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환수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110년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다.

오대산사고가 있던 오대산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개관
기사입력 2023.11.10 00:00 조회수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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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01.jpg
평창군 진부면에 새롭게 개관하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서울문화인]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과 조선왕조의궤(이하 ‘의궤’)의 오대산사고본 원본을 원 소장처였던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오대산에 실록과 의궤를 보관·전시하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하 ‘실록박물관’,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이 11월 12일(일) 정식 개관하면서 이곳으로 이관시켜 일반에게 상시로 공개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시대 제1대 왕 태조로부터 제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로 1973년, 2007년, 2019년에 국보 지정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되었다. 더불어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 왕실 행사한 서책으로 조선왕조(1392년~1910년)의 왕실 행사의 준비 및 시행, 사후 처리과정에 대한 기록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된 독특한 기록유산으로 거의 4천권으로 구성되었다. 2016년에 보물 지정되었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되었다.

 

참고로 오대산본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시 일본에서 환수전이라 북한에서 보관하고 있는 적상산본과 함께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서는 빠져있다. 문화재청은 향후 기록유산 등제를 위해 진행할 예정이라 밝혔지만 이를 위해서는 등제를 위한 절차를 새로 받아야 한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 지방 외사고 중 하나인 오대산 사고에 보관 중이던 실록과 의궤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 실록 전량과 의궤 일부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피해로 상당 수 소실되었다. 그러다 1932년 27책 경성제국대(현, 서울대학교)로 이관되었지만 나머지는 동경대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민간과 불교계,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2006년 동경대에 남아있던 47책 서울대로 반환되었고, 이후 2017년 일본에서 경매를 통해 1책(효종실록 1책)이 추가로 매입되어 총 75책 환수되어 총 82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1. 오대산사고본 성종실록, 조선(1606년), 국보,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jpg
오대산사고본 가운데 성종실록, 조선(1606년), 국보,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8. [철종]국장도감의궤, 조선(1865년), 보물,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jpg
[철종]국장도감의궤, 조선(1865년), 보물,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전기에는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 등 4곳에 사고(史庫)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를 제외한 모든 사고가 불에 타버렸으나 1603년(선조 36)에서 1606년까지 전주 사고본 실록을 근거로 태조에서 명종까지 13대에 걸친 《실록》을 다시 4부씩 인쇄하였다.

 

임진왜란 전에는 사고는 도심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새롭게 제작된 실록은 춘추관·묘향산·태백산·오대산·강화도 마리산에 사고를 설치하여 실록을 보관하였는데, 춘추관실록은 이괄(李适)의 난(1624)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마리산 사고의 실록은 1636년 병자호란의 피해를 입어 현종 때 보수하여 1678년(숙종 4)에 가까운 정족산(鼎足山) 사고로 옮겨졌으며, 묘향산 사고본은 1633년에 전라도 적상산(赤裳山) 사고로 옮겨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 다시 큰 변화를 겪었다. 일제는 정족산·태백산 사고의 실록을 조선총독부로 이관하였다가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으로 이장하였고, 적상산 사고본은 장서각으로 옮겼다.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도쿄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다.

 

다시 실록은 1950년 6·25전쟁으로 당시 장서각 소장의 적상산본은 북한으로 옮겨졌으며, 태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었다가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었고, 정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며, 태백산본은 1980년대 부산광역시에 있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으로 이관되어 보관중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북한에서는 1980년대에 번역을 완료하였으며, 남한에서도 1968년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1972년부터 분담하여 국역작업을 시작하여 1994년 4월 마무리지었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03.jpg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는 국내로 환수된 이후 줄곧 국립고궁박물관(서울 종로구)에 소장되어 왔지만 원 소장처인 오대산(오대산사고본은 당시 월정사가 수호사찰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었다)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지역의 오랜 염원에 따라 문화재청이 오대산에 설립한 실록박물관에서 소장, 관리하게 되었다. 박물관 건물은 기존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운영하였던 건물로 월정사의 기부을 통해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새 단장해 사용하게 되었다. 박물관의 총 면적은 3,537㎡로, 지상 2층 규모이다.

 

 

조선왕조실록·의궤의 편찬부터 환수까지의 역사, 상설전시로 만나다.

