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회현자락에서 조선시대 서울성곽 발굴

남산 백범광장에서 조선시대 한양의 상징인 서울성곽과 유물 100여 점 발굴
기사입력 2010.07.04 19:37 조회수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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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서울역사박물관은 남산공원 백범광장에서 조선시대 한양의 상징인 서울성곽과 관련 유물 100여 점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굴은 역사가 흐르는 남산의 이미지를 조성하기 위한 서울성곽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계획 되었다.

이번에 발굴된 구간은 남산공원 아동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위치한 중앙광장 사이에 해당하는 백범광장(백범 김구선생 동상 주변 9,500㎡)지역이다. 이곳을 지나는 서울성곽의 원래 길이는 195m로 추정되었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43m 가량이 극적으로 보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성곽 잔존상황


유물출토상황(유적)


조선신궁(남산신사도리)



남산공원 백범광장 일대는 남산의 서쪽 끝자락에 해당되며 일제에 의하여 조선신궁이 건립되고 해방 이후로도 지속적인 훼손 과정을 거치면서 서울성곽이 파괴된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조선신궁이 건립되면서 남산은 원래 모습을 크게 잃게 된다. 서울성곽은 일제에 의해 크게 파괴되었고 1950년대 말 남산국회의사당 건립계획이 추진되면서 추가적으로 훼손과 멸실 과정을 겪었다.

서울시와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지역의 사라진 성곽을 복원하고자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서울성곽의 기저부와 체성이 3~5단 가량 드러나 그동안 추정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서울성곽 멸실구간의 전모를 실제 유적 발굴을 통하여 확인 하였다.

발굴조사는 1912년에 제작된 지적원도에 기록된 서울성곽 측량 자료를 근거로 진행하였다. 그동안 남산 서울성곽은 전체구간을 돌로 쌓았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일부구간은 흙을 다져올려 쌓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서울성곽의 축조방법은 그동안 학계에 소개되었던 것보다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토축으로 쌓은 성벽은 기반암을 수직으로 깎아낸 뒤 점성이 강한 흙을 15~20cm단위로 켜를 이루어 쌓아 올렸다. 그 뒤에 성벽의 거칠게 다듬은 면석을 사용하여 성곽을 조성 했다.

주요 출토유물로는 백자류, 도기류, 와전류, 청동류, 동물뼈 등이 있다. 특히 성곽의 기초를 이루는 기저부에서 백자병 2점, 도기병 3점이 일괄 출토되어 주목된다. 출토 당시 백자병은 구연부가 서로 교차한 형태였으며, 함께 출토된 도기병 3점은 거꾸로 뒤집혀져 그릇 바닥이 하늘을 보는 방향으로 매장되어 있었다. 출토 상황을 통해 볼 때 이 유물은 성곽 주변에 모여 살던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의 무속적 행위와 관련된 흔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는 발굴조사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청과 관련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을 복원할 방침이다. 아울러 남산 회현자락을 접근하기 쉽고 친숙한 자연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공원조성사업을 병행하여 2012년까지 백범광장 지역을 환경친화적으로 정비할 예정이다.


 


최부기 기자.


 

[최부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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