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에 대한 부정을 담은 다산의 '하피첩' 국민의 품으로

국립민속박물관, 보물 제1683-2호 ‘정약용 필적 하피첩’ 언론 공개
기사입력 2015.10.16 20:46 조회수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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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정약용은 1810년 전라도 강진에서의 유배시절 부인 홍씨가 보내온 치마를 잘라 작은 서첩을 만들고 두 아들 학연(學淵,1783~1859)과 학유(學遊, 1786~1855)에게 전하고픈 당부의 말을 적었다. 그리고 하피첩(霞帔帖, 붉은 노을 빛 치마)이라 이름 지었다.



이 하피첩은 정씨 문중에서 보관해 왔으나 6ㆍ25 전쟁 중에 수원역에서 분실되었다가 2004년 파지 수집 할머니의 수레에서 4첩 중 3첩이 발견돼 세상에 다시 나왔으며, 그 실체가 처음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2006년 TV 프로그램 ‘진품 명품’을 통해서이다. 이후, 하피첩은 보물 제1683-2호로 지정되었었다. 당시 하피첩은 1억 원의 감정가를 받았지만, 지난 9월 서울옥션 고서경매에 나왔을 땐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5,000만원에 응찰해 낙찰 받았다. 이는 국립민속박물관이 그동안 수집한 최고가의 경매가이기도 하다.



당시 경매에는 조선 7대왕 세조가 펴낸 석가 일대기인 '월인석보', 조선의 통치체제의 대강을 규정한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등의 고서가 경매에 나왔으며, '월인석보 2권 2책 권9, 권10'은 7억 3000만 원, '경국대전 권3'은 2억 8000만원에 새롭게 주인을 찾았으며, 경매에는 공공기관만 참여할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구매한 하피첩은 3개의 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첩의 표지는 박쥐문․구름문으로 장식된 푸른색 종이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 2첩은 미색 종이로 장황되어 있다. 내지 또한 비단 치맛감과 아울러 종이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무엇보다 하피첩에는 다산이 남긴 유일한 전서(篆書)체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하파첩은 선비가 가져야할 마음가짐,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등 자손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삶의 가치관이 담겨있으며, 내용을 몇 가지 살펴보면 이러하다.


 




君子著之傳世 唯求一人之知 不避擧世之嗔 如有知我書者 若其年長 汝等父事之 倘與爲敵 汝等 結爲昆弟亦可也



군자가 책을 지어 세상에 전하는 것은 오직 한 사람이 알아줌을 얻으려는 것이니 온 세상 사람들의 꾸짖음이 있어도 피하지 않는다. 만약 내 책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이가 많으면 너희가 아버지처럼 섬기고, 너희들과 엇비슷한 나이라면 형제의 의를 맺어도 마땅할 것이다.


 




余無宦業 可以田園遺汝等 唯有二字神符 足以厚生救貧 今以遺汝等 汝等勿以爲薄 一字曰勤 又一字曰儉 此二字勝如良田美土 一生需用不盡



나는 전원(田園: 농장)을 너희에게 남겨줄 수 있을 만한 벼슬은 하지 않았지만, 오직 두 글자의 신부(神符: 절대적인 믿음)가 있어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이제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는 소홀히 여기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余在耽津謫中 病妻寄敝裙五幅 蓋其嫁時之纁衻 紅已浣而黃亦淡 政中書本 遂剪裁爲小帖 隨手作戒語 以遺二子 庶幾異日覽書興懷 挹二親之芳澤 不能不油然感發也 名之曰霞帔帖 是乃紅帬之轉讔也 嘉慶庚午首秋 書于茶山東菴 蘀翁



내가 강진(耽津은 古號)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적에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때의 훈염(纁袡, 예복)으로 붉은빛은 흐려지고 노란빛은 옅어져 글씨 쓰는 바탕으로 알맞았다. 이것을 잘라서 조그만 첩(帖)을 만들고,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준다. 훗날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霞帔帖)’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는 곧 홍군(紅裙, 붉은 치마)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가경(嘉慶) 경오년(1810, 순조 10) 7월에 다산(茶山)의 동암(東菴)에서 쓰다. 탁옹(정약용의 호 가운데 하나)



또한, 다산은  ‘내가 강진에 유배살이 하고 있을 적에 병든 아내가 헌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다. 아마 그가 시집올 때 입고 왔던 분홍색 치마였나 본데 붉은 색깔도 이미 바랬고 노란색도 엷어져 가는 것이었다. 바르고 곱게 장정된 책을 만들려고 가위로 재단하여 소첩(小帖)을 만들었다. 손이 가는 대로 경계의 말을 지어서 두 아들에게 보낸다.(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裙六幅 歲久紅? 剪之爲四帖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라 적고 있다.



부인이 보내온 시집올 때 가져온 빛바랜 헌 치마를 이용하여 두 아들에게 보낼 소첩을 만들고, 그리고 남은 치마폭으로 매조를 그려서 초당의 제자 윤창모에게 시집간 딸에게 소품을 만들어 딸에게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하피첩은 표면 곰팡이, 물 얼룩, 접착제 약화로 발생한 들뜸, 회장(回裝, 가장자리를 가늘게 돌아가며 대는 꾸밈) 분리 등이 확인되고 있는데 국립민속박물관은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절차를 거쳐 4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보존처리 후, 2016년 2월경에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개최하여 국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며,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복제가 필요한 공공기관을 파악하여 그 기관에서 복제할 수 있도록 협력할 예정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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