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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1관, 《한국인의 하루》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1관, 《한국인의 하루》
[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 1관은 《한민족 생활사》을 주제로 선보이다가 지난 2018년 12월, 《한국인의 하루》로 새롭게 개편되었다. 기존 《한민족 생활사》 전시관은 1993년 2월 개관 이후 2007년에 리모델링을 통해 전면 개편되어 5000년에 걸친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공간으로 꾸며졌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긴 시간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민속(民俗)’의 정체성에 부합한 주제를 찾기 위해 학계의 연구 동향과 사회의 흐름을 살펴 ‘민(民)’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일상을 전시로 담아내는《한국인의 하루》라는 주제로 새롭게 개편되었다.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선조들의 소소한 하루 일상 군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치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관衣冠을 가지런히 하고 태도를 존엄하 게 하기 위함이다. -『사소절士小節』,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인시寅時에 일어나 촛불을 켜고 침구를 정돈한다(寅時乃興).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정제한다(盥櫛衣冠). 부모의 처소에 가서 아침 인사를 한다(適父母之所晨). 사당에 가서 배알한다(詣祠堂晨謁). 가솔들을 불러 하루의 사무를 정리하여 고지한다(招家衆整理事務). 서실에 나아가 단정히 앉아 독서한다(就書室 靜坐讀書). - 『일용지결日用指訣』중「매상昧爽」, 윤최식尹最植, 생몰연대 미상 1관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동안에 집에서부터 거리와 마을, 들판에서 만나는 선비와 농부, 장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루 동안에 겪는 의식주, 생업, 신앙, 놀이와 같은 소소한 일상을 유물과 영상, 체험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이른 새벽 세수로 잠을 깨며 몸가짐을 고르고 자기 수양을 하면서 손님을 맞는 선비, 마을을 시찰하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관리,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냇물에 빨래하는 여인, 농사일에 힘쓰는 농부와 공방에서 생활용품을 만드는 장인, 들판에서 뛰노는 아이들, 물가에서 고기 잡는 사람, 저녁상을 준비하는 아낙 등 집과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하루를 열고 마무리하는, 낯설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근현대의 하루’를 소개하고 있다. 자명종, 재봉틀, 라디오 등 전통 사회와 대비되는 생활용품을 통해 한국인의 삶의 변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하루’가 지닌 변하지 않는 일상의 가치를 찾도록 여운을 남긴다. 새롭게 개편하면서 영상과 체험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마을 주변을 흐르는 냇물과 빨래터, 겨울 호수와 얼음낚시 풍경 등 선조들의 일상이 펼쳐지는 마을을 방문해 마치 그들의 일상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더불어, ‘밤의 공간’에서 만나는 인터랙티브 영상을 통해 꿈 해몽 내용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속 별자리들의 환상적인 모습을 첨단 기술로 완성하였으며, 국수틀에서 국수를 뽑아 겨울 별미인 냉면을 만드는 증강 현실(AR) 체험을 할 수 있다. ‘철따라 변하는 하루’, 상설전시관의 새로운 실험 무엇보다 1관은 전시품과 내용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는 한국인의 순환적인 일상을 지속적으로 반영, 새로운 공간 연출을 통해 ‘상설전시는 늘 같은 내용이므로 한 번만 보면 되는 전시’라는 기존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박물관을 다시 찾게 만들고, 한국인의 변화무쌍한 일상생활을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다. 1관에는 조선 후기 선조들의 하루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의관정제衣冠整齊도구와 ‘하피첩(霞帔帖, 보물 제1683-2호)’,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 보물 제1318호)’, ‘장영직,1861~1944유품(국가민속문화재 제241호)’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나전 포도문 관복함’ 등 국립민속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3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미술관] 행동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
[미술관] 행동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
[서울문화인]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술가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그리고 예술가에게는 ‘표현의 자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은 분명 그것을 판별하는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생명의 중요한 특성, 인간으로서의 특성은 더 이상 없게 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에 대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이다. 이 가치는 천부인권으로 어떤 권력이나 정치, 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가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답변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동가인 중국인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첫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선보이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작가를 설명하지면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문화혁명기에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으로 인해 ‘하방’(下放, 중국 문화혁명기에 도시 청년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민과 살게끔 한 정치 운동) 되면서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또한,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당시 온라인으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시민조사단을 구성하여 총 사상자 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했다. 그로 인해 작가는 중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 2015년부터 유럽에 체류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회화, 사진, 영상, 건축, 공공미술, 도자, 출판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통하는 선구적 예술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세대가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함의 역설이라 하겠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미술관 마당에서는 높이 6m의 대형 설치 작품 <나무>(2015)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나무>는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은행나무, 녹나무, 삼나무 등 죽은 나무 가지와 뿌리, 그루터기 등을 조합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구하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 천장, 그리고 미술품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부터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확인할 수 있는 작품까지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과 학예사의 노력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서 그의 작품을 재면하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예술적 역량을 드러내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이 웨이웨이의 대표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베니스의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의 베렌고 공방과 협업하여 제작한 <유리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2018), <검은 샹들리에>(2017-2021), 중국 도자기 생산지인 징더전(景德鎭)의 도자기로 제작된 <여의>(2012),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관람객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120여 점을 통해 작가가 걸어온 여정을 따라 걷다보면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6전시실에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웅장한 작품 중 하나인 <옥의>(2015)이다. 이 작품은 중국 한나라 시대 황제의 무덤에서 발견된 ‘옥으로 된 갑옷(玉衣)’에서 유래한 작품으로, 대나무로 연을 만드는 중국 전통 기법으로 제작됐다. 아이 웨이웨이는 <옥의>를 비롯해 신석기 시대 토기, 옥, 징더전의 도자기 등 중국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현대미술과 결합시킨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7전시실에서는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작가의 대표작 <빨래방>(2016)을 선보인다. 난민들의 옷과 신발 등 물품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가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했던 이도메니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것이다. 2016년 5월 말, 그리스 정부는 이도메니 캠프를 비우고 거주 중인 난민들을 이동시켰다. 아이 웨이웨이는 캠프에 남겨진 물품을 모아 베를린 스튜디오로 운반하여 세탁, 수선하고 다림질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신생아를 위한 옷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 바지 등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망라된 <빨래방>은 지금 여기, 부재한 사람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환기시킨다. 미디어랩에서는 <대리석 헬멧>(2015), <대리석 포장용기>(2015)와 같이 대리석으로 제작된 작품과, 도자기로 만든 작품 <민물 게>(2011) 등을 볼 수 있다. <민물 게>는 2010년 상하이 시에서 작가의 상하이 스튜디오를 철거했을 때 작가가 인근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상하이 명물인 민물 게 요리를 대접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이를 기념한 작품이다. 작가는 민물 게(河蟹, he xie)의 발음이 중국 정부 슬로건인 ‘화해(和諧, he xie)’와 발음이 같다는 점에 착안하여 작품을 통해 국가 권력과 검열 상황을 풍자한다. 복도공간에서는 그의 폭넓은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아카이브 공간에는 작품과 관련된 사진 및 영상 자료, 아이 웨이웨이의 신간도서 『천년의 기쁨과 슬픔』(1000 Years of Joys and Sorrows, Crown, 2021)을 포함한 관련 도서 30여 권 등이 소개되고 있어 자유롭게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다.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다.
