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흥선대원군의 생애와 시선을 따라 만나는 운현궁

서울역사박물관 ‘운현궁, 하늘과의 거리 한자 다섯치’展 개최
기사입력 2018.01.06 01:43 조회수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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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서울역사박물관의 최대 컬렉션은 운현궁(雲峴宮) 유물로 서울역사박물관은 1993년부터 지금까지 운현궁 소장 유물을 10여 차례에 걸쳐 기증받았고,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관련 유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현재 8,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저이며, 고종이 즉위 전 12세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운현구름재라는 뜻으로 매천야록에는 서운관 앞 고개에 위치한 궁으로 기록되어 있다. ‘흥선군 집으로 불리던 이곳의 명칭이 186466고종실록에 처음 운현궁으로 등장하는데 고종 즉위 이후 운현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국왕의 명령보다 강한 권위와 힘을 가졌던 대원위분부(大院位分付) 흥선대원군에게 운영궁은 삶의 터전을 넘어 통치체제 정비를 위한 구상을 하던 정치적 공간이자, 30대에 이미 예서(隸書)와 묵란은 조선의 제일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대원군이 권력을 내려놓은 뒤 노년에는 묵란(墨蘭) 제작에 전념하던 예술적 공간이기도 하다.


 


 


운현궁


 


 


이처럼 방대한 유물을 바탕으로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2007년에는 흥선대원군의 초상화를 비롯해 고종을 포함한 후손들의 초상화를 전시한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2009년에는 운현궁의 역사와 생활상, 예술인으로서 흥선대원군의 면모를 조명하기 위해 그의 예술작품과 운현궁 생활유물을 소개한 운현궁을 거닐다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


 


 


이어서 현재 흥선대원군의 예술세계 혹은 정치적인 입장을 소개하던 기존의 전시와 달리 고종의 즉위부터 재위 40년에 이르기까지 흥선대원군의 생애와 시선을 따라 운현궁에 담긴 역사와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운현궁-하늘과의 거리 한 자 다섯 치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면 흥선대원군이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보정부(保定府)에서 유폐되어 지냈던 시기를 최초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흥선대원군의 고독한 유폐 생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낸 짧은 편지들, 손자 이준용의 생일 선물로 그려 보낸 묵란화, 유폐 생활 기록인 석파잡기(石坡雜記)등을 전시장에 풀어내면서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운현궁의 회계장부 통조수지(統照須知)를 통해 1889~1892년까지 운현궁의 수입과 지출 등 세부 명세를 살펴볼 수 있다. 운현궁은 김포, 부평, 김제, 광양, 순천, 김해뿐만 아니라 황해도 재령 사리원 등 전국에 많은 장토를 보유하고 있어 상당한 지대(地代) 수입이 있었으며, 저수지나 보의 소유권도 가지고 있어서 농민들에게 매년 물세도 받았다는 것이다. 운현궁에서는 일반 사가(私家)와 마찬가지로 등잔(), 소금(), 식초(眞醋), 기와(常瓦), 이불() 등을 구입하였으며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녹용(鹿茸), 약초와 인삼(, ) 등의 내역도 그래프와 도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운현궁 노락당은 명성황후가 궁중 예법과 가례 절차를 교육받고 가례를 치른 의례 공간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는 18663월에 행해졌다. 고종의 가례 의절은 역대 국왕과 같은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규모는 가장 성대하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고종명성왕후가례도감의궤(高宗明成皇后嘉禮都監儀軌)(보물 제1901-2, 장서각 소장)을 통해 운현궁에서 친영례親迎禮(왕이 왕비를 모시고 가는 의식)를 마치고 환궁하는 행렬에는 총 2,430여 명의 인원과 690여 필의 말이 동원되었다는 내용을 한눈에 살펴볼 수도 있다.


 


아울러 이곳에서 여흥부대부인과 흥선대원군의 상장례는 동시에 진행되었던 곳이다. 부대부인이 18971216(음력) 운현궁 이로당(二老堂) 동쪽 온돌방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후 흥선대원군이 189822(음력) 노안당(老安堂)에서 훙서(薨逝)하였다.


 


고종은 부대부인의 사망 직후 운현궁에 예장청(禮葬廳)을 설치하여 상장례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예장청이라는 임시 관청이 설치된 것은 조선 개국 이래 처음이었다. 이 기관에서 작성한 장례에 관한 의식, 절차 등을 정리한 책이 예장청등록(禮葬廳謄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장청등록(禮葬廳謄錄)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장례 과정 전체를 정리하고 세부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전시 마지막 부분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운현궁으로부터 기증받은 임인진연도병풍(壬寅進宴圖屛風)을 소개하고 있다. 임인진연도병풍은 1902년 망육순(望六旬, 51)이 된 고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여 새로운 황궁인 경운궁에서 열린 궁중행사를 그린 병풍으로 국립국악원에 소장되어 있는 것과 동일본이나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재면이 회혼(回婚)을 맞이한 흥선대원군 부부의 장수를 비는 아홉 악장(樂章)을 비단에 써서 흥선대원군 부부에게 올린 것으로 전해지며, 알려지지 않은 당시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송수구장십첩병풍>도 최초로 공개되었으며, 대원군이 1884(고종 21) 7월 어느 날에 열다섯 살 성년이 된 맏손자 이준용(李埈鎔, 1870~1917)을 위해 그려 보내준 석란도(石蘭圖)도 감상할 수 있다.


 


 


고종즉위40년임인진연도병


석란도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단순 운현궁의 역사와 유물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흥선대원군의 정치와 예술, 삶과 회한의 생애는 물론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생활상까지 당시의 역사를 감응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전시라 하겠다.


 


전시는 34()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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