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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2022년 공립미술관으로서 글로벌 문화경쟁력 신장
서울시립미술관, 2022년 공립미술관으로서 글로벌 문화경쟁력 신장
[서울문화인]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가 송현동 이건희기증관 건립업무협약(2021. 11.)을 맺음으로써 광화문을 아우르는 지역에 새로운 주요 국공립미술관 뮤지엄벨트가 형성될 예정이다. 이에 서울시립미술관은 글로벌 문화경쟁력을 신장하고자, 올해 국제적인 지명도와 역사적 중요성, 대중적 인지도를 고루 확보한 권진규, 장-미셸 오토니엘, 키키 스미스, 백남준 같은 일련의 현대미술 거장들의 개인전과, 분관시대 아시아 미술기획전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먼저 해외 작가전으로 《장-미셸 오토니엘》전은 루브르박물관 첫 동시대미술 소장 작가이자 지난해 9월 개막한 프랑스 파리의 프티 팔레 개인전에서 큰 호응을 얻은 전시이며, 동시대미술사의 다양성과 개성의 아이콘인 《키키 스미스》개인전은 이미 널리 확보된 국내 팬층과 전문가들에게 동시대 거장들의 걸작을 만끽하는 기회를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K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에 부응하고 뛰어난 한국현대미술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고 보다 많은 시민 관객에게 한국현대미술의 성과를 알리고자 권진규, 정서영의 개인전을 기획하였다. 2022년 의제-기관의제 ‘제작’, 전시의제 ‘시’ 서울시립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의 특성을 다양한 전시로 접근하고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위해 2019년부터 매년 기관의제와 전시의제를 설정해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2020년 의제 도입 첫해에 ‘수집’, 두 번째 해에 ‘배움’을 설정하여 미술관 정체성의 지표이자 정책과 태도의 갱신 지표로서 수집과 배움의 중요성을 환기하였다면 올해는 그간 축적된 의제사업 간 연속-융합선상에서 시대감성에 부응하는 의제로 기관의제는 ‘제작’, 전시의제 ‘시’로 설정하였다. 2022년 기관의제 ‘제작’은 대상의 속성과 이치를 이해하고 숨은 원리를 발견하여 감각, 지성, 행위의 공조로 대상과 또 다른 관계를 이어가는 행위로 이러한 관계 탐구와 관계 잇기의 과정으로서 제작의 면모를 탐험하기 위하여 서도호, 김범, 임흥순을 초대한다. 전시의제 ‘시’는 시적 결합을 의미한다. 미술에서 구체적인 재료와 개념, 형상, 서사구조, 언어와 문자, 음률 등의 다양한 요소를 결합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내는 조형 실험으로 접근한 백남준, 정서영, 성찬경, 이규철, 강석호의 개인전을 통해 시적 절합의 경지를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2022년 7개 분관에서 8개로 확장 서울시립미술관은 현재 7개(서소문본관, 북서울미술관, 남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창고, 백남준기념관, SeMA벙커) 기관에서 2024년까지 총 10개 기관으로 확장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올해 8월, 현대미술의 중요 자료와 기록을 수집, 보존, 연구하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평창문화로101)가 개관되며, 2024년에는 서울사진미술관(도봉구)과 서서울미술관(금천구)이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미술아카이브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을 연동하여 아카이브 기반 전시, 교육, 연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현재까지 22개 컬렉션 57,000여 건의 미술 아카이브를 수집했고 그 일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고 있으며, 서울사진미술관과 서서울미술관은 개관에 앞서 사전프로그램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진행된다. 한편,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그간 숙원사업으로 머물러있던 남서울미술관(구 벨기에영사관, 사적 제254호)의 장애인 접근성 개선사업이 마침내 구체화된다. 남서울미술관은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이동을 위한 경사로, 점자블록 설치를 골자로 하는 BF공사 시행을 추진한다. 또한 2023년 권진규 상설실을 마련을 계기를 통해 현대조각과 건축을 토대로 하는 분관을 추진한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해부터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 현상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서소문본관은 1928년 일제에 의해 경성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원래 대법원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옮겨간 뒤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미술관 신규 통합 MI 개발 미술관 브랜드화를 위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미술관 신규 통합 MI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올해 새롭게 개발된 서울시립미술관의 신규 MI를 공개했다. 신규 MI는 서울(Seoul)과 서울시립미술관(SeMA: Seoul Museum of Art)의 영문 첫 글자 S에 연결, 변화, 유연함의 가치를 담아 서울시립미술관이 ‘새로운 예술의 흐름, 새로운 S(New S)’를 만들어 가는 기관임을 담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신규 MI는 서서울미술관이 개관하는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서울시립미술관은 2022년을 도약기로 설정했다. 서울형 네트워크 미술관은 급변하는 세상과 함께 진화하는 미술관으로서 삶이 만나고 교차되는 순간과 경험을 함께 나누고 경험하는 미술관이다”라며 “서소문본관을 중심으로 각 분관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미술관의 운영 모델을 제시 하겠다”라고 밝혔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공주 왕릉원 무덤, 중국 남조 출신의 기술자가 만들었다.
[문화재] 공주 왕릉원 무덤, 중국 남조 출신의 기술자가 만들었다.