[서울문화인] 1946년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민족의 전통 생활문화를 조사, 연구, 수집하고 이를 다양한 전시와 보고서, 강연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전에는 연간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 박물관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상위권에 들어가는 박물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1993년 현재의 경복궁 내 자리로 이전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2007년에 리모델링을 통해 전면 개편되었지만 오랫동안 같은 주제로 선보여 왔었다. 이후, 10년 이상 같은 주제를 유지하던 상설전시관이 2018년 10월, 순차적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2월, 가장먼저 상설전시관 1관을 새롭게 개편하여 선보였다. 1관의 주제는 《한민족 생활사》에서 《한국인의 하루》로 전면 개편했다. 전시관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동안에 집에서부터 거리와 마을, 들판에서 만나는 선비와 농부, 장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루 동안에 겪는 의식주, 생업, 신앙, 놀이 등 한국인의 변화무쌍한 일상생활을 만나볼 수 있게 꾸몄다. 특히 1관은 전시품과 내용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는 한국인의 순환적인 일상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이어 상설전시관 2관은 2021년 3월, 《한국인의 일상》에서 《한국인의 일 년》으로 개편하여 선보였다. 2관은 기존의 전시 주제와 공간, 전시품을 전면 개편해 일 년을 주기로 되풀이된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따른 세시풍속, 생업과 신앙, 의식주 등의 생활상을 펼쳐내었다. 그리고 2021년 12월 28일, 상설전시관 3관이 새롭게 리모델링을 마치고 일반에게 공개했다. 3관의 주제는 《한국인의 일생》으로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일생의례를 중심으로 출생–교육–성년식–관직과 직업–혼례와 가족–놀이–수연례–치유–상례–제례 등 10개의 소주제로 구성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의 하루(1관), 일 년(2관), 그리고 일생(3관)을 통해 한국인의 삶 전반을 다룬 상설전시관을 완성하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2개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박물관은 각 전시실은 2년 단위로 새로운 체험형 전시를 선보인다. 또한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기 힘든 어린이를 위해 찾아가는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야외 신화동물놀이터에는 우리 신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곰, 호랑이, 말, 닭, 용 등 다섯 동물을 만나면서 소리체험, 빛체험, 크라이밍체험, 동굴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야외에는 ‘추억의 거리’, 한옥 ‘오촌댁’ 등 옛 추억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매년 지금은 사라져가는 절기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이처럼 국립민속박물관은 5000년에 걸친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함은 물론 다양한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통해 내국인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는 역할을 외국인에게는 한국인의 삶을 이해시키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목격자이자 주인공' 광화문과 세종로의 역사
[박물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목격자이자 주인공' 광화문과 세종로의 역사
광화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세종로 일대는 조선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공간이다. 광화문이 세워진지 600년을 맞아,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협력전으로 광화문 일대의 역사와 공간을 탐색하는 서울역사문화특별전 ‘광화문 600년 ; 세 가지 이야기’를 세 박물관이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한다. 먼저 서울역사박물관은 ‘육조거리’를 주제로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11월 16일부터 2022년 3월 27일)를,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하여 ‘경복궁 발굴복원’을 주제로 “고궁연화古宮年華”특별전(12월 1일(수)부터 2022년 2월 27일)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현대사로 보는 광화문’을 주제로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12월 17일부터 2022년 3월 31일)을 개최한다. Tip. tp 개의 박물관 전시를 둘러보고 도장을 받고 각 박물관이 준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참고, 선물은 마지막 관람한 박물관에서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광화문> 특별전 [서울문화인] 광화문 공간은 해방 이후,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행정․외교의 중심이었고,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열정이 표출되었고, 또한 다양한 문화 활동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남희숙)의 <공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광화문> 특별전은 대한민국 대표 상징 공간 광화문이 품은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과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전시이다. 광화(光化), 빛이 사방을 덮고 가르침이 만방에 미친다. -서경(書痙) 광화문에서 만나게 되는 건물은 어느 곳 보다도 해방 이후 우리의 현대사를 품은 건물로 가득하다. 정부신청사(현재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와 유솜(USOM, 미국대외원조기관, 현재의 미국대사관) 건물이 광화문 공간 현대화의 상징 건물로 1961년 건축된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으로 건축되던 우남회관은 4·19혁명 이후 시민회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건립되었고, 1972년 화재로 소실되자 그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신축된다. 현재, 광화문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상징적으로 세워져 있지만, 1964년 세종로 중앙에 애국선현 동상이 37개가 설치되었었다. 그러나 내구성과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여론에 1966년에 철거된다. 이후 1968년 4월 17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종로에 세워진다. 배경에는 애국선열 동상 인물 지정을 논의하는 중에 세종로와 태평로가 뚫려 있어 남쪽의 일본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온다는 풍수지리학자의 주장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는 인물인 이순신 장군을 동상의 대상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후 2009년 홍익대학교 교수이자 조각가 김영원이 설계한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다. 강남개발과 서울올림픽 유치로 정부는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계획하면서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계획하고 고층 대형빌딩 건설을 독려한다. 이때 교보빌딩과 국제통신센터(현 KT 광화문 지사)가 건설되고,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사업으로 중앙청이라 불리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가 1995년 광복절에 철거된다. 