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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예술가, 기업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는 색다른 전시
[전시] 예술가, 기업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는 색다른 전시
[서울문화인] 미디어, 대중과 소통의 장르가 한정적일 때에는 광고는 연예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과 아티스트가 협력하여 제품 개발과 생산, 홍보 마케팅, 판매 등 모든 영업 활동 전반에 협력하는 ‘아트 콜라보’가 활발하다. 최근 압구정 도산공원 근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꼴라보하우스에서 ‘아트 콜라보’를 선보이는 전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일반적으로 광고주인 기업이 유명 아티스트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아티스트가 스스로 콜라보 하고 싶은 브랜드를 선택하고 상품에 자기 작품을 입혀보는 가상의 콜라보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에는 지난 6월, 공모를 진행 지원한 80여명의 아티스트들 중 심사를 거쳐 선발된 25인이 기존의 제품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재탄생시킨 커스텀 작품을 선보인다. 오혁진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이 시대의 작가로서 컨버스화에 ‘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재해석하여 모두가 자신만의 특색 있는 빛을 내는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은 드로잉들로 더욱 빛날 우리의 자유로움을 표현하였다. 작가 김바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에 김바르의 스마일과 피스꽃으로 달콤함을 시각적으로 더욱 극대화하였다. 단순히 맛있기만 한 도넛이 아니라, 자랑하고 싶은 도넛,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싶은 도넛, MZ세대에 가장 잘 맞는 브랜드 홍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먹고 없어지는 도넛이 아니라, 소장하고 싶고 예쁘고 귀여워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도넛. 맛있는 도넛에 김바르의 팝스럽고 힙한 심볼들을 넣어 특별하게 맛있는 도넛을 만들었다. 더불어 전시에 소개되는 커스텀 작품들은 직접 구매도 가능하며, 실제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좋을 아티스트와 브랜드를 매칭하여 주는 고객에게는 추첨을 통해 3인에게 아티스트의 콜라보 작품을 증정하는 현장 투표 이벤트를 진행하며, 네이버에서 예약 후 관람 시, 꼴라보하우스 아메리카노 1잔을 무료로 증정한다. 기업과 예술을 연결하는 플랫폼, 꼴라보M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10월 22일부터 11월 28일까지 약 5주간 진행되며,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한편, 꼴라보하우스는 1층은 커피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꼴라보카페, 2층은 전시, 아트페어 등 예술행사가 상시 열리는 갤러리, 그리고 3층은 캠핑 감성의 루프탑으로 이루어진 복합 문화공간이다. [허중학 기자]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염원을 담긴 근대 ‘태극기’ 유물 3건 보물로 지정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염원을 담긴 근대 ‘태극기’ 유물 3건 보물로 지정
[서울문화인]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ㆍ학술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 작년에 ‘말모이 원고’ 등 한글 관련 문화재 2건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더불어 최근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 * 조사대상 선정 국가등록문화재는 ①데니 태극기(국가등록문화재 제382호), ②김구 서명문 태극기(제388호), ③불원복(不遠復) 태극기(제394호), ④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제458호), ⑤말모이 원고(2020년 보물 지정), ⑥조선말 큰사전 원고(2020년 보물 지정), ⑦윤동주 친필 원고(제712호), ⑧이봉창 의사 선서문(제745-1호) 이상. 데니 태극기 보물로 지정된 ‘데니 태극기(데니 太極旗)’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으로,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태극기의 존재는 1977년 미국인 역사학자 로버트 R. 스워타우트(Robert R. Swartout) 교수에 의해 오리건 대학교에 보관된 ‘데니문서’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데니는 1877년 중국 천진(天津) 주재 미국영사를 시작으로 1880년 중국 상해(上海) 주재 미국영사로 재직 중, 1886년 이훙장(李鴻章)의 추천을 받아 묄렌도르프의 후임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 1886년 6월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시 국제관례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이 불리한 통상 조약을 맺지 않도록 조선을 보호하고자 했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조력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8년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공개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고종이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뜻 깊은 사료이다. 제작기법 측면에서도 근대문물이 밀려오던 19세기 말 서양 국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즉, ▲전통적인 손바느질이 아닌 상하 90cm 정도 크기의 넓은 폭의 면직물을 바탕재료로 하여 재봉틀을 사용해 박음질했으며, ▲청색․홍색 태극과 청색의 4괘(四卦)를 부착하는 데 있어 바탕천을 오려내고 두 줄로 박음질해 멀리서도 문양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시각적 효과를 꾀한 점 등 초창기 국기 제작법을 적용해 매우 정교하고 정성껏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데니 태극기’는 ▲국기를 제정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외교적 노력을 증명하는 유물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을 향한 열망의 상징이 된 태극기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은 물론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지한 미국인 외교관 가문이 90여년 넘게 간직해 오다 우리 정부에 기증함으로써 진정한 호혜(互惠, 서로 동등하게 혜택을 누림)의 상징이 되었다는 점,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태극기라는 점 등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보물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미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1941년 경 매우사 신부는 선교사로서 중국 충칭(中慶)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선교를 위해 미국으로 가기 전 김구 선생이 태극기에 글을 써서 주며 미국에 가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이 글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함. ‘김구 서명문 태극기’의 전래에 얽힌 일화는 미주 한인들이 발간한 신문인 『신한민보』1942년 3월 19일자(3면)에 자세히 보도되었다. 이 태극기는 세로 44.3cm, 가로 62cm 크기의 비단 천에 청색과 홍색의 천으로 태극을 만들어 붙이고, 흑색 천으로 4괘를 덧대어 제작한 소형 태극기로 깃대는 오른쪽에 천을 덧대어 만들었으며, 괘는 가로 상단에 건괘(乾卦)와 감괘(坎卦), 하단에 이괘(離卦)와 곤괘(坤卦)가 배치되어 있다. 깃대와 괘의 사이에는 김구 선생의 친필로 묵서 4줄 143자가 쓰여 있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겨진 작고 네모난 인장이 찍혀 있다. 무엇보다 이 태극기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서명문에서 김구는 망국의 설움을 면하고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광복군을 도와줄 것을 강하게 호소하였다. 김구 서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강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정확히 알려진 유일한 자료라는 점, ▲대한민국의 독립을 열망한 독립운동가들의 간절한 신념이 대표적으로 담겨있다는 점, ▲매우사 신부로부터 안창호 선생의 부인이 태극기를 전달받기까지 상황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어 전래 경위가 분명하다는 점,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의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되어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ㆍ학술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앞면)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서울 津寬寺 太極旗)’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도 함께 발견되었다. 