[서울문화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임승경)가 지난해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2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면서 왕릉급 고분을 재확인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무덤 입구를 폐쇄하는데 사용한 벽돌을 전량 수습하여 정리한 결과,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구.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 웅진 도읍기(475~538, 지금의 공주)에 조성된 7기의 고분으로, 지난 1963년 1월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71년 무령왕릉의 지석이 발견되면서 고대 왕릉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확인된 왕릉이다. 이곳의 무덤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과 벽돌무덤(塼築墳)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이 중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에서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 벽돌이 이미 출토된 바 있어 당시 대외교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비교 평가되고 있다. 이번 29호분 벽돌에서 확인된 명문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것으로서 당시 제작자의 출신지가 기록된 매우 중요한 자료다.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 橫穴式 石室墳)은 판 모양의 돌을 이용하여 널(관)을 넣는 방을 만들고, 방의 한쪽에는 외부에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에 흙을 덮어씌운 무덤이며, *벽돌무덤(전축분, 塼築墳)은 벽돌을 이용하여 일정한 양식으로 축조한 무덤이다. 새롭게 확인된 명문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는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이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건업(建業)’은 중국 남경의 옛 이름으로 이것을 제작한 사람이 중국 남조의 남경 출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제작자가 외부인임을 증명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당시 벽돌과 무덤의 축조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6호분 명문의 경우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 또는 ‘양선이위사의(梁宣以爲師矣)’으로 판독되었는데 이 명문에서 표기된 ‘양(梁)’은 중국 양나라(502~557년)를 가리킨다. 이번 29호분 명문을 통해 제작자의 출신지가 남조의 도성인 ‘건업(建業)’으로 확인되면서 두 고분의 명문을 통해 벽돌무덤이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제작에서도 중국 남조의 기술자들이 직접 참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9호분은 1933년 6호분에 이르는 통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루베 지온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파견된 아리마쓰 교이치 등이 조사하여 굴식돌방무덤으로 밝혀졌으며, 네 벽에는 철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도가 확인되기도 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의 축조 순서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6호분이 더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외에도 526∼536년 무렵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림으로 그려 해설한 ‘양직공도’(중국의 남경박물원(南京博物院) 소장)를 통해서도 백제가 중국 양나라와 교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양직공도’에는 12국의 사신 그림과 기록이 남아 있는데 백제국사(百濟國使)에 관한 부분은 사신도와 7행 160여 자의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사신도에 그려진 백제 사신은 발을 약간 왼편을 향하여 나란히 하고 있다. 단아한 용모에 관(冠)을 쓰는 좌임(左衽)의 대수포(大袖袍)를 무릎을 약간 덮을 정도로 착용하고 그 아래에 바지를 입었으며, 검은 신을 신고 양손은 모은 채 가리고 있다. 이곳에 나타나는 백제는 한반도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나라임을 강조하여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변국가에 대한 영토확장 내지 영향력 확대의 야심을 드러내고 우월의식 특히 신라와의 대항의식을 대외적으로 과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당시 무령왕(백제 25대 임금, 462-523, 재외 501-523)은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 및 가야 접경지역에 대한 진출을 시도하였고, 더욱 확대해가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당시 무령왕은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가 다시금 강국이 되었음을 선언 ‘갱위강국更爲强國’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구.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 웅진 도읍기(475~538, 지금의 공주)에 조성된 7기의 고분으로, 지난 1963년 1월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71년 무령왕릉의 지석이 발견되면서 고대 왕릉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확인된 왕릉이다. 29호분은 1933년 6호분에 이르는 통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루베 지온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파견된 아리마쓰 교이치 등이 조사하여 굴식돌방무덤으로 밝혀졌으며, 네 벽에는 철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도가 확인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확인된 명문은 고대사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백제 웅진기의 대외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명문에 대한 3차원 입체(3D) 정밀 분석 등을 시행하여 글자를 보다 명확히 판독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토대로 백제시대 서체 복원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2022년 총 21개의 기획전시를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2022년 총 21개의 기획전시를 선보인다.
