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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로 팔려간 조선시대  병풍, 다시 새 생명을 얻다.
독일로 팔려간 조선시대 병풍, 다시 새 생명을 얻다.
[서울문화인] 2015년 미국 스펜서 미술관의 크리스 얼컴스 큐레이터가 미술관을 확장 수리하면서 수년간 닫혀 있던 수장고에서 한 낡고 부서진 병풍이 발견하였다. 언 듯 중국풍 그림이라 중국의 그림이라 오해할 수 있으나 이 병풍은 중국 당나라 무장이었던 ‘곽자의’의 생일잔치 장면을 그린 8폭의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로 조선 후기 궁중은 물론 민간에서 크게 유행하며, 많이 제작되었다. 이듬해 이 병풍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지원에 의해 보존처리 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후 2022년에는 미국 시카고미술관 소장 <곽분양행락도>가 80년 만에 보전처리를 위해 미술관 수장고를 나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지원으로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가 10개월간의 보존처리를 마치고 공개되었다. 그리고 3월 11일 또 한 점의 해외소재 <곽분양행락도>가 보존처리를 마치고 공개되었다. 이번에 공개된 <곽분양행락도>는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관장 레온틴 마이어 반 멘쉬, Léontine Meijer-van Mensch, 이하. 라이프치히박물관) 소장 유물로 2022년 11월부터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보존처리가 진행되었다.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노년의 분양왕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팔순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 회화이다. 그는 무장으로서 성공했고, 무병장수를 누렸다. 또한 슬하의 8난 8녀의 자손들도 번창하여 세속에서의 복을 마음껏 누린 인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조선 후기 사대부층과 왕실에서 부귀와 다복, 다산을 소망하며 소장하였다. 8폭 중, 4폭은 여성의 생활상이 2폭에는 남성과 상류사회의 생활상이 묘사되어 있는데 먼저 1-3폭에는 집안 풍경과 여인들,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4-6폭에는 잔치 장면, 7-8폭에는 연못과 누각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곽분양행락도’는 이 외에도 4폭, 10폭, 12폭으로 제작된 병풍도 있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곽분양행락도’는 중국에서는 명대부터 유행하였다. 이는 최치원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우리나라로 전해져 조선 후기에 이에 대한 기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처음에는 궁중에서 사용하다가 나중에 민간에서 길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장수와 복록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크게 유행하게 되었으며, 중국과 달리 곽분양(곽자의)가 충신 모습보다는 길상과 복락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많이 그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 스펜서 미술관 크리스 얼컴스 큐레이터에 따르면 ‘곽분양행락도’ 발견 당시 위에 ‘집안의 어른을 위한 연회, 천 명의 후손이 함께함, 한국 화가가 제작함, 이런 작품은 주로 혼인 축하용으로 제작하여 선물하는 것이 관습이었음’이라 적혀 있는 손글씨 메모를 확인하였다고 밝혔는데 이를 통해 혼례나 잔치 때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박물관의 <곽분양행락도>는 1902년 독일의 미술상 쟁어(H. Sänger)로부터 소장기관이 구입하여 소장되었으며, 쟁어는 일본의 소장가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8폭으로 제작되어 현존하는 병풍들과 대체로 구성과 배치가 유사하다. 하지만 박물관 측이 입수했을 당시에는 8폭 병풍의 형태였으나 나무틀이 뒤틀려 그림만 낱장으로 따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1면과 8면의 화면 일부가 잘려 나간 상태였다. 그러나 라이프치히박물관의 <곽분양행락도>는 지난 시카고미술관 소장 <곽분양행락도> 만큼이나 화면의 전체적인 구도, 제재를 화면에 구성하는 방식, 채색의 색감, 인물 묘법, 각종 장식적인 요소들의 표현 등을 보면 이 작품은 왕실에서 사용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격식과 높은 수준을 갖추고 있다. 이는 왕실에서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와 민간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의 격식이나 표현 방식이 확연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보전처리를 주도한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지난 시카고미술관 소장 곽분양행락도’의 보존 처리를 경험으로 새롭게 장황된 본래의 8폭 병풍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날 박 교수에 따르면 ‘비단 그림의 배접에는 닥나무 펄프를 사용한 한지 이외에도 대나무 펄프로 만들어진 배접지가 발견되었다’고 전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수입된 종이’라고 한다. 