또한 광화문은 1968년에 제자리를 찾았지만 콘크리트 구조물 복원이라는 비판을 받아 오다가, 2010년에 목조 건물로 복원된다. 4·19혁명 이후, 광화문 공간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현장으로 등장, 대중이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광장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1965년 한일회담 비준반대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00년대 촛불 집회 등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로 한국사회의 정치적 열망이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대표적 장소가 되었다. 광화문 거리는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대부분의 행정 건물이 철거되었지만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 다시 정치․행정․외교의 중심지로 그리고 현재는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시민들의 문화활동의 중심지로 각인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신청사 이전(사진), 정부종합청사 신축안내서,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명패,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모형), 국제극장(사진), 조선총독부청사 철거(사진), 국제전신전화국 구청사철거 문서, 복원된 광화문(사진), 지구의 날 행사(사진), 다양한 집회 자료와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총 4개 공간으로 광화문의 현대사를 만나볼 수 있다. ▲ 1부 ‘다시 찾은 광화문’에서는 광복 이후 광화문 거리가 한국 현대사 출발의 중심이었음을 설명하며, ▲ 2부 ‘광화문 거리 개발과 건설’에서는 광화문 공간이 경제개발을 위한 정치행정 중심기관 건설과 함께 국가행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고, 유동인구 및 차량 증가 속에서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 3부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재구성’에서는 남북간 체제 경쟁과 강남개발, 도심재개발과 1980년대 올림픽 유치 속에서 진행된 광화문 공간의 현대적 건설을 설펴본다. ▲ 4부‘광화문 공간의 전환’에서는 광화문 거리의 역사적 상징화 작업과 2000년대 광화문 공간의 주체가 국가에서 시민으로 변화되는 모습과 광화문 광장의 출현을 소개한다. 더불어 전시장에는 광화문 변천사를 영상(3면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3월 31일(목)까지 기획전시실(3층)에서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성서를 주제를 만나는 샤갈, 마이아트뮤지엄
[전시] 성서를 주제를 만나는 샤갈, 마이아트뮤지엄
[서울문화인] 19세기 중반 이후 미술은 르네상스 이후에 계속되었던 전통적인 미술을 거부하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언어, 재료, 기법과 매체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예술이 시각적 아름다움 보다는 개념적 미술로 변화하면서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려운 대상이 되어버렸다. 20세기 이후 대세가 된 추상미술 속에서도 회화에서 색은 여전히 미술에서 가장 기본이고 그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어떤 위치의 화가인가를 가늠하는 하나의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샤갈은 작품 속 대상보다 원색의 색채가 먼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원색의 색채로 자신의 삶과 관심사를 녹여내었고 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며, 20세기의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한 가지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 일찍이 피카소는 샤갈을 두고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뿐이다. 르누아르 이래 샤갈처럼 빛을 잘 이해한 화가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샤갈하면 떠 올리는 수식어는 ‘색채의 마술사’이다.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1985)은 1887년 러시아 제국의 도시였던 비테스크의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모이셰 샤갈(Moyshe Shagal)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스물네 살이던 1911년 처음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야수파와 입체파에 이르는 모더니즘 회화를 습득하였고, 이름 또한 프랑스식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로 개명하며 파리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그는 야수파의 색채를 자기 나름대로 이용하여 아름답고 아담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파리 유학 도중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고국 러시아로 돌아와 8년간 우울하게 보내다가, 1922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이 때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색채의 마술사’라는 수식을 얻게 되었다. 샤갈은 90년을 넘게 장수하며 수천 장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이 많은 만큼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는 많이 개최되었고 전시 때에는 그 어느 작가보다 많은 작품이 소개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남긴 작품에 비하면 여전히 일부분이라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소개된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화’에 비해 ‘판화’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는데 그는 판화에도 뛰어나 판화에서도 회화 못지않은 색채감을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특히 성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걸작 동판화를 많이 남겼다. 샤갈이 들려주는 성서의 메시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하는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은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지만 그간 국내에선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서’라는 주제 진행하는 전시이다. 샤갈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남겼지만 ‘전쟁’, ‘사랑’, 그리고 ‘종교’는 가장 큰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생전 두 번의 전쟁과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겪은 샤갈의 인생은 전쟁과 피난의 연속이었다. 또한, 아내를 향한 그의 헌신적이고 사랑은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어 생의 마지막까지 화폭에 담아내었다. 샤갈이 ‘성서’를 주제로 그리게 된 것은 1930년 처음 성서 작업을 의뢰 받고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성서에 대한 주제로 작업을 이어간다. 이를 시작으로 샤갈은 유대인의 운명과 고난에 대한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그는 자신의 말년을 성당을 위한 스태인드글래스, 태피스트리, 발레 무대세트와 의상 그리고 석판화 작업에 매진하며 보냈다. 특히 1973년 자신의 86살 생일에 성서적 메시지를 주제로 한, 국립샤갈 미술관을 니스에 건립하면서 그의 평생의 꿈을 실현했다. 샤갈은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시간 동안 전쟁과 학살로부터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펼쳤다고 한다. 이번 전시가 ‘성서’라는 단일 주제로 소개하는 전시이지만 소개되는 작품은 굉장히 방대하다.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 왕> 등 유화, 과슈를 포함한 19점의 명작과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및 독일 Kunstmuseum Pablo Picasso Münster 소장품 총까지 220여점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을 사랑한 샤갈의 시와 함께 이를 표현한 서사적인 판화 시리즈 등 이전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샤갈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미이아트뮤지엄 이태근 대표는 “이번 전시는 샤갈의 작품 중 ‘성서’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전시다. 앞으로 또 다른 주제로 샤갈의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4월 10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성인기준 2만원이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비색의 고려청자를 통해 살펴보는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