이번에 개관하는 실록박물관은 실록의 원본을 상시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실록과 함께 오대산사고본 의궤 원본도 전시된다. 박물관은 이 외에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관련 유물 1,207여 점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수장고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실감형 영상관 등 다양한 공간들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선 개관하는 공간은 상설전시실이며, 순차적으로 개관될 예정이다. 상설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대산사고에 보관했던 실록과 의궤의 편찬과 분상(分上조선시대 국가와 왕실의 중요한 기록물을 여러 부 제작하여 사고와 관청 등에 나누어 보관함)부터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반출된 후 110년 만에 본래의 자리인 오대산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면서, 국외 반출 문화유산 환수의 중요성과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전시로 마련됐다.

 

 

유물 설명하는 서정민 학예연구사 02.jpg
1부, 유물 설명하는 서정민 학예연구사

 

 

▲ 1부 ‘깊은 산속에 품은 조선왕조의 역사, 오대산사고’에서는 조선왕실의 기록물 생산과 보관, 외사고의 역사, 오대산사고의 입지와 운영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외사고 전각에 걸었던 <실록각(實錄閣)>·<선원보각(璿源譜閣)> 현판 등을 전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영상, 그림, 사진, 지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오대산사고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박물관 내부 2.jpg
2부 전시장

 

 

▲ 2부 ‘조선왕조실록, 역사를 지키다’에서는 태조부터 철종대까지의 472년간의 기록인 실록의 편찬과정을 오대산사고본 <성종실록>, <중종실록>, <선조실록>, <효종실록> 과 함께 살펴본다. 오대산사고본 가운데 <성종실록>과 <중종실록>은 최종 교정쇄본을 정본 대신 봉안한 유일한 사례로 전시에서는 이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정족산사고본 정본을 함께 전시하여 조선시대 실록편찬의 중간과정과 교정부호 체계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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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으로 처리된 실록.jpg
밀랍으로 처리된 실록, 이는 전주사고본(태조-명종)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임란 이후 제작된 실록은 밀납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본존상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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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1권. 곳곳에 빨간 줄을 긋고 수정지시를 한 게 눈에 띈다. 금속활자로 찍던 중 오탈자를 수정한 흔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은 편찬 과정에서 세 번 교정을 거쳤는데, 최종 교정쇄본이 사고에 보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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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을 운구하는 모습 등을 터치스크린으로 살펴볼 수 있다.

 

 

 

▲ 3부 ‘조선왕조의궤, 왕조의 모범을 보이다’는 조선왕조의 행사 보고서인 조선왕조의궤의 편찬과 분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의궤에 찍었던 인장인 <유서지보(諭書之寶)>와 활자본 의궤의 도설(서적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수록된 그림)을 찍어낸 <연화대무의궤도설판(蓮花臺舞儀軌圖說版)> 등을 오대산사고본 <[영조]묘호도감의궤[英祖]廟號圖鑑儀軌>,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圖鑑儀軌)> 등과 함께 살펴보며, 오대산사고본 <철종국장도감의궤(哲宗國葬都監儀軌)>, <대례의궤(大禮儀軌)>를 관련 유물과 함께 전시하여 태조, 철종, 고종이 조선의 왕으로서 겪은 삶의 순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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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4.jpg

 

박물관 내부 5.jpg

 

 

로비 공간에는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의 반출에서 환수까지의 과정을 사진과 영상 자료로 소개하여 환수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실록 등 기록 문서를 공개하는 박물관인 만큼 습기와 충해 방지에 특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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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설전시실은 아쉬운 점이 있다. 기존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시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록박물관인 만큼 실록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그 과정을 비롯하여 역사에 대한 설명 등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이후 개관하는 기획전시실, 실감형 영상관을 통해 보완이 절실해보였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jpg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조선시대 오대산사고 지킨 수호사찰인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오대산사고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월정사가 규모 있는 사찰로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며 “오대산사고의 반환은 민간환수운동의 결과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어 “문화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가장 빛난다. 이번 실록박물관 개관은 지역의 회복, 역사의 회복이자 미래로 나아가는 희망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개관식 하루 전인 10일에는 실록과 의궤를 오대산으로 옮기는 이운행렬 재연행사와 축하 공연이, 개관식이 열리는 11일에는 고유제 등 풍성한 행사가 펼쳐진다. 개관일인 12일에는 실록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100명에게 선착순으로 소정의 기념품도 증정한다.

 

실록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이며, 매주 화요일은 휴관일이다. 11~4월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운영하며, 내년 5~10월부터는 관람시간을 오후 5시 30분까지로 연장될 예정이라 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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