[서울문화인]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 4개관(과천, 서울, 덕수궁, 청주)에서 총 21개의 전시를 예고한 가운데 올해는 소장품전이나 중진·신진 예술가 집중 조명하는 연례프로젝트 이 외에도 동시대 이슈 심화 주제기획을 통한 사회와의 소통 강화하는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 밝혔다. 또한, 올해는 백남준 탄생 90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과천관의 <다다익선>의 재가동을 앞두고 이를 기념해 2022년을 백남준을 본격적으로 재조명하는 원년으로 삼아 전시 외에도 학술,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더불어 국외 지역에 한국 근‧현대미술을 선보임과 동시에 국외 미술기관과의 연계 프로젝트를 통한 미술한류 확산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동시대의 첨예한 사회적 의제에 대한 예술적 통찰과 전망을 살펴보는 주제기획전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진 격변의 세상 속을 부유하는 개별자들의 작은 목소리를 통해 무엇을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나/너의 기억》(서울, 4월-8월), ▶최근 비대면 환경을 기반으로 확산한 배달(물류) 문화를 미술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미술관의 실험적 확장을 모색하는 《전시 배달부》(청주, 7월-11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현대미술관이 가져야하는 태도와 실천을 각계 전문가와 함께하는 다학제 융합 프로젝트 《MMCA 다원예술 2022: 탄소 프로젝트》(서울, 6월-10월)를 통해 전 지구적인 의제로 떠오른 환경과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살펴보고, 능동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한다. 이어 한국미술의 입체적 층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대표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개인전과 기증작품전으로 ▶한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한 조소예술의 거장 문신을 재조명하는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덕수궁, 7월-10월), ▶1980년대 이후 사회참여적 예술 활동을 시작으로 물, 불, 흙, 쇠 등의 물질세계를 풍경과 결합한 근년작에 이르기까지 임옥상의 40여 년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임옥상》(서울, 10월-2023.3월), ▶<다다익선> 재가동을 계기로 전위적인 비디오아트의 영역을 개척한 백남준과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 영향관계를 조망하는 《백남준 효과》(과천, 11월-2023.2월), ▶최근 기증된 동산방컬렉션 195점 중 대표작을 선보이는 《MMCA 동산방컬렉션 특별전》(과천, 7월-9월)을 진행한다.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인정받는 국외 대표작가전 및 국외 미술기관과의 교류전을 추진한다. ▶디지털 시대, 글로벌 자본주의, 팬데믹 등 첨예한 사회 문화 이슈를 필름, 비디오, 다큐멘터리 영상과 저술, 비평 등을 통해 전 방위적으로 탐구해온 대가 히토 슈타이얼의 국내 최초 개인전 《히토 슈타이얼》(서울, 4월-9월),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연구기관인 독일 칼스루헤 미디어아트센터(ZKM)의 관장이자 문학, 철학, 영화, 퍼포먼스 등 1960~70년대 실험적인 예술언어를 통해 지각, 언어, 현실, 미디어 비판을 이어온 피터 바이벨의 국내 첫 개인전 《피터 바이벨》(서울, 12월-2023.3월), ▶한·중 수교 30주년 맞이 중국 국가미술관(NAMoC)의 대표 소장품을 통하여 중국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20세기 중국미술》(덕수궁, 11월-2023.2월)을 개최한다. 소장품 및 특화장르 연구를 통해 한국현대미술사의 균형과 지평 확장을 모색하는 기획전으로 ▶전시장 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삶의 영역에 남아있었던 전통 채색화의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며 이들이 동시대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짚어보는 《생의 찬미》(과천, 5월~10월), ▶한국 현대디자인 및 시각문화 연구를 심화한 《꿈의 공간, 환상의 사물》(과천, 0월-2023.2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과 최근 기증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근‧현대미술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는 《소장품 기획전_세기의 만남》(과천, 9월-2024.8월), ▶1980-90년대 수집된 국제미술 소장품을 세계화 맥락에서 살펴보는 《미술로, 세계로》(청주, 1월-6월)를 소개한다. 환경과 사회 시스템의 급변에 ‘예술’의 역할과 가치를 치열하게 탐구해온 예술가들의 도전과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집중조명하는 프로젝트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가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서울, 9월-2023.2월),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 수상제도로 자리매김한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성과를 조망하는 《올해의 작가상 10년: 열 번의 오늘》(서울, 10월-2023.3월), ▶다양성, 개방성, 확장성을 지향하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프로젝트 공모 사업으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2》(서울, 11월-2023.4월), ▶청주관 야외 공간을 활용하여 한국 신·중진 작가의 다양한 실험과 신작을 지원하는 《MMCA 청주프로젝트 2022》(청주, 8월-11월), ▶‘자연 속 미술관’으로서의 과천관 특성화에 맞춰 미술관 옥상을 예술, 생태적으로 재생하는 《MMCA 과천프로젝트 2022_옥상정원》(과천, 5월-2023.4월)을 선보인다. 한국 근대미술전 등 미술한류 본격 시동 다자간 교류를 통해 미술한류를 시도하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로 3개년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서울, 6월-9월)은 2021년 아시아 지역 미술관 협력에 이어 올해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로 주요 미술관 협력을 확장, 샤르자미술재단(아랍에미리트), 아키데스(스웨덴) 등 유럽, 중동, 아프리카 주요 미술관의 미디어 소장품 및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 플랫폼에 공유하고, 관람객은 스트리밍 구독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 문경원·전준호》 전이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진행된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은 국외 지역 한국 근‧현대미술 본격 전시 및 국외 미술기관과의 연계 프로젝트를 통한 미술한류 확산을 도모한다. 먼저 2018년부터 격년제로 ‘아시아 집중’ 기획으로 추진했던 ‘MMCA 아시아 프로젝트’가 올해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 미술행사 《카셀 도쿠멘타 15》(6월-9월)에서 국내 작가 및 디자이너 5인이 참여하여 관객 참여형 설치와 온·오프라인 연계 워크숍 등으로 선보이며, 미국에서는 한국 근대 시기를 주제로 《사이의 공간: 한국 근대미술》(미국, LACMA, 9월-2023년 2월)을 진행한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은 전통 유물이나 현대 작품 위주로 해외에 소개되었지만 근대 시기 중 일제강점기 예술에 중점을 둔 전시는 없었다. 이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63점을 비롯하여 140여 점의 근대미술 대표작이 선보일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훈민정음》의 역사를 따라 ‘한글’ 600년의 변천사를 살펴보다.
[박물관] 《훈민정음》의 역사를 따라 ‘한글’ 600년의 변천사를 살펴보다.