신문류는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 '신대한(新大韓)', '독립신문' 등 5종으로,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경고문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제30호)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신대한(제1호)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는 고려 8대 현종이 1011년에 창건한 고찰로 이성계가 건국 과정의 살육을 참회하기 위해 수륙재를 베풀었던 사찰이었다. 서울근교 4대 명찰의 하나였던 이 절은 6·25 전란으로 나한전(羅漢殿), 칠성각(七星閣), 독성전(獨聖殿) 세 동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소했다. 구한말 중창한 칠성각을 2009년 보수하던 중 독립운동 사료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진관사 수륙제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려라고 추정하고 있다. 백초월은 3.1만세운동 직후 비밀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불교계의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제공하는 등 국내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인물이다. 또한 태극기가 싸고 있던 자료들이 1919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되어 국내에 밀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를 감추기 위해 태극기에 싸서 칠성각에 숨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형태상으로 4괘는 임시정부가 제정한 4괘와 동일하나 현재의 태극기와는 배치 위치가 다르다. 태극의 색깔은 현행 태극기와 같지만, 1890년 고종이 데니 외교고문관에게 하사한 태극기와 같이 굴곡이 매우 심하며 그 위치도 현재의 국기를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데니 태극기와 마찬가지로 바탕천에서 태극 부분을 도려내고 다른 천으로 만든 태극을 정교하게 박음질해 덧붙였다. 무엇보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이처럼 ‘진관사 태극기’는 ▲불교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주도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 ▲항일 정신을 형태상으로 강력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점과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를 통해 태극기의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번에 지정된 태극기 3건은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이자, 우리 역사 최초로 국기(國旗) 제작이 시도되고 변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허중학 기자]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 보물 지정
[서울문화인] 조선 17세기 조각승(彫刻僧)으로 이름을 떨친 색난(色難)이 만든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을 총 4건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 색난은 17세기 전반에 활약한 여러 선배 조각승들을 이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대표적 조각승으로 대부분의 동시대 조각승들처럼 정확한 생몰연대와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여러 기록을 통해 1640년 전후 출생해 1660년대 수련기를 거친 후 1680년 조각승들의 우두머리인 수조각승이 되어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약 40년 넘게 활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색난은 동시기 조각승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보통 유명 조각승이 평생 10건 내외의 작품을 남긴 것에 비해 색난의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 건에 이른다. 또한,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라는 뜻의 ‘교장(巧匠)’ 또는 ‘조묘공(彫妙工)’으로도 불렸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색난이 만든 불상을 선호했고 그의 조각 기술을 높이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보물로 지정된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光州 德林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지금까지 알려진 색난의 작품 중 제작시기가 가장 빨라 그의 작품세계에서 상징성이 큰 작품이다. 발원문을 통해 수조각승으로 활동한 40대(1680년/숙종 6)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총 26구로 구성된 대규모 불상이다. 또한, 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요 존상(尊像)의 손실이 없고, 작품성도 뛰어나 17세기 후반 명부전 불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시왕(十王)은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구체적으로 ① 진광대왕(秦廣大王), ② 초강대왕(初江大王), ③ 송제대왕(宋帝大王), ④ 오관대왕(五官大王), ⑤ 염라대왕(閻羅大王), ⑥ 변성대왕(變成大王), ⑦ 태산대왕(泰山大王), ⑧ 평등대왕(平等大王), ⑨ 도시대왕(都市大王), ⑩ 전륜대왕(轉輪大王)을 말한다. 보물 ‘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高興 楞伽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十六羅漢像 一括)’은 능가사 응진당(應眞堂, 사찰에서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 그 제자들에 대한 신앙세계를 함께 묘사한 불교건축물. 보통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부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일괄로,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85년 6월 전라도 홍양현(洪陽縣) 팔영산(八影山, 고흥군 점암면) 능가사(楞伽寺) 승려 상기(尙機)가 발원하였고, 색난이 수조각승으로서 그의 동료·제자들과 함께 주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고흥 능가사는 색난의 본사(本寺)이자 활동의 본거지로서, 이번에 지정된 보물은 그가 오래도록 머문 사찰에서 대단위 불사를 진행하고 남긴 작품이라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 1698년 능가사 범종 시주, 1707년 능가사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간행 시주, 1730년 능가사 기와 시주 등 이곳의 다양한 불사(佛事)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 고려 후기 승려 각운(覺雲)이 스승인 혜심(慧諶)의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 중요한 용어를 발췌해 풀이한 불교 주석서 능가사의 보물은 주요 존상이 결실되지 않아 구성이 거의 완전하고, 나한상의 표정과 몸짓이 지물(持物, 불보살 등이 손에 지닌 물건)과 잘 어우러져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어 예술성도 탁월하다. 색난 조각의 형성과 발전, 그의 사승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물 ‘김해 은하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金海 銀河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1687년(숙종 18) 제작되어 김해 신어산(神魚山) ‘서림사(西林寺) 시왕전(十王殿)’에 봉안된 불상으로, 서림사 시왕전은 현재의 은하사 명부전을 가리킨다. 은하사 명부전 존상은 모두 21구로,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귀왕, 판관, 사자, 금강역사 등 거의 완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주로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활동 영역을 파악하는데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존상의 완전성과 창의적인 도상(圖像), 그리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학술·예술적 중요성이 크며,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한 획을 그은 색난의 전성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존할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求禮 華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은 경북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계파 성능(桂坡 聖能)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覺皇殿)을 중창한 후 1703년 조성한 대형 왕실발원 불상으로서(평균 높이 약 3.3m), 색난의 50대 만년작(晩年作)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을 통해 7존(尊)의 불보살상은 수조각승 색난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인 충옥(沖玉), 일기(一幾) 등 24명의 조각승이 1703년 협업해 만들었다. 