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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RM, ‘아름다운 미술 책’ 전국 보급을 위해 1억 원 기부
방탄소년단 RM, ‘아름다운 미술 책’ 전국 보급을 위해 1억 원 기부
[서울문화인] 평소 미술관을 자주 찾던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본명 김남준)이 ‘아름다운 미술 책’ 읽는 문화 확산의 뜻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을 통해 1억 원을 후원 기부했다. 이번 기부는 RM의 생일인 9월 12일을 기념한 선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출간한 미술 도서를 중심으로 특히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운 도서 및 재발행이 필요한 도서 제작에 후원된다. 제작된 도서는 도심에서 먼 전국 400곳 공공도서관 및 도서산간지역의 초·중·고 학교도서관에 기증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책방에 비치하여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도서는 한국작가 도록 7종(김환기, 이중섭, 변월룡, 유영국, 박래현, 윤형근, 이승조)과 전시 도록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중 각 1권을 묶어 한 세트 8권으로 구성되어 총 4,000권이 마련된다. RM의 지원 도서는 도서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책방에 오는 10월 중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RM씨가 평소 영감과 휴식을 얻은 미술 분야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며, 본인이 책을 통해 미술을 더 깊게 이해하는 것처럼 미술관 접근이 어려운 청소년들도 쉽게 미술을 접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와 기쁘고 놀랐다”며, “바쁜 스케줄에도 미술관을 종종 찾아 미술 관심 확대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RM씨와 함께 우리 미술 책 읽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중학 기자]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은허리띠 등이 묻힌 상태대로 출토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은허리띠 등이 묻힌 상태대로 출토
[서울문화인] 지난 5월 27일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瓔珞, 영락) 일부가 확인되었던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추가로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구슬팔찌, 은반지 등이 피장자가 착장한 상태 그대로 확인되었다. 이번에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가 대거 발굴된 곳은 황남동 120호분의 봉토를 파괴하고 축조된 120-2호분으로 발굴된 유물은 피장자가 머리부터 발치까지 전신에 착장하였던 금동관 등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로 피장자는 금동으로 만든 관(冠)을 머리 부분에 착장하였고, 굵은고리귀걸이(太環耳飾, 태환이식)를 양쪽에 하고 있으며, 금동신발을 신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신발을 착장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년∼19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며, 이렇게 피장자의 장신구를 착장 상태 그대로 전체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도 처음이다. 금동 달개 일부가 5월에 먼저 노출되었던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최종적으로 금동관이 확인되었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帶輪, 대륜, 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으며,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樹枝形 立飾, 수지형 입식) 3개와 사슴뿔모양 세움장식(鹿角形 立飾, 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이다. 관테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의 끝 부분에도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금동관의 관테에 장식용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첫 사례이다. 금동관의 관테에는 곱은옥(曲玉, 곡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金製垂飾, 금제수식)가 양쪽에 달려 있다.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데, 세움장식의 상단에서도 투조판의 흔적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 투조판이 관모(冠帽)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는지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금동관 아래에서는 금으로 제작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胸飾, 흉식)가 확인되었다. 그 아래에서는 은허리띠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되었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되어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되었는데, 왼손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키기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면 왼손 부분에서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으며,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 금동신발은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였다. 참고로 1960년 의성 탑리 고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키는 170㎝ 내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피장자의 성별 등을 포함해 추가로 더 밝힐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鐵鼎, 철정)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자료가 많아서 추후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논의가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허중학 기자]
