환하며,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 에서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프랑스 정부에 계속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환수를 요구하며,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주도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였지만 패소하기도 하였다. 이후 2010년 11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의 정상 회담 이후 외규장각을 5년마다 갱신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후 2011년 4월 14일, 1차분 75권 환수를 시작으로 2011년 5월에야 환수가 완료되어, 7월부터 그 중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공개하였다. 그러나 환수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대여 방식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완의 환수라는 점이 분명하다. 의궤는 국립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지만, 그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가 갖고 있다.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조선의 상징적 문화재인 의궤를 우리의 문화재로 등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시나 연구 등을 위해 의궤를 다른 기관에 대여하는 것 등도 프랑스 측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번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은 지난 10년 간 축적된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를 대중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전시로 외규장각 의궤 297책은 물론 궁중 연회 복식 복원품 등 총 46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3부로 1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가진 고품격의 가치의 조명과 함께 의궤 속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과 생생한 그림에서 읽어낸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소개하며, 2부 ‘예禮로서 구현하는 바른 정치‘에서는 의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의례儀禮로 구현한 조선의 ‘예치禮治‘가 담고 있는 품격의 통치철학을 살펴보고 있다. 3부 ‘질서 속의 조화’에서는 각자가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춤으로써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그 이상이 잘 구현된 기사년(1809)의 왕실잔치 의례를 3D 영상으로 구현해 놓았다.
무엇보다 외규장각 의궤가 전량 전시된 서가 형태의 전시장은 마치 외규장각 안으로 들어온 듯한 감동을 안겨주며, 외규장각 의궤 중 영국국립도서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실제와 똑같이 복제하여 관람객이 직접 넘겨보며 어람용 의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의궤의 생생한 기록을 토대로 의궤의 한 장면을 실제로 전시장에 펼쳐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연의 준화樽花와 의상도 새롭게 복원해 놓았다.
전시는 내년 3월 19일까지 진행되며, 고故 박병선 박사를 기억하고자 11주기가 되는 11월 21일(월)~27일(일)에는 무료관람이 실시된다.
한편, 외규장각 의궤 이외에 833종 3430책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해제와 원문, 반차도, 도설 등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외규장각의궤 DB를 구축했고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총 6권을 발간하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연구 성과를 확인 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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