석가여래좌상은 색난, 다보여래상과 문수보살상은 충옥, 아미타여래좌상은 일기, 보현보살상은 웅원(雄遠), 관음보살상은 색난과 추붕(秋朋), 지적보살상(智積菩薩像, 다보여래를 따라 석가여래의 법화경 설법자리에 왔다가 문수보살과 성불(成佛)하는 일은 논한 보살)은 추평(秋平)이 각각 주도하여 조성하였고 당시 최고 권위의 왕실발원 불상 조성에 색난과 그 제자들이 초빙된 것은 조각승으로서 그의 명성이 대단했음을 반증한다.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40여 년 동안 수화승으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의 거의 마지막 시기 작품으로,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반영된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이자, 수준 높은 조형성과 기술적 완전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는 물론 법화신앙 바탕의 불교의식집에 등장하는 도상을 최초로 조각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4건의 작품은 ▲ 관련 자료를 통해 조성시기와 배경, 제작자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 ▲ 동일작가작품 중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다는 점, ▲ 주요 존상의 결손이나 변형이 적어 완전성이 뛰어나고 작품성도 우수하다는 점, ▲ 제작 당시부터 원봉안처를 벗어나지 않아 유래가 뚜렷하다는 점 등에서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편,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교조각 중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작품으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되어 17세기 불교사상과 미술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은 지난 6월 국보로 지정되었다.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奉安)된 3구(軀)의 좌상은 1635년(인조 13년) 당대 유명한 조각승인 청헌(淸軒 또는 淸憲)과 응원(應元), 인균(印均)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이 만든 17세기의 대표적인 불교조각으로 모두 3미터가 넘는 초대형 불상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앞도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최근 발견된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면서(1630∼1636),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한 시기(1634∼1635년)와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더욱 명확하게 밝혀졌다. [허중학 기자]
[전시] 표현주의와 민화, 표현주의적 조선민화와 현대민화
[전시] 표현주의와 민화, 표현주의적 조선민화와 현대민화
[서울문화인]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사대부의 세련미나 격조 높은 문인화와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격외적인 것은 외래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민중들이 그린 민화는 일명 속화(俗畵)라 불리운 것처럼 다른 회화 장르에 비해 그동안 박물관에서는 외면 받아 온 장르였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에 비해 다양한 곳에서 민화를 접할 수 있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소장품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화의 비상, ‘민화 그리고 표현주의’》展은 우리가 보아왔던 민화전과 조금 다른 전시라 하겠다. 《민화의 비상》展은 국내 최초 민화 전문 박물관인 조선민화박물관이 진행하는 전시로 2019년 두 번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는 전시이다. 조선민화박물관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2000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2015년에는 강진에 제 2관을 설립하기까지 했다. 이곳에는 어해도와 화조도, 까치와 호랑이 등소박한 서민적 정서가 담긴 대표적인 조선시대 민화 5,00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조선시대 민화 180여점과 현대민화 100여점 그리고 춘화 50여점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는 2,000여 평의 야생화 공원과 학생 민화 공모전 수상작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단순히 예전의 민화를 수집하여 전시하는 것을 넘어 개관 이후 매년 ‘전국민화공모전’를 개최하여 현대민화의 나가야 할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밝혔듯 이번 전시가 기존에 보아온 민화전과 차이점은 ‘민화 그리고 표현주의’라는 소주제에서 알 수 있듯,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은 박물관 소장품 5,000여점의 민화 중 표현주의가 관찰되는 작품 20여 점과 함께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표현주의가 극대화된 현대민화 작품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보이는 현대민화가 단지 과거의 민화를 모사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시를 기획한 한국민화뮤지엄 오슬기 부관장은 올해 주제인 표현주의를 현대민화에 접목하고자 2020년 12월 14일부터 24일까지 전시에 참여할 작가를 모집했다. 첫해였던 2019년에 민수회(조선민화박물관의 분관인 강진의 한국민화뮤지엄이 주최하는 ‘대한민국민화대전’ 우수상 이상 수상작가들의 단체로 100여 명의 회원이 활동)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던 것에서 확장시켜 현대민화 작가 전체를 모집 대상으로 진행 총 29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이글을 대상으로 주제에 대한 교육을 통해 완성된 29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이 선보이는 작품은 주제, 형태의 표현의 방법은 물론 석채, 분채, 봉채, 한국화 물감 등 현대민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재료 이 외에도 유화, 템페라, 아크릴 등 재료의 사용도 다양하다. 하지만 민화가 가진 특징은 잃지 않고 한국적 미술의 토대 속에 21세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듯하다. 《민화의 비상(飛上)》전이 그 타이틀만큼이나 과거 전통민화와 차별적 변화가 21세기 현대미술시장에서도 비상하여 새롭게 자리매김할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오는 28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창덕궁 후원 연경당에서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된다.
창덕궁 후원 연경당에서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된다.
[서울문화인] 오는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창덕궁 후원 연경당에서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가 재현된다. ‘진작례’란 왕실의 특별한 날에 신하들이 임금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의식으로 이번에 진행하는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는 순조 무자년(1828년 음력 6월)에 효명세자가 모친인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 순조비)의 40세 탄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연경당에서 마련한 왕실잔치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소장 문영철)에 의하면 이번 공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부설 세계민족무용연구소(소장 서정록)가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의 문헌기록을 학술적으로 고증하고 재현하는 행사로 기록에 근거해 춤, 음악, 노래, 복식, 음식, 의물 등을 재현한다. 이번 행사는 2006년 첫 공연 이후 올해 일곱 번째로 진행하는 행사로, 의례와 함께 영지무(影池舞), 향령무(響鈴舞), 박접무(撲蝶舞), 춘앵전(春鶯囀),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등의 정재춤이 무대에 오른다. 영지무(影池舞)는 네모난 연못 가운데 학, 사슴, 탑등을 올린 산을 만들고, 둘레는 연꽃으로 장식하여 그 주변에서 춤을 추는 궁중무용이며, 향령무(響鈴舞)는 두 손에 방울을 들고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장단에 따라 방울을 흔들고 뿌리면서 추는 춤, 박접무(撲蝶舞)는 나비가 날개짓 하듯 춤추는 향악정재이다. 또한, 춘앵전(春鶯囀)은 1828년(순조 28년) 효명세자가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하여 창제한 향악정재 봄날 아침, 버드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도취되어 이를 무용화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은 송나라 악무 10대 중 하나로서 ‘홍생색체(紅生色砌)옷을 입고 금봉관을 쓴 아름다운 사람이 모란을 꺾는다’라는 내용의 춤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정기 악기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허영일 명예 교수가 관련 문헌을 고증하여 새로 제작한 영지(影池)가 무대에 올라 더욱 의미가 깊다. 첫 날인 11월 3일에는 영상기록을 위한 시연과 촬영으로 무관중으로 진행되며, 4일과 5일에는 오후 1시부터 각각 한 차례씩 공연되며, 창덕궁 후원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라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유튜브로도 생중계 된다. [허중학 기자] (https://youtube.com/channel/UCQWeOnBtsoNoxz9UujXy0QA)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 특색을 반영한 예술프로젝트 선보여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 특색을 반영한 예술프로젝트 선보여