울주 암각화 주변서 발견된 4족 발자국 주인은 ‘코리스토데라’
울주 암각화 주변서 발견된 4족 발자국 주인은 ‘코리스토데라’
[서울문화인] 2018년 6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주변 학술발굴조사 중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4족 보행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이 신생대(마이오세 전기)에 멸종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인 것을 밝혀졌다. 당시,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난 18개의 발자국(앞, 뒷발자국의 평균 길이는 각각 2.94cm, 9.88cm)이 하나의 보행렬로 발견되어 주목 받았다. 이는 그동안 국내에서 보고된 4족 보행 척추동물의 발자국 화석들(공룡, 익룡, 거북, 악어, 도마뱀과 기타 포유동물의 발자국 화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였다. 연구결과, 전기 백악기 지층에 남겨진 이 발자국은 중생대(쥐라기 중기, 약 1억7천4백만 년 전)에 출현하여 신생대(마이오세 전기, 약 1천6백만 년 전)에 멸종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의 발자국으로 밝혀졌는데,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자 세계에서는 두 번째 보고다. 1995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처음 보고된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 화석(캄프소사우리크누스 파르페티/Champsosaurichnus parfeti)은 매우 불완전한 2개의 발자국으로 앞‧뒷발의 구분이 모호하고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인지도 불분명하다. 따라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앞발 9개, 뒷발 9개)은 완전한 형태로 남겨진 코리스토데라 발자국 보행렬 화석으로는 세계 최초이며,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코리스토데라의 보행 특성과 행동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화석으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에 발견된 코리스토데라 발자국 화석은 ‘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발자국’이라는 뜻의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로 명명되었다.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를 남긴 코리스토데라는 생존 당시 몸길이 약 90~100cm 정도로 추정되며, 앞‧뒤발가락이 모두 5개이고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뒷발에는 물갈퀴가 있어 물에서도 잘 적응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보행 특성에 있어서도 공룡이나 도마뱀과는 달리 악어처럼 반직립한 걸음걸이로 걸었다는 사실이 세계 최초로 확인되었다. 또한,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는 중국의 전기 백악기 지층에서 보고된 골격화석 ‘몬쥬로수쿠스(Monjurosuchus)’의 발 골격구조와 형태 및 크기가 일치하고 있어 유사한 종류의 코리스토데라가 남긴 발자국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로 우리나라 중생대에는 공룡‧익룡‧새‧도마뱀‧악어‧거북‧포유류 등의 척추동물들과 함께 새로운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가 서식하였음을 최초로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일원은 탁월한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 외에도 빼어난 자연경관과 중생대의 공룡‧새‧수생 파충류 화석 등 세계적인 자연유산이 공존하고 있는 복합유산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지난 2일 국제 저명학술지(SCI)인 Nature(네이쳐)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되었으며, 이번 연구 성과는 대전 천연기념물센터 전시관에서 2021년에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세계 근현대사
[전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세계 근현대사
[서울문화인]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사진보다는 분명 영상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찰나의 순간 이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그 결말은 존재하고 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에는 결말지어지지 않은 드라마처럼 각 개인마다 자기만의 결말을 상상하게 만든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위축된 상태에도 길게 줄이 늘어선 전시가 있다. 