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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향연으로 다시 태어나는 속리산 법주사
빛의 향연으로 다시 태어나는 속리산 법주사
[서울문화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지난해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디지털실감영상관’을 시범적으로 선보인 이후 국립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국립문화시설 실감콘텐츠 체험관 조성 사업 대상 기관을 늘리고, 지역의 공립 박물관·미술관에서도 소장유물(작품)을 실감콘텐츠로 제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었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도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세계유산에 적용하여 세계유산의 가치를 보다 쉽게 알리기 위해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첫 시작으로 「속리산 법주사 빛의 향연」을 7월 30일부터 8월 29일까지 한 달 동안 충북 보은 법주사 일원에서 펼친다.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올해 보은 법주사를 시작으로 익산 미륵사지, 부여 정림사지, 수원 화성, 공주 공산성 등 총 5개소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보은 법주사는 2018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7개 사찰 중 한 곳으로, 사찰 창건 이후 현재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며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을 담고 있다는 가치를 인정받은 곳으로 ‘속리산 빛의 향연’에서는 세계유산 법주사의 문화재를 활용하여 야경과 결합한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선보인다. 오리숲길, 수정교, 사천왕문, 종루 등 사찰 경내·외에 인터렉티브 기법으로 꾸며진 야간경관을 관람할 수 있으며 행사 중 매일 오후 8시 10분부터 국보 팔상전에서는 ‘무명의 바람을 만나 번뇌의 바다를 헤매다’와 ‘팔상도와 미륵불’이라는 주제로, 보물 대웅보전에서는 ‘법주사 창건설화’라는 주제로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진다. 입장객은 사전예약을 통해 오후 5시 이후 입장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일 관람인원을 100명 이내로 제한한다. 사전예약 접수는 7월 23일부터 보은군청 누리집(www.boeun.go.kr)과 법주사 누리집(www.beopjusa.org)에서 예약을 받고 있다. 단,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에 따라 참여인원은 변동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우리나라 15번째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우리나라 15번째 세계유산
[서울문화인]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 시간으로 7월 26일 온라인으로 개최 중인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의장국: 중국)에서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목록 자연유산에 등재가 결정됐다. (등재인증서상 결정일은 해당 회기 폐회일 2021년 7월 31일이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갯벌」은 ▲ 서천갯벌(충남 서천), ▲ 고창갯벌(전북 고창), ▲ 신안갯벌(전남 신안), ▲ 보성-순천갯벌(전남 보성·순천) 등 총 4개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5개 지자체에 걸쳐 있으며, 모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15개소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번 「한국의 갯벌」의 세계유산목록 자연유산 등재는 2007년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14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등재되는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자연유산/복합유산으로 구분된다. 이번 등재에 앞서 지난 5월,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자연보존연맹(이하, IUCN: 아이유씨엔)는 「한국의 갯벌」에 대해,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중요한 서식지’라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유산구역과 완충구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Defer) 의견을 제시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194개국 중 투표권을 갖는 21개 위원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에 대해 만장일치로 세계유산에 등재할 것을 결정했다. 키르기스스탄을 비롯한 13개국이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고자 하는 의결안을 공동으로 제출하였으며, 키르기스스탄을 포함하여 호주, 우간다, 태국, 러시아, 오만, 에티오피아, 헝가리, 이집트, 브라질, 나이지리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우디아라비아, 과테말라, 바레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이 등재 지지 발언을 하였다. 한편 위원국은 협약 가입국 중 선거를 통해 위원국을 선출하며, 우리나라는 2013-2017 역임하였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이 “지구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며, 특히,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가치가 크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갯벌」의 세계유산 등재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2018년 1월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세계유산센터로 제출하였으나, 지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세계유산센터의 검토 의견에 따라 신청서를 보완하여 2019년 1월에 등재신청서를 다시 제출한 바 있다. 이후 2019년 10월부터 2020년 3월까지 IUCN으로부터 현장 실사와 전문가 탁상검토(데스크 리뷰)를 거쳤으며, 최종적으로 IUCN이 올 5월 ‘반려’ 의견을 제시하면서 등재 여부가 불투명했었다. (* 세계유산위원회 등재 단계: 등재 불가, 등재 반려, 등재 보류, 등재) 이에 문화재청은 자문기구의 ‘반려’ 의견이 공개된 후 유산구역과 완충구역 확대를 위해 자문기구가 확대를 권고한 갯벌 소재 지자체를 방문하고, 합동 설명회를 개최하여 세계유산 등재의 중요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해 주요 갯벌이 소재한 지자체로부터 세계유산 확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약속받았다. 해양수산부 역시, 해당 지자체의 신청이 있는 경우 습지보호구역의 신속한 지정에 최대한 협조하기로 하였다. 특히, 자문기구의 의견 공개 후 세계유산위원회 개최까지 약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외교부와 긴밀히 협업하여 세계유산위원회의 21개 위원국으로부터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신속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이라는 악조건과 각국의 시차 속에서도 각 위원국의 대표단 및 전문가 그룹을 설득하기 위한 화상 회의를 개최하여 「한국의 갯벌」의 세계유산적 가치와 우리 정부의 향후 유산 확대 계획을 설명하였다. 또한 외교부는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를 중심으로 세계유산위원국 대상 지지 교섭 활동을 총괄하면서 성공적인 등재에 기여하였다. 이와 함께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 파트너십(East Asian-Australasian Flyway Partnership(EAAFP))과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Life International) 등 국제기구와 NGO들도 「한국의 갯벌」의 세계유산 등재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면서 힘을 보탰다. 더불어 국무조정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한국의 갯벌」의 세계적 가치와 세계유산 등재 필요성이 담긴 국무총리 명의의 서한을 모든 위원국에 전달함으로서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다시금 표명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고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3개소를 세계유산으로 첫 등재한 이후 최초로 ‘자문기구 의견을 2단계 상향한 세계유산 등재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문화재청과 국무조정실, 외교부, 해양수산부, 해당 지자체,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이 힘을 합쳐 이뤄낸 값진 성과라 하겠다. 한편,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 결정과 함께, ▲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2025년)까지 유산구역을 확대하고 ▲ 추가로 등재될 지역을 포함하여 연속 유산의 구성요소 간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하며 ▲ 유산의 보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추가적 개발에 대해 관리하고 ▲ 멸종 위기 철새 보호를 위한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East Asian-Australasian Flyway, EAAF)의 국가들과 중국의 황해-보하이만 철새 보호구(201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과, ▲ 이의 이행을 위해 IUCN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권고하였다. [허중학 기자]
[미술관] 미술과 웹툰,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 중인 주재환과 주호민 부자(父子)의 2인전
[미술관] 미술과 웹툰,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 중인 주재환과 주호민 부자(父子)의 2인전
