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영천이씨 농암 이현보의 가족 이야기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3관 가족 전시
기사입력 2014.06.03 18:28 조회수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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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목판, 지식의 숲을 거닐다>전에 이어  “영천 이씨 농암 이현보의 가족 이야기” 전를 상설전시실 3관 가족 전시코너에 꾸몄다.


 


농암 이현보영정(보물제872호)


 


이번 전시는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의 영천이씨 농암종택의 기탁자료를 중심으로, 조상의 유업(遺業)을 길이 이어가고자 사회적 실천인 적선(積善)과 가정의 효도인 애일(愛日)을 몸소 실천했던 농암(聾巖) 이현보(1467〜1555)의 가족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어부가(漁父歌)로 잘 알려진 농암 이현보는 과거시험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어버이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 살기를 원했고, 어버이를 가까이 모시고자 고향 근처 안동, 영천 등지에서 근무하거나, 휴가 때마다 고향에 내려와 어버이를 봉양하였다. 또한, 만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고향의 자연을 즐기던 중에 전래 어부가의 순서가 뒤섞이고 내용이 중복됨을 알고서, 이황(李滉 1501〜1570)과 의견을 나누면서 이를 고치어 1549년(명종 4) 83세에 새 어부가를 완성하였다. 


 


이현보는 연로하신 어버이를 위해 농암바위 위에 ‘날을 아껴 효도하겠다’는 뜻의 ‘애일당’을 짓고 명절마다 이곳에서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출 정도로 효성이 가득했고, 인근 노인들까지 모셔 잔치를 베푸는 구로회(九老會)를 개최하였다. 그의 아들들도 이를 본받아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서 집안 잔치마다 모여 어버이와 인근 노인까지 즐겁게 하는 등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냈다. 이러한 ‘적선’과 ‘애일’을 실천한 덕분인지, 농암가문은 이현보를 중심으로 그의 나이 89세를 비롯하여, 아버지 이흠 98세, 아들 이문량 84세, 이희량 65세, 이중량 79세, 이계량 83세, 이윤량 74세, 이숙량 74세 등 평균 80세가 넘는 등 대대로 장수하는 집으로 이어져 왔다. 농암의 효행으로 선조(宣祖)가 농암 가문에 ‘적선(積善)’이라는 큰 글자〔大字〕를 하사하였고, 효친과 경로사상은 농암종택 5백년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현보가 멀리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자연에 흥취를 즐기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분강어부가(汾江漁父歌)’ 목판은 물론, 보물 제872호 ‘농암 이현보 영정’ 및 영정에 보이는 금서대(金犀帶) 및 옥관자(玉貫子) 등 유품을 비롯하여 분천의 종택과 애일당이 그려진 보물 제1202호 『애일당구경첩』의 ‘분천헌연도(汾川獻宴圖)’는 물론, ‘목판, 지식의 숲을 거닐다’ 공동특별전과 연계하여, 농암선생문집 책판 90판 전질과, 농암 이현보와 퇴계 이황 등 명사들이 주고받은 시문을 새긴 긍구당ㆍ애일당 현판 등 평소 함께 접하지 못했던 유물들도 모두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2015년 4월 17일까지 이어지며,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앞으로도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한국의 명문가들의 가족 및 가계계승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할 예정이라 한다.


 


긍구당


긍구당 현판


애일당 현판


금서대(시도유형문화재 63호)


분천헌연도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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