시카고미술관 소장 <곽분양행락도>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비단의 그림 뒤에 덧댄 배접지에서 19세기 후반에 작성된 다양한 조선시대 행정문서들이 확인되었다. 그중 ‘증산현갑자식남정안(甑山縣甲子式男正案)’(1864), ‘정묘사월군색소식(丁卯四月軍色消息)’(1867) 등 문서 일부가 확인되었다. ‘증산현갑자식남정안’은 1864년 평안남도 증산현에 거주하는 남정들의 군역을 조사한 호구 단자로 품관, 성명, 나이, 출생년 등이 수록된 지방 공식문서에 해당하는 문서로 이를 통해 <곽분양행락도>의 제작시기가 1867년 이후라는 사실이 함께 확인되었다. 라이프치히박물관의 <곽분양행락도>는 독일 현지 일반 공개 일정으로 인해 국내 일반 공개는 진행하지 않고 귀국길에 오른다. 한편, 현재 파악된 국내외 ‘곽분양행락도’는 총 47점으로 그중 국외소재 작품은 총 11점으로, 미국(8점), 독일(2점) 프랑스(1점)에 각각 흩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외 박물관.미술관 수장고에서 생명력을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지원 (재)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으로 세계 29개국에 24만6천304점의 한국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은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온·오프라인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유통 동향을 파악하고, 환수가 필요한 중요 문화유산을 찾아내고 있다. 더불어 재단에 따르면 2014년부터 현재까지 13개국 147개처 99,508점(2020년 기준)에 대해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7월, 문화재청 통계 발표 기준으로 공공과 민간의 노력으로 12개국에서 총 10,855점이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공공과 민간 영역의 환수 비율은 각각 92%와 8%로 주로 공공 영역에서 문화유산 환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환수도 중요하지만 해외 우리의 문화재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파악도 중요하다. 하지만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는 타 문화권은 물론 가까운 중국, 일본의 것에 비해 수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박물관 내에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함께 묶이곤 하는 중국과 일본은 해외에서 자국 문화를 알리는 데 문화재 분야를 꾸준히 지원해 왔기에 문화재 수량과 관련 분야 연구 인력이 탄탄한 반면, 한국문화재는 수량 면에서도 전담 큐레이터, 한국문화재 보존가 등 관련 인력 면에서도 상당히 부족하여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문화재는 보존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런 이유로 깊은 수장고에서 보관된 채 선보일 날만을 기다리는 문화재들이 많다는 현실이다. 특히 유물 가운데서도 종이나 직물로 이루어진 문화재의 경우, 시간에 따른 변형이나 훼손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 내에 적합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본래 모습을 영원히 잃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해외기관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앞서 중국, 일본의 것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이유로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외국에 소장된 유물을 반드시 환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만은 아니다. 보존처리 사업을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지키고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11일 라이프치히박물관의 <곽분양행락도> 보존 처리 공개현장에서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밝힌 것처럼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보존처리는 단순히 유물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단순 처리 지원을 넘어 연구자에게는 더 많은 연계 연구와 활용을 가능케 하고 국내외서 전시와 심포지엄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공유케 하여 우리의 문화재를 알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과 함께 2007년부터 해외 박물관, 미술관에 직접적인 보존처리(활용 및 홍보 포함) 지원하고 있으며, 또한, 국외소재문화재단을 통해 국내로 들여와 직접 복원처리를 진행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 첫 시행된 이 사업은 해마다 해외 한국문화재 보존·복원 지원을 공모·접수하고, 심사를 거쳐
[전시] 필립 파레노, 미술관을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변신시키다.
[전시] 필립 파레노, 미술관을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변신시키다.