[서울문화인]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은 서소문본관에서 미술관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이 전시는 미술과 웹툰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 중인 주재환과 주호민 부자(父子)의 2인전 《호민과 재환》이다. 웹툰 작가 주호민(1981년 생)은 설령 웹툰을 즐겨보지 않는 분들도 취업난 속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무한동력』(2008)과 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저승관을 새롭게 그려낸 『신과 함께』(2010-2012) 시리즈가 <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이란 이름의 뮤지컬과 영화로 재탄생되면서 대중적으로 익숙한 작가가 되었지만 그의 아버지 주재환(1940년 생)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작가는 아닐지라도 그는 한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로 2001년 제10회 민족예술인상, 2002년 광주비엔날레의 유네스코 프라이즈 특별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2016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2016 타이틀 매치: 주재환 vs. 김동규》을 진행했으며, 2003년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특히 주재환의 작품은 지금도 공감이 되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풍자적이다. 그는 주변에서 발견되는 버려진 일상 사물을 재활용해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재치 있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이슈들을 재치 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망하면서도 만화적 요소나 텍스트의 활용, 미술과 웹툰, 장르는 다르다 하더라도 이들 부자(父子)는 예술이란 테두리 안에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부자의 삶의 궤적 또한 닮아있다, 주재환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중퇴한 후 외판원, 한국민속극연구소 연구원, 월간 『미술과 생활』 기자 등으로 일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상상력의 재료들을 축적했다면 호민은 아세아항공직업전문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군대 전역 후 학과가 폐지되면서 중퇴하였다. 만화창작 커뮤니티 ‘삼류만화패밀리(3CF)’에 취미로 그린 만화를 올리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다가 군대 경험을 담은 『짬』(2005)을 각종 사이트에 연재하면서 전업 만화가가 되었다. 《호민과 재환》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이슈들을 재치 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망해 온 미술작가 주재환과 한국 신화를 기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석한 웹툰으로 널리 알려진 주호민, 부자(父子)의 이번 2인전은 단순 부자(父子)라서 이야기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미술과 웹툰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 하고 있지만 두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공통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세대를 거쳐 어떻게 진화하고 매체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지를 살펴보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는 미술관 2, 3층에서 4개의 섹션으로 선보이고 있다. <섹션1.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다>에서는 한 세대 앞선 주재환 작가의 작품을 담고 있다. 이 섹션에서는 주 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이야기의 함축성과 시적 상상력에 주목,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만화적 요소는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시간과 공감의 흐름을 연출하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형성한다. 일상의 버려진 사물들을 콜라주하는 작업방식 역시 관련 없는 재료들을 조합해 조형적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만화의 칸 사이 여백처럼 관람객에게 상상의 여백을 제공한다. 작가가 속한 미술계가 작품의 소재로 한 <미술 비평> 시리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몬드리안 호텔>, <쇼핑맨> 등의 주재환 작가의 대표작을 비롯하여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업한 <호랑이 소리>와 <흑백비> 등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섹션2. 지금 여기, 그리고 너머의 세계>에서는 주재환과 주호민 두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으로 서로의 작품의 교차를 통해 세계관의 유사점과 미묘한 차이점을 살펴보고 있다. 우리가 볼 수 없고 알지 못하는 세계인 ‘죽음의 세계’와 ‘신화의 세계’를 의미하며 두 작가가 공유하는 한국의 무속신화, 저승관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이번 전시를 위하여 주호민 작가가 주재환 작가의 대표작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만화적 구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전시장 2, 3층의 뚫린 공간에 설치되어 아버지와 아들 간의 작품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섹션3.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다>에서는 만화가로서 주호민 작가의 차별화된 장점과 독자적인 서사 예술 형식으로써 만화가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다 밀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의 힘은 강력하다’, ‘스토리텔링: 유기적인 이야기 구조와 공감 가는 캐릭터’, ‘영화적 연출’, ‘만화 구성요소의 다양한 활용’의 하위 섹션으로 나뉘어 구성, 칸 안에서의 그림체보다 이미지의 연결을 통한 ‘스토리텔링’에 그의 확연한 장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주호민 작가가 삼류만화패밀리(3CF)에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의 원화를 비롯하여 그의 대표작『신과 함께』와 『무한동력』의 작품 콘티, 스케치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업물이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섹션4. 만능 이야기꾼, 주호민>에서는 웹툰 작가로 한정되지 않고 유튜브와 트위치 채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만능 이야기꾼으로 활동하는 주호민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주호민 작가가 유튜버 스타일로 주재환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주재환 월드컵 16강> 영상을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하여 기존 미술계에서 볼 수 없었던 대중적인 소통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주호민 작가는 이번 전시의 도슨팅 녹음에도 직접 참여하여 만능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어 ‘전시도슨팅 앱’을 이용하여 주호민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작품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도슨팅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을 검색하면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8월 1일(일)까지 진행되며, 전시 기간 중 전시 전경 등을 담은 온라인 전시투어도 서울시립미술관 공식 SNS 채널(아래)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인스타그램 : instagram.com/seoulmuseumofart 유 튜 브 : youtube.com/seoulmuseumofart 페 이 스 북 : facebook.com/seoulmuseumofart 네이버 TV : tv.naver.com/sema
[미술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와 근현대미술이 시공과 장르를 넘어 한자리에
[미술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와 근현대미술이 시공과 장르를 넘어 한자리에
- 근현대미술과 문화재의 유기적 관계 고찰로 한국의 미 재조명 - 국보, 보물 등 문화재 35점, 근현대미술 130여 점, 자료 80여 점 전시 [서울문화인] 박물관과 미술관은 과거, 그리고 현재의 그 나라의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이자 전통 계승의 요람이다. 우리의 국립박물관, 미술관 역시 가장 큰 기능이라면 우리의 역사가 문화가 녹아든 아름다운 옛 문화재와 예술작품을 미래의 후손에게 훼손되지 않고 물려주는 기능과 함께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그것을 선보이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현재 박물관에도 다양한 회화작품을 만나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20세기를 기준으로 이전의 회화는 박물관에 이후의 작품은 미술관에서 보관, 관리하고 있어 한 전시 공간에서 이 미묘한 시간의 벽을 넘어 한 공간에서 그것도 장르를 넘어 만날 수 있는 경우는 흔치가 않다.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이런 관념을 깨고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한국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모아 한국의 미를 조망하고 있는 이 전시는 조금은 특별한 전시라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대해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박물관의 문화재와 미술관의 미술작품을 서로 마주하고 대응시켜, 시공을 초월한 한국미의 DNA를 찾고자 하였다.”, 또한 “근대의 미학자인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등의 한국미론을 통해 한국의 대표 문화재 10점을 선정하고, 전통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지 바라보고자 하였다.”고 밝혔는데 한국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기획이다. 