바로 세계 근현대사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는 저널리즘의 노벨상이라 불려지는 <퓰리처상 사진전>이다. 1998년, 2010년, 2014년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퓰리처상 사진전>은 일반적인 사전전과는 달리 전 세계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차례의 전시를 통해 서울에서만 유료관객 50만 명을 동원한 바 있는 인기 전시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는 설정이 아닌 전 세계의 이슈와 인간의 다양한 사회상과 삶을 그대로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내어 그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찾은 사진은 ‘슈팅 더 퓰리처’라는 타이틀로 1942년부터 지난 5월 4일 발표된 2020년까지 퓰리처상 사진부문의 모든 수상작 134점을 만나볼 수 있다. 국가와 언론은 그 운명을 함께 합니다. 언론은 능력 있고, 객관적이며,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국가의 미래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언론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조지프 퓰리처 (Joseph Pulitzer) 퓰리처상의 시작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가 컬럼비아 대학에 2백만 달러를 기부하며 시작되었다. 그는 이 기부금을 컬럼비아 대학 내 언론 대학 신설과 장학제도의 설립, ‘공공봉사, 공공윤리, 미국문학, 교육진흥을 장려하는 상’을 만드는 데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지프 퓰리처는 미국 대중 매체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장본인으로서, 미국의 언론을 대량소비의 수단이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그는 미국 오리건 주의 일간신문인 <더 월드(The World)>와 미주리 주의 지역신문인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St. Louis Post-Dispatch)>를 인수하기도 했다. 1917년 조지프 퓰리처의 유지로 제정된 퓰리처상은 ‘기자들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이다. 언론인은 물론, 문학인이나 음악인에게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가 주어졌다. 역대 유명 수상자로는 문학 · 희곡 · 음악 부문의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유진 오닐(Eugene O’Neill),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등이 있고, 언론 부문의 케빈 카터(Kevin Carter), 닉 우트(Nick Ut), 캐롤 구지(Carol Guzy) 등이 있다. 뉴욕 시 컬럼비아 대학에 위치한 퓰리처상 위원회는 매년 2천 명이 넘는 후보자 중 언론 분야의 14개 부문을 포함해 총 21개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4월에 발표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미화 10,000달러를 지급한다. 퓰리처상은 보통 매년 5월 말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상자들을 초대하여 오찬을 연다. 문학 · 희곡 · 음악 부문의 경우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해당 부문의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으나, 언론 부문의 경우 미국의 신문, 잡지, 뉴스 보도 사이트 등에 본인의 저작물이 등재되어 있다면 국적과 무관하게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사진은 관객들은 역대 수상작과 사진기자들의 인터뷰로 구성한 작품 설명 패널을 통해 세계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필름과 퓰리처상 주요 수상작을 미디어 아트로 구성한 영상 콘텐츠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 사진부문을 수상한 로이터통신 김경훈 기자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김경훈 기자는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규모 이민자 행렬인 카라반(Caravan)을 취재하며, 미국 국경지대에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모녀의 사진을 찍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제 3전시실에서 대중이 놓치고 있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안야 니드링하우스(Anja NiedringHaus)를 기념하는 특별전도 만나볼 수 있다. 안야 니드링하우스는 2005년 이라크 전쟁 당시 현장 취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성 종군기자로 2014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 도중 사망했다. <퓰리처상 사진전>의 제작자이자 큐레이터인 시마 루빈(Cyma Rubin)은 토니 영화제, 에미 영화제, 런던 영화제 수상 프로듀서이자 감독, 작가고 “퓰리처상 수상작은 전 세계의 사진기자들의 영감과 정신을 대변하며, 진실을 좇는 그들의 헌신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한국의 관객들에게 “우리는 곧 목격자입니다. 그렇기에 세계 곳곳에서 국제적으로 겪고 있는 일들을, 이를테면 코로나-19 사태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시민운동을 볼 것입니다. 그 최전방에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사진기자들입니다. 그들은 후추 스프레이, 최루 가스,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에 부상을 입고, 나아가 희생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는 용기를 가지고 헌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며 전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18일(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첨부된 사진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조치 이전에 찍은 사진임을 알립니다]
국보 제 180호 추사의 세한도, 국가 품으로 기증되다.
국보 제 180호 추사의 세한도, 국가 품으로 기증되다.
