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 사용하였던 토기 특별전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공경恭敬과 장엄莊嚴을 담은 토기’ 특별전
기사입력 2024.02.23 15:20 조회수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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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바리모양 그릇받침 및 원저장경호, 삼국 4세기 02.jpg
토기 바리모양 그릇받침 및 원저장경호, 삼국 4세기

 

 

  

[서울문화인] 신라와 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매장법과 체계적인 제사법이 등장, 확산하면서 새로운 토기가 나타난다. 새롭게 등장하는 토기는 항아리[], 그릇받침[器臺]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은 삼국시대 새롭게 등장한 토기들과 매장과 관련된 여러 유물을 통해서 죽은 이를 보내고 추모하던 의례의 중심에 섰던 항아리와 그릇받침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는 특별전 <공경과 장엄을 담은 토기>를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신사분관 3개의 전시실에서 소개되고 있다. 먼저 4층 제1전시실 공경(恭敬)을 담은 토기_항아리을 시작으로 제2전시실은 장엄(莊嚴)을 더한 토기_원통모양 그릇받침’, 3전시실은 위엄(威嚴)을 받든 토기_화로모양, 바리모양 그릇받침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제3전시실 마지막 공간에는 가상의 무덤을 조성하여 당시의 매장문화와 부장품으로 같이 매납된 토기의 모습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토기 사이호와 두껑, 삼국시대.jpg
토기 사이호와 두껑, 삼국시대

 

 

1전시실 : 공경은 담은 토기_항아리

역사기록과 발굴성과를 보면 삼국시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장례를 후하게 지냈다.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생활할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무덤에 껴묻거리[副葬品, 죽은 자를 매장할 때 함께 묻는 물건]로 토기와 철기, 금은옥(金銀玉)으로 만든 장신구 등을 풍부하게 묻었다. 이를 보면 무덤이 사후세계의 거주지로 생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 묻고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상장의례(喪葬儀禮)를 행하였다.

 

신라와 가야 등이 고대국가로 발전하면서 덧널무덤[石槨墓·木槨墓, 지하에 구덩이를 파거나 지상에 덧널을 짜 놓고 그 위에 돌무지와 봉토를 덮어 봉분을 만든 무덤양식]과 같은 새로운 매장법과 체계적인 제사법이 등장하고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제사용 토기가 나타난다. 제사에 사용된 토기는 굽다리접시[高杯], 항아리[], 그릇받침[器臺]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굽다리접시와 항아리는 그 안에 동물 뼈, 생선 뼈, 조개껍데기, 곡식, 과일 씨 등의 음식물의 흔적과 쇠방울, 작은 칼 등 금속제품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 죽은 사람을 위한 공헌물(供獻物)을 담는 그릇이나 제기(祭器)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마인물 토기, 삼국 5세기.jpg
기마인물 토기, 삼국 5세기

 

 

바닥이 편평한 항아리를 주로 사용하였던 고구려와 달리 백제와 가야, 신라는 바닥이 둥근 항아리[圓底壺]를 많이 만들어 사용하였다. 5세기를 전후한 시기 이후에 가야의 항아리는 목이 길고 둥근 바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바닥이 둥글기 때문에 그릇받침과 짝을 이루어 출토된다. 신라의 항아리는 굽다리가 붙은 것이 많다. 항아리에 장식과 상징을 부여하는 톱니무늬[鋸齒文], 고리무늬[圓文], 줄무늬[集線文]와 같은 다양한 무늬를 새기고, 토우(土偶)를 붙여 장식하기도 하였다. [신라와 가야의 원저호,대부장경호 등 토기 항아리 30여점, 신라와 가야의 금관, 금동관, 금제귀걸이 등 장신구 40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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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원통모양 그릇받침

 

  

2전시실 장엄을 더한 토기_원통모양 그릇받침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바닥이 둥근 항아리를 받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주로 지역의 우두머리[首長] 무덤에서 출토되며 화려한 무늬와 장식으로 꾸민 것이 많다.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으뜸덧널[主槨, 하나의 무덤 안에 있는 여러 곽() 중에서 주인공의 주검을 넣은 곽]과 딸린덧널[副槨, 으뜸 덧널에 딸려 있어 대개 껴묻을 거리를 넣어 두는 곳]이 같이 있으면 주인공이 묻힌 으뜸덧널에, 딸린덧널이 없으면 주인공의 머리맡에 놓였다.

