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근대기 문호 개방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서양식 생활 문화가 유입되었으며 조선 왕실 및 대한 제국 황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양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식생활 문화가 전해졌고 서양식 요리 와 예법에 맞는 식기류, 서양 요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주방도구 등이 사용되었다. 그러한 변화의 흔적들이 국립고궁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아있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대기 서양에서 들어온 생활 유물들을 정리한 <서양식 생활유물>과 함께 2012년 발간되었던 『궁중서화Ⅰ』의 후속편으로 조선시대 어진, 관리 초상화 등의 궁중 회화 유물 60점을 살펴볼 수 있는 <궁중서화Ⅱ> 등 2종의 도록으로 발간하였다.
<서양식 생활유물> 도록에는 근대기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에서 썼던 서양식 식기와 장식용품, 욕실용품, 주방도구 등을 주로 소개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도록 발간을 위해 2016년부터 이들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제작국가나 회사 등의 정보를 상당수 확인하였다.
특히, 서양식 생활유물 중에는 식기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당시에 유입되었던 서양식 식문화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식기류 유물은 프랑스의 필리뷔(Pillivuyt)나 일본의 노리다케(Noritake)와 같은 유명 도자기 회사에서 주로 제작되었으며,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대형 꽃무늬 화병은 1888년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Sadi Carnot)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이 외에도 욕실용품이나 주방도구들은 영국, 독일, 스웨덴, 미국 제품 등이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어 근대기의 국제 교류 양상을 생생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식기류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노리다케(Noritake), 동양 도기주식회사,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 후카가와 세지(深川製磁), 오쿠라도엔(大倉陶園) 등의 회사에서 만들어졌다. 일본의 도자기 회사 중 단연 주목되는 곳 은 노리다케이다. 노리다케는 수량 면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필리뷔와 마찬가지로 디너 세트를 구성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기가 남아있다.
<궁중서화Ⅱ> 도록에는 <태조어진>을 포함한 왕의 초상화인 어진이나 관리를 그린 초상화 등 인물화를 비롯한 왕실 회화를 묶어 정리하였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왕과 조종(祖宗)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제작과 봉안이 국가적인 의례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진의 제작과 봉안에는 다양한 정치적 의미가 투영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어진 48점이 전해져 오고 있었지만,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옮겨 보관하던 중 1954년 불의의 화재가 발생하여 상당수가 소실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훼손된 상태로 전해지던 어진들에 대한 보존처리를 마치고 11점은 이번 도록을 통해 최초로 그 전모를 공개하고 있다.
더불어 도록에는 화재 피해를 입은 조선후기 관료들의 초상화 33점도 이번에 함께 수록하였다. 비록 손상되기는 했지만, 궁중 회화의 수준 높은 화격(畵格)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기증을 통 해 소장하게 된 <오자치 초상>, 종묘에서 전래된 <전 고려 공민왕부부 초상> 등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상화, 인물화 범주의 회화를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고 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도록에 실린 서양식 식기와 욕실용품, 주방도구 일부를 ‘대한제국실’에서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어진 모사본과 ‘고종의 친형 이재면’의 초상화 등은 ‘조선의 국왕 전시실’에서 공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조선왕실의 도자기와 서양식 유물(가제)’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하여 소장 유물을 더 폭넓게 국민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국립고궁박물은 이번에 발간한 소장품 도록을 국공립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며, 더 많은 국민이 쉽게 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www.gogung.go.kr)에서도 제공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