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18세기 대표 문인화가 강세황의 대표 작품을 한자리에 선보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특별전 개최
기사입력 2013.06.25 02:30 조회수 156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서울문화인] 조선후기 대표 화가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탄신 3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이 “표암 강세황-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특별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시서화詩書畫 삼절三絶’, ‘18세기 예원의 총수’로 알려진, 강세황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함으로써, 강세황을 통해 화려하게 꽃피운 조선 18세기 예술계의 역동을 살펴 볼 수 있는 전시로《표암유고》등 집안에 대대로 전해 오는 유물들과《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등 산수화, 초상화, 사군자화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망라하였으며, 그가 글을 남긴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선별하여 총 103점의 유물이 선보인다. 이 가운데, 강현, 강세황, 강이오 초상 등 보물 6점이 포함되어 있다.



 


표암 강세황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문인화가이자 개성 지역을 유람하고 제작한 《송도기행첩》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강세황이 살았던 조선 18세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며 문예가 활짝 꽃피었던 시기로 그는 문예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안목으로 비평가로서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활발한 활동과 탁월한 안목은 임금에서부터 궁중의 화원, 재야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문예를 매개로 신분과 지위를 넘나드는 네트워크 형성을 가능케 한 인물로 18세기 예술계의 역동을 이해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화가다.



 


강세황 예술 세계의 면모를 6부(문인화가의 표상, 가문과 시대, 문인의 이상과 꿈, 여행과 사생, 다양한 화목, 청신한 감각, 당대 최고의 감식안)로 나누어 소개되는 이번 특별전은 강세황이 역동적인 삶 속에서 평생 이어간 서화세계를 통해, 정조가 삼절三絶의 예술이라 칭송했던 그 예술의 정수精髓를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표암 강세황-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2013년 6월 25일(화)부터 8월 25일(일)까지 전시된다.




 


 


 


 


 


대표작품





 


벽오청서도


한 쌍의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선비를 그린 그림으로, 벽오청서碧梧淸暑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종종 그려졌던 주제다. 중국의 화보畫譜인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에 실려 있는 명나라 심주沈周(1427~1509)의 같은 주제의 그림을 방倣하되 자유롭게 해석하여 자신의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첨재忝齋’라는 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초기작임을 알 수 있다. 짜임새 있고 안정된 구도, 산뜻한 담채의 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강세황 자화상


강세황이 손수 자신의 모습을 그린 초상이다. 관모[오사모烏紗帽]에 평상복을 입은 모습은 예법에는 어긋나지만, 출사出仕와 은일隱逸을 동시에 지향하는 사대부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며, 초상화를 그리는 관행을 넘어선 문인화가로서의 당당한 기개를 보여준다. 화면에 스스로 “마음은 산림에 있으면서 조정에 이름이 올랐다”고 적었다. 맑은 담채로 그린 하늘색 포袍와 금니로 장식한 다홍색 세조대細條帶가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준다.



 


강세황 태종대


송도(현재 개성)와 북쪽의 오관산五冠山, 천마산天磨山, 성거산聖居山 주변의 풍경을 그린 16점의 그림과 3건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개성 주변 명승지 그림을 한데 모은, 현존하는 유일한 서화첩이라는 데에서 회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첩에 수록된 글에서 강세황 스스로가 “이 첩은 세상 사람들이 일찍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此帖世人不曾一目擊”이라 평했듯이, 첩의 그림들은 조선시대 여느 그림들과 달리 원근법, 음영법 등의 서양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우금암도(왼쪽)


우금암도(가운데)


우금암도(오른쪽)


아들 완俒이 부안현감扶安縣監으로 재임할 시기, 강세황이 이틀에 걸쳐 부안의 변산 일대를 유람하며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강세황이 그림과 함께 적은 글은 『표암유고』의 「유우금암기遊禹金巖記」에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변산 특유의 암산巖山의 분위기를 굵은 갈필渴筆로 표현하였다. 명승지를 지나며 빠른 필치로 각 장소의 특징을 사생한 작품으로, 금강산과 처름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지역이 아닌 전라북도 부안 일대를 그린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표암첩. 무


총 2권에 26폭의 다양한 장르의 그림이 수록된 화첩으로, 강세황이 다양한 화목을 섭렵하고 담채 구사에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은 화첩에 수록된 만큼 근경 위주의 생략된 표현들이 주를 이루며 채색에 있어 분홍, 노랑, 연두, 파랑 등 맑고 선명한 채색을 사용하여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강세황은 여러 화목이 접목되는 화첩에서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를 함으로써 자신만의 개성과 회화세계를 선보였다.



 


난죽도권 1


난죽도권 2


난죽도권 3


난죽도권 4


강세황이 78세 되던 1790년 봄에 그린 그림이다. 말년의 대나무와 난초그림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모두 펼치면 3미터에 가까운 대폭의 두루마리이다. 구도를 보면 V자로 펼쳐진 두 그루의 대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에 바위와 난초 등을 포치하여 구성하였다. 습윤한 수묵법의 바위와 속도감 있게 처리된 경쾌한 갈필법의 난엽과 댓잎은 농담과 소밀의 대조만큼이나 정확하고 분명하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노숙하면서도 전형화된 필치는 만년기 강세황의 죽석, 난초 그림에 드러나는 특징이다.


[서울문화인 기자 ]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저작권자ⓒ서울문화인 & sculturein.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0
이름
비밀번호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