[박물관] 비색의 고려청자를 통해 살펴보는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
[서울문화인] “고려비색 천하제일(高麗翡色 天下第一)”. 중국 송나라의 태평노인(太平老人)은 <수중금(袖中錦)>에서, 하늘 아래 뛰어난 고려청자의 색만 한 것이 없다고 칭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과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또한 선화宣和 5년(1123)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 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는 “도기의 푸른빛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말한다(陶器色之靑者麗人爲之翡色)”는 기록과 연결해보면 “비색翡色”은 당시 고려인들이 청자의 푸른 빛깔을 표현하는 특유의 단어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려청자는 동시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상감 문양과 고려의 비색과 빼어난 조형을 자랑했음은 물론 현재도 세계에 당당히 자랑할 만한 우리의 명품유산이다. 그러한 이유로 고려청자를 소재로 많은 전시가 있었고, 대중들의 반응도 거기에 부응했다.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고려음高麗飮’ 도자기를 특화하여 소개하고 있는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이수미)이 올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특별전으로 전국의 국립박물관과 유관기관이 소장한 도자기 중 다구(茶具: 차를 만들고 마시기까지 필요한 도구)와 주기(酒器) 250여 점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특히, 고려 왕실 귀족이 사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온 국립중앙박물관의 최고급 소장품을 대규모로 광주에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실 귀족, 사찰의 승려, 관료 문인 사이에서 차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또 왕실에서는 공식적인 행사에서 술을 사용하고, 담당 부서를 두어 특별히 관리하는 등 술 문화도 함께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에 차와 술은 중요한 문화로 자리매김 되면서 고려의 발전된 기술로 세련미 넘치는 다양한 청자 도구들도 제작되었다. 이번 특별전은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서 아름다운 유산으로 소중하게 전시되고 있는 고려청자를 ‘당시에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시작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들도 전시함으로써 각각의 고려청자의 쓰임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전시는 차와 술 문화를 나누어 소개된다. 먼저 1부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의 유행과 수입 도자기’에서는 같은 시기 중국 그림이나 벽화 자료를 참고하여 고려청자로 제작된 차와 술에 관련된 도구를 나누어 보고 그 사용법과 함께 새로운 음료 문화가 소개되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그와 함께 새롭게 제작된 도구들이 어떠한 쓰임새로 사용되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그림과 영상으로 풀어본다. 청자는 고려 12~13세기에 기술적으로 가장 발달하여, 최상의 공예품으로 제작되었다. 2부 ‘고려청자, 문화를 마시다’에서는 차와 관련된 다양한 도구를 소개하고 있어 전성기를 맞은 차 문화와 다기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3부는 술 문화를 다루는 ‘고려청자, 예술에 취하다’에서는 시기적 상황과 취향에 따른 청자 주기의 흐름과 주류의 변화가 이를 담는 도구에 미친 과정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시가 새겨진 도자기’를 모아 살펴보면서 술이 담긴 병과 술잔에 적힌 문자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완성도가 뛰어난 명품들은 전시장 중앙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에서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천여 년이 지난 고려청자를 아름다움을 지금도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무덤의 부장품이나 해저 침몰선에서 발견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부 ‘고려청자와 함께 묻히다’에서는 무덤에 함께 묻힌 차와 술에 관련된 도구들을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무덤의 규모와 부장품의 종류가 달랐는데, 부장품 중 가장 많이 확인되는 것이 청자이다. 청자는 당시에도 매우 귀하고 값비싼 물품으로 왕릉과 귀족의 무덤에 주인과 함께 묻혔다. 개경에 위치한 고려 고분 외에 각 지역 무덤에서 확인된 차와 술 관련 부장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차와 술에 대한 생각이나 고려시대 청자가 지니는 의미와 위상을 알 수 있다. 청자로 제작된 다기茶器와 주기酒器는 비색청자, 상감청자로 제작되어 고려시대의 왕실과 귀족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최상급의 고려청자가 색과 조형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차와 술을 마시는데 적합한 기능적인 면과 함께 고려시대의 차와 술 문화의 양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특별전을 준비한 최명지 학예연구사는 “차와 술 문화의 두 가지 열쇳말로 청자를 바라볼 때 고려인의 삶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전시를 준비하였다.”고 하였다. 전시는 2022년 3월 20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한국 첫 단독展
[전시]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한국 첫 단독展
[서울문화인] 2008년 국내에서는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그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는 공교롭게 한 예술가였다. 바로 그가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Fox Lichtenstein, 1923-1997)은 앤디 워홀, 장 미쉘 바스키아 등과 함께 팝아트의 대표적인 거장 중 한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 미술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을 통해 각인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후, 많은 전시에서 그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앤디 워홀이나 장 미쉘 바스키아 처럼 오롯이 그의 작품만을 소개하는 전시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만을 소개하는 국내 첫 개인전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가 서울숲 아트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무명작가였던 리히텐슈타인이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디즈니 만화 영화 <미키 마우스>를 보던 아들이 건넨 “아빠는 저 그림만큼 잘 그리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라는 질문에 미키 마우스를 좋아한 아들을 위해 그려준 한 점의 그림이 무명의 예술가를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이 바로 디즈니 만화 주인공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이 등장하는 ‘이것 좀 봐! 미키(LooK Mickey, 1961년)’이다. 이 작품은 실제 만화책처럼 말풍선을 그려 넣고 대사를 적어놓았고 인쇄한 것처럼 보이도록 인쇄물을 확대를 때 생기는 점(dot)까지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이 ‘벤데이 점’ 기법은 당대 예술계에 혁신을 일으켰으며, 다음 해인 1962년 뉴북 레모 카스텔리(Leo Castelli)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개막도 하기 전에 그의 작품들은 영향력 있는 소장가들에게 모조리 팔리는 일이 발생했다. ‘점’. 