거기에 이번 전시는 문화재와 현대미술작품의 상호 연관성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서로 마주하고 대응시키고 다른 듯하지만 씨줄과 날줄과 같이 엮이고 상호성을 가진 작품을 찾아서 구성한 연출은 과거에는 만나볼 수 없었던 아주 획기적인 연출이자 결코 쉽게 펼쳐낸 전시가 아니다. 전시 작품 또한 수많은 기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토기, 도자, 불상, 한국화, 유화, 사진, 공예, 서예, 조각, 미디어 작품 등 문화재 35점(국보물 포함)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총 97명의 작가의 근현대 작품 130여 점과 8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DNA(Dynamic & Alive Korean Art) 전시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이자 근현대 미술가들의 전통 인식에 이정표 역할을 해온 네 가지 키워드, ‘성(聖, 신성함과 이상적 Sacred and Ideal)’, ‘아(雅, 우아함과 간결함 Elegant and Simple)’, ‘속(俗, 장식적과 세속적 Decorative and Worldly)’, ‘화(和, 동적과 복합적 Dynamic and Hybrid)’를 중심으로 각각의 공간에서 펼쳐지지만 우리는 이런 키워드를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의 DNA가 충분히 이를 인지할 수 있다. 1부 ‘성(聖, Sacred and Ideal)’, 종교적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가치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종교적으로 이상주의적 미감이 근대 이후 우리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떤 형태로 발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과거 동서양 예술의 핵심은 종교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먼저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천상 세계에 대한 염원을 담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대표하는 강서대묘江西大墓(7세기경)의 사신도四神圖와 함께 1990년대 이숙자李淑子(1942-)가 그린 <청룡도靑龍圖> 마주하게 된다. 이어 우리의 고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석굴암을 비롯한 불교미술과 고려청자, 단청의 미학이 근대에 예술가에게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살펴봄과 동시에 현재 각각의 예술의 발광체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비춰 주는 반사체가 되어 주고 있음을 느껴볼 수 있다. 고구려<강서대묘 현무>는 이숙자의 <1999-19, 전통암채기법의 강서고분벽화 청룡도>에서 통일신라<녹유귀면와>(국립경주박물관 소장)는 박생광의 <창>의 모티브가 되고 통일신라 <금동여래입상>은 김복진의 <미륵불>로 조선 <분청사기 인화문 자라병>의 점화무늬는 김환기의 추상회화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드러난다. 또한, 이중섭의 <봄의 아동>에 보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고려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에 보이는 동자들의 문양을 평면적으로 펼쳐 놓은 듯한 구도와 청자의 음각 기법처럼 보이는 새긴 듯한 윤곽선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전통이 가진 DNA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2부 ‘아(雅, Elegant and Simple)’,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 ‘아(雅)’는 순수함이나 무(無)의 조형성과 연결된다, 이것은 순백의 아무런 무늬가 없는 달항아리의 비완전성·비정형성과도 통하며, 자연을 실견하고 거기에 동화되어 그려진 겸재의 진경산수화, 생각과 마음을 지적(知的)으로 그려 내려 한 추사의 문인화도 아(雅) 미학 추구의 결과들이다. 이러한 문인화와 한국의 무위자연의 서툰 졸박미(拙朴美)의 정수가 깃든 백자가 만들어 낸 전통론은 실제 1970~1980년대 한국의 단색조 추상 열풍과 백색담론으로 이어졌다는 측면에서도 주목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 공간에서는 해방 이후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고 국제 미술계와 교류하며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고군분투했던 화가들의 비정형의 미감이라는 차원에서 추구되었던 한국적 표현주의 작품과 연결 지어서 살펴보고 있다. 새하얀 조선의 백자는 시대를 넘어 현재도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를 넘어 빌게이츠재단에서 구매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매료되고 있다. ‘달항아리’라는 명칭은 김환기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는 달항아리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건희켈렉션’에서 그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를 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조선의 백자와 달항아리가 현대 작가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있는지 또한, 겸재의 진경산수는 윤형근, 이철량에 의해 어떻게 재해석 되었는지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순우가 김환기에게 보낸 연하장에는 김정희의 제자 허련許鍊(1809-1892)이 그린 김정희의 초상과 <불이선란도>의 이미지가 수록되어 있어 당시 미학자와 화가가 공유했던 김정희에 대한 애호와 이후 개진된 문인화 지속의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이 엽서의 소장자가 이른바 단색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윤형근(1928-2007)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3부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 대중적이고 통속적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라는 의미는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취향이나 문예 작품을 가리킨다. 조선 시대 풍속화와 민화는 이러한 미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코너에서는 대표적으로 김홍도의 풍속화와 신윤복의 미인도가 어떻게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전통으로 자리매김하였는지, 근대 이후 화가들에게 어떤 의미로 내재화되어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더불어 ‘속’은 대중을 위한 불교를 추구했던 조선 시대 불교회화의 정신 및 미감과도 통한다. 조선 시대 감로도나 시왕도 등은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며 고달픈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면모들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도 계승되어 강렬한 채색화가 유행하는 데 기반이 되고 있음을 살펴보는 동시에 서양미술과 조선 및 근현대 주류 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표현주의적이고 강렬한 미감이 추구되던 장식미(裝飾美)를 살펴본다. 김홍도의 《경직풍속도 8폭 병풍》와 풍속화의 현대화를 추구한 이종상의 1963년 작 <장비裝備>와 신윤복의 <미인도>는 천경자, 장운상, 장우성의 여인과 비교하며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되었는지 또한, 민화의 소재인 까치호랑이, 책거리, 십장생, 문자도 그리고 불교미술이 김기창 오윤, 장욱진, 권진규 등 근대 작가에 의해 어떻게 재해석 되었는지를 확인하면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민화속의 호랑이는 20세기 근대 민화에 이어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로 재탄생된 모습 등을 통해 한국적 미가 그 표현의 방법은 달라도 그 생명력은 아직도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4부 ‘화(和, Dynamic and Hybrid)’, 대립적인 두 극단의 우호적인 융합 동아시아 전통 미학에서 ‘화(和)’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는 조화를 통해 통일에 이름을 뜻한다. 공존할 수 없고, 지향도 다른 것으로 여겨지던 고대의 문화재와 현대의 미술이지만 오히려 서로를 비추고 공존해야 함을 화(和)의 미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모하는 한국미술의 달라진 시대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작가로 백남준白南準(1932-2006)을 빼놓을 수 없다. 백남준의 <반야심경>은 문짝에 새겨진 서구의 문명 텔레비전 수납장 안에 브라운관을 빼내고 동양사상의 결정체인 불상을 넣어 감상자로 하여금 이를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마주하게 한다. 또한, 신라금관(보물 339호)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전통이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헌정 되는지를 통해 한국적 미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모하던 현대 미술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변화되어 녹아들었는지 그 변화를 통해 과거와 한국적 미학이 현대의 미학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융합되어 변화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성聖·아雅·속俗·화和’라는 의미를 기준으로 한국미를 대표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작품을 통해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에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의 DNA가 녹여져 융합되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특별한 전시가 아닌가 싶다. 한편, 이 특별한 전시와 더불어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연구자 44명이 참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문화재 10점을 중심으로 공동의 연구주제로 풀어낸 650페이지 분량의 도록에는 전통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에 대한 근현대미술의 반응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연구한 48편의 칼럼과 논고는 전시 못지않은 한국미술의 귀중한 데이터가 아닐까 싶다. 전시는 10월 10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이건희컬렉션’ 명품들 이제 실물로 만나보자.