[서울문화인] “심사숙고 끝에 내어놓았다.”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세한도’를 기증 의사를 전달하시며 한 말씀이다.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제180호 세한도가 국가 소유가 되게 되었다.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금전으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무가지보, <김정희필 세한도>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손창근 선생의 ‘세한도’ 기증은 2018년 11월 ‘손세기ㆍ손창근 컬렉션 202건 304점 기증’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로써 손창근 선생이 2005년부터 두 번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한 203건 305점의 문화재 전체를 기증하게 되었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 올곧은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최고의 문인화의 걸작이다. 유배시절 추사 김정희가 59세 때 그렸던 것으로 당시 추사가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달픔과 메마름을 건조한 먹과 거친 필선으로 사실적인 표현으로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에서 서화일치의 경지를 보여준다. 상당히 고된 유배생활을 근근이 버티던 그에게 ‘세한도’속 소나무는 인간으로서 힘든 시간을 견디어내는 추사 본인이었으며, 잣나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썼을 선비정신, 그 기개를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스승 추사를 위해 그의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은 새롭게 들어온 중국의 문물 자료를 모아 스승에게 보내주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김정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선물한 것이 바로 ‘세한도’이다. 이 선물을 받은 제자는 이를 청나라 문인 16인에게 선보여 그 작품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의 글을 받아 남겼다. 그리고 그 외에도 오세창, 이시영 등 여러 주요 인물들의 글이 함께 남아있어 세한도를 통해 그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그 마음과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세한도’가 국가 소유가 되기까지 다양한 소장자들이 있었다. ‘세한도’ 장축은 이상적 사후 이후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에게 넘어가 그의 아들 김준학이 이 시를 읽으며 공부했던 감상기를 두루마리 끝에 적어놓았다. 그 뒤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의 아들 민규식이 매물로 내놓아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쓰카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서예가이자 추사 작품의 최고 컬렉터였던 소전 손재형이 전쟁 중에 후지쓰카를 찾아가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으니 ‘세한도’를 양도해 주십사”하고 부탁했다. 그러나 후지쓰카는 자신도 추사를 존경하므로 이를 고이 간직하겠노라고 거절하고 이듬해 여름 후지쓰카는 경성제대를 정년하고 ‘세한도’를 비롯한 추사 관계 서화·전적을 모두 갖고 도쿄로 돌아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전은 나라의 보물이 일본으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고 몹시 안타까워 하다가 거금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가서 ‘세한도’를 넘겨 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소전은 뜻을 버리지 않고 매일 후지쓰카를 찾아가 석 달을 넘게 졸랐다. 그러다 12월 어느 날 후지쓰카는 마침내 소전의 열정에 굴복하여 맏아들 아키나오에게 당신이 죽으면 소전에게 넘겨주라고 당부했으니 안심하고 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소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로 양도해준다는 말만 기다리며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이에 후지쓰카는 선비가 아끼던 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보상도 받지 않겠다며 잘 보존만 해달라며 ‘세한도’를 건냈 다. 그리하여 ‘세한도’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당시는 미군의 도쿄 공습이 한창인 때였다. ‘세한도’는 국내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1945년 3월, 미국의 도쿄 대공습 때 후지쓰카의 서제가 공습으로 인해 추사의 서예 작품과 일부 유품을 비롯하여 많은 소장품이 소실되었다. 소전은 일본에서 돌아온 뒤 ‘세한도’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5년이 지나 이 사실을 위창 오세창, 추사 학술 연구의 제일인자 위당 정인보, 당시 부통령으로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던 성재 이시영 선생 세 분에게 알리고 발문을 받았다. 위창은 <세한도>에 발문을 쓰면서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소전의 열정적 행동을 이렇게 칭찬했다. “세계에 전쟁 기운이 가장 높을 때 소전 손재형 군이 훌쩍 대한해협을 건너가 많은 돈을 들여 우리나라의 진귀한 물건 몇 가지를 사들였는데 이 그림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이다. 폭탄이 비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어려움과 위험을 두루 겪으면서 겨우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감탄하노라. 만일 생명보다 더 국보를 아끼는 선비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잘하고 잘 했도다.” 