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성문이 지켜본 천주교 230년의 이야기. <서소문·동소문 별곡> 특별전

서울역사박물관, 8월 8일부터 10월 31일까지
기사입력 2014.08.08 02:56 조회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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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서울역사박물관이 근대기 서울 동서 변두리의 도시변화와 여기에서 펼쳐진 천주교 순교와 전교의 역사를 다루는 서소문·동소문 특별전을 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한양도성의 두 소문과 그 일대의 자취를 찾으려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이 지역이 과거 천주교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먼저 동소문 일대에 백동수도원을 설립해 관련 자료들을 다량 소장하고 있는 뮌헨 인근의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과 백동수도원을 승계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과 MOU를 체결하고 이어서 서소문밖의 순교지 성역화 사업을 서울시, 중구청, 정부와 추진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와도 MOU를 체결하고 서울역사박물관과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과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이 함께 전시를 준비하면서 좀 더 다양한 유물들을 일반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또한 이번 전시는 당초 올해 말이나 2015년 초 개막예정이었으나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이 확정되면서 전시 일정이 조정되었다. 


 


<서소문·동소문 별곡>은 하나이면서도 두 개의 전시다. <서소문 별곡>과 <동소문 별곡>은 서울의 도시사와 천주교회사가 결합된 전시라는 점에서는 공통이지만 각기 다른 시대와 공간을 조명한다.


 


<서소문별곡>은 1800년 대 박해기에 가장 많은 순교자가 처형된 서소문밖을 무대로 조선 천주교의 탄생에서 박해와 순교, 신앙자유의 획득, 순교자들의 복자와 성인으로의 추대, 서소문밖 순교성지의 재탄생에 이르는 과정을 10개의 마당으로 나누어 통사적으로 조망하며, <동소문별곡>은 동소문(혜화동)일대의 역사지리적 변화를 추적하면서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과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소장 유물 자료를 통하여 1909에서 1927까지 동소문 일대에 있었던 백동수도원의 일대기와 수도원이 한국과 독일에 남긴 유산을 6개의 마당으로 나누어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천주교회사를 대표하는 중요 유물들이 총망라되어 출품되었으며, 절두산 순교성지박물관, 한국교회사연구소,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오륜대순교자 박물관 등 국내 천주교 자료 주요 소장기관들의 소장품들이 한자리에 모아졌다. 뿐 만 아니라 로마교황청 민속박물관, 상트 오틸리엔 선교박물관 한국관 등 해외 소장품도 다수 전시되었다.


 


특히, 천주교회사 관련 400여 점의 근대유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사상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천주교회사 전시이면서 교회사와 시대사, 도시사와 역사지리의 다양한 시각과 성과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전시로 확장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 전시물로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묵일 뿐 아니라 신앙인 안중근을 증거하는 유일한 유묵 <경천 敬天>을 비롯하여 황사영이 신유박해의 전말과 그 대응책을 흰 비단에 적어 중국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고자 했던 밀서 황사영백서(로마교황청민속박물관 소장),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 유품과 성 베네딕도회에서 수집한 한국 유물 <겸재 정선 화첩>도 이번에 선보인다.


 


한 편, 박물관 측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유물들이 여럿 ‘등장’해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는데 안중근 의사의 유묵 <경천 敬天>은 전시개막 사흘을 앞두고 천주교 잠원성당에서 구입하여 서울대교구에 기증함으로써 이번 전시에서 일반에게 공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서소문 밖 만초천에 걸렸던 다리인 <소의교> 교각은 만초천의 복개로 소의교는 없어졌으나 그 교각 하나가 땅 밑 하수관로에 남아있는 것을 제보로 알고 수거하여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그리고 1930년대 ‘조선신문사’가 펴낸 조감도 형식의 지도로 특이하게 서울역-남대문-서소문 일대가 지도의 중앙부에 있어 당시 서소문 일대의 상세한 상황을 알 수 있는 <대경성부대관>지도가 전시를 앞두고 소장자로부터 기증받아서 공개되었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처음으로 도성 외곽지역의 도시변화를 학제적으로 조명하면서 국내외 관련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공개하는 역사상 최초, 최대 규모의 교회사 전시인 이번 전시는 8. 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8. 8부터 10.31까지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번 전시 콘텐츠는 향후 서소문 역사유적지에 조성될 (가칭)순교박물관에서 재활용할 예정이라 한다.