[서울문화인] 코로나19로 2021년 제2회 제주비엔날레가 취소됨에 따라 제주도립미술관은 대체 행사로 지역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기획전 ‘프로젝트 제주’《우리 시대에_At the Same Time》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는 13작가(팀)<강나루(설치), 강요배(영상), 강태환(설치), 고윤식(설치), 김현성(목공예), 반치옥(설치), 아트앤디자인(설치), 에코 오롯(설치, 영상), 임서형(퍼포먼스), 제람 강영훈(설치), 제인 진 카이젠(영상), 중정 콜렉티브(설치), 콜렉티브 웃(영상)>은 다변화하는 사회 관계망 안에서 예술이 우리의 삶, 환경, 체험 방식,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이야기 한다. 더불어 작가들 대부분 제주를 기반으로 하거나 연관성을 가진 작가들인 만큼 제주 특색을 반영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비주얼 아티스트 김가현, 사진작가 박상용, 영상 감독 심건(JAN)이 함께하는 미디어아트 그룹 콜렉티브 웃의 <Distance99>는 거리센서와 연동된 세 대의 모니터에 제주에서 촬영하고 기록한 영상과 소리를 담았다. 관람객이 모니터와의 일정 거리를 넘어 가까이 다가가면 영상과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변형된다. 또한, 전시실 입구 계단에는 레인보우99의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사운드 작업이 재생된다. 긴 호흡으로 담은 제주의 소리는 이 섬의 끝없는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뜨개 작업으로 꾸며진 에코 오롯의 <플라스틱 만다라>는 우리가 초래한 고통을 마주하고 바다에 사죄하는 작업이다. 작업의 구체적인 형태와 의식은 티베트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만드는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작업의 결과보다 작업 과정에 집중한다. 함께 만나 뜨개를 하고, 함께 뜨개 노동요를 만들어 부르며, ‘노동 파티’라고 부르는 천을 잘라 실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한다.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연결성을 미적으로 경험하며 산호에 대해 알아가고 바다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생태 예술’이자 ‘커뮤니티 아트’로 탄생시킨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뜨개실의 특성상,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해체하고 다시 반복하여 작업을 이어간다고 한다. 제주의 역사와 풍경을 회화로 다루 강요배 작가는 미디어 작업을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서정적인 제주의 풍경을 담은 <Sound scape>는 자신의 주변인, 작업실, 정원, 나른한 오후, 고양이, 나비, 나무, 햇살, 바람, 그 밖의 다양한 소리와 함께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자연과 캔버스 작업 과정이 병치되는 영상은 소리 풍경에 삶이 녹아들어 하나의 섬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제주, 서울, 독일을 오가며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해오고 있는 고윤식 작가의 <귀로-유목민들>을 선보인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 오브제가 가진 본래의 형태를 변형하거나 왜곡시키는 방식은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 고향인 제주에 돌아왔을 때 느꼈던 낯선 환경과 새로운 감정을 복합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제주 출생의 덴마크 국적을 가진 제인 진 카이젠의 2채널 비디오로 구성된 <An Offering((제물 드림))>은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이 된 제주의 자연환경, 역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였다. 제주 해변과 바닷 속에서 촬영한 영상은 서사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시각과 청각의 몰입을 주도한다. 연민의 정서와 관련된 관인, 관세음 영등과 같은 초문화적인 상징적 요소가 등장하며 신화나 여신들의 다양한 유산을 배경으로 삼았다. 시각 예술 활동가 제람 강영훈의 4폭 거울 병풍으로 구성된 <You come in We come out>은 개인의 증언이 사회적 변화에 기여하는 사례를 제시한다. 거울은 겉모습만을 보고 타인을 판단하는 우리 자신을 은유한다. 거울의 단면에는 작가가 군 복무 당시,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생활했던 경험을 편지글로 재현했다. 더불어 비슷한 경험을 한 5인의 목소리도 더해진다. 우리가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안으로 들어가면(You come in)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We come out)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부제에 쓰인 ‘Asylum’은 ‘망명’과 ‘정신병원’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작가는 ‘구속’을 상징하는 정신병원에서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용기와 위로를 제공하는 안식처가 되기를 바라면서 풀어내었다. 제주에서 ‘텃밭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강나루(설치) 작가는 작가가 직접 채종하거나 수집한 100여종의 토종 씨앗을 담은 <씨앗 감각>은 관람자가 목화솜을 감각하고 경험해 보는 작업을 선보인다. 광섬유를 소재로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탐구하는 강태환 작가의 <Garden>은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허물어 리얼리티를 구축했다. 광섬유를 통해 공간을 구성하고 그 안에 빛을 들여 자연을 빼닮은 ‘유사 자연’과 대자연의 숭고를 지각하게 하는 ‘유사숭고’를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는 김현성 작가의 <Slug Bench #3>은 ‘순응’을 주제로 자연 생태적인 물푸레나무를 주된 재료로 사용하여 목재 본연의 물성과 인위적인 힘을 가한 형태인 ‘스팀 밴딩(Steam banding)’ 기법으로 쌓아올린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상하이에 거주하며 상업 사진가로 활동했던 반치옥 작가의 <코로나의 지층>은 코로나19가 끼친 영향을 묻고 기록 하였다. 작가는 80여 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각자가 가진 특별한 이야기도 있지만 공통된 증언이 인상 깊다고 한다. 공룡 멸종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운석의 충돌은 지구의 모든 지층에 동일한 흔적을 남겼듯 코로나 역시 이에 비길 만한 전 지구적이고 동시적인 흔적을 남겼다고 판단, 작가는 이러한 지층을 동시대의 군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숲의 형상으로 구현했다. 버려진 것들로 작품을 만드는 김기대, 식물을 위한 가구를 제작하는 박유진, 생태적 관점에서 동·식물의 세밀화를 그리는 임종길이 모인 중정 콜렉티브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은 화엄사상에서 말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촘촘하게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 하나의 보석으로 서로를 끝없이 반사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전 지구가 동시에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유기적인 관계에 놓인 우리가 ‘중중무진’의 인과율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작품은 미술관 중앙에 정원에 인위적으로 이식된 제주 자생식물로 곶자왈의 모습으로 구성하였다. 인공 곶자왈 한 편에 놓인 오두막에는 관리자가 수집한 식물, 씨앗, 도구들이 정돈되어 있다. 아트앤디자인의 <느영나영 形形色色>은 너와 나의 관계, 나와 관계한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각기 다른 형(形)과 색(色)을 가진 존재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고 그 조화 안에서 아름다움을 다채로운 크기와 색감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제주도에서 진행되는 세계유산축전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관계로 <세계유산축전-아트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양숙현 작가(미디어아트)의 작품을 포인트 클라우드 기법을 통해 3차원 세계로 재해석해 전시장 안으로 들여왔으며, 더불어 제주지역에 활동하는 청년작가·신진작가·유망작가들의 작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샛ᄇᆞ름미술시장"(제주어로 동풍 또는 큰 바람)도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 설치, 공예, 영상 등 25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9일까 제주도립미술관 기획전시실2, 로비, 중앙정원 등에서 진행되며, 코로나19로 전시전 관람신청은 사전예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허중학 기자]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진 ‘조화와 공존’의 아상블라주 예술작품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진 ‘조화와 공존’의 아상블라주 예술작품