[서울문화인] 국립한글박물관(관장 황준석)이 개관 8년 차를 맞아, 상설전시실을 전면 개편했다. 2014년 10월 9일 한글날에 개관한 이후, 상설전시실이 부분적인 개편은 있었지만 전면 개편은 처음이다. 이번 새롭게 개편된 상설전시실은 한글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의 서문을 바탕으로 한글의 600년 역사를 풀어낸 전시로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문자 자료부터 현대의 한글 자료까지 191건 1,104점의 한글문화 관련 유물과 함께 벽면과 바닥면을 동시에 활용한 실감 영상, 인터렉티브북, 투명디스플레이 영상 등 다양한 ICT 미디어를 사용해 전시 내용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노후화된 전시장 내 시설 및 로비 공간 전체를 개선하였다는 점이다. ‘한글’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유물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민정음>(해례본)(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이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소장돼 있어 그 실물을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비록 실물은 만나기 어렵지만 가장 먼저 전시장 도입부에 <훈민정음>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하면서 <훈민정음>은 총 33장(6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3장 원형의 이미지를 아크릴 모형으로 만들어 선형적으로 나열한 것이다. 어두운 공간에서 빛나는 길과 같이 보이는 <훈민정음> 조형물은 우리 글자가 없었던 어둠의 시대를 밝히는 빛인 한글을 상징하는 동시에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을 600년 전 ‘한글’ 창제의 서막을 알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학창시절 한번쯤은 외웠던 ‘나랏말싸미 중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새’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것을 <훈민정음>의 첫 구절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세종이 꿈꾼 세상을 담은 <훈민정음>(언해본)으로 이것은 독립된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월인석보>라는 불교서적 권1의 맨 앞에 실려 있는 글귀로 세종이 쓴 서문과 새 글자의 모양 및 발음을 설명한 ‘예의(例意)’ 부분을 우리말로 풀이한 글이 실린 책이다. 참고로 ‘월인석보’는 수양대군, 훗날 세조가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자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쓴 ‘석보상절’과 이를 본 세종이 석가모니의 업적과 덕을 칭송하여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한 불교서적이다. 앞서 밝힌 국보 <훈민정음해례본>(간송미술문화재단)은 한글이 만들어진 배경과 원리를 설명하고, 한글의 실제 사용 예시를 기록한 책으로 전권 33장 1책으로 구성된 목판본이으로 본문에 해당하는 <예의(例義)> 부분은 세종이 직접 만들었으며 해설에 해당하는 <해례(解例)>는 집현전 학자(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최향, 강희안, 이개, 이선로)들이 만들었으며,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이뤄졌다. 세종이 직접 쓴 <훈민정음> 서문을 바탕으로 기획한 상설전시 이번 새롭게 개편된 상설전시관은 <훈민정음> 서문을 시작으로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1부)’, ‘내 이를 딱하게 여겨(2부)’,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3부)’, ‘쉽게 익혀(4부)’, ‘사람마다(5부)’, ‘날로 씀에(6부)’,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7부)’ 등 총 7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었는데 한글박물관은 우리의 대표 문화유산이자 한글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바탕으로 한글의 역사를 풀어내고자 기획했다고 한다.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중요 한글 자료로는 유가사지론(13∼14세기, 보물 제1886호), 선종영가집언해(1495년, 보물 제1163호), 간이벽온방언해(1578년, 보물 제2079호), 곤전어필(1794년, 보물 제2087호), 말모이 원고(1910년대, 보물 제2085호) 등의 보물 자료를 비롯해 무예제보언해(171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훈맹정음(1926년, 국가등록문화재), 송기주타자기(1934년, 국가등록문화재) 등 한글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문화재급 소장 자료와 함께 지난 2021년 6월 서울 인사동에서 출토된 15세기 한글금속활자 중 330여 점도 다시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한글은 우리가 매일 쓰고, 듣고, 말하는 언어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상 조선시대 쓰여진 한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 전시는 기존에 단순 책을 소개하는 방식을 넘어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문과 당시 한글을 디스플레이를 통해 쉽게 현재의 한글로 이해할 수 있게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조선의 22대 왕 정조가 쓴 한글 편지를 모아 놓은 정조한글편지첩과 양반 송규렴이 노비 기축이에게 쓴 한글 편지, 빌린 쌀을 갚지 못해 딸을 넘기겠다는 안타까운 한글 문서, 과부 정씨가 어사또에게 올린 한글 청원문, 궁서체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가의 한글 자료, 일제 강점기 발명가 최윤선이 한글 교육을 위해 만든 조선어 철자기,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국어사전 원고인 ‘말모이원고’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유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현대인에게 글을 단순히 본다는 것은 식상하게 느껴진다. 전시장 내에는 <훈민정음>의 전체 내용을 쉬운 현대말로 풀이한 정보를 볼 수 있는 영상과 한글의 창제 원리와 세종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인터렉티브북(글자와 그림이 움직이는 책)이 설치되어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외에도 조선 시대 여성들의 아름다운 한글 서체를 대형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정보 영상, 제사상 차리는 법을 익히는 놀이판 ‘습례국’ 놀이와 한글 점책 <평생생일길흉법>으로 평생의 운수를 점쳐 볼 수 있는 체험 영상은 전시 관람에 재미를 더한다. 특히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국어사전 원고인 ‘말모이원고’와 투명디스플레이로 연출한 영상은 유물을 보다 새롭고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글이란 그 민족의 영혼이자 그 민족의 삶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글 ‘한글’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창제자가 알려진 유일한 문자라는 점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특히 세종이 만들었던 스물여덟 개의 글자는 오늘날 스물네 개가 되었지만 그 스물네 개는 무한의 말을 생성해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 보다도 한글이 급속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정착 우리는 교실 밖을 벗어나면서 무관심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어느 언어보다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한글이 다음 세대에는 또 어떻게 변화하고 달라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글을 사용하는 주체인 우리의 두 손에 한글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함께해 온 살아 있는 존재인 ‘한글’을 조명한 이번 전시를 통해 <훈민정음>에 담긴 세종의 위대한 문자 계획이 현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또 한편으로 우리가 어떻게 아름답게 가꿔 나가야 하는 문자인지 생각게 하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허중학 기자]
[전시] 도윤희 작가, 내면에 쌓였던 삶의 풍경을 추상의 지두화로 표현하다.
[전시] 도윤희 작가, 내면에 쌓였던 삶의 풍경을 추상의 지두화로 표현하다.