‘이건희컬렉션’ 명품들 이제 실물로 만나보자.
[서울문화인] 올 4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이건희컬렉션’으로 불리는 11,023건 약 2만3천여 점을 기증하겠다는 발표에 수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졌었다. 이 기증품의 대부분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고 일부 근대 미술 작품은 작가의 연고지 등을 고려해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당시 공개된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은 감정가로 2조∼3조원에 이르며,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중요한 기증품 리스트는 당시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지만 7월 20일, 가장 많은 기증품을 수여받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의 일부를 첫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하는 9,797건(2만 1천 6백여 점,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기증받아 기증기관 중 가장 많은 기증품을 받았다. 공개된 기증품은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 삼국시대 금동불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국보 제134호),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寫經)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국보 제235호),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보물 제2015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57~1806?)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 등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인왕제색도>는 76세의 노대가(老大家) 정선이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던 인왕산 구석구석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낸 최고의 역작이라 하겠다. 박물관 측은 이 작품의 가치에 맞춰 <인왕제색도>에 그려진 치마바위, 범바위, 수성동계곡 등 인왕산 명소와 평소 보기 힘든 비가 개는 인왕산 풍경을 담은 영상 ‘인왕산을 거닐다’를 98인치 대형 화면으로 제공 한다. 이번에 공개된 아니 기증품 중에 새로운 것은 없다. 이는 새롭게 발굴되거나 해외에서 유입되지 않은 한 고고학 유물은 이미 여러 차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롯이 개인의 컬렉션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물론 그동안 대규모로 공개되지 않고 일부 몇 점씩 따로 공개되어 눈여겨보지 않았던 작품이 새롭게 ‘이건희컬렉션’이었다는 인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좀 더 세심한 연구와 공개가 쉬워졌다는 점과 기증문화를 알렸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공개된 고려불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2점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고려불화는 특유의 섬세함이 가진 작품성과 희소성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회화작품이지만 국내보다는 해외기관에서 많이 소장하고 있어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귀한 문화재이다. 공개된 고려불화 2점은 기증 받은 이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고려불화 세부를 잘 볼 수 있도록 적외선과 X선 촬영으로 연구, 우리나라 전통회화의 채색기법 중 하나인 뒷면에서 칠하는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했음을 확인 하였으며, 녹색의 석록, 푸른색의 석청, 백색의 연백(鉛白)과 붉은색의 진사 등 광물성 안료를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러한 배채법과 안료는 고려불화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라 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는 원본과 함께 밑그림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물론 터치스크린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관객들은 <천수관음보살도>에서는 천수관음보살의 여러 손의 모양, 손바닥과 광배에 그려진 눈, 손에 들고 있는 다양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X선 사진으로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의 채색 방식 및 안료를 확인할 수 있다. 삼국시대 뛰어난 금세공 기술 수준을 알 수 있는 <쌍용무늬 칼 손잡이 장식>(보물 제776호) 또한 눈여겨 볼 유물이라 하겠다. 이번에 공개된 ‘칼 손잡이’에 장식된 용무늬가 쌍용이라는 점 때문인데 대부분 봉황이나 용문양이 새겨져 있으나 기존에 발굴된 것에는 한 마리의 용인데 비해 이것에는 두 마리 용이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별된 유물이다. 이 외에도 청동기시대 토기로 산화철을 발라서 붉은 광택이 아름다운 <붉은 간토기>, 초기철기시대 청동기로 당시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 방울>(국보 제255호), 삼국시대 배 모양을 추측할 수 있는 <배 모양 토기>, 삼국시대 조각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보살상>(보물 제780호), 조선 백자로 넉넉한 기형과 문양이 조화로운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보물 제1390호)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명품들과 세종대 한글 창제의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釋譜詳節) 권11>(보물 제523-3호)과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1·12>(보물 제935호),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18> 등 15세기 우리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한글 전적이 공개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희컬렉션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9월 26일까지 진행되며, 전시는 ‘생활 속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20명으로 제한되며, 누리집에서 상설전시 예약과는 별도로 예약 후 입장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총 1,488점이 기증되었다.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과 외국 근대작가 8명의 작품 119점으로 분류된다. 장르별로는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순으로 비교적 모든 장르를 고르게 포함하고 있다. 제작연대별로는 195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이 320여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약 22%를 차지한다. 그러나 작가의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할 때 1930년 이전에 출생한 이른바 ‘근대작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 작품 수는 약 860점에 이르러, 전체 기증품의 약 58%를 차지한다. 작가별 작품 수를 보면, 유영국 187점(회화 20점, 판화 167점)으로 가장 많고, 이중섭의 작품이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포함),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순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공개한 이건희컬렉션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를 선정 34명의 주요작품 58점을 선정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주축으로 크게 세 개의 주제로 나눠 공개하였다. 두 기관의 설명하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문화재와 달리 미술품은 얼마든지 경매를 통해서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인 만큼 그 기대치가 확연히 달라보였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국립현대미술관 박미화 과장은 이들 작품 중에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이 많았는데 예산의 부족으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에 미술관이 기증을 통해 소장하게 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선진국의 국립미술관에 비해 소장품의 가치는 물론 규모에서도 열악한 것은 일부 어쩔 수 없지만 그나마 근‧현대미술사를 아우르며 20세기 초 희귀하고 주요한 국내 작품에서부터 해외 작품까지 포함된 이건희컬렉션의 기증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보강시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공간은 수용과 변화다.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 이상범의 <무릉도원>(1922)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공개되었다. 