[서울문화인] 바다를 배경으로 자연환경을 예술적 공간으로 재해석하여 진행하는 부산 바다미술제가 올해 처음으로 동해남부선 전철 개통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일광해수욕장에서 개최되었다. 부산광역시와 (사)부산비엔날레조직회가 공동주최하는 바다미술제는 1987년에 서울올림픽 프레행사로 처음 개최되어 34년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바다미술제는 총 18회 개최하였으며, 1995년까지 총 8회를 개최, 이후 부산비엔날레에 통합되어 5회를 개최한 후 2011년부터 독립브랜드로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되지 않는 홀수년에 개최되고 있다. 2011년 독립 개최이후 대한민국 1호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에서 2회를 개최하였고 최근에는 바다의 원시적 형태가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다대포해수욕장에서 3회를 개최하였다. 그동안 해운대, 광안리, 송도, 다대포 등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고 규모가 큰 부산의 대표적 해수욕장에서 개최되었지만 올해 리티카 비스와스(Ritika Biswas, 1995년생, 인도) 전시감독은 감독 공모에서 제안하였던 전시기획(안)에서 부터 일광해수욕장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는 다중집합이 어려운 시기에 규모가 큰 장소보다는 아담하고 상업적이지 않은 해수욕장을 선호하였고,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을 비롯한 일대의 하천과 다리, 공원, 포구에 형성된 어촌마을까지 모든 요소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밝혔다.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과 조화와 공존 10월 16일부터 10월 14일까지 30일간 진행하는 2021바다미술제의 전시주제는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잡동사니나 일상적 대상들을 한 화면에 입체적으로 조합하는 경향. 평면적인 형태가 아니라, 입체적인 콜라주 기법)이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공통 형질인 ‘물’을 통해 교감하고 변화하는 흐름을 그려내고 바다를 연대의 장으로 포용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큰 해수욕장과 달리 주민들의 삶과 직접 맞닿은 일광해수욕장과 잘 어울린다. 리티카 비스와스 전시감독은 “인간과 비인간을 분리된 개체로 인지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물’이라는 공통된 형질을 공유하며 공존하는 존재로 바라볼 때, 비로소 하나의 ‘아상블라주’로서의 인간과 비인간을 받아들이게 된다.”라고 말한다. 13개국에서 참여한 22팀(36명)의 작가들은 ‘바다’라는 곳에서 각자의 시선이 담긴 작품을 해변은 물론 주민들의 일상의 공간, 백사장과 건물 외벽에 비춰지는 영상 작품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공존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동해선 일광역에서 일광해수욕장으로 진입하는 부근에 설치된 대형 지느러미와 비늘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보인다. 미국의 최앤샤인 아키텍츠의 〈피막〉이라는 작품으로 일광천 끝자락에 위치한 다리 강송교에 설치되어 바다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다. 거대한 뜨개질로 수놓아진 <피막>의 다양한 패턴은 다양한 몸들을 가로지르며 인간과 비인간 사이를 넘나든다. 실내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 마을회관 옥상에도 최앤샤인의 다른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그 주변에 안재국 작가는 낚시줄, 구리선 등을 사용해 일광천과 교량을 절묘하게 연결하는 거대한 생명체 <세포유희>를 탄생시켰으며, 일광천 부근 해맞이 빌에 대형 프로젝트 맵핑을 실현한 김안나 작가는 작가와 인공지능이 협업하여 <오션 머신>이라는 발명품을 시각화하고 우리 전통설화 속 용신부인과 함께 해양 플라스틱을 제거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이는 인류가 맞이한 기후, 환경 문제에 대한 작가의 희망적 의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일부는 부산역 앞 LED 파사드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대나무로 만든 대형작품인 대만 작가 리쿠에이치의 <태동>은 작품의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기 보다는 대나무의 직조된 결들을 통해 공존해야 하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성찰케 한다. 다색의 빛을 반사시키는 특수 필름 패널로 제작된 OBBA의 <Lightwave>는 보트 패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물결들 사이를 관객들이 거닐 수 있고 이를 통해 햇빛, 물, 바람, 모래와 같은 자연과 관객의 상호작용을 체감하도록 한다. 도시의 역사, 장소성과 지역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경화 작가의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란 작품는 버려진 자개로 분해하여 재결합하여 거대한 알을 연출하였다. 표면의 다양한 자개의 문양들과 오색빛의 거대한 검은 알들을 통해 기이하고 신화적인 생명체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청년작가 류예준 작가는 산호초와 뒤엉킨의 인간의 몸을 형상화한 <주름진 몽상의 섬들>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 지으려는 인식의 틀을 깨고자 한다. 백사장 중앙부근에는 인도 출신 로히느 드배셔 작가의 영상작품 <심해 온실>을 만날 수 있다. 동해안과 일광 바다에서 채집한 규조류 표본을 작가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빛과 색으로 재탄생시킴으로서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바다 속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5개의 카페와 음식점의 유리창들에서도 작품을 볼 수 있다. 루 킴 작가의 <용해 전략>은 물이 주인공이 되고 해양과 기장 고리원전을 의인화하여 나눈 대화들을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고, 일광 바다를 따라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텍스트는 작가의 각본으로 연작중 하나이다. 실내 전시공간으로 사용된 구)마을회관 1층에는 셰자드 다우드의 대형 직조 작품인 <인류 판게아>라는 평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인류학과 국가간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고생대 말기부터 중생대 초기까지 초대륙을 의미하는 판게아와 그를 둘러싼 분열되지 않은 바다에 주목했다. 이밖에도 이천마을 할매신당을 모티브로 한 부스 라이노, 메들린 플린, 팀 험프리의 공동 저작 <파도의 문, 신당의 통로>라는 사운드가 결합된 설치 작품과 실제 주민들이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는 창고속의 케렘 오잔 바이락타르가 <얽힌 갈래들>도 장소특정적인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바다미술제는 실내 전시와는 달리 밤에도 계속해서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해가 비추는 낮 시간대에는 주변 풍광과 함께 어우러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고, 해가 진 뒤부터 밤 9시까지는 햇빛 대신 조명이 작품에 빛을 더한다. 특히 조명과 함께하는 작품과 더불어 백사장과 아파트 외벽의 프로젝션 영상 작품은 시간에 따른 자연적인 변화에 순응하여 관객과 마주한다. 2021바다미술제는 무료로 휴일 없이 진행되며 전시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진행되며(일부 실내 작품은 오후 6시까지, 영상작품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상영),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싱잉볼 힐러 지안이 진행하는 ‘싱잉볼 명상 테라피’가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에서 펼쳐진다. 또한, 온,오프라인으로 학술프로그램(강연, 미니세미나, 토크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서울공예박물관을 가다] 허동화∙박영숙의 기증컬렉션, 박물관을 빛내다.
