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궁궐,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 복원 이뤄지나..

기사입력 2020.04.09 17:22 조회수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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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덕수궁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경술국치인 1910년까지 13년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사용한 곳으로, 당시는 중명전과 옛 경기여고가 있던 자리까지 포함된 넓은 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하면서 덕수궁의 궁역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잘려나가고, 궁궐의 전각들은 훼철(毁撤)되었다.

 

1920년대에는 현재의 덕수궁과 미국대사관 사이에 담장 길이 조성되어 덕수궁이 둘로 쪼개지게 되었고, 조선왕조의 근원인 선원전 영역은 총독의 손에 넘어가 조선저축은행 등에 매각되었으며, 선원전은 헐려 창덕궁으로 옮겨졌다. 또한, 덕수궁 중심영역의 공원화 계획으로 돈덕전마저 헐려나가고, 함녕전의 정문이었던 광명문도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유물을 보관하는 전시관으로 변해버렸다.

 

이에 문화재청은 20181919년 고종의 승하 이후 제 모습을 잃어버린 덕수궁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자 덕수궁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광명문, 돈덕전, 선원전의 원형을 연구하여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 나갈 계획을 밝히면서 그해 6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을 시작으로 일제에 의해 변형, 왜곡된 덕수궁의 제 모습을 찾기를 시작하였다.

 

 

덕수궁 복원정비 조감도 03.jpg

 

제자리 찾은 광명문.jpg
2018년 제자리 찾은 광명문

 


이 와는 별도로 대한제국 황궁 정문인 대한문의 면모를 되찾고자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月臺)를 재현하는 설계를 시작한다.

 

월대는 덕수궁 대한문,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등 궁궐의 정문과 덕수궁 중화전을 비롯하여 경복궁 근정전 등 주요 정전에 설치되어 건물의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궁궐 정문 구성의 필수 요건이다.

 

덕수궁 대한문은 황성신문의 1899215일자 대안문 현판 서사관(書寫官)을 의정부 참정 민병석으로 임명한다. 광무 2(1898) 626와 함께 독립신문 189933일자 정동 대궐 새로 지은 정문에 대안문(大安門)이라 쓴 현판을 재작일에 달았는데 또 그 문 앞 축대역사도 시작하였다더라라는 기록을 통해 1898년경부터 지은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대안문은 불타지 않았지만 보수하면서 1906년에 문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 대한문의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고 1900(광무 4)에 월대를 새로 고쳤다는 기록(각사등록, 각부청의서존안)이 있어 적어도 1900년 전에 대한문 월대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대한문의 월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훼손철거되었으며 현재는 월대 끝 부분에 있었던 석수(石獸, 짐승의 형상을 돌로 새겨 만든 것)만 현존하고 있다.


덕수궁 대한문.jpg
덕수궁 대한문

 

 

  

대한문은 고종이 환구단이나 왕릉으로 행차할 때 사용하였고, 1910년 대한제국의 명운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궁궐의 정문에서 격동했던 근대사의 한가운데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던 만큼 월대의 재현은 일제의 의해 훼손되고 지워진 우리의 역사를 되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덕수궁 대한문 월대(1902~1903년경 촬영)_꼬레아 에 꼬레아니 사진해설판 수록.jpg
덕수궁 대한문 월대(1902~1903년경 촬영)_꼬레아 에 꼬레아니 사진해설판 수록

 

대한문을 나서는 고종의 견여肩轝 행렬.jpg
1919년 대한문을 나서는 고종의 견여肩轝 행렬에는 월대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문 월대 복원은 이달부터 7월까지 설계를 마치고 나면,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내년까지 대한문 월대 재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덕수궁관리소에 따르면 대한문의 원 위치를 찾아 옮기는 것이 어렵고, 인근에 있는 태평로와 시민들의 보행로 활용 등 여러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월대를 원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여 원위치와 형태, 크기에 대한 철저한 원형고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재현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참고로, 대한문은 1970년 태평로 확장으로 인하여 원래 위치에서 33m가량 물려서 현재 위치에 있게 됐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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