그의 모든 회화는 수없는 붓자국에 의해 완성된다. 리히텐슈타인 작품의 특징이라면 선명한 검은색 테두리와 형태를 메우고 있는 점(dot)들이다. ‘벤데이 점(Benday Dot)’이라고 하는 망점은 그가 직접 드로잉하고 채색한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판을 사용해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기계적인 작업에 의한 것이다. 이는 작품 속에 어떠한 개성의 흔적도 드러내지 않은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와 구별되기도 한다. 하지만 1965~1966년 사이에는 넓은 붓자국을 만화 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들을 제작하였다. 이후에는 세잔,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안 등을 위시한 현대 유럽 거장들의 작품과 아르 데코 디자인,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축과 정물화 등에도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것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작업방향이 확대되었고 표현방법도 풍부하게 더 자유로워지며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시절 “오늘날의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할 정도로 그의 작품의 소재는 동시대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소재였다. 당대 미술계는 추상 표현주의가 주력이었지만 그는 만화, 광고라는 가장 대중적인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두꺼운 검은 윤곽선, 과감한 색감, 의성어가 쓰여진 말풍선 등 그만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기법을 이용한 금발의 백인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은 여전히 리히텐슈타인의 특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켜 버렸다. 이번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은 스페인 아트콜렉터 Jose Luiz Ruperez의 콜렉션으로 구성된 전시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유명작인 <절망 Hopeless>, <Whaam!>을 비롯하여 ‘붓 자국 회화 연작’,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 초기 흑백 포스터 작업, 잡지 표지 협업, 공예품 등 리히텐슈타인이 작가 생활 전반에 걸쳐 작업했던 130여개의 작품과 함께 유명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된 작품 이 외에도 회화, 조각, 심지어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까지 탐구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아티스트라 칭한다. 가장 미국적인 방식의 매스미디어를 가장 미국적인 방법으로 담아내며 미국과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도 예술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국내 첫 단독전 ‘눈물의 향기’는 2022년 4월 3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성인 기준 18,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보기]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전
[전시보기]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전
[서울문화인] 꿈의 세계를 가장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낸 화가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대가라 지칭되는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전은 ‘세계 3대 달리 미술관’으로 일컷는 스페인 피게레스에 위치한 달리 미술관(Fundació Gala-Salvador Dalí)을 중심으로, 미국 플로리다의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Salvador Dali Museum),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소장품을 통해 달리의 예술세계를 회고하는 전시이다. 회고전인 만큼 이 전시는 ‘살바도르 달리’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시기별 작품을 총 10개의 주제에 따라 구성, 140 여 점의 유화와 삽화, 설치미술, 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진, 멀티미디어 영상물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적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천재의 탄생 (1904-1926) “여섯살 적 나의 꿈은 요리사였다. 일곱 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후에도 나의 야심은 과대망상적 광기처럼 멈출 줄 모르고 커져만 갔다.” 살바도르 달리의 독특한 성격과 세계관에 강한 영향을 끼친 성장 배경과 고향, 가족 관계 등을 살펴본다. 당시 유행하던 미술사조인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등을 탐구하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특히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Self-Portrait in the Studio> (1919) 작품은 달리가 만 15세에 얻은 첫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으로, 세 개의 거울을 곁에 두고 반사된 각도를 계산하며 정확하게 그렸다. 일찍부터 달리는 과학적인 접근법을 시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Self-Portrait in the Studio>, c.1919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초현실주의: 손으로 그린 꿈 속의 사진들 (1927-1939) “나는 갈라를 아끼며 그녀를 빛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나 자신보다 위할 것이다. 그녀가 없다면 모든 것은 끝일뿐이니.” 살바도르 달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 ‘갈라’. 달리와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마치 영화 같았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달리의 작품에 갈라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초기작 <슈거 스핑크스 The Sugar Sphinx> (1933)는 등을 돌린 채 넓은 광야를 바라보는 갈라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한편, 갈라의 정면에 놓인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두 인물과 수레가 보이는데 이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작품 속 인물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밀레의 그림을 본 순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다양한 해석과 주장을 남긴 달리의 일화는 유명하다. “초현실주의는 바로 나 자체다.” 달리는 현실과 현실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연구한 잠재의식에 강한 충격을 받은 달리는 기이하고 몽환적인 꿈의 세계를 가장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내는 화가로 거듭났다. 현실을 변형시키고 전복하고, 재해석하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편집광적 비판(Paranoian Critical Method)’기법을 제시하고 새로운 화풍의 작품들을 탄생시키며 초현실주의의 가장 열렬한 전파자가 됐다. 이 공간에서는 초현실파 주요 일원이었던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과 함께 제작한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 (1929)를 스크리닝하고 있다. 미국: 새로운 기회와 자유 (1940s) “나는 영화에서 그동안 꿈을 다루던 전통, 곧 흐릿하거나 혼란스럽거나, 아니면 화면을 흔들어 꿈을 처리하던 방식을 반드시 깨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섹션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시기의 대표작들이 소개하고 있다. 