[서울공예박물관을 가다] 허동화∙박영숙의 기증컬렉션, 박물관을 빛내다.
[서울문화인] 서울공예박물관은 국가지정문화재 5점을 비롯하여 서울시시정문화재 및 지정추진 문화재 8점, 박물관 측에서 구입한 현대 공예작품으로 구성된 상설전과 기획전으로 꾸며졌다. 먼저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꾸며진 상설전은 공예 역사 전반을 다루는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체험형 전시 <공예마을>과 함께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박영숙이 서울시에 기증한 컬렉션으로 구성한 직물공예 상설전 <자수, 꽃이 피다>,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로 꾸며졌다. 무엇보다 서울공예박물관의 돋보이게 만든 것은 허동화∙박영숙의 기증컬렉션이다. 이들 부부가 서울시에 무상 기증한 공예품은 무려 4,241건(5,129점)에 이른다. 기증품에는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자수병풍, 보자기 등 1천여 점 비롯해 자수공예 및 복식 등 각종 직물공예품, 장신구, 함, 바늘과 같은 침선구를 망라한다. 이 중에는 국가지정 보물 제653호인 4폭 병풍 <자수사계분경도>와 국가민속문화재 41호 <운봉수 향낭>, 국가 민속문화재 42호 <일월수다라니 주머니>, 국가 민속문화재 43호 <오조룡 왕비보> 3건도 포함돼 있다. 강남구 논현동 자리했던 옛 한국자수박물관은 허동화 관장(1926~2018)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으로 칭하며 열정을 다해 운영, 1970년대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자수라는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며 국내외에 명성을 떨쳐왔다. 박물관 설립자이자 허 관장의 부인인 박영숙 원장(1932년생)은 치과를 운영하며 경제적인 뒷받침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자수박물관은 작은 사립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11개국(영국, 프랑스, 벨기에, 미국, 터키, 독일, 호주, 이태리, 뉴질랜드, 스페인, 일본)에 우리의 여성자수공예문화를 알려왔다. 1만여 명이 관람한 1979년 일본 도쿄 전시 이후 최근까지 해외전시만 55회가 열렸다. 국내 전시까지 포함 하면 총 전시는 총 100여 회가 넘는다. 해외 전시의 경우 대부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서의 자수문화에 주목, 공식 초청해 열린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까지 개최한 단독 국외 전시가 31회인 것과 비교하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이 거대한 성과를 이룬 셈이다.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서 전통 자수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알리고자 개최되었던 <박영숙 수집 전통자수 오백년> 전은 개인 소장가로서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청자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두 번째 전시였으며, 당시 15만여 관람객이 다녀가 대성황을 이뤘고, 우리 전통 자수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획전으로 개관과 함께 과거에서 현재까지 귀걸이의 의미를 조명하는 기획전 <귀걸이, 과거와 현재를 꿰다>을 시작으로 현재는 서울무형문화재 작품을 전시한 지역공예 기획전 <손끝으로 이어가는 서울의 공예>(11월 21일까지), 다양한 동시대 공예를 엿볼 수 있는 기획전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10월 24일까지), 故예용해가 쓰고 모은 자료로 보여주는 공예와 기록: <아임 프롬 코리아>(10월 29일까지), 크래프트 윈도우 #2. 공예, 만색晩色(11월 21일까지)가 진행 중에 있다. 현재는 코로나19 거리두기 격상으로 인해 제한된 인원으로 사전관람 예약을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지만, 서울공예박물관은 향후 공예도서관, 보이는 수장고, 공예와 음악 콘서트 ‘공예:가’ 등을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준비하여 선보일 예정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서울공예박물관을 가다] 주변의 풍경과 박물관 곳곳에 설치된 공예 작품으로 명소로 거듭나다.
[서울공예박물관을 가다] 주변의 풍경과 박물관 곳곳에 설치된 공예 작품으로 명소로 거듭나다.
[서울문화인] 코로나19로 인해 정식 개관식 행사는 잠정 연기되었지만, 7월 16일부터 사전예약제로 사전관람을 시작한 서울공예박물관은 이미 한 달간의 예약이 완료될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다. 북촌과 인사동, 경복궁 등을 잇는 자리에 옛 풍문여고를 리모델링하여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은 역사가 오래된 터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 지역은 세종이 아들 영응대군의 집을 지은 터이자, 세종이 승하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후로도 조선 왕실 가족의 제택 혹은 가례를 치르는 장소 구실을 하던 별궁의 터이며, 특히 고종이 순종의 가례 절차를 위해 건립한 ‘안동별궁(안국동별궁)’이 있던 터이다. 1940년대에는 풍문학원이 풍문여고로 설립인가를 받고 이후 약 70년간 이곳은 학생들의 배움터로 이용되었다. 그러다가 서울시가 공예 문화 부흥을 위해 서울공예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 하에 2014년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는데 2017년 풍문여고가 강남구 자곡동으로 이사하면서 서울시는 2017년 부지 매입을 완료하고 2018년 착공을 시작하였다. 2021년까지 두 차례의 문화재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근대의 배수로, 도자편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서울공예박물관은 기존 5개동을 리모델링하였고, 박물관 안내동과 한옥을 새로 건축하여 총 일곱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으로 탄생했다. 특히 그동안 높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어 고립된 공간으로 답답했었는데 높은 담이 없애 지역 주민은 물론 인사동, 북촌을 찾은 사람들에게 도심 속 쉼터로 자라 잡았다. 안내데스크와 의자, 외벽까지 공예 작품으로 만든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은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많은 공예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 박물관을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곳곳에서 공예품들과 마주한다. 이는 개관을 앞두고 박물관 내외부 공간을 공예가와 함께 만드는 ‘공예작품 설치 프로젝트 Object9’를 통해서 제작된 설치물로 강석영(도자), 김익영(도자), 김헌철(유리), 박원민(레진), 이강효(도자), 이재순(돌), 이헌정(도자), 최병훈(돌·나무), 한창균(대나무)이다. (가나다순) 돌, 유리, 흙, 대나무, 레진 등의 재료를 다루는 다양한 분야의 9명의 작가들의 손길로 탄생되었다. 강석영 작가의 [무제]는 4천여 개의 도자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주입 성형(slip casting)으로 만든 백자, 청자, 분청사기 편이 직조하듯 배치되어 박물관 외벽에 설치된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위치한 안국동의 전통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동시에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안국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건물 외벽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익영 작가의 [오각의 합주]는 오각 형태의 의자 15점, 나무 형태의 조형물 3점으로 구성된 작품이며, 물레 성형(jiggering)으로 만든 백자에 오방색 유약을 입혀 제작되었다. 