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곳곳에서 펼쳐지는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프로젝트>전
기사입력 2012.09.24 16:55 조회수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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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는 덕수궁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한《덕수궁 프로젝트》전을 덕수궁의 중화전, 행각, 함녕전, 덕홍전, 석어당,정관헌 등 6개 전각과 후원에 총 9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오는 12월 2일(일)까지 105일간 전시된다. 또한 덕수궁미술관 내부에서는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완성된 작품, 영상,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50여점이 9월 19일(수)부터 10월 28일(일)까지 55일간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현대미술작가에게 작품을 제작 의뢰하고, 궁궐 곳곳에 설치작업을 시도하여 살아있는 문화유산의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기획 이번 프로젝트에는 서도호, 정영두, 이수경, 임항택, 김영석, 정서영, 최승훈+박선민(공동작업), 류한길, 류재하, 하지훈, 성기완 등 한국 현대미술계의쟁쟁한 작가, 디자이너, 무용가, 공예가 12명이 참여한다. 또한 전통적인 조각·설치를 비롯하여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 활동이 수반된다.


 


덕수궁은 1593년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거처하면서 처음 궁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이후 광해군 시대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인목대비가 이 곳에유폐되기도 했으며, 인조가 즉위한 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후 오랫동안 궁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가, 고종이 아관파천 후 1897년 경운궁으로 환어하고 같은 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궁’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그러나 독립국의 위용을 드높이고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했던 고종의 ‘경운궁 프로젝트’는 일제에 의해 강력하게 저지당했다. 고종은 황제의 자리를 강제 양위한 후, 1919년 덕수궁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덕수궁 프로젝트>는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가진 채 파란만장한 사건의 현장이었던 덕수궁 곳곳에 한국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설치. 덕수궁의 역사가 지닌 육중한 무게감을 짊어진 채예술가들은 각자 특유의 상상력과 해석을 더한다. 때로는 그 시대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진지하지만 불가능한 시도에 몰두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가시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추상적 언어를 찾아내기도 한다. 아나운서가 들려주는 궁중소설이 중화전 행각에서 들려오는가 하면, 화려한 중화전의 단청과 기와를 가득 덮은 미디어 맵핑을 야간에 감상할 수도 있다.


 


이번 덕수궁 프로젝트에는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전시연계교육으로 덕수궁 곳곳을 다니며 작품을 통해 고궁에 얽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감상 프로그램으로, 10월 중에 실시될 예정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덕수궁에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작가들의 깊은 사유가 발현된 현대미술로 재해석되는 현장을 함께할 수 있는 <덕수궁 프로젝트>는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특별한 시공간 속에서 ‘살아있는 덕수궁의 오늘’을 경험해 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o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류재하 <시간>
경운궁의 정전(正殿)인 중화전(中和殿)은 1902년 2층짜리 건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채 2년도 되지않아 1904년 경운궁의 대화재로 불탔고 곧이어 1층의 현재 건물로 중건되었다. 대한제국 시대 독립자주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었지만, 이내 불어 닥친 국가의 불운을 감내하고 지켜보아야 했다. 작가 류재하는 역사의 영욕을 간직한 중화전의 전면에 미디어 영상을 쏘아 올린다. 중화전의 앞마당인 조정(朝廷)의 박석에는 교차하는 레이전 선들을 가득 깔았다. 바닥에서 2층의 월대를 거쳐 중화전 건물로 이어지는 거대한 영상 효과는, 주변을 거니는 관객으로 하여금 환상적인 공간과 초월적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인도한다. 존재와 비존재, 생성과 소멸, 빛과 어둠이 그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명상적 차원으로 이끈다.


 


미디어 상영 일정 : 9월 18, 19, 20, 21, 22일 7:00 p.m.
9월 29, 30일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연계) 7:30 p.m.
10월 4, 5, 18, 19일 6:30 p.m.
10월 6, 7일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연계) 7:30 p.m.
11월 8, 9, 10, 15, 16, 17일 6:00 p.m.


 



이수경 <눈물>
석어당(昔御堂)은 경운궁의 시원을 이루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인데, 1593년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이 곳에 머물면서 궁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608년 선조가 석어당에서 승하하였고, 광해군 시대에는 인목대비가 이 곳에서 약 5년간 유폐되기도 했다. 작가 이수경은 덕수궁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소박한 건물에 눈부신 눈물조각을 설치한다. 마치 눈물 한 방울이 응결된 것 같은 이 조각은 수 천 개의 LED 조명에 의해 굴절되고 반사되면서 정확히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슬프지만 지극히 아름답고, 빛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이 역설적인 조각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삶을 꾸려갔던 수많은 궁궐 속 여인들의 운명을 표상한다. 형언할 수도 없고, 잘 파악될 수도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는 그 어떤 세계를 비추인다.