이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문물이 유입과 함께 미술계도 서구 유화가 등장하면서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생경한 용어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조선의 전통 서화도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특히 백남순의 <낙원>은 서양의 유화를 동양의 병풍 형식의 판넬로 제작하였으며, 그 내용도 동서양이 혼존하고 있어 동서양 회화의 특징이 융합과 수용을 통해 변모하는 과정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개성의 발현이라는 주제로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수없이 들어봤을 근대 우리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격동의 시기에도 김환기, 유영국, 박수근, 이중섭 등 많은 작가들은 작업을 멈추지 않고 전시를 열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가며 한국미술의 근간을 만들었으며 한국인에게도 작품에 대한 인지도나 작가들 또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들이 아닌가 싶다. 이 공간에서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 등이 공개되었다. 특히 이건희컬렉션도이 시기의 작품이 집약되어 있다고 한다. 마지막은 정착과 모색으로 이성자, 남관, 이응노, 권옥연, 김흥수, 문신, 박생광, 천경자 등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전후 복구 시기에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차츰 정착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한 시기로 이들은 고유한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미술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성자의 <천 년의 고가>(1961), 김흥수의 <한국의 여인들>(1959) 등 이 시기의 대표작이 공개되었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작품검수, 상태조사, 사진촬영, 저작권협의 및 조사연구 등의 과정을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 중이며, 순차적으로 미술관 누리집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미술애호가 배우 유해진이 이번 전시 오디오가이드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유해진의 전시해설 오디오가이드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며, 전시실 입구에서 오디오가이드 기기 대여도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2022년 3월 13일(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된다. 더불어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에서는 앞서 지난 6월 29일(화)부터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소개하는 특별전 ‘웰컴 홈: 향연饗宴’이 진행 중이다.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작품에는 김종영(1점), 문학진(2점), 변종하(2점), 서동진(1점), 서진달(2점), 유영국(5점), 이인성(7점), 이쾌대(1점) 작품 총 21점이다. ‘웰컴 홈: 향연’은 한국 근대미술의 별과 같은 작가 이인성, 이쾌대를 비롯해, 대구의 초기 서양 화단을 형성했던 서동진, 서진달의 수작을 만날 수 있으며, 추상 조각의 거장 김종영, 한국적 추상화의 유영국, 1세대 추상 작가 문학진, 신형상주의의 변종하의 작품 등을 통해 한국미술 전반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특히 기증 작가 8명을 심도 있게 조명하기 위해 이건희 컬렉션 21점과 함께 대여 작품 및 소장 작품을 추가하여 총 40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8월 29일(일)까지 전격 공개되며, 사전예약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이번 공개 전시가 국민들의 관심이 커 조금 급하게 공개되어 현재 진행 중인 전시로 인한 공간 확보 등의 문제로 많은 기증품을 공개할 수 없었지만 좀 더 많은 조사를 진행하여 양 기관은 2022년 4월에 대규모로 공개할 것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조선왕실 유물 곳곳에 피어난 모란꽃, 박물관에 다시 피어나다.
[박물관] 조선왕실 유물 곳곳에 피어난 모란꽃, 박물관에 다시 피어나다.
[서울문화인] 동서양을 막론하고 꽃과 관련된 설화나 상징은 수도 없이 많다. 이는 꽃마다 지닌 고유의형상과 생태적 특성을 인간사에 빗대거나 도덕적 의미 등에 은유한 결과이다. 그 결과 시기마다, 또는 특정 사상이나 가치와 관련하여 특정한 꽃이 선호되기도 했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푸르름을 간직하는 매화(梅)·난초(蘭)·국화(菊)·대나무(竹)의 생태적 특성은 유교에서 지향하는 조선시대에는 절개를 지닌 군자의 풍모에 비유해 칭송되었고 연(蓮)은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속성이 세속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하여 맑고 깨끗한 본성을 지켜 깨달음을 향하는 불교의 지향을 오롯이 담은 것으로 간주되어 불교에서 상징적 꽃으로 활용되었다. 현대에 와서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전 대한제국은 오얏꽃(자두나무의 꽃)을 국화로 사용했다. 그러나 대한제국 황실에 사용된 오얏꽃 문양이 벚꽃과 오해를 하기도 한다. 오얏은 자두의 순 우리말로 열매가 진한 보라색이고 모양이 복숭아를 닮았다하여 그 열매를 자도(紫桃)라 하다가 자두로 불리게 되었다. 그럼 왜 대한제국은 오얏꽃을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하였을까. 고려 말 도선국사는 ‘오얏성씨 왕조가 들어서리라’라는 예언을 했고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으며 그 자두의 한자명은 이(李)이다. 조선 왕실 유물을 살펴보면 용이나 봉황, 거북만큼이나 자주 만나게 되는 장식 무늬가 있는데 바로 모란이다. 그럼 모란무늬는 언제부터 우리의 삶에 들어왔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는 선덕여왕 1년(632)에 모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져 온다.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얻어 덕만(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아명)에게 보인 적이 있다. 덕만은 “이 꽃은 곱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은 웃으면서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기에 이를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국색(國色)을 갖추고 있으면 남자가 따르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 꽃이 무척 고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씨앗을 심었는데, 과연 그녀가 말한 것과 같았다. 그녀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은 이와 같았다. 모란은 중국 중서부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꽃으로 신라 진평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꽃으로 만 1미터 남짓 자라는 크기에 접시만 한 큰 꽃이 피어 일주일 정도의 짧은 개화로 일상에서 그 실물을 실제 자주보기 쉬운 꽃은 아니다. 하지만 크고 풍성한 꽃을 피워내는 모란의 상징성 때문에 국보 98호인 12세기의 청자상감모란문항(靑磁象嵌牡丹文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려청자 상감과 여러 생활도구의 꽃무늬로 자리 잡았고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모란을 숭상하는 풍속은 그대로 이어져 궁궐의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에 사용됨은 물론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한 민화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흔하게 그려졌다. 전통 혼례복이나 신방의 병풍에도 모란은 빠지지 않았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동영)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별전 「안녕安寧, 모란」은 모란꽃을 매개로 조선왕실 문화를 살펴보는 전시로 모란도 병풍을 비롯하여 궁궐의 그릇, 가구, 의복 등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에 즐겨 장식되던 모란꽃을 담은 여러 유물 120여점을 통해 조선시대 모란무늬가 얼마나 왕실의 일상에 활용되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전시는 ▲ 1부 ‘가꾸고 즐기다’, ▲ 2부 ‘무늬로 피어나다’, ▲ 3부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번영을 빌다’등 3부로 구성해, 모란이라는 식물과 그 무늬를 조선 왕실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즐겼는지,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떠한 상징이 담겼는지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먼저 ▲ 1부 ‘가꾸고 즐기다’에서는 이전 전시와는 색다른 공간으로 꾸며졌다. 