 

대부분 1점이 출토된 경우가 많지만 황남대총 남분, 부산 복천동 고분군과 같은 대형의 무덤에서는 여러 점이 나온 예도 있다. 그리고 무덤 근처 제사와 관련된 유구(遺構)에서도 출토된다. 이것으로 볼 때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대형 무덤의 껴묻거리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덤 주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기(祭器)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형의 크기와 엄정하고 화려한 장식은 제례 의식에서 장엄함을 더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양식이 다르다. 가야 양식은 각종 문양과 세로띠, 투창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그릇을 받치는 부분이 접시나 항아리모양이며, 굽다리가 바리[] 또는 장고모양이다. 특히 대가야 양식의 원통형 그릇받침은 뱀 모양의 세로띠 장식을 붙인 것이 특징이다. 금관가야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몸통의 중앙이 공처럼 불룩하며, 아라가야의 원통그릇받침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돋을띠가 강하게 둘러지며 5세기말 이후 백제의 영향을 받아 장고모양을 하여 백제의 원통형 그릇받침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소가야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신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접시모양의 그릇받침부와 나팔처럼 벌어진 굽다리가 신라의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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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원통모양 그릇받침

 

 

원통모양 그릇받침의 변화만을 보아도 백제와 신라가 이 지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였던 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 양식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그릇받침부가 곧게 밖으로 벌어지고 굽다리는 직선적인 사다리꼴이며 가야 양식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에 비해 장식이 간략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각종 토우와 무늬로 장식한 것들도 보인다. [신라와 가야의 원통모양 그릇받침 40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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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바리모양 그릇받침 및 원저장경호, 삼국 4세기

 

 

3전시실 위엄을 받든 토기_화로모양, 바리모양 그릇받침

화로모양 그릇받침과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원통모양 그릇받침과 같이 바닥이 둥근 항아리를 받치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나 그 자체로도 그릇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놓이는 곳은 딸린덧널이나 묻힌 사람의 발치이며, 여러 점이 하나의 무덤에 부장된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대형 무덤뿐만 아니라 일부 중·소형 무덤에서도 출토되어 원통모양 그릇받침보다는 그 중요도에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로모양 그릇받침과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무덤의 껴묻거리로 사용되었으며, 무덤에 제사를 지낼 때의 제기나 제사를 지낸 후 무덤 주위에 공물을 바치는 등의 공헌품으로도 사용되었다. 듬직한 크기와 화려한 무늬 등으로 의례의 위엄을 더 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로모양 그릇받침은 앞 시기인 원삼국시대의 와질(瓦質)토기에서 기원한 것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인 3세기 후반부터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경주의 신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대가야 양식의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그릇받침부가 얕고 곡선적이며 굽다리는 팔자모양으로, 물결무늬와 솔잎무늬가 주로 새겨졌다면 신라 양식의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그릇받침부분이 깊고 직선적이다. 굽다리는 사다리꼴로 폭이 비교적 넓고 몸통과 굽다리에 물결무늬·문살무늬·줄무늬·톱니무늬·고리점무늬 등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지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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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모양 그릇받침, 삼국 4~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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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무덤

 

 

가야와 신라 모두 크고 높은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풍부한 껴묻거리를 같이 묻었다. 무덤의 규모가 커지고, 무덤을 만드는데 많은 인원과 물품을 동원하는 것은 그러한 장례 행위를 통해 권력을 과시하고 사회적 통합과 지배를 이루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2층 전시실의 마지막 공간은 가상의 무덤을 조성하여 당시의 매장문화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신라와 가야의 화로모양,바리모양 그릇받침 등 110여점]

 

전시는 531()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기준 10,000(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무료)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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