그러나 훗날 소전 손재형이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선거 자금에 쪼들리면서 그의 수장품 중 겸재의 <인왕제색도>와く금강전도> 당시 삼성물산 이병철 사장에게, <세한도>는 사채업자에게 저당잡히고 말았다, 소전은 끝내 돈을 갚지 못해 소유권을 잃었다, <세한도>는 이후 미술품 수장가인 손세기에게 넘어갔고, 다시 그의 아들인 손창근씨 소장품에서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평소 근검절약하여 수집한 문화재들을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없이 기증하겠다는 손창근 선생은 ‘세한도’ 기부 이전에도 그동안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 1억원 기부, 2012년 경기도 용인 소재 200만평 산림 국가 기부(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7년 KAIST 건물 및 연구기금 총 51억원 기부 등 끊임없는 기부 활동으로 사회 공익에 이바지해왔다. 2代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와 사재를 국가와 교육기관에 기증하며 그 동안 보여준 故 손세기·손창근 선생의 그 큰 뜻이 ‘세한도’ 기증을 통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온전히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후손에게 다시 돌려주는 소임을 다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창근 선생의 기증 의사를 존중하여 <세한도> 기증과 관련된 모든 제반 업무 절차를 진행중이며, 공식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추어 <세한도>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국민 모두가 세한도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올 11월에 세한도를 공개하는 특별전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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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은허리띠 등이 묻힌 상태대로 출토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은허리띠 등이 묻힌 상태대로 출토
[서울문화인] 지난 5월 27일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瓔珞, 영락) 일부가 확인되었던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추가로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구슬팔찌, 은반지 등이 피장자가 착장한 상태 그대로 확인되었다. 이번에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가 대거 발굴된 곳은 황남동 120호분의 봉토를 파괴하고 축조된 120-2호분으로 발굴된 유물은 피장자가 머리부터 발치까지 전신에 착장하였던 금동관 등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로 피장자는 금동으로 만든 관(冠)을 머리 부분에 착장하였고, 굵은고리귀걸이(太環耳飾, 태환이식)를 양쪽에 하고 있으며, 금동신발을 신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신발을 착장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년∼19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며, 이렇게 피장자의 장신구를 착장 상태 그대로 전체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도 처음이다. 금동 달개 일부가 5월에 먼저 노출되었던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최종적으로 금동관이 확인되었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帶輪, 대륜, 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으며,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樹枝形 立飾, 수지형 입식) 3개와 사슴뿔모양 세움장식(鹿角形 立飾, 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이다. 관테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의 끝 부분에도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금동관의 관테에 장식용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첫 사례이다. 금동관의 관테에는 곱은옥(曲玉, 곡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金製垂飾, 금제수식)가 양쪽에 달려 있다.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데, 세움장식의 상단에서도 투조판의 흔적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 투조판이 관모(冠帽)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는지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금동관 아래에서는 금으로 제작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胸飾, 흉식)가 확인되었다. 그 아래에서는 은허리띠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되었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되어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되었는데, 왼손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키기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면 왼손 부분에서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으며,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 금동신발은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였다. 참고로 1960년 의성 탑리 고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키는 170㎝ 내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피장자의 성별 등을 포함해 추가로 더 밝힐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鐵鼎, 철정)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자료가 많아서 추후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논의가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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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암각화 주변서 발견된 4족 발자국 주인은 ‘코리스토데라’
울주 암각화 주변서 발견된 4족 발자국 주인은 ‘코리스토데라’
