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문화재] 울릉도 뱃길의 출발지까지 좀 더 상세한 지리정보를 담은 ‘대동여지도’, 일본에서 환수

동여도(東輿圖)를 품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첫 공개
기사입력 2023.03.31 00:00 조회수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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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보는 관계자들(왼쪽 세 번째_최응천 문화재청장, 왼쪽 네 번째_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01.jpg
대동여지도 보는 관계자들(왼쪽 세 번째_최응천 문화재청장, 왼쪽 네 번째_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서울문화인] 330,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 이하 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전문 출판자인 김정호(金正浩, 1804 추정1866추정)1861년에 처음 제작·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의 병풍식 전국 지도첩으로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1864년 제작된 목판본에 가필(글이나 그림 따위에 붓을 대어 보태거나 지워서 고침), 색칠하고동여도에 기술되어 있는 지리정보를 필사(筆寫)해 추가한 것으로,동여도대동여지도가 하나의 지도에 담겨져 있다.

 

 

대동여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jpg
대동여지도 초간본(186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동여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의 저본(底本, 개정, 번역 따위를 하기 전 본디의 서류나 책)으로 삼았던 것으로 볼 수 있는 조선전도로, 조선시대의 교통로와 군사시설 등의 지리 정보와 약 1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는 채색 필사본이다. 이에 반해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새겨야 하는 한계 때문에 많은 지명들과 주기(註記, 지도의 여백에 영토의 역사, 지도제작법, 지도사용법 등을 적어놓은 것)가 생략되어 있다. (*동여도: 필사본(筆寫本) / 23(목록 1, 지도 22))

 

 

대동여지도 판본.jpg
대동여지도 판본 소장처

 

 

현재 대동여지도의 판본은 국내외 35(국내 21, 해외 14)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 판본은 신유본이 26, 갑자본 7, 미상 2점이다.

 

이번에 공개된 대동여지도는 국내에서 최초 확인된 동여도의 주기 내용이 필사된 대동여지도판본으로 1864년 목판본(갑자본)에 필사된 것으로 23(목록 1, 지도 22) 완질이다. 1첩의 크기는 각 30cm × 20cm로 전체 개첩시 약 6.7m × 4m에 이른다.

 

 

대동여지도(전체 23첩) 01.jpg
환수 대동여지도(전체 23첩)

 

 

대동여지도(전체 펼친 모습) 01.jpg
환수 대동여지도(전체 펼친 모습)

 

 

대동여지도 01.jpg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의 한계를 동여도의 주기 내용을 필사해 보완한 최초의 사례로 확인되며, ‘대동여지도가 보급되면서 변용된 형태로 추정했다. 국내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와는 다른 구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환수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전했다. 또한, “국내 소장된 대동여지도갑자본과 동여도가 희소하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조선의 지도 제작과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 연구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지리 정보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유물이라 밝혔다.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는 삼척부와 울릉도의 첩배치 차이가 확인되어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대동여지도는 목록이 따로 없으며 22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번 환수 유물은 총 23(목록 1, 지도 22)으로 구성, 이는 동여도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120리 간격으로 구분하여 22층을 만들고, 각 층을 병풍식으로 접을 수 있는 첩으로 만든 것은 동여도대동여지도가 같다.

 

무엇보다도 가장 주목할 것은 동여도의 주기 내용이 대부분 필사되어 상세한 지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백두산 일대가 묘사되어 있는 제2첩의 경우 대동여지도판본에는 없는 백두산정계비와 군사시설 간의 거리가 필사되어 있다. 또한 울릉도 일대가 묘사되어 있는 제14첩에는 대동여지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울릉도로 가는 배의 출발지 등의 내용이 필사로 적혀 있다.

 

*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1712(숙종 38) 백두산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표시한 경계비이다.

 

세부적인 구성에서도 그동안 국내에서 확인된 대동여지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대동여지도의 지도유설(地圖類說, 제작 목적, 지도의 중요성 등을 밝힌 글)1첩에 간인(刊印, 판을 새기어 간행물을 인쇄함)되어 있으나 이번 유물은 지도의 빈 공간에 필사되어 있으며 그 내용도 동여도의 것과 같다. 또한 대동여지도판본에서는 2면에 걸쳐 인쇄되어 있던 강원도 삼척부와 울릉도 일대가 1면으로 축소되어 배치되어 있는 점은 동여도의 배치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첩 비교(환수본, 동여도, 대동여지도(갑자))(위에서부터) 01.jpg
첩 비교(환수본, 동여도, 대동여지도(갑자))(위에서부터)

 


한편, 이번 환수는 해당 유물 소장자가 매도 의사를 밝히면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정보 입수 이후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수차례에 걸친 재단의 면밀한 조사, 관계자간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올해 3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매입자금은 복권기금으로 추진되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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