 












 


 


대표 전시물


 



안중근 유묵 <경천>(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장)
안중근이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일본인의 부탁을 받아 쓴 글씨이다.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경천敬天’이 쓰여 있다. ‘대한국인 안중근서大韓國人安重根書’라는 글씨와 오른쪽 손 약지를 단지한 손도장이 찍혀 있다


 



황사영백서(로마교황청민속박물관 소장, 62 x 38cm, 1801년)
황사영이 신유박해의 전말과 그 대응책을 흰 비단에 적어 중국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고자 했던 밀서이다. 하얀색 비단에 가는 붓으로 1행당 110여자씩 122행을 써서 전체 글자수가 무려 13,311자에 달한다. 박해받는 천주교를 지키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평신도 황사영의 고민이 잘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방안이 청의 종주권 행사나 군대파병 등 조선이 청에 종속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1894년에 의금부의 옛 문서들을 소각할 때, 우연히 발견되어 당시 제8대 조선교구장으로 재임하던 뮈텔(Mutel) 주교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1925년 7월 5일 조선 순교 복자 79위 시복식이 로마에서 거행되었을 때, 그 기념으로 교황 비오 11세에게 선물하였다. 현재는 로마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 묘비석과 관


(1901, 한국교회사연구소,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소장)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용산예수성심신학교로 옮기면서 유해를 영구적으로 봉인하기 위해 유해 위에 덮었던 대리석 판과 이를 담았던 관이다. 묘비석 위쪽의 ‘PX’는 ‘예수 그리스도’, ‘AK’는 ‘안드레아 김대건’의 라틴어 첫 단어, 아래의 숫자는 김대건 신부의 생몰년이다.


 



모방․샤스탕․앵베르 유해 현시대(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소장)
성체를 보여주는데 쓰이는 제구로, 기해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이자 제2대 선교구장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의 유해가 각각 들어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순교성인 103위에 올라 있다.


 



정약종, 주교요지(1885, 절두산 순교성지 소장)
정약용의 셋째 형으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도회 회장을 지낸 정약종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최초의 한글 대중 교리서이다. 신앙심이 약한 신자들을 확고한 믿음으로 이끌어주는 신학서이다. 정약종은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으며 올해 시복식에서 시복된다.


 



정하상, 상재상서(19세기, 절두산 순교성지 소장)
‘재상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의 이 글은 신유박해 순교자 정약종의 아들인 정하상이 체포되기 전 기해박해를 주동한 우의정 이지연에게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을 알리려고 쓴 글이다. 천주교 박해의 부당성을 주장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밝히고 있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호교론서로 꼽힌다.


 



천주교 첨례표(1865, 약현성당 서소문순교성지 소장)
한국 최초의 첨례표. 첨례표는 교회 전례력에 따른 주요 축일을 월·일별로 기록한 표로, 천주교 신자의 의무축일을 지키는 데 필요한 달력이다. 이 첨례표에는 1865년 1월부터 1866년 3월까지의 주요 축일과 기념일이 표시되어 있다.


 



뮈텔주교 수집 문서  순종황제 즉위식 초대장(1907년,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1907년 8월 27일에 열린 순종 황제 즉위식 초대장이다. 이 문서는 조선 제8대 교구장 뮈텔주교가 수집한 13,451건에 달하는 뮈텔 문서 중 하나이다. 뮈텔 주교는 총 6,000쪽 분량, 43년간의 일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가 남긴 문서와 일기에는 개인사와 천주교 관련 활동 외에도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 외교, 사회문제를 비롯한 구체적인 생활사 자료까지 포함되어 있어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꼽힌다.


 



요한덕해 삼천자전要漢德解三千字典(왜관수도원 소장)
한국에 온 독일 수도자들은 현지 선교를 위해 가장 먼저 한국어를 익혀야 했다. 1911년 한국에 도착한 카니시오 퀴겔겐(C.Kügelen 한국명 : 구걸근具傑根) 신부는 수도자들을 위한 교재로 요한덕해 삼천자전要漢德解三千字典과 덕선사전 德鮮辭典 등 사전을 저술했다. 이 중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될 요한덕해 삼천자전은 약 3천여 개의 한자에 한국어 음과 훈을 적고, 독일어 풀이를 한 한자-한글-독일어 자전으로 퀴겔겐 신부가 1916년에 저술한 것이다. 한국에 온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이 책을 한글과 한자 공부의 기본 교재로 사용하였다.


 


금강산문물상도(일본인화가)


겸재정선화첩 중 금강산내산전도


겸재 정선 화첩
성 베네딕도회에서 수집한 한국 유물 중 주목할 만한 것은 《겸재 정선 화첩》이다. 이 화첩은 한국 선교활동 시찰을 위해 1911년, 1925년 두 차례 걸쳐 한국을 방문하였던 노르베르토 베버 총 아빠스에 의해 수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되는 정선의 화첩은 2005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한국의 왜관수도원에 영구대여 형식으로 반환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 중이다.


베버 신부는 특히 금강산에 강하게 매료되었으며, 금강산을 여행하기 전 일본인 화가가 그린 〈금강산만물상도〉수집에 이어 《겸재 정선 화첩》을 수집하였다고 한다. 겸재 정선화첩에는 3점의 금강산 그림이 실려 있는데 일본인의 금강산 만물상도와의 비교감상을 한 부분이 그의 책 「한국의 금강산에서」기술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상트 오틸리엔 소장의 일본인 제작 《금강산만물상도》와 《겸재정선화첩》이 함께 공개됨으로써 수집당시 베버 신부가 느꼈던 금강산을 관람객들이 함께 공유 할 수 있다.


 


베버아빠스의 예식용 미트라, 반지, 십자가 목걸이


수도원 현관문


초창기 수사들이 수집한 감옥, 투구


을축년 첨례표


천주실의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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