[서울문화인] 2018년 6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주변 학술발굴조사 중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4족 보행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이 신생대(마이오세 전기)에 멸종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인 것을 밝혀졌다. 당시,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난 18개의 발자국(앞, 뒷발자국의 평균 길이는 각각 2.94cm, 9.88cm)이 하나의 보행렬로 발견되어 주목 받았다. 이는 그동안 국내에서 보고된 4족 보행 척추동물의 발자국 화석들(공룡, 익룡, 거북, 악어, 도마뱀과 기타 포유동물의 발자국 화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였다. 연구결과, 전기 백악기 지층에 남겨진 이 발자국은 중생대(쥐라기 중기, 약 1억7천4백만 년 전)에 출현하여 신생대(마이오세 전기, 약 1천6백만 년 전)에 멸종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의 발자국으로 밝혀졌는데,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자 세계에서는 두 번째 보고다. 1995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처음 보고된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 화석(캄프소사우리크누스 파르페티/Champsosaurichnus parfeti)은 매우 불완전한 2개의 발자국으로 앞‧뒷발의 구분이 모호하고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인지도 불분명하다. 따라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앞발 9개, 뒷발 9개)은 완전한 형태로 남겨진 코리스토데라 발자국 보행렬 화석으로는 세계 최초이며,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코리스토데라의 보행 특성과 행동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화석으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에 발견된 코리스토데라 발자국 화석은 ‘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발자국’이라는 뜻의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로 명명되었다.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를 남긴 코리스토데라는 생존 당시 몸길이 약 90~100cm 정도로 추정되며, 앞‧뒤발가락이 모두 5개이고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뒷발에는 물갈퀴가 있어 물에서도 잘 적응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보행 특성에 있어서도 공룡이나 도마뱀과는 달리 악어처럼 반직립한 걸음걸이로 걸었다는 사실이 세계 최초로 확인되었다. 또한,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는 중국의 전기 백악기 지층에서 보고된 골격화석 ‘몬쥬로수쿠스(Monjurosuchus)’의 발 골격구조와 형태 및 크기가 일치하고 있어 유사한 종류의 코리스토데라가 남긴 발자국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로 우리나라 중생대에는 공룡‧익룡‧새‧도마뱀‧악어‧거북‧포유류 등의 척추동물들과 함께 새로운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가 서식하였음을 최초로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일원은 탁월한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 외에도 빼어난 자연경관과 중생대의 공룡‧새‧수생 파충류 화석 등 세계적인 자연유산이 공존하고 있는 복합유산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지난 2일 국제 저명학술지(SCI)인 Nature(네이쳐)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되었으며, 이번 연구 성과는 대전 천연기념물센터 전시관에서 2021년에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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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세계 근현대사
[전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세계 근현대사
[서울문화인]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사진보다는 분명 영상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찰나의 순간 이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그 결말은 존재하고 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에는 결말지어지지 않은 드라마처럼 각 개인마다 자기만의 결말을 상상하게 만든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위축된 상태에도 길게 줄이 늘어선 전시가 있다. 바로 세계 근현대사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는 저널리즘의 노벨상이라 불려지는 <퓰리처상 사진전>이다. 1998년, 2010년, 2014년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퓰리처상 사진전>은 일반적인 사전전과는 달리 전 세계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차례의 전시를 통해 서울에서만 유료관객 50만 명을 동원한 바 있는 인기 전시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는 설정이 아닌 전 세계의 이슈와 인간의 다양한 사회상과 삶을 그대로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내어 그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찾은 사진은 ‘슈팅 더 퓰리처’라는 타이틀로 1942년부터 지난 5월 4일 발표된 2020년까지 퓰리처상 사진부문의 모든 수상작 134점을 만나볼 수 있다. 국가와 언론은 그 운명을 함께 합니다. 언론은 능력 있고, 객관적이며,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국가의 미래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언론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조지프 퓰리처 (Joseph Pulitzer) 퓰리처상의 시작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가 컬럼비아 대학에 2백만 달러를 기부하며 시작되었다. 