영상과 조경물로 연출된 정원 형태로 꾸며진 전시실에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포집한 모란향으로 제작한 꽃향기가 전시공간에 퍼지는 가운데 빗소리, 새의 지저귐이 어우러진 정원에서 18~19세기의 대표적 모란 그림인 허련(1808~1832), 남계우(1881~1890)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꾸며놓았다. ▲ 2부 ‘무늬로 피어나다’는 조선왕실 생활공간을 장식한 무늬로서의 모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 무늬는 장식적 기능과 함께 특정한 상징을 담는 기호이기도 하다. 왕실에서는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을 각종 생활용품에 무늬로 사용하면서, 풍요와 영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나전 가구, 화각함, 청화 백자, 자수물품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모란 무늬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혼례복이나 가마와 같은 왕실 혼례이다. 총 2벌의 혼례복 중 한 벌은 복온공주(순조의 둘째딸, 1818~1832)가 혼례 때 입은 것인데, 남아 있는 활옷 중 제작 시기와 착용자가 명확한 유일한 것이다. 나머지 한 벌은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활옷인데, 재미있는 것은 보존처리 중에 옷 속에서 발견한 종이심이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어 옷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한 이 종이심이 살펴본 바 1880년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종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창덕궁 활옷은 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복옥공주의 혼례 때 사용한 수가 가득한 방석은 혼례복만큼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한다. 2부는 종류와 구성이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는 것을 고려하여,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유리 벽면을 설치해 연속성과 단절성을 함께 살렸다. 전면부는 방 형태로 공간을 구성하고, 창덕궁 낙선재 문살 장식을 활용해 벽면을 연출하고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조명 아래 유물을 배치했다. 혼례용품이 있는 부분은 주변에 삼베를 길게 늘어뜨린 후 혼례복의 다양한 꽃무늬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로 연출하였다. ▲ 3부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빌다’는 왕실의 흉례(凶禮,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와 조상을 모시는 의례에 사용된 모란을 조명하고 있다. 흉례의 절차마다 모란 무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각종 의궤, 교의(交椅), 신주 신여(神輿, 가마), 향로와 모란도 병풍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중심 유물은 단연 모란도 병풍이다. 모란도 병풍은 감상용 보다는 의례용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모란도 병풍의 모란은 한 점 한 점 개성을 살려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정해진 화본(畵本)에 따라 반복적으로 생산되었다고 한다. 특히 흉례 때 여러 개의 병풍을 북벽에 가득 채워 설치하였는데 이 때 모란도 병풍을 사용한 것은 왕실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전시장 3면을 모두 모란도 병풍으로 둘러진 것은 의례의 공간에 가득했을 장엄함과 위엄을 직접 느낄 수 있음은 물론 마치 모란꽃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3부 마지막 부분에는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선원전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실제 우리가 마주하기 어려운 공간에도 모란무늬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는 물론 왕실의 조상을 모시는 의례와 모란의 관계를 한 번에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 왕실에서 모란을 얼마나 사랑했고 그 무늬가 어디에 얼마나 활용되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조선의 궁궐에도 모란무늬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안녕, 모란> 특별전은 10월 31일까지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하여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사전예약과 현장접수를 합하여 시간당 100명, 일일 최대 1,000명까지 개인 관람으로만 입장이 가능하다. [허중학 기자]
반고흐가 꿈꾸던 예술인의 마을, 군산에 통했다.
반고흐가 꿈꾸던 예술인의 마을, 군산에 통했다.
[서울문화인] “미디어 아트로 구성되어 어렵지 않게 고흐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고흐의 작품을 생동감 있게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테오와의 형제애를 느낄 수 있어 뜻깊었다”, “명화에 디지털을 입혀 눈과 귀가 즐거웠다” <반고흐: 10년의기록 展>을 시작으로 <헤세와 그림들 展>, <모네, 빛을 그리다 展>, <르누아르: 여인의 향기 展>, <헬로아티스트 展>, <누보로망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展>, <미켈란젤로 展> 등 명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감나는 미디어로 경험 할 수 있는 컨버전스아트 전시를 통해 누적 관람객 250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국내 각 지역의 상설전시장뿐만 아니라 중국과 태국 등지에 전시 브랜드를 수출, 해외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본다빈치㈜(대표이사 김려원)가 국내에서 시작해 중국, 태국 등에서 개최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반고흐 빌리지 展>을 지난 6월 12일 군산에서 오픈, 고흐가 꿈꾸었던 예술인의 마을을 주제로 그 시대 인상주의 화가들이 담고 있는 빛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삶의 철학을 풀어내며 군산지역 시민뿐만 아니라 전라, 경상도 지역 시민의 사랑도 받고 있다. 삶의 고통과 그 속에서 발견한 깨달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고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고흐에게로 가는 길’ 섹션에서는 고흐에 대한 소개와 바이오그래피, 연출 의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몽마르트 가든’ 섹션은 파리에 머물던 시기, 고흐가 만난 인상주의와 빛과 예술에 대한 해석이 페이퍼 아트로 표현되었다. ‘예술가들의 마을’ 섹션은 고흐의 유일한 꿈이었던 예술인들의 공동체 마을을 이머시브한(몰입형 실감미디어) 공간과 미디어아트를 통해 구현한 공간이다. ‘영혼의 숲’ 섹션은 그가 보았던 아를의 자연을 조경으로 연출하고 고흐의 감정을 조명의 색채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시각적으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고흐의 방’ 섹션은 고흐의 방을 미디어 파사드, 소형 레플리카 등을 통해 재연출하여 그의 내면세계를 느낄 수 있다. ‘영감의 무대’ 섹션에서는 태양의 화가 고흐의 밝은 색채와 넘치는 열정으로 가득한 작품들과 다수의 스크린 연동 및 레플리카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영혼의 편지’ 섹션에서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미디어아트와 그래픽아트웍을 통해 구현하여 당시 그가 직면하고 이겨내야만 했던 정신적 스트레스와 문제점들 그리고 그의 여린 내면을 보여준다. ‘빛의 순례자’ 섹션에서는 거울 속에 비치며 무한히 구현된 미디어아트와 웅장한 음향을 통해 그가 느꼈던 황홀함과 고독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아를의 언덕’ 섹션은 아를과 생레미 시기, 광기와 열정으로 넘치는 고흐의 영혼이 숨 쉬는 숲의 공간으로 그의 휘몰아치는 열망의 빛을 와이드 벽면 작품으로 연출했다. 마지막 ‘열정의 기록’ 섹션은 고흐와 인상주의 작품을 벽면과 바닥에 미디어아트로 투사해 압도적인 몰입감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마치 그의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군산의 새로운 핫플레이스 본다빈치뮤지엄 군산, 사진 찍으러 가요 한편, 본다빈치는 군산에 <반고흐 빌리지 展>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머물고 싶은 상상 속 한 장면을 특별한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성사진관>이라는 포토 체험전시도 오픈하였다. <감성 사진관>은 입장권만 구매하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듯한 포토존에서 원하는 만큼 셀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인생샷’을 건지고자 하는 관람객들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어 당일 데이트 코스로도 적격이다. 본다빈치뮤지엄 군산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의 관람 시간은 10시 30분부터 19시 30분까지이며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는 티켓 값의 50%를 할인받을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작은 아이디어로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바꾸는 공공디자인을 살펴보다.