달리의 자유분방함과 도발적인 행보, 그리고 예술적 천재성은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시기에 달리의 활동 범위는 장르와 매체 구분 없이 확대하였였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이중 이미지’ 기법을 다양한 작품에 적용했다. 이러한 기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작품으로는 <볼테르의 흉상 Bust of Voltaire> (1941)과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Napoleon’s Nose, Transformed Into a Pregnant Womans, Strolling His Shadow with Melancholia amongst Original Ruins> (1945) 등이 있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반복적으로 그려진 얼굴은 권력을 상징하는 ‘나폴레옹’이다. 어린 시절 달리의 꿈이었던 ‘나폴레옹’에 대한 강한 집착이 드러난다. 부드러운 곡선형 구조물은 스페인의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달리의 존경심을 나타낸다. 화려한 도상들로 장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 특유의 적막함과 우울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표작이다. 또한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달리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후 많은 작품들이 핵과 연관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다. 스페인 신비주의적 전통이 가미된 ‘핵-신비주의(Nuclear Mysticism)’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달리는 과학의 진보와 고전의 신비함을 자신만의 예술언어로 녹여냈다. 대표적인 작품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 Dematerialization Near the Nose of Nero> (1947)에서 중력이 소멸된 듯한 풍경 속에 모든 물질의 분열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다. 달리가 회화 소재로 즐겨 삼았던 도상들인 사이프러스 나무와 신고전주의 건물, 잉크병, 유기적인 형체의 인물 등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사상과 사건을 접목시키면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음을 알 수 있다. 그래픽 아티스트, 이상한 나라에서 온 돈키호테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돈키호테 석판화는 세기의 석판화 작품이 될 것이다.” 책이나 잡지 커버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던 달리는 1920년 초부터 다양한 삽화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4가지 문학 작품인 <돈키호테 데 라만차 Don Quixote of La Mancha> (1957), <삼각모자 Le Tricorne> (1959), <셰익스피어에 대한 소동 Much Ado About Shakespeare> (196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969) 삽화 시리즈를 소개한다. 각 삽화는 주어진 주제에 맞게 달리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기법, 예술관이 적절히 녹아 있다.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달리의 작업물은 그가 회화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독창적인 행보와 자유로운 표현 방법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돈키호테 데 라만차 Don Quixote of La Mancha> (1957) 1957년, 살바도르 달리는 프랑스에서 소설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삽화를 의뢰 받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12개의 삽화를 소개한다. 이 시기에 달리는 처음으로 석판화를 시도한다. 오래된 석회암에 그림을 그려 작업했던 달리는 연필과 물감이 아닌 획기적인 재료와 방식을 찾고자 했다. 잉크 탄을 채운 공기총을 쏘는가 하면, 물감을 묻힌 달팽이를 활용하는 등 우연적인 요소가 어떻게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창조하는지 보여주었다. 나의 영원한 왕국, 포트이가트 (1950s) “르네상스의 고요한 완성미에 견줄 수 있는 이미지로 진정한 삶의 경지에 도달한 유일한 존재가 있다. 바로 내가 기적같은 행운으로 선택한 나의 아내 갈라이다.” 8년간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포트이가트로 돌아간 시기이다. 달리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보아왔던 포트이가트 풍경을 미국에서 탐구한 핵과 신비주의 주제와 접목시켜 새로운 화풍을 제시한다. 달리는 종교적 주제와 핵융합, 핵분열 같은 과학적 개념을 담아냈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르네상스 회화 기법과 새롭게 발견한 세계관을 융합하여 이색적인 회화를 선보인다. 시각적 환상에 대한 탐구 (1960-1970s) “체계적으로 혼란을 창조해야 더욱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 모순적인 모든 것들이 삶을 창조한다.” 달리는 수학과 과학을 탐구하면서 기존의 착시 기법을 넘어서는 실험에 몰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편집광적-비판 기법, 이중 형상, 스테레오스코피, 홀로그래피, 4차원의 탐구와 같은 다양한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인 피게레스의 달리 미술관에 설치된 스테레오스코피 체험 공간의 설계를 똑같이 재현하여, 착시효과를 이용해 평면의 입체화를 직접 겪어볼 수 있다. 이 시기의 가장 특징적인 표현방법은 현대 과학과 고전주의 미술의 융합이다. 그러한 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작으로 <후안 데 에레라의 “입방체 연구”에 대하여 About the “Speech on the Cubic Form” of Juan de Herrera> (1960)를 꼽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리가 깊이 존경했던 벨라스케즈부터 미켈란젤로까지 대가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달리의 꿈속으로 떠나는 여정 미국 플로리다의 달리 미술관에서 특별 제작한 <달리의 꿈 Dreams of Dali> (2016) 예술과 기술의 놀라운 결합으로 펼쳐지는 멀티미디어 영상 작품이다. 달리의 작품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1935) 을 중심으로 재해석 된 다양한 상징물 사이를 떠다니듯이 유영하는 초현실적 경험을 선사한다. 달리는 건축가 오스카 투스케츠와 협업하여 정확한 설계에 따른 설치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초현실적인 대형 설치작품 메이 웨스트(Mae West)는 1920년대~30년대 당시 극장과 할리우드에서 관능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이다. 달리는 그녀의 매력을 높이 칭송, 신문에 실린 메이 웨스트의 얼굴을 콜라주를 활용해 입체적인 방처럼 탈바꿈시켰다. 보는 이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서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들은 온전한 메이 웨스트의 얼굴로 모여지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흩어지기도 한다. 전설과 함께, 살바도르 달리 Dali, the Legend “평균 이상의 내가 되기 위해,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다.”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은 그의 삶 전반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달리는 자기 자신에게 한계점을 두지 않고 새로운 매체와 장르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달리의 폭발적인 창조성과 상상력은 캔버스 밖에서도 무한대로 펼쳐졌다.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와 영화 감독, 배우, 가구 디자이너 등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과 협업을 이어나갔다. 상업적인 예술가라는 비판적인 견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늘 획기적인 이슈를 만들며 틀을 깨는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실험했다. [허중학 기자]
[살바도르 달리전] 초현실주의 대표하는 달리의 예술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다.
[살바도르 달리전] 초현실주의 대표하는 달리의 예술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다.