[서울문화인] 갤러리현대에서 도윤희 작가의 개인전 《BERLIN》을 선보이고 있다. 도윤희 (1961년 서울 생)작가는 40여 년 동안 시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한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화가로 지난 2007년 스위스 갤러리바이엘러(Galerie Beyeler: 20세기 최고 화상/아트 바젤 설립자인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설립한 갤러리)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나의 작업은, 현상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눈에 띄지 않고 숨겨져 있거나, 낯선 삶의 파편과 구석, 가려진 뒷면,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떤 현상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섬세한 회화 언어로 표현해 내고 있다. 《BERLIN》전에 선보이는 40여 점의 작품은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도윤희의 과감한 도전과 파격적 변신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먼저 1층 전시장에 소개되는 7점의 작품은 작가가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으로 이 작품들은 2015년 《Night Blossom》 전시로 변신을 꾀한 작가가 한 단계 전진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서정성을 간직한 초기 모델들이라 할 수 있다. 이어 지하 전시장에는 베를린과 서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들로 화면의 촉각적 질감과 색채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으로 2층 전시장은 팬데믹 이후 대다수 서울에서 작업한, 높이 3m 이상의 대형 작품과 최근작으로 채워졌다. 2011년 갤러리현대와의 첫 개인전 《Unknown Signal》에서 작가는 세포나 화석의 단면, 뿌리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이미지를 흑연으로 그리고 위에 바니쉬를 반복적으로 칠해 올리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읽을 수 없는 문장’,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으로 연두색 모래알들이 반짝인다’, ‘살아있는 얼음’,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등 한 편의 시구와 같은 문학적 제목을 더해, 쓴다와 그린다는 행위 사이에 놓인 회화를 고민하며, 생명의 본질과 근원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2012년 도윤희는 회화의 특정 방법론에 고착되길 거부하고 새로움을 갈구하며 베를린 동쪽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면서 그는 이러한 물리적인 이동을 통해 베를린만의 데카당스함(지성보다는 관능에 치중, 죄악과 퇴폐적인 것에 더 매력을 느껴 암흑과 문란 속에서 미를 찾으려 함)과 기괴한 무거움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Night Blossom》에서 그 첫 결과물을 공개했다. 당시 작가는 작품 제목을 모두 ‘무제’로 정한 것은 이전 작업에 영감이 되었던 문학적 요소와 결별을 암시하는 것이자 2000년대 중반부터 사용을 억제했던 색을 받아들이기 시작을 알렸다. 더불어 이미지를 캔버스로 구체화해 옮기는 과정에서 연필이나 붓이라는 전통적 미술 도구를 벗어나 보다 원시적 수단인 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손의 감각에 의지하며, 손의 적극적인 사용은 캔버스와 작가 내면의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실재하지 않지만, 작가의 내면에는 이미 존재했던 세계가 캔버스에 모습을 드러낸다. 화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어나오는 형형색색의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색채’, 나아가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세계의 이면’을 제시했다. 《Night Blossom》 이후 7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BERLIN》에서 도윤희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회화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작가는 회화의 기본적 언어이자 재료인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의 물성을 더욱 되살렸다. 이전 전시에서 작가는 뭉게구름처럼 퍼져 가던 얕은 층위의 물감은, 색 덩어리로 강렬한 물질성을 획득하고 생명체처럼 육감적인 질감을 지니고 있다. 거침없는 선과 색 덩어리가 쌓이고 뒤섞여 형성한 다층적인 레이어들 사이에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을 마련하는 등 익숙한 회화의 모습과 다른 매혹적인 미감을 선사한다. “추상은 환상이 아니에요. 환상, 몽상, 상상 같은 게 아니고 인식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실체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 이번 전시의 작품은 개개인의 감정이나 기억속의 이미지들이 다르듯 작품은 형형색색의 꽃다발이나, 해 질 녘 강변의 쓸쓸한 잔상처럼 다양하게 다가온다. 작가에 따르면, 이 화면들은 그가 평생 경험한 다양한 시공간이 내면에 쌓였다가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추상적 풍경이라 말한다. 작가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찬란한 빛과 소용돌이치는 색들, 부유하는 형태가 증발해버리기 전에 재빠르게 붙잡기 위해, 캔버스 앞에서 마치 육탄전을 벌이듯 손, 붓, 부러진 붓의 모서리, 유리병, 망치 등 도구를 가리지 않고 활용한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전통적 행위를 넘어 물감 덩어리을 만지고, 주무르고, 찍고, 쌓고, 선을 긋는 등 역동적 제스처를 통해 새로운 추상의 세계를 제시하는 이번 도윤희 작가의 개인전은 오는 2월 27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1003대의 모니터가 활용된 백남준 , 4년 만에 재가동
1003대의 모니터가 활용된 백남준 , 4년 만에 재가동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백남준 작가 <다다익선>(1988)의 기본적인 보존·복원 과정을 마치고 2022년 1월 17일부터 6개월 동안 시험 운전을 실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 건물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바로 백남준 작가 <다다익선>(1988)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미술관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국가적 행사와 맞물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건축 특성에 맞게 기획·제작된 상징적 작품으로 백남준(1932~2006)의 유작 중에서도 총 1003대(동양, 삼성)라는 최대 규모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활용된 작품으로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개관하면서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으로 구상돼 1988년 완성되어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브라운관 모니터의 노후화로 2010년 4월 158대, 같은 해 11월 86대, 2012년 79대, 2013년 6월 100대, 2014년 4월 98대, 2015년 320여 대의 등 수차례 브라운관 수리 및 교체 작업이 이뤄졌다. 그러다 모니터의 노후화에 따른 화재발생 위험 등 안전성 문제로 2018년 2월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해둘 문제는 아니었다. <다다익선>의 보존 및 복원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과 향후 백남준 미디어아트 복원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독일 ZKM, 미국 MoMA, 휘트니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미술기관 전문가 40여 명의 자문과 유사 사례를 조사하였고, CRT 모니터를 대체 가능한 신기술의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다다익선> 보존·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6개월 동안 시험 운전을 통해 미술관은 가동시간별 작품 노후화 정도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다익선>의 수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중장기 운영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 한다. 