[전시] 작은 아이디어로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바꾸는 공공디자인을 살펴보다.
[서울문화인] 서울 서초구에서 처음 설치된 사거리 횡단보도의 그늘막은 이제 서울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설치물로 때로는 뜨거운 햇살을 때로는 눈, 비로부터 잠시나마 시민들을 막아준다. 이처럼 매일 마주하는 거리, 공원, 학교, 지하철 등 일상환경 곳곳에 있는 공공디자인은 협력, 배려, 혁신 등의 가치를 더한 조용한 변화를 통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꾼다. 작은 아이디어로 우리의 일상을 편리함을 주는 공공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고 있다. 《익숙한 미래:공공디자인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타이틀로 진행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정부, 지자체, 민간 등 다양한 참여주체가 추진한 공공디자인 우수사례를 통해, 공공디자인에 대한 범주 확장 및 지향점 제시하고, 공공디자인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임을 알리고 공공디자인에 대한 인식의 장벽을 낮추고자 기획된 전시로 공공디자인이 바꾸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이 새롭고 낯선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만난 “익숙한 미래”임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우리에게 친숙한 여섯가지 대표적인 일상 공간(놀이터, 공원, 거리, 학교, 골목길, 지하철)을 전시장에 연출하여 공공디자인이 얼마나 친숙하고 익숙한 대상인지 보여준다. 관람객은 도시의 주인공이 되어 ▲어린이를 위한 대표적 공공시설에서 무장애, 고령친화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위한 놀이시설로 변화하고 있는 ‘놀이터’ ▲공공디자인을 통해 회색빛 도시에 녹색의 쉼을 더하는 ‘공원’ ▲누구나 읽기 쉬워 보행자의 이동을 돕도록 배려와 안전이 더해진 ‘거리’ ▲학생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든 ‘학교’의 변화한 모습과 자동차로부터 안전한 학교 가는 길 ▲ 정겨운 경험과 추억으로 가득한 ‘골목길’ ▲대표적 대중교통수단으로 매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만큼 안전과 정확한 정보전달이 중요한 ‘지하철’ 등 6개의 일상공간들을 여행하며, 일상의 익숙함에 무심코 지나쳤던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돌아본다. 또한, 전시장을 방문하는 어린이 관람객을 위해 생활 속에서 만나는 공공디자인을 배우고 공공디자이너가 되어 직접 우리 생활을 모두를 위해 바꿔보는 ‘모두를 위한 공공시설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더불어 이번 전시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진행된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온라인 플랫폼(seoul284.org/design284)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김태훈, 이하 공진원)이 주관하는 전시로 김태훈 원장은 “공공디자인의 가치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어우러져 더 나은 내일을 만듦에 있다”고 말하며, “전시를 통해 공공디자인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리고, 앞으로 공공디자인 영역에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저변이 확대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8월 29일까지 진행되며, 대한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문화역서울 284 누리집(www.seoul 284.org), 문화역서울284의 공식 SNS채널,《익숙한 미래》온라인 플랫폼(seoul284.org/design284)에서 살펴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종로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실물 최초로 대량으로 출토
[문화재] 종로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실물 최초로 대량으로 출토
공평동(옛 피막골) 땅속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 발굴 세종시대 천문시계 등 다양한 금속유물도 무더기 동반 출토 [서울문화인] 종로구 공평동(종로구 인사동 79번지, 옛 피막골)에서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과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籌箭)을 비롯해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銃筒)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같이 묻혀있는 형태로 발굴되어 조선 전기 조선 전기 금속활자 실물로 최초 출토됨과 더불어 과학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발굴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금속활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다.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15~16C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최소 5종 정도 혼합)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발굴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은 이번이 최초의 사례이다. 경자자(庚子字, 1420년), 갑인자(1434년), 을해자(1455년), 을해자 병용 한글활자, 을유한글활자(1465년), 병자자(1516년), 경서자 한글활자(1580년) 계열 활자들로 추정 이 외에도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하여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토씨(‘이며’,‘이고’ 등)를 인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활자)도 10여 점 출토되었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다. 또한, 현재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하여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들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어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동제품은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하여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되며,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 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조선 시대의 자동 물시계는 보루각 자격루와 흠경각 옥루가 있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되었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한 용도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세종 때의 일성정시의는 중국 원(元)의 거대한 천문관측의기인 간의(簡儀) 구조를 혁신하여 창제한 새로운 형태의 천문시계의 일종이며, 세종 당시의 과학 기술을 보여주는 독창적으로 창제한 주야 겸용 천문시계이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며, 주천도분의 눈금을 ¼도 까지 정밀하게 하여 365 ¼도를 사용한 정밀하고 세종대 규격과 거의 일치하여 세종 당시 제작한 4벌 중에 하나로 추정되는 귀중한 것이다.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대의 과학기술의 그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일성정시의 제작에 관한 내용은 『중보문헌비고』 상위고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 자신이 그 구조와 용법에 대하여 다루었는데, 김돈(金墩)의 명(銘)에 자세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낮에는 정밀한 해시계로서 적도면에 위치한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의 눈금을 사용한다. 밤에는 당시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항성(恒星)이 규칙적으로 1시간에 15°씩 일주운동(日周運動)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구상에서 회전하는 북극성 주위의 가깝고 밝은 제성(帝星 작은곰자리 베타성)의 위치를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의 눈금으로 밤 시간을 측정하였다. 문화재청은 “Needham은 일성정시의의 관 측방법이 서양에서 1520년 이후에 제작한 휴대용 밤 시계 기능과 유사하지만 더 정확했고 세차운동까지 조절하는 정교한 기기”로 평가했으며, “앞으로 세종 시대 일성정시의의 구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어서 사라져버린 세종시대 천문의기 복원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분석 연구를 수행하여 세종시대 유물과 같은 규모의 온전한 일성정시의가 복원 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소형화기인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총 8점이다. 