 



하지훈 <자리>


덕홍전(德弘殿)은 함녕전의 바로 옆에 자리한 일종의 편전(便殿)이다. 원래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魂殿)인 '경효전(景孝殿)'이 있던 곳을 한일병합 후인 1912년 개조하여 덕홍전으로 고쳐 부른 것이다. 원래 신성한 ‘터’였던 곳을 일본인 통치자의 접견 장소로 변형시키면서, 바닥을 입식 구조로 바꾸고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이토록 미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이 일종의 변형과 왜곡의 산물이었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했다. 바닥에 크롬 도장의 좌식 의자를 가득 설치하여, 실내의 벽면과 천정 장식이 의자의 표면에 다시 ‘반영’되도록 한다. 실내의 인공 조명과 외부의 자연광은 바닥 표면의 불규칙적인 반사효과를 더욱 증폭시킨다. 관객이 이 황홀한 공간을 서성이는 가운데, 사운드 아티스트 성기완의 음악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여인의 흐느낌, 찻잔 부딪히는 소리, 약간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여 생성되는 강렬한 에너지가 이 ‘자리’의 특별함을 더한다.




김영석
석어당(昔御堂)은 임진왜란으로 피신 갔다 돌아온 선조가 거처했던 곳이고, 광해군 시대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원형을 보존하여 오다가 1904년 경운궁 대화재로 불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석어당은 즉조당과 하나의 권역을 이루며 1930년대까지도 복도각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종 시대에는 덕혜옹주를 위한 유치원이 즉조당 일곽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복 디자이너이며 컬렉터로도 유명한 작가 김영석은 다양한 사연을 담은 석어당의 방들을 아름답고 여성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빼곡하게 방을 채운 개화기 시대의 가구와 공예품들은 모두 작가의 컬렉션이다. 마치 한때 지극히 행복했던 덕혜옹주의 한 시절을 되돌리려는 듯, 설치된 소품과 영상작품이 아련한 기억과 향수를 이끌어낸다. 꽃장식이 가득한 가운데, 석어당 앞마당에서 이정화의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행복과 불행은 그 경계가 없으며, 끝도 시작도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석어당의 매력은 희로애락이 뒤섞인 우리의 인생을 성찰하게 한다.


 



정서영+정관헌 <마음 속으로 정해라>


정관헌(靜觀軒)은 1900년경 러시아인 건축가 세레딘 사바친(Afanasij Seredin Sabatin, 1860-1921)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구조는 한국의 정자 같기도 하고 서양의 발코니 같기도 하다. 용, 이화(李花)와 같은 대한 제국의 도상에서부터 박쥐, 복숭아, 화병 등 다양한 문양이 공존한다. 나무, 철재, 유리뿐 아니라, 기둥의 인조 콘크리트, 바닥의 타일, 지붕의 녹색 아스팔트 슁글 등 재료 또한 매우 혼성적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각양각색의 기억들이 중첩된 이 공간에 작가 정서영은 ‘현대성’의 요소를 또 한번 겹쳐 놓는다. 정관헌 내부에 기왕 존재하는 가구들 사이로 다각형의 거울조각을 끼워 넣기도 하고, 이 가구들을 덕수궁미술관 내부로 내보낸 후 빈 자리를 한 명의 퍼포머로 대신 채워 넣기도 한다. 정관헌의
뒷마당에서는 세상의 각종 소리를 음악적 요소로 불러들이는 사운드 아티스트 류한길의 공연이 짧은 모노드라마와 함께 펼쳐진다. 궁의 ‘주변’에 위치한 채 도심의 경계와 맞닿아있는 정관헌의 독특한 위치는, 어처구니 없고 예측을 불허하는 상상의 지대를 자극한다. “분절되고 지워지거나 파편적으로 호출된 기록들”(작가 글 인용)이 이 일대를 배회한다.




최승훈+박선민 ,


덕수궁의 연못가 숲은 한 때 궁궐 안의 다양한 업무를 관장하는 궐내각사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던 공간이다. 1930년대 일제에 의한 덕수궁의 공원화 사업으로 이 일대의 행정 건물들이 대부분 사라졌고, 1960년대에는 연못 일대가 스케이트장으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연못을 판 흙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둔덕 위에 오래된 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낮에도 우거진 나무들로 그늘이 형성되는 이 자그마한 숲 속에 작가 최승훈과 박선민은 그림자 놀이 영상을 설치한다. 창문 틈으로, 혹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사물을 만나 느린 그림자를 만든다. 사물의 움직임이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천천히 가른 것이다. 그 사소하고 평범한 사건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뜻밖에도 그 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나지막한 담장 바로 너머로는 서울 중심가의 번화한 일상이 전개된다.


 


덕수궁미술관


 



김은호의 노안(좌), 조석진의 노인(우)


김은호의 순종황제상


김환기의 새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안중식의 산수


이수경


이중섭의 부부


이중섭의 아이들


이중섭의 애들과 물고기와 게


이중섭의 투계


채용신의 십장생도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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