시험 운전은 6개월간 총 3차례 진행하며, 1차는 1월 17일부터 3월 18일까지 평일에 실시한다. 먼저 1월 17일부터 1월 28일까지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 동안 가동하며, 이후 2주 단위로 2시간씩 점차 확대해 3월 7일부터 3월 18일까지는 8시간 가동된다. 2~3차 시험 운전 일정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라 한다. [ 백남준 작 <다다익선> 시험운전 일정 안내 ] 작품명 위치 시험운전 일정 다다익선 과천관 램프코어 1차 1월 17일∼1월 28일 (14:00∼16:00, 2시간 가동) 2월 7일∼2월 18일 (11:00∼15:00. 4시간 가동) 2월 21일∼3월 4일 (10:00∼16:00, 6시간 가동) 3월 7일∼3월 18일 (09:30∼17:30, 8시간 가동) * 주말 및 공휴일, 설 연휴는 시험 운전 미실시 * 작품 상태 모니터링 및 응급수리 등 현장 상황에 따라 일정이 변동될 수 있음 * 시험 운전은 총 3차례 실시 예정으로 후속 일정은 추후 안내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까지 전체(1,003대) 브라운관(CRT) 모니터 및 전원부 등에 대한 정밀진단을 실시, 중고를 수급하여 수리·교체하였으며, 더 이상 사용이 어려운 브라운관 모니터는 기술 검토를 거쳐 모니터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평면 디스플레이(LCD)로 제작·교체하였으며, 또한, 냉각시설 등 작품의 보존환경을 개선하고, 작품에 사용된 8가지의 영상도 디지털로 변환·복원하여 영구적인 보존을 도모하였다고 밝혔다. (CRT 모니터 735대 수리, 상단 6인치 및 10인치 총 268대 평면 디스플레이(LCD) 제작·교체) 이번 복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현재 <다다익선>은 설치된지 30년 이상 경과함에 따라 관련 기자재의 생산이 중단되고 중고품도 소진되고 있다. 미술관이 <다다익선>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 및 관계 기관과 협력하여 양질의 중고품을 수급, 진단, 수리, 사용하고 있으나, 수리에 사용된 중고품도 생산된지 적게는 수년, 많게는 십 수 년이 지나 언제든 수명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이다. [허중학 기자]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에도 재활용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에도 재활용
[서울문화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해와 달, 그 아래 다섯 봉우리와 소나무 그리고 파도치는 물결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음양오행설에 기초해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조선 왕실에서는 영원불멸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일월오봉도로 장식한 병풍을 왕의 공간에 설치하였다. 그런데,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의 보존처리를 위한 해체 과정에서 이 병풍에서는 다른 오봉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병풍의 틀에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이 여러 장 배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병풍을 제작할 때는 오래도록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병풍의 속틀에 3겹 이상의 종이를 덧대었다. 그런데 오봉병은 왕실에 주로 배설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기물보다 그 보관과 관리가 중요시되었을 것이다. 종이가 귀했던 당시, 물자를 아끼기 위해 족자나 병풍 뒷면에 고문서 및 서책 등을 뜯어 배접했던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6월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는 보관하고 있던 <곤여전도 병풍(坤輿全圖屛風)>의 ‘병풍 배접지’를 환수하여 문화재청에 기증하였는데, 이 배접지는 17세기 전북 익산 지역의 호적대장으로 추정되는 문서로 밝혀졌다.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이 2016년 왕실 여성이 예식을 위해 입었던 예복의 일종으로 추정되는 <활옷>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활옷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넣은 종이심을 살펴본 결과, 이는 부(賦) 과목에서 ‘選天下端士, 以衛翼之’라는 시제로 치러진 시험의 낙폭지였음이 드러났다.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는 인정전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되면서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환경에 노출되면서 일월오봉도의 화면이 터지거나 안료(顔料)가 들뜨고, 구조를 지탱하는 병풍틀이 틀어지는 등의 손상을 입으면서 2015년 말,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와 2016년부터 전면 해체 보존처리를 시작해 지난 2021년 말 작업을 마쳤다.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는 과거 총 5번에 걸쳐 보수가 진행되었다. 1차는 1964년 8월(동신표구사 박동신), 2차는 1983년 7월(고려화랑 김표영), 3차는 1997년 11월(지류문화재보존연구원 김표영), 4차는 2004년 11월(강정식회화보존수복연구소 강정식), 5차는 2012년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진행한 응급보존처리이다. 이후 문화재청의 단청기록화 사업 진행 도중 일월오봉도의 열악한 보존상태가 제기되어 다시 보전처리에 들어갔다. 해체 과정에서 화면-배접지-1960년대 신문지-시권-병풍틀의 순서로 겹쳐진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1960년대 일월오봉도를 처리할 때는 조선 시대 일월오봉도의 제작 시 사용하였던 기존의 병풍틀을 재사용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왔음을 확인하였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전면 해체 후 각 재질을 분석해 병풍틀의 수종과 사용된 안료, 배접지, 바탕 화면의 재질 등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보존처리에 적용하였다. 또한, 보존처리에서는 기존 병풍틀이 충해(蟲害)와 틀어짐 등의 구조적인 손상으로 인해 재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종 분석 결과를 토대로 새로 제작했다. 특히, 고문서 전문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병풍틀의 첫 번째 배접지로 사용된 여러 장의 시권 중 총 27장이 과거 시험 답안과 관련 있는 시권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중 25장의 시권이 동일한 시험에서의 답안으로 1840년에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낙폭지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리고 조선왕실에서 제작한 일월오봉도는 낙폭지(과거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를 재활용하여 제작한다는 사실과 제작 연대가 1840년대 이후로 특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식년감시초시(式年監試初試, 조선 시대 3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러진 과거시험이 식년시이며,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정소영)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보존처리를 완료하고, 보존처리 과정과 관련 연구 결과를 담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에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에 대한 그동안의 보존처리 과정과 재료 분석 내용, 일월오봉도 병풍의 변형에 관한 미술사적 연구와 장황의 고증, 병풍틀에 배접된 시권의 내용과 의미 등을 상세히 실었다. 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http://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도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선정 의결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선정 의결