[서울문화인]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디자인전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페인 초현실주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전 전시장을 다시 찾았을 때 추운 날씨임에도 전시 관람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았다. 초현실주의의 작가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작가라면 아마 많은 분들이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를 떠올려질 것이다. 그는 분명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작가이다. 그러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기행으로 천재적인 화가로 칭송받으면서도 동시에 기상천외한 괴짜 취급을 받았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여야 한다. 달리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형으로 인해 상심한 부모는 달리를 죽은 형의 환생으로 여겼다. 이는 달리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안겼고 죄책감과 강박증, 편집증, 정신 분열 증상인 이중성 혹은 다중성을 갖게 했다. 달리는 온전한 자신으로 인정받길 원했으며, 그 열망을 온갖 기행과 일탈로 표출했다. 그리고 평생 시달린 불안감과 광기는 독창적인 예술 언어로 표현시켰다. 대표적으로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기록하는 ‘자동기술법(Automatisme)’과 어떠한 사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거나 응시할 때 나타나는 왜곡을 표현한 ‘편집광적 비판(Paranoiac Critic)’ 기법이 있다. 달리는 비이성적인 환각 상태를 객관화하여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정통적인 회화기법과 정밀한 소묘, 오차 없는 원근법을 이용해 완성한 몽환적이고 기묘한 그림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달리는 “그림이란 비합리적인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천연색 사진”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살바도르 달리전: Imagination and Reality> 최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이 초현실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라 한다면, 이 전시는 우리에게 각인된 초현실주의 작가를 대표할 만한 ‘달리’에 주목한 전시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보여 온 화가들의 전시는 보통 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만을 오롯이 나열, 관람하는 전시였다면 10개의 섹션을 통해 달리가 유년 시절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시기별 작품 특성을 조명하는 것은 물론 그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과 개인적인 순간들이 함께 소개되어 예술가로서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더불어 오랫동안 유럽, 특히 프랑스의 미술을 국내에 소개해온 ㈜지엔씨미디어(GNC Media)가 미술전시에도 요즘 전시의 트렌드를 반영, 젊은 세대에게도 서양미술을 자연스럽게 어필할 수 있게 꾸몄다는 점이다. 회고전으로 선보이는 만큼 이번 전시는 소개되고 있는 작품은 달리의 전 생애를 걸친 유화, 삽화, 대형 설치작품은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 140여 점이 소개되는 전시로 ‘세계 3대 달리 미술관’으로 일컷는 스페인 피게레스에 위치한 달리 미술관(Fundació Gala-Salvador Dalí)을 중심으로, 미국 플로리다의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Salvador Dali Museum),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소장품으로 구성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대가이자 기행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현대사회 예술문화 전반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그의 천재적 예술성이 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달리의 내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살바도르 달리전: Imagination and Reality>전은 2022년 3월 20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티켓은 성인(만 19-64세)은 20,000원, 청소년(만 13-18세)은 15,000원이며, 어린이(7-12세)는 13,000원이다. 온라인 예매처인 인터파크 티켓과 네이버, 29CM, 야놀자 채널을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박물관] 경복궁 발굴·복원 30년史을 그려내다.
[박물관] 경복궁 발굴·복원 30년史을 그려내다.
[서울문화인]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은 1394년(태조 3년) 신도궁궐조성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를 시작으로 1395년 9월에 궁궐 조성되었다. 하지만 정종이 즉위하면서는 도읍을 개성으로 다시 옮겨가게 되었다. 태종대에 들어서는 경복궁으로 이어 하지는 않았으나 경복궁 수리에 관심을 두어 경회루를 지었고, 세종 때에는 집현전과 보루각을 강녕전 서쪽에는 흠경각을 짓는 등 경복궁을 수리하였고, 문과 다리에는 이름을 명명하였다. 1553년(명종 8년) 궁내에 화재 발생하여 근정전만 남긴 채 편전과 침전 권역의 건물이 모두 소실, 이듬해에 강녕전·교태전·연생전·흠경각·사정전 등을 복원하였지만 임진왜란(1592)으로 궁은 전소되어 폐허로 변했다. 선조 1606년 때 궁궐영건도감을 설치하여 중건을 단행하려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국토가 황폐화 되고 재정이 고갈된 상태에서 대대적인 중건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광해군 한 때 경복궁 중건의 뜻을 보였으나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70여 년이 지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1865년 중건이 시작되어 1867년에 완료되었다. 그러나 경복궁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1873년의 화재로 400여 칸, 1876년의 화재로 830여 칸이 소실, 이후 아관파천과 일제 강점기로 들어서면서 경회루·근정전 등의 일부 건물을 제외한 4천여 칸을 민간에 방매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광화문이 소실되고, 경회루 층계·석주·하층천장이 파손되는 등 여러 건물이 피폭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뤄진 복원 사업은 1968년 일제강점기 현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옮겨졌던 광화문이 당시 중앙청 정문으로 복원되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해 변형ㆍ훼철된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원형대로 복원·정비하여 역사성 회복 및 문화관광자원화 하고자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경복궁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조선왕궁 복원정화에 따른 관리개선 보고(1984. 