서울공예박물관 전시동 사이에 있는 뜰과 교육동 옥상에 놓여, 관람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역할을 한다. (현재는 미개방 공간이다) 김헌철 작가의 [시간의 흐름]은 170여 개의 유리 오브제로 구성된 작품으로, 블로잉 기법(Glassblowing)으로 만든 모래시계 형태의 붉은색 그러데이션 유리 오브제로,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동 천장에 설치한 작품이다. 박원민 작가의 [희미한 연작]은 반투명 다홍색의 안내 데스크 작품으로, 레진을 주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교육동(어린이박물관)의 인포데스크로, 어린이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한쪽 면의 높이를 낮추어 제작되어, 편의성과 심미성을 모두 충족시킨다. 모던하면서도 어린이 친화적인 형태와 색감을 갖추고 있다. 이강효 작가의 [휴식, 사유, 소통의 분청의자 세트]는 전통 옹기 형태의 의자로, 직접 배합한 흙으로 빚어 만든 도자 위에 분청 기법인 상감, 덤벙, 귀얄로 장식한 작업이다. 30여 점의 분청 의자가 서울공예박물관 앞뜰에 놓여, 관람객들이 나무 아래에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재순의 [화합Ⅰ, 화합Ⅱ]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이재순 석장이 제작하였으며 석문 1점, 의자 9점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의자 9점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와 제주도에서 채취한 자연석(고흥석, 영주석, 원주석, 보령석, 문경석, 경주석, 마천석, 황등석, 제주석)을 사용하였다. 돌에 길상무늬를 조각하여 제작하였다. 이헌정 작가의 [섬]은 안내 데스크와 보조 데스크로 구성된 작품으로, 판 성형(slab building)과 흙가래 성형(coiling)을 통해 제작된 청록빛의 대형 도자 기물이다. 관람객들을 맞이할 인포데스크 역할을 한다. 최병훈 작가의 [태초의 잔상 2020]은 안내데스크 1세트, 벤치 1점, 스툴 3점, 수납장 3점으로 구성되었으며, 속은 검은색이고 겉은 흙색인 거대한 자연석과, 나뭇결을 살려 검은색 칠을 한 원목 등으로 제작되어 자연 그 자체를 감상할 수 있는 아트퍼니처이다. 서울공예박물관 전시동 실내 입구에 설치되었다. 한창균 작가의 [Remains & Hive]은 원형스툴 3점, 벌집스툴 1점, 독립스툴 20점으로 구성되었으며, 대나무를 가공하여 10가지 이상의 다른 패턴으로 엮어 제작한 작품이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어진 견고한 대나무 의자들은 그 멋진 형태와 미감은 물론, 휴식을 위한 실용성 또한 지니고 있다. 공예작품 설치 프로젝트 Objects9은 ‘공간 발견’, ‘작가 발굴’, ‘작품 창조’라는 세 가지 목표에 따라, 다양한 공예 작가가 박물관 개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작품을 시민들이 직접 사용함으로써 공예 문화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특히 실내에 오색의 아름다운 공예 작품을 감상하는 기쁨과 더불어 박물관 곳곳에 난 창으로 드러낸 풍경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포토 포인트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한옥을 포함한 일곱 개의 건물과 공예마당을 갖춘 서울공예박물관은 높은 담이 없으며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도심 속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흥미로운 골목길을 탐험하듯이 각 동의 다양한 전시와 마당, 휴게 공간을 찾아다니다 보면, 공예가 각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발굴 50년 만에 무령왕릉 출토유물 전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
발굴 50년 만에 무령왕릉 출토유물 전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
[서울문화인] 1971년 7월 5일,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舊 송산리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는 도중에 우연히 벽돌무덤 하나가 발견되었다. 무덤 입구에 놓인 지석을 통해 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를 다시 강한 나라로 부흥시킨 제25대 무령왕(武寧王, 백제 제25대왕, 재위 501~523년) 부부임을 알려주었고, 무령왕릉의 출토된 유물을 통해 중국 남조와 관련된 것, 신라·왜와의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발견으로 백제사와 동아시아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왕들의 무덤으로 20여기 이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7기가 복원되어 있다. 이 중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아치형의 천장을 한 무덤방과 무덤길을 갖춘 구조이다. 전체 길이는 약 7.03m이다. 널길은 길이 2.83m, 너비 1.03m, 높이 1.52m인 좁은 통로로 되어 있고, 널길이 끝나면 바닥이 22cm 낮아져 널방이 나타난다. 1.05m를 지나면 다시 바닥면이 원래대로 높아져 관대(棺臺)로 이어진다. 널방은 길이 4.20m, 너비 2.72m,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3,10m이다. 내부는 모두 연꽃무늬 계열의 벽돌로 채워졌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사 전반, 나아가 한국 고대사 연구에 큰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백제는 기원전 18년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한 후 660년 멸망하기까지 678년 동안 존속하였고, 도읍 위치에 따라 한성 웅진 사비시기로 나눈다. 백제 웅진시기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으나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됨으로써 백제사 연구의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공이 밝혀진 이 무령왕릉에서는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대표적인 유물 중에는 왕과 왕비의 금제 관 꾸미개 4점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신구, 금동신발, 청동거울, 중국제 도자기 등 5천 여점에 이르며, 이 중 12종목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이 포함되었다.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지석(誌石)에는 무령왕을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이라고 나타내고 있으며, 그가 62세 때인 계묘년(癸卯年) 오월병술삭칠일(五月丙戌朔七日)에 죽었고, 2년 뒤인 을사년(乙巳年, 525년) 팔월계유삭십이일(八月癸酉朔十二日)에 대묘에 안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무령왕과 왕비는 사망 이후 27개월, 즉 3년간의 빈장을 치른 뒤에 대묘大墓에 모셔졌다. 삼년상은 중국의 유교적 전통에 기반을 둔 것으로, 당시 백제에 유교적 의례가 도입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달리 빈장이나 가매장假埋葬 상태로 3년 상을 치른 뒤 시신을 안치하는 등 백제의 고유한 상장례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령왕릉은 분명 우리 고고학 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발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위대한 발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1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급하게 서둘러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졸속 발굴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당시 발굴단장 이었던 고 김원룡 전 국립중앙박물관 단장은 이러한 무령왕릉의 발굴은 자신의 실수이자 평생의 아쉬움의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기념 특별전 올해는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국립공주박물관(관장 한수)이 무령왕릉 출토유물 전부를 비롯하여 발굴조사 과정의 기록물을 포함하여 5,232점을 한자리에 모은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특별전은 1971년 발견 이후 처음으로 무령왕릉 출토유물 모두를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이다. 