[서울문화인]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이 지난 13일 오후에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양주 회암사지’를 새롭게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으로 선정할 것을 의결했다.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양주 회암사지’는 유산구역에는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등 보물 4건을 포함한 총 9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양주 회암사지’는 지난 2018년과 2020년 잠정목록 선정 심의에서는 부결된 바 있으나, 이번 심의에서 문화재위원회는 유산의 성격, 명칭, 부도군과 사찰(유적) 구역 간의 연결성과 비교 연구 등에 대해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권고하면서 <잠정목록> 선정을 의결하였다. <잠정목록> 선정은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기 위한 국내 심의 첫 단계로 이후 <우선등재목록>, <등재신청후보>를 거쳐 <등재신청대상>이 된다. 문화재청은 2022년 상반기 중 ‘양주 회암사지’를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정식 등록할 예정이다. 이는 2017년 1월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2019년 1월 ‘가야고분군’을 확대 등록한 이후 약 3년 만의 잠정목록 등록이다. 올해 1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목록(‘22.1월 기준)에는 강진도요지(1994.9.1), 설악산 천연보호구역(1994.9.1), 남해안 일대 공룡화석지(2002.1.25.), 염전(2010.1.11), 중부내륙산성군(2010.1.11.), 우포늪(2011.1.11), 외암마을(2011.3.11), 낙안읍성(2011.3.11), 한양도성(2012.11.23),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2017.1.24), 가야고분군(2019.1.28.) 등 12건이 있다. 회암사는 현재 터만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창건 시기를 알려 주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발굴된 유물에 나타난 명문을 통해 늦어도 고려 중기 이전에는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기와, 자기(瓷器), 도기(陶器), 소조품(塑造品), 금속품, 석제품 등 다양하면서도 품질 또한 최고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막새류를 중심으로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제작 기법이 우수할 뿐 아니라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기와도 다수 출토되었다. 또한 궁궐이나 왕실 관련 사찰에서만 사용된 청기와를 비롯하여 궁궐 건축물의 지붕 추녀마루에 올리는 용두(龍頭)나 잡상(雜像), 최고급 도자기와 금속 공예품 등은 당시 회암사의 위상이 상당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회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색(李穡)이 지은 「천보산 회암사 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와 김수온(金守溫)이 찬한 「회암사 중창기(檜巖寺重創記)」에는 ‘인도 출신의 원나라 승려 지공선사(指空禪師)가 1326년 3월경 개경의 감로사(甘露寺)에 도착하여 1328년 9월 돌아갈 때까지 통도사(通度寺)와 화장사(華藏寺) 등 전국의 여러 사찰을 순례하다가 회암사의 지형이 인도의 아란타사(阿蘭陀寺)와 같아 가람을 이룩하면 불법이 크게 흥할 것이라고 말하자 그 뒤에 제자인 나옹(懶翁) 등이 크게 중창하였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고려 말기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나옹은 선각왕사 혜근(禪覺王師 惠勤, 1320~1376)으로, 원나라에 가서 지공선사로부터 수학하여 법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나옹이 회암사의 전당(殿堂) 확장 공사를 끝냈을 때에는 262칸의 전각이 있었으며, 1376년 4월 낙성 법회 개최 때에는 전국의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대거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 말기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원증국사 보우(圓證國師 普愚, 1301~1382)도 제자인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년)와 함께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당시 회암사가 크게 발전하자 유생들은 백성들이 회암사에 가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국왕에게 주청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들어와 회암사는 더더욱 부각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물려주고 스승으로 삼았던 무학대사가 회암사에 머물 때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으며, 불심이 깊었던 효령대군(孝寧大君)은 전국의 여러 불사를 직접 관장하거나 후원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회암사 중창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게 하였다고 전하며, 문정왕후(文定王后)는 보우(普雨)로 하여금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케 하여 전국 제일의 사찰로 중흥을 꾀하기도 하였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보물 제2130호)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불탑(佛塔)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사리탑은 팔각을 기본으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의 각 면에 다양한 장엄이 새겨져 있는데 용과 기린, 초화문(草花紋), 당초문(唐草紋), 팔부신중이 하층기단 대석으로부터 상층기단 갑석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조식되어 있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여성이 남긴 한글 기록, ‘내방가사’을 소재로 한 최초의 전시
[박물관] 여성이 남긴 한글 기록, ‘내방가사’을 소재로 한 최초의 전시
[서울문화인] 한글이 대중화 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지식층의 사대부나 선비가 아니라 조선시대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학문과 문자교육은 한문·한자 일변도여서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있던 대부분의 학자·문인들은 한글을 천대시 되었던 문자였지만 상대적으로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 당시의 정통적인 문자교육이던 한문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던 여성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한글이다. 이처럼 당시 학자와 문인은 훈민정음(한글)을 천대했지만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에게 두루 보급되면서 우리글의 발전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사대부들의 노래 중에 우리말 위주로 창작되는 가사 문학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되었고 여성의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예술성을 살린 시가(詩歌)가 속속 창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방가사이다. 