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크리쳐 무비란 생명이 있는 존재를 뜻하는 크리쳐(Creature)와 영화의 합성어로 통상적으로는 실존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장르물을 일컫는다. 크리쳐 무비는 언제나 개봉에 앞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르의 영화이지만 관객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은 장르의 영화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크리쳐 무비들이 제작되고 시리즈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으며 이어가는 작품도 꽤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크리쳐 무비는 괴물, 제 7광구 등이 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이다.
영화 <물괴>는 크리쳐 장르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기반으로 가장 한국적인 사극이라는 배경 위에 녹여냈다.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취라치 방에서 나와 서명문을 향해 달아났다. 서소위 부장의 보고에도 ‘군사들이 또한 그것을 보았는데, 충찬위청 모퉁이에서 큰 소리를 내며 서소위를 향하여 달려왔으므로 모두들 놀라 고함을 질렀다. 취라치 방에는 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고 했다. -중종실록 59권, 중종 22년 6월 17일
중종 22년, 조선에 나타난 괴이한 짐승 ‘물괴’와 그를 쫓는 사람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지만 이 이야기를 중종반정으로 집권한 중종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 만들어 낸 ‘허상’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물괴’로 왕위까지 위협하는 자들과의 싸움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겨진 괴이한 짐승 ‘물괴’의 정체가 무엇일지, 이 존재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지 전반부는 보이지 않는 ‘물괴’를 추적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이러한 설정을 모르고 극장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전반부는 스피드감은 없지만 ‘물괴’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어떤 존재인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문제는 ‘물괴’가 실체를 드러내었을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관객을 극장으로 발길을 잡으려면 ‘물괴’의 등장 이후가 중요하다. ‘물괴’의 정체가 밝혀지고 난 후에는 전개는 빨라진다. 하지만 크리처 무비의 아쉬움 ‘강자(주연)에게는 약하고 약자(조연)에겐 강력한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오락 영화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단순히 이런 의미로 크리쳐 영화를 즐기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허종호 감독은 그 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광화문에서 ‘물괴’가 포효하는 이미지를 단번에 떠올렸고 이는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괴이한 짐승 ‘물괴’의 정체가 무엇일지, 이 존재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지 관객들에게 보여줄 궁금증이 ‘물괴’의 비주얼 만큼이나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갈 것인지....
자신의 신념을, 그리고 나라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물괴 수색대 4인방 ‘윤겸’, ‘성한’, ‘명’, ‘허선관’.
그간 사극 장르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을 발휘했던 김명민이 물괴 수색대의 수색대장 ‘윤겸’ 역을 맡았다. 물괴 수색대의 선봉에 서서 ‘물괴’를 쫓는 그는 과거 내금위장이었던 이력에 걸맞게 화려한 액션을 뽐내는 것은 물론 하나뿐인 외동딸 ‘명’(이혜리)을 지키는 부성애를 선보인다. 그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윤겸’ 캐릭터에 반해버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극과 코미디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배우 김인권은 ‘윤겸’의 충직한 부하 ‘성한’ 역으로 돌아왔다. 그는 적재적소에 등장해 유머와 재미를 선사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윤겸’의 옆에서 둘도 없는 부하로서의 역할을 해낸다. 극의 긴장과 이완을 책임지는 그는 ‘성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13Kg를 증량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무사는 큰 풍채와 무게감을 가졌으리라는 판단 하에 몸무게를 늘리고, 근육 운동을 하며 듬직한 무사의 외형을 만들었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이혜리가 영화 <물괴>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처음 사극에 도전하는 그녀는 첫 도전이 무색하리만큼 제 옷을 입은 듯 ‘명’ 역할을 확실히 소화해내어 이혜리의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윤겸’을 한양으로 불러들이는 ‘허 전선관’ 역에는 배우 최우식이 맡았다. ‘명’이 한눈에 반하는 한양오빠다운 고운 외모는 물론 ‘물괴’의 정체를 수색해나갈 때 빛나는 지성, 무관으로서 액션 실력까지 모든 것을 갖췄지만 때로는 ‘명’이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귀여운 허당기를 지닌 인물로 등장, ‘명’과 함께 두 사람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서로의 옆을 지키며 최고의 합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의정 ‘심운’을 연기한 이경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에 긴장과 대립을 야기한다. 극중 내금위 부장이자 ‘심운’의 오른팔인 ‘진용’ 역의 박성웅은 ‘윤겸’과 끊임없이 대립하며 영화의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물괴’의 출몰 후 ‘윤겸’을 다시 한양으로 불러들이는 ‘중종’ 역에는 박희순은 그동안의 캐릭터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 <물괴>는 2018년 9월 12일 개봉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