그는 이 기부금을 컬럼비아 대학 내 언론 대학 신설과 장학제도의 설립, ‘공공봉사, 공공윤리, 미국문학, 교육진흥을 장려하는 상’을 만드는 데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지프 퓰리처는 미국 대중 매체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장본인으로서, 미국의 언론을 대량소비의 수단이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그는 미국 오리건 주의 일간신문인 <더 월드(The World)>와 미주리 주의 지역신문인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St. Louis Post-Dispatch)>를 인수하기도 했다. 1917년 조지프 퓰리처의 유지로 제정된 퓰리처상은 ‘기자들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이다. 언론인은 물론, 문학인이나 음악인에게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가 주어졌다. 역대 유명 수상자로는 문학 · 희곡 · 음악 부문의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유진 오닐(Eugene O’Neill),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등이 있고, 언론 부문의 케빈 카터(Kevin Carter), 닉 우트(Nick Ut), 캐롤 구지(Carol Guzy) 등이 있다. 뉴욕 시 컬럼비아 대학에 위치한 퓰리처상 위원회는 매년 2천 명이 넘는 후보자 중 언론 분야의 14개 부문을 포함해 총 21개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4월에 발표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미화 10,000달러를 지급한다. 퓰리처상은 보통 매년 5월 말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상자들을 초대하여 오찬을 연다. 문학 · 희곡 · 음악 부문의 경우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해당 부문의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으나, 언론 부문의 경우 미국의 신문, 잡지, 뉴스 보도 사이트 등에 본인의 저작물이 등재되어 있다면 국적과 무관하게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사진은 관객들은 역대 수상작과 사진기자들의 인터뷰로 구성한 작품 설명 패널을 통해 세계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필름과 퓰리처상 주요 수상작을 미디어 아트로 구성한 영상 콘텐츠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 사진부문을 수상한 로이터통신 김경훈 기자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김경훈 기자는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규모 이민자 행렬인 카라반(Caravan)을 취재하며, 미국 국경지대에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모녀의 사진을 찍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제 3전시실에서 대중이 놓치고 있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안야 니드링하우스(Anja NiedringHaus)를 기념하는 특별전도 만나볼 수 있다. 안야 니드링하우스는 2005년 이라크 전쟁 당시 현장 취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성 종군기자로 2014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 도중 사망했다. <퓰리처상 사진전>의 제작자이자 큐레이터인 시마 루빈(Cyma Rubin)은 토니 영화제, 에미 영화제, 런던 영화제 수상 프로듀서이자 감독, 작가고 “퓰리처상 수상작은 전 세계의 사진기자들의 영감과 정신을 대변하며, 진실을 좇는 그들의 헌신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한국의 관객들에게 “우리는 곧 목격자입니다. 그렇기에 세계 곳곳에서 국제적으로 겪고 있는 일들을, 이를테면 코로나-19 사태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시민운동을 볼 것입니다. 그 최전방에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사진기자들입니다. 그들은 후추 스프레이, 최루 가스,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에 부상을 입고, 나아가 희생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는 용기를 가지고 헌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며 전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18일(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첨부된 사진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조치 이전에 찍은 사진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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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80호 추사의 세한도, 국가 품으로 기증되다.
국보 제 180호 추사의 세한도, 국가 품으로 기증되다.
[서울문화인] “심사숙고 끝에 내어놓았다.”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세한도’를 기증 의사를 전달하시며 한 말씀이다.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제180호 세한도가 국가 소유가 되게 되었다.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금전으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무가지보, <김정희필 세한도>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손창근 선생의 ‘세한도’ 기증은 2018년 11월 ‘손세기ㆍ손창근 컬렉션 202건 304점 기증’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로써 손창근 선생이 2005년부터 두 번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한 203건 305점의 문화재 전체를 기증하게 되었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 올곧은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최고의 문인화의 걸작이다. 유배시절 추사 김정희가 59세 때 그렸던 것으로 당시 추사가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달픔과 메마름을 건조한 먹과 거친 필선으로 사실적인 표현으로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에서 서화일치의 경지를 보여준다. 