한글을 익히 부녀자들은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 맺혔던 정한을 절절히 노래하게 되다보니 사대부의 가사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바로 관념이 아니라 봉건적 인습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실제의 생활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방가사는 현대 우리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내방가사는 영·정조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지어져서 일제 강점기 시절과 해방 직후까지 약 6,000여 편의 내방가사가 창작되었다고 한다. 내방가사가 영남 지방에서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는 영남 지방에 한글을 깨우치고 교양을 갖춘 부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내방가사의 주요 내용을 분류해 보면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노래한 작품, 시집간 딸이 지켜야 할 내용을 노래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사친가」, 자신의 환경을 탄식하는 「여탄가」, 「여자탄식가」 등 봉건적 인습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내방가사라고 해서 현실이나 환경을 한탄하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전가」나 「향원행락가」와 같이 때로는 여성들이 지닌 취미라든가 놀이도 노래로 지어 불렸고 당시의 문물이나 풍속도 소재로 활용되었다. 한글로 꽃피운 여성의 문화 ‘내방가사’ 국립한글박물관(관장 황준석)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창작․계승되고 있는 여성 가사문학인 내방가사를 대상으로 한 기획전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를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한글박물관이 그간 조선시대 여성의 문화를 다루는 전시에서 내방가사가 간헐적으로 선보였지만, 여성이 남긴 한글 기록이라는 점을 앞세워 가사의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방가사는 가사문학 중에서 가장 늦게 학계의 주목을 받은 장르이다. 이번 전시에는 12편의 신자료를 대거 공개하고 있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로는 내방가사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남성을 화자로 한 계녀가 <계녀통론>과 함께, 변형된 계녀가(시집가는 딸을 가르치는 노래)인 <모녀 서로 이별하기 애석한 노래라>가 있으며 먼저 죽은 딸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잊지 못할 내 딸이라> 등 문학성이 풍부한 가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현전하는 가장 긴 14m 길이의 내방가사 <헌수가>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네 번 결혼하고 불에 덴 아이를 홀로 키우는 덴동어미의 비극적 삶을 그린 <뎬동어미화전가>는 화전놀이에서 뎬동어미를 비롯한 여성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해하는 연대감을 묘사한 내방가사의 백미로, 전시실에서 화사한 벽면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21세기에도 여전히 창작되고 있는 90여 편의 내방가사와 더불어, 각종 여성 생활사 유물, 여성 잡지, 여성 교과서 등 총 172건 260점의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장은 1부 ‘내방 안에서’, 2부 ‘세상 밖으로’, 3부 ‘소망을 담아’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희로애락을 선보인다. 조선시대 어머니의 아들자랑,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 시누이-올케의 갈등 등 다양한 내방가사를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근대와 식민지라는 격동의 시대에 직면한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다. 남녀평등과 학교교육을 주장하는 <해방가>, <위모사>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여성들의 역사교육 교과서였던 수종의 <한양가>를 볼 수 있다. 3부는 가족이 잘되길 기원하는 여성의 마음과,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창작되고 있는 내방가사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내방가사 창작과 향유를 이어가는 내방가사 작가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가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와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내방가사의 전승은 낭독과 필사라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 여성문화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물로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한글을 활용하여 자신의 삶과 애환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런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에 주목하여 2019년부터 한국국학진흥원과 국립한글박물관은 내방가사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협력 중에 있다. 국립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4월 10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호랑이 기운을 담은 컴퓨터, 핸드폰 배경화면용 호랑이 그림달력
호랑이 기운을 담은 컴퓨터, 핸드폰 배경화면용 호랑이 그림달력
[서울문화인]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이 2022년 호랑이해를 맞아 1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인검(寅劒)’을 정해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장 ’과학문화실‘에서 소개함과 더불어 소장품 속 호랑이를 경쾌하게 해석한 그림을 담은 달력을 제작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제공하고 있다. 인검은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자가 들어가는 때에 제작한 의례용 칼이다. 인은 양기를 뜻함과 동시에 의(義)를 상징하여 나쁜 기운을 막고,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나타낸다. 때문에 인검은 왕실에서만 만들었던 칼로 사인검과 삼인검, 두 종류가 있다. 사인검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네 시기에 맞춰 제작하고 삼인검은 세 시기를 맞춰 만든 칼이다. 이렇게 인검은 특정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오래된 철을 사용했고, 특별히 선정된 장인만 제작할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총 22점의 인검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인검 중 사인검은 검날 한 면에는 사인검이라는 명칭과 27자의 한자와 다수의 산스크리트어 주문이 새겨져 있고 다른 한 면에는 북두칠성과 28개의 별자리가 금으로 새겨져있다. 삼인검 역시 한 면에는 삼인검이라는 명칭이, 다른 면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왕실에서는 인검 제작과 소장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힘을 빌려 벽사의 기능 뿐 아니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군신간의 도리를 강조하고자 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품 속 호랑이 이미지를 담아 제작한 달력은 컴퓨터와 핸드폰의 배경화면으로 사용할 수는 두 종류로 제작되었다. 달력 속 호랑이는 치아교정기를 하거나 요가를 하며, 드론과 액션카메라를 사용하는 현재 우리의 삶을 누리는 경쾌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호랑이 이미지를 담은 달력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