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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구태를 벗어 던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구인’을 만들 때만 해도 뭘 더 내려놓아야 노래가 나올까... 이런 생각을 했다. 뭘 더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 내가 가지고 있는 도그마(진리에 관한 불변의 정리(定理),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으로 신봉되고 주장되는 명제)에서 벗어나야지 하는 것이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다.”
1977년 ‘아니 벌써’로 데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개구장이>, <찻잔>, <가지마오>, <청춘>, <회상>, <너의 의미>,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전설적인 밴드 산울림의 리더 가수 김창완(69)이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열린 새 앨범 ‘나는 지구인이다’ 발매 간담회에서 첫 말문은 의외였다.
<나는 지구인이다>는 그가 2020년 10월 발표한 ‘문’(門) 이후 3년 만에 내놓는 솔로 앨범이다. 타이틀곡 <나는 지구인이다>는 그간 김창완이 해 왔던 직선적인 록이나 소박한 포크의 형태 대신 전자 음악 사운드를 바탕으로 복고풍 정서를 담은 신스팝이다. 업템포의 일렉트로닉 비트에 실어 담담하게 노래하는 김창완의 목소리는 강렬하진 않지만, 동요처럼 쉽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와 함께 은근하지만 강한 중독성을 표출한다. 단순함 속에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선율과 가사, 김창완밴드의 키보디스트 이상훈이 들려주는 키보드 사운드, 그리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더해져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음악가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변화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수 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 너무 동어반복을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만든 말에 갇혀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케이(K)팝 열풍이라지만, 저희 같은 가수들에겐 ‘무대 밑 조명’도 잘 안 비춰줍니다. 요즘 세상이 험한데 뮤지션으로서 무력감도 느끼고, 나약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새벽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나는 지구인이구나’였구나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 주제를 물고 며칠을 지냈다. 그러다 ‘나는 지구인이다/ 지구에서 태어났다’ 두 소절만 갖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죠 서울 서초동 집에서 한강 자전거도로 타고 미사리 지나 팔당대교까지 가면서 내내 흥얼거렸다. 돌아오는 길에 ‘라라라라~’ 하는 후렴구를 붙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구인으로서 지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뿐인 지구에서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을 찬미하는 노래이다”며, 실제 “녹음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또한, 김창완은 ‘지속적인 그리움’이라는 제목을 지닌 앨범 커버 이미지까지 직접 디자인하며 이번 앨범에 각별한 애정을 더했는데 그는 앨범 표지에 대해 “지속적인 그리움이라는 그림이다. 그리움을 표정으로 나타내기 보다는 그리움의 긴 시간을 얼굴로 나타낸 것이다.” 밝혔다.
앨범은 13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타이틀곡 외에 12곡은 김창완이 연주하는 기타와 그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어쿠스틱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둘이서>, <누나야>, <식어버린 차> 등 대부분 기존에 발표했던 작품 중에서 선곡이 이루어졌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기타 연주곡으로 편곡한 <월광>과 동요풍 멜로디와 가사의 <이쁜 게 좋아요>는 <나는 지구인이다>과 더불어 이 앨범에 처음 수록됐다.
이번 앨범에서 그가 가장 마음에 든 노래로 꼽은 <이쁜게 좋아요>는 최근 교장 선생님 역할로 출연한 KBS 2TV 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에 쓰려고 한 것인데, 드라마에서 미처 담지 못하면서 이번 앨범에 싣게 됐다고 했다.
앨범은 11월 24일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되며 무선 통신 기술인 NFC(Near Field Communication)를 활용한 카드 앨범과 CD, 그리고 LP로도 선보이게 된다. NFC 앨범과 CD는 12월 중에, 스페셜 박스로 구성한 LP는 내년 봄 출시 예정이다.
이날 산울림 팬클럽 ‘산울림매니아’ 회원들이 무대로 올라와 산울림 1집을 엘피로 제작한 ‘플래티넘 디스크’ 기념패를 김창완에게 전달했다. 앞서 김창완은 “지겹도록 똑같은 일상이 저에겐 큰 기둥이자 저를 지켜주는 힘이다. 공연장에 찾아오는 팬들을 보면 옛날에는 못 가졌던 감정이 든다. 이분들이 진짜 나를 키워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밴드와 전국 각지에서 꾸준히 공연을 펼치고 있는 김창완밴드는 12월 13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크라잉넛과 합동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권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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