5. 22, 대통령재가)를 시작으로 90년부터 경복궁 1차 복원 기본계획 추진(1990~2010, 예산 1,571억원)되었으며, 현재 경복궁 2차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세종로 일대는 조선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공간이다. 광화문이 세워진지 600년을 맞아,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협력전으로 광화문 일대의 역사와 공간을 탐색하는 서울역사문화특별전 ‘광화문 600년 ; 세 가지 이야기’를 세 박물관이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한다. 먼저 서울역사박물관은 ‘육조거리’를 주제로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11월 16일부터 2022년 3월 27일)를,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하여 ‘경복궁 발굴복원’을 주제로 “고궁연화古宮年華”특별전(12월 1일(수)부터 2022년 2월 27일)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현대사로 보는 광화문’을 주제로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12월 17일부터 2022년 2월 28일)을 진행한다. 국립고궁박물관 「고궁연화古宮年華」 특별전 ‘고궁연화古宮年華’는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 하여 조선의 법궁(法宮)이었던 경복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다시 생명력 넘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까지의 발굴과 복원 노력을 조명하는 전시로 고궁연화는 ‘年華(빛나는 해)’, ‘煙花(봄의 경치)’ 두 가지 중의적인 뜻으로 경복궁 복원이 끝나고 맞이하게 될 경복궁의 찬란한 시간이자 봄을 의미한다. 전시에서는 그동안 잘 소개되지 않았던 발굴 현장 기록 일지, 발굴 실측 도면과 복원도면 등 20여 점의 원본 자료를 통해 경복궁 발굴·복원사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전시의 소재가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고 아름다움과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건축물의 복원을 그리고 있어 대중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시가 아닌 만큼, 전시장에는 실감 콘텐츠로 제작된 인터뷰 영상과 미디어파사드 기법이 접목된 3면 영상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또한, 복원한 전각 4곳에 사계절을 역순으로 투영시키고 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구성해 전각들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는 복원의 의미를 구현하였다. 전시는 ▲ 도입부 ‘적심(積心)’, ▲ 1부 ‘바람이 문에를 처도’, ▲ 2부 ‘진흙속에 묻혀눕은’, ▲ 3부 ‘오백년 거륵한 공’, ▲ 4부 ‘봄어름 처음녹고’, 총 4부로 구성하였다. 각 부제(副題)는 1927년 잡지 <동광>에 실린 시인 시목(詩牧)의 고궁단영(古宮短詠)에서 따 온 것으로, 일제강점기 훼손된 경복궁의 모습을 노래한 시다. 도입부 ‘적심(積心)’은 건물의 구조와 규모를 보여주는 기초 부분이자 복원의 실마리로서, 발굴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이곳은 박진우 작가가 적심이라는 단어를 기반으로 여러 마음이 쌓여 만들어지는 경복궁 건물의 토대가 되는 적심을 주제로 설치 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린 적심을 궁궐 전각처럼 배치하여 재해석된 경복궁을 유영하듯 감상하게 했다. 1부 ‘바람이 문에를 처도’에서는 복원된 흥복전 내부에서 창문 밖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정원이 된 겨울의 흥복전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공간을 연출하였다. 맞은편에는 훼철(헐어서 치워버림)된 경복궁을 주제로 한 조지훈(1920-1968)의 <봉황수> 등이 소개되고 있다. <봉황수>는 고궁을 보며 망국의 비애를 노래한 산문시로 당대 문학인들이 느꼈을 무력한 마음을 그리고 있다. 고궁단영 수수한 봄바람에 옛 궁전 찾아드니 광화문 간 곳 없고 돌집 하나 높아 있네 낯설은 길손 하나만 눈물짓고 가더라 신라적 옛 불상과 고려적 도기들은 기리고 기린 자취 (나를) 보라 하건마는 보아도 보지 못하니 그를 설워 하노라 근정전 앞을 두고 뒷문 좇아 들어가니 진흙 속에 묻혀 누운 무심한 돌해태야. 오백년 거룩한 공을 너는 알까 하노라. 경회루 깊은 못에 봄 얼음 처음 녹고 소나무 빈 정자에 까마귀와 까치만 지저귄다. 바람이 문을 쳐도 애끊는 듯하여라. -3월 14일 경복궁 안에서- 2부 ‘진흙속에 묻혀눕은’에서는 사시사철 현장을 지키는 발굴조사단의 모습을 단풍이 무르익고 노동의 결실을 맺는 가을로 비유하였다. 전면부에는 경복궁 출토 도자기 파편과 발굴 일기, 유물 조사 카드 등을 토층도(土層圖, 흙의 층위를 그린 그림)로 연출하여 유적의 느낌을 살렸다. 후면부에는 소주방지(임금의 수라와 궁중의 잔치 음식을 준비하던 공간) 출토 도자기, 기와, 철제 생활용구 등을 상부에 전시하여 ‘사람’에 의해 매장 문화재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표현하였다. 경복궁 터를 직접 발굴했던 전직ㆍ현직 조사단 3인과 전시담당자의 인터뷰에서는 숨겨진 발굴 이야기가 실감 콘텐츠로 표현된다. 3부 ‘오백년 거륵한 공’은 약 높이 4m, 너비 15m의 대형 미디어월에 복원 도면을 라인그래픽(줄선으로 형상을 그리는 기법)으로 제작하여 궁궐 건축의 촘촘한 설계를 한 눈에 만날 수 있다. 경복궁 복원 건축 도면은 발굴 성과를 토대로 고지도, 문헌사료, 실측도면 등을 종합하여 만든 발굴·복원의 집합체이다. 도면 영상 맞은편에는 경복궁 밤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여름밤 궁궐을 거니는 느낌을 받도록 꾸몄다. 또한, 영상 원본인 너비 약 1-2m에 육박하는 강녕전, 교태전 정면도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4부 ‘봄어름 처음녹고’에서는 2045년 경복궁 복원이 마무리 된 후 맞이할 경복궁의 봄을 3면 대형 영상으로 구현했다. 복원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름 별무리로 북궐도형(北闕圖形, 1865년 경복궁 중건 후 19세기말에 제작된 경복궁 평면 배치도로 경복궁 복원 정비 사업의 기초 자료로 활용)을 그려 디지털 상량문으로 재해석하였다. 또한, 복원공사에서 사용한 공구와 근정전, 향원정 보수 시 교체된 부재들을 함께 전시하여 경복궁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보수방법과 노력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가 지난 발굴의 역사를 담은 만큼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온라인 콘텐츠로 경복궁의 사계절을 담은 타임랩스, 전시 해설 등 관련 영상이 문화재청과 박물관 유튜브로 제공되고 있으며, 전시실 전경, 유물설명, 사진을 담은 가상현실(VR) 콘텐츠도 향후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 1년간 발굴 현장과 복원 공사 모습과 경복궁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집도 내년 초 발간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