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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미술은 기본적으로 점, 선, 면에 시작하여 색이 입혀지고 거기에 명암이 더해지면서 우리가 흔히 일컫는 평면 미술이 되고 이것이 입체적으로 발전하면 입체 미술이 된다. 이러한 창조 예술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 과천관에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적(미술) 행위라 할 수 있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 가운데 1920년대부터 1970년대에 국내에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조망하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을 선보이고 있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앞서 밝혔듯 점과 선, 원과 사각형 등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의 한 경향으로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적 한 장르보다는 보자기, 돗자리(화문석) 등 일상적 소재에 많이 활용 장식적인 측면이 강했으나 서구에서는 몬드리안, 칸딘스키, 말레비치와 같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각광을 받았으며, 20세기에는 현대미술의 주요한 경향으로 여겨졌다.
국내에서 이러한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1920-30년대 근대기에 등장하여 1960-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등 한국 미술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각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장식적인 미술 혹은 한국적이지는 않은 추상으로 인식되며 앵포르멜이나 단색화와 같은 다른 추상미술의 경향에 비해 주변적으로 여겨져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한자리에 소개함으로써 그 독자성을 밝히고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기혹된 전시라고 밝혔다.
전시에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인의 작품 150여 점을 통해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현대미술은 물론 과거 서양 미술이 전래되던 당시 건축과 디자인 등 연관 분야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함께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1920~30년대의 경성은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이 직간접적으로 유입되면서 미술과 디자인, 문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시대이다. 당대의 창작자들에게 기하학적 추상은 새로움과 혁신의 감각으로 여겨졌다. 동시에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순수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위계를 구분하는 경계로 처음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1930년대 말에는 김환기와 유영국이 동경과 경성에서 전위미술로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던 바우하우스처럼 국가 재건기에 미술, 건축, 디자인의 새 역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57년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인 신조형파가 결성되었다. 이 그룹은 건축을 기반으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고자 했던 독일의 건축, 예술 학교인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삼았다.
신조형파 작가들에게 있어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에 적합한 미술은 합리적인 기준과 질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었다. 이것을 미술품으로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곳에 표현 되었다면 미술에서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 추상을 제작하거나,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서정적인 감성을 부여한 작품들이 발견된다. 김환기와 유영국 같은 1세대 추상미술가로 부터는 한국적 정체성과 관련한 주요 소재인 자연과, 현대미술의 양식인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연계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엽까지 한국에서 기하학적 추상은 청년 작가들로부터 기성 미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갔다. 미술계 내부적으로는 앵포르멜 이후의 미술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그 대척점에 있는 기하학적 추상이 부상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미술이 산업, 건설, 과학의 발전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자 했던 1960~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에 적합하다고 인식된 것도 당대에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확산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전시는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시대별 주요 양상을 따라 5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에서는 근대기91920-30년대)에 미술과 디자인, 문학의 영역까지 확장된 기하학적 추상의 사례를 살펴보며, 두 번째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에서는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하여 1957년 한국 최초로 결성된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 ‘신조형파’의 활동상과 전시 출품작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에는 김충선, 변영원, 이상욱, 조병현 등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세 번째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에서는 김환기, 유영국, 류경채, 이준 등 1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과 이기원, 전성우, 하인두 등 2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특수성을 살펴보고 있다.
네 번째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엽까지 기하학적 추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양상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앵포르멜 이후의 미술을 모색했던 최명영, 문복철을 비롯하여 최초로 공개되는 윤형근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작 〈69-E8〉(1969)을 포함해 박서보, 하종현 등 한국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기하학적 추상 시기의 작품과 함께 변영원, 이성자, 한묵 등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중앙홀에서 선보이는 다섯 번째 “마름모-만화경”에서는 창작집단 다운라이트&오시선의 커미션 작품을 소개한다. 아티스트, 디자이너, 엔지니어로 구성되어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탐색하는 이 그룹은 1, 2전시실에서 소개한 1920-70년대 기하학적 추상미술 작품들이 지닌 삼각형, 마름모 같은 패턴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만화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풀어내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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