조사 결과, 최상부에서 확인되었고, 완형의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 크기이다. 특히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癸未)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되었다. 장인 희손(希孫), 말동(末叱同) 제작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장인 희손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당시 총통은 총구에 화약과 철환(총알)을 장전하고 손으로 불씨를 점화해 발사하였다.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누어 출토되었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龍鈕, 용 모양의 손잡이)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하였다. 종신의 상단에‘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왕실발원의 동종에는 주로 해서체가 사용되므로, 왕실발원의 동종과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1469년 추정 <전 유점사 동종(국립춘천박물관 소장)>, 1491년 <해인사 동종(보물)> 등의 유물과도 비슷한 양식이다. 조사 지역은 현재의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조선 전기 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궁궐 관련 시설과 상업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있는 도성 내 경제문화중심지)에 속하며,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義禁府)와 전의감(典醫監, 조선 개국년인 1392년 설치된 의료행정과 의학교육을 관장하던 관청)을 비롯하여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順和宮, 조선 중종의 순화공주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 궁), 죽동궁(竹洞宮, 조선 순조의 명온공주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 궁) 등이 위치,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雲從街)가 위치했던 곳이다. 조사 결과,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의 문화층(2~7층)이 확인되었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에 해당되며, 각종 건물지 유구를 비롯하여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확인되었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되었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번 발굴조사는 (재)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진행하고 있으며,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안전하게 보관 중에 있으며, 앞으로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되면, 조선 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넘어 러시아 미술의 다양성을 만나다.
[전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넘어 러시아 미술의 다양성을 만나다.
[서울문화인] 과거 동서냉전시대에는 이념의 차이로 사회주의 예술은 금기시 되었다. 그런 이유로 과거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을 접하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1917년) 이후에도 러시아의 문학과 음악은 냉전의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대중예술계에서 많이 소비되고 있다. 이런 것에는 발레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발레 공연은 발레 자체를 음악, 무용, 무대 미술, 의상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종합 예술로 승격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 일대에 러시아 예술의 독창성을 수립하여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일약 세계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으며, 현대에도 여전히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탈리아 곤차로바(Natalia Goncharova, 1881-1962), 마르크 샤갈(Marc Chagal, 1887-1985)의 회화, 그리고 러시아 미술 아방가르드의 대명사였던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1878~1935)의 절대주의나 타틀린(Vladimir Tatlin, 1885-1953)의 구성주의도 이러한 무대 장식과 의상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세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문학과 음악장르에 비해 미술장르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러시아혁명 이후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등 다양한 미술사조가 유행하였지만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을 창작 정신의 근간으로 하는 사실주의적 방법을 일컫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주류로 정착 러시아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서 오랫동안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는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실천적인 반영을 목표로 이념을 선동하는 장르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구사회에서 금기시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이념 속에서 그러한 예술만이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이후에는 더 다양한 장르의 미술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는 바로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대규모 러시아 미술작품을 만나다. 국내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러시아 미술작품을 전문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올해 개관을 앞둔 mM 아트센터(평택 포승읍 포승항남로 258, 관장 최승일)가 개관에 앞서 나마갤러리(종로구 돈화문로 80-1, 대표 박주열)에서 러시아 미술을 소개하는 《Goodmorning, USSR》전(展)을 선보인다. mM 아트센터의 러시아컬렉션은 조아물산이 90년대부터 수집한 컬렉션으로 1950년대부터 1991년까지 러시아 회화 1,400여 점으로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부터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추상화 등 거의 모든 양식의 회화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조아 컬렉션의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1930년대 이래 소비에트의 공식 미술이었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지배적 흐름 아래에서, 그 사조에 저항하거나 도피하면서까지 그 예술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러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 매우 고전적으로 보이는 인물화나 풍경화, 정물화, 또는 추상화들은 소비에트의 공식적인 미술 정책에 반하여 소비에트 이전에 꽃 피었던 러시아 근대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나마갤러리의 《Goodmorning, USSR》전에서는 러시아 문화부로부터 공식적인 해외 반출 허가를 거쳐, 55명의 러시아 작가들을 선별하여 그들의 작품 104점을 우선 선보인다. 컬렉션에 포함된 작가들 대다수가 소비에트 예술가 연맹 회원이며, 또한 그중 상당수는 러시아 공로 예술가 출신이다. 라브렌코(Boris Mikhailovich Lavrenko, 1920-2001), 스토좌로프(Vladimir Fyodorovich Stozharov, 1926-1974), 코미사로프(Ivan Yeremeyevich Komissarov, 1929-2009) 등, 러시아 예술가의 최고 칭호인 인민 예술가 칭호를 받은 작가들도 10여 명이 넘게 포함되었다. mM 아트센터 최승일 관장에 따르면 현재 50년대 이전의 러시아 미술작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반출이 어려우며, 최근 70년대 작품까지 그 범위를 넓히려는 추세라고 말한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소개된 러시아에서 활동한 한국인 화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변월룡(1916-1990)이나 월북작가 이쾌대(1913-1965)를 통해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었지만 그 폭은 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개박에 앞서 전시장에서 만나본 러시아 미술은 생각이상으로 다양했다. 여러분도 새로운 미술세계를 경험해보시길 바래본다. 전시는 6월 30일부터 7월 30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