상당히 고된 유배생활을 근근이 버티던 그에게 ‘세한도’속 소나무는 인간으로서 힘든 시간을 견디어내는 추사 본인이었으며, 잣나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썼을 선비정신, 그 기개를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스승 추사를 위해 그의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은 새롭게 들어온 중국의 문물 자료를 모아 스승에게 보내주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김정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선물한 것이 바로 ‘세한도’이다. 이 선물을 받은 제자는 이를 청나라 문인 16인에게 선보여 그 작품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의 글을 받아 남겼다. 그리고 그 외에도 오세창, 이시영 등 여러 주요 인물들의 글이 함께 남아있어 세한도를 통해 그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그 마음과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세한도’가 국가 소유가 되기까지 다양한 소장자들이 있었다. ‘세한도’ 장축은 이상적 사후 이후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에게 넘어가 그의 아들 김준학이 이 시를 읽으며 공부했던 감상기를 두루마리 끝에 적어놓았다. 그 뒤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의 아들 민규식이 매물로 내놓아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쓰카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서예가이자 추사 작품의 최고 컬렉터였던 소전 손재형이 전쟁 중에 후지쓰카를 찾아가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으니 ‘세한도’를 양도해 주십사”하고 부탁했다. 그러나 후지쓰카는 자신도 추사를 존경하므로 이를 고이 간직하겠노라고 거절하고 이듬해 여름 후지쓰카는 경성제대를 정년하고 ‘세한도’를 비롯한 추사 관계 서화·전적을 모두 갖고 도쿄로 돌아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전은 나라의 보물이 일본으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고 몹시 안타까워 하다가 거금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가서 ‘세한도’를 넘겨 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소전은 뜻을 버리지 않고 매일 후지쓰카를 찾아가 석 달을 넘게 졸랐다. 그러다 12월 어느 날 후지쓰카는 마침내 소전의 열정에 굴복하여 맏아들 아키나오에게 당신이 죽으면 소전에게 넘겨주라고 당부했으니 안심하고 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소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로 양도해준다는 말만 기다리며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이에 후지쓰카는 선비가 아끼던 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보상도 받지 않겠다며 잘 보존만 해달라며 ‘세한도’를 건냈 다. 그리하여 ‘세한도’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당시는 미군의 도쿄 공습이 한창인 때였다. ‘세한도’는 국내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1945년 3월, 미국의 도쿄 대공습 때 후지쓰카의 서제가 공습으로 인해 추사의 서예 작품과 일부 유품을 비롯하여 많은 소장품이 소실되었다. 소전은 일본에서 돌아온 뒤 ‘세한도’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5년이 지나 이 사실을 위창 오세창, 추사 학술 연구의 제일인자 위당 정인보, 당시 부통령으로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던 성재 이시영 선생 세 분에게 알리고 발문을 받았다. 위창은 <세한도>에 발문을 쓰면서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소전의 열정적 행동을 이렇게 칭찬했다. “세계에 전쟁 기운이 가장 높을 때 소전 손재형 군이 훌쩍 대한해협을 건너가 많은 돈을 들여 우리나라의 진귀한 물건 몇 가지를 사들였는데 이 그림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이다. 폭탄이 비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어려움과 위험을 두루 겪으면서 겨우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감탄하노라. 만일 생명보다 더 국보를 아끼는 선비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잘하고 잘 했도다.” 그러나 훗날 소전 손재형이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선거 자금에 쪼들리면서 그의 수장품 중 겸재의 <인왕제색도>와く금강전도> 당시 삼성물산 이병철 사장에게, <세한도>는 사채업자에게 저당잡히고 말았다, 소전은 끝내 돈을 갚지 못해 소유권을 잃었다, <세한도>는 이후 미술품 수장가인 손세기에게 넘어갔고, 다시 그의 아들인 손창근씨 소장품에서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평소 근검절약하여 수집한 문화재들을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없이 기증하겠다는 손창근 선생은 ‘세한도’ 기부 이전에도 그동안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 1억원 기부, 2012년 경기도 용인 소재 200만평 산림 국가 기부(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7년 KAIST 건물 및 연구기금 총 51억원 기부 등 끊임없는 기부 활동으로 사회 공익에 이바지해왔다. 2代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와 사재를 국가와 교육기관에 기증하며 그 동안 보여준 故 손세기·손창근 선생의 그 큰 뜻이 ‘세한도’ 기증을 통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온전히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후손에게 다시 돌려주는 소임을 다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창근 선생의 기증 의사를 존중하여 <세한도> 기증과 관련된 모든 제반 업무 절차를 진행중이며, 공식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추어 <세한도>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국민 모두가 세한도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올 11월에 세한도를 공개하는 특별전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