무령왕릉의 묘지석에는 무령왕은 462년에 출생하였고 계묘년癸卯年(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도 무령왕이 501년 즉위하여 523년 5월에 돌아가신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무령왕이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나오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개로왕의 아들로, 주로 달린 『백제신찬百濟新撰」에는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서 동성왕의 어머니가 다른 형(異母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무령왕을 곤지의 아들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여전히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이 쓰쿠시 가쿠라시마(各羅島)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하는데, 이곳은 현재 규슈(九州]의 작은 섬인 가카라시마(加唐島)로 여겨진다. 무령왕의 이름은 지석에는 ‘斯麻(사마)’로, 『삼국사기』에는 ‘斯摩(사마)’와 ‘餘隆(여융)’ 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장이 8척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그는 501년(동성왕 23)에 동성왕이 사냥에 나갔다가 좌평(佐平) 백가(苩加)가 보낸 자객에게 칼에 찔려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武寧(무령)’은 돌아가신 뒤에 올린 시호(諡號)이다. 무령왕릉 출토유물 5,232점 전체를 최초로 한자리에 전시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두 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중 왕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중심으로 전시하였으며, 기획전시실에서는 복원, 복제된 유물을 비롯하여 1971년 무령왕릉 발굴조사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되었다. 상설전시실 도입부에는 백제인들의 내세관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받침 있는 은잔을 전시하고 그 안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되었고 이어 왕과 왕비의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진묘수 등 주요 유물은 새롭게 진열장 유리를 저반사유리로 교체하고 조명과 받침대를 개선하여 감상 효과를 높였다. 왕과 왕비의 목관은 3D 스캔하여 실제 크기로 새롭게 전시하였다. 왕과 왕비 목관재 표면과 바닥에서 철제 못 1,279점과 금동제 못 19점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왕과 왕비 목관에 사용한 널못은 123점이며, 다른 못들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목관재를 결구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꺾쇠는 197점 확인되었다. 왕 널못은 7~9엽 꽃잎의 철제 못 머리에 금판을 씌우고 동제 받침에 은판을 씌워 결합한 것으로, 전체 65점 중 10점이 현재 목관에 박혀 있다. 왕비 널못은 8~9엽 꽃잎의 철제 못 머리에 은판을 씌운 것으로 전체 58점 중 3점이 목관에 박혀 있다. 일부 못 머리에 직물 흔적이 남아 있어 널방 내부나 목관을 직물로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관 외에도 여러 목재편이 확인되었다. 진묘수 뒤쪽 널길 중간과 널방 입구 사이에서는 나무문과 제대, 금동 테 두른 목기가 확인되었고, 출토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주칠기 조각이 내부 잔류물 수습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성분 분석 결과 나무문은 삼나무, 제대는 목관과 같은 금송으로 만들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무령왕과 왕비의 베개, 발받침은 나무로 만들어 장기간 전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상설전시실에서는 복제품을 전시해 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왕의 것과 왕비의 것을 교대로 선보인다. 무령왕과 왕비의 베개, 발받침은 형태와 크기가 비슷하지만 표면채색, 장식 방법 등에는 차이가 있다. 베개는 모두 나무 위쪽을 중앙에서반원으로 파내어 머리를 고정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발받침은 나무 위쪽을 중앙에서 W자 모양으로 깎아내어 시신의 두 발을 안치하도록 만들었다. 왕 베개와 발받침은 나무 표면에 전체적으로 옻칠을 한 뒤 장방형 금판을 이어서 육각형 문양을 만들고, 그 모서리와 중앙에 달개가 달린 금제 꽃모양 장식을 붙였다. 왕비 베개와 발받침은 나무 표면에 천연광물인 진사辰砂를 붉게 칠하고 그 위에 검은 먹과 흰색 안료로 무늬를 그려 넣었다. 베개는 폭이 좁은 금박으로 테두리를 돌리고 안쪽에 금박으로 육각형 문양을 만들었으며, 발받침은 테두리에만 금박을 붙여 장식했다. 수종樹種 분석 결과 왕 베개는 주목朱木이고 왕비 발받침은 향나무속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목과 향나무속은 한반도에 자생하는 나무로, 목관을 일본산금송으로 만든 것과 비교된다. 왕 금동신발은 모양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로, 왕비 금동신발은 뒤꿈치가 부서져 없어진 채 발견되었다. 금동신발은 좌측판과 우측판, 바닥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양이 없는 은판(왕)과 금동판(왕비)에 문양을 맞새김한 금동판을 덧대어 결합하고 동제 실[銅絲]과 못(리벳)으로 고정하였다. 문양은 육각무늬 안에 새(봉황문鳳凰文)와 꽃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좌·우측판은 원형의 달개를 동제 실로 고정하고, 바닥판은 원형의 달개를 꿴 동제 실과스파이크로 고정하여 실용성과 장식성을 모두 추구하였다. 성분 분석 결과 각 판의 바깥 부분과 일부 장식품은 수은 아말감법으로 도금하였지만 각판의 안쪽과 못의 몸통은 도금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왕 금동신발 안쪽 면에 덧댄 은판은 순은(99%)으로 확인되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발굴 이후 50년 동안 공주박물관이 무령왕릉 유물을 관리, 보존하며 정리한 성과들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밝혀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무령왕과 왕비 목관의 크기와 구조, 장식 부착 여부 등 정밀 조사 결과를 반영한 목관 재현품과 무령왕에 대하여 기록된 묘지석과 삼국유사, 백제의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중국 청자와 오수전, 동제 그릇, 무령왕과 왕비 금동신발 내부에서 발견된 직물 등을 조사하여 백제의 뛰어난 제직(製織)기술을 보여주는 금(錦) 직물과 라(羅) 직물 재현품을 제작하여 선보이고 있다. 또한, 무령왕릉 발견 최초 보고 문서와 발굴조사 실측도면, 탁본을 비롯하여, 당시 언론 보도 내용과 분위기도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 입구에서는 무령왕릉 발견 이후 국립공주박물관이 발간한 다양한 서적을 관람객이 직접 살펴볼 수 있다. 더불어 박물관 실감 영상실에서는 무령왕이 돌아가신 523년부터 무령왕릉이 발굴된 1971년까지 무덤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무령왕릉 1,448년간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2022년 3월 6일(일)까지 진행되며, 현재는 사전예약을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