[서울문화인] 리움미술관 옥상에 마치 통신탑을 연상하는 낯선 구조물이 눈에 띈다. 리움미술관의 새로운 전시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 《보이스(VOICES)》를 관람하려는 관람객은 이미 그의 작품과 첫 대면을 한 것이다. 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된 14M 크기의 타워구조물은 색다른 인지력을 가진 인공두뇌로 새롭게 탄생한 목소리인 <∂A>(2024)와 상호작용하며 전시의 모든 요소를 조율하는 필립 파레노의 신작 <막(膜)>이다. <막>은 센서 기능을 갖고 있어서,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지상의 모든 환경 요소를 수집된 데이터는 미술관 로비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상을 소개된다. 유입된 이 데이터는 사운드로 변환되기도 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자극하기도 하며 전시를 활성화시킨다. 이 소리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 운율을 활용한 새로운 신호를 해석하여 ‘단어’와 ‘문구’로 표현하는 동안에 탑의 양태를 기반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전시장 외부에서 이미 경험한 이 작품은 필립 파레노가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필립 파레노(1964년생, 프랑스에서 거주 및 활동)는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데이터 연동과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예술작품과 전시 경험을 재정의 하는 유기적인 방식을 탐구하는 작가로 여러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영상,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전시 형식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이 둘이 결합되는 영역을 탐구하다 보니 이러한 전시는 국내대중들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오는 전시는 아니다. 필립 파레노의 90년대 초기작부터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하는 대형 신작을 포함한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 이번 전시에 대해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공연과 같이 경험하는 전시이다. 시간에 따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전시의 작품은 미술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M2 B1 전시장에는 전시장 곳곳을 부유하는 물고기들(〈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은 마치 전시장이 자신의 집인양 돌아다니고 있어 관람객이 오히려 그들의 영역(어항)에 들어온 것 같다. 또한 동심 가득했던 눈사람(〈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1995-2023))은 더위에 전시장 바닥에서 일그러지고 있다. M2 1층은 여러 협업자들과 제작한 1990년대 - 2000년대 초기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프랑스 그래픽 디자인 듀오 M/M(Paris), 네덜란드 패션사진 듀오 이네즈 앤 비누드, 동료 작가 피에르 위그 등과 제작했던 10여 점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 희망과 디스토피아에 대한 사진과 영상 〈엔딩 크레딧〉(1999)과 이름도 역할도 없는 일본 망가 캐릭터 ‘안리’에 목소리를 부여해준 영상 작품 〈세상 밖 어디든〉(2000)은 대상이 여러 형태의 목소리로 가시화 되어 존립의 (불)가능성과 예술의 저작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며, 피에르 위그, M/M(Paris)와 다양한 매체의 협업 방식을 소개하는 조명 및 가구 설치 작품 〈루미나리에(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M/M)〉(2001)과 그래픽 포스터 〈안리: 유령이 아닌, 그저 껍데기(피에르 위그와 필립 파레노)〉(2000)를 만나볼 수 있다. 그라운드갤러리는 키네틱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깜박이고 움직이며, 관람객은 ‘섬광’을 인식하며 ’찰나’를 경험케 한다. <차양> 연작(2014-2023)은 기능이 부재하는 극장 차양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 작품 또한 미술관 외부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디지털 멀티플렉스 기술과 연동되어 사이키델릭한 풍경과 안무를 펼친다. 이와 함께 벽을 따라 〈깜빡이는 불빛 56개〉(2013)의 공연이 펼쳐지며 공간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움직이는 〈움직이는 벽〉(2024)은 마치 건물의 벽면이 떨어져 나와 움직이는 듯하다. 블랙박스는 영화관으로 변신,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환생시킨 영상 〈마릴린〉(2012)은 기계 장치를 통해 시선과 음성, 필체를 구현하여 유령처럼 허구의 눈속임으로 관객을 이끌며, <최초의 차양>(2016-2024)은 영화 상영이 끝나면 공간을 환하게 밝히며 막간을 알리는 사이니지 조명 역할을 한다. 잊고 있었다면 전시 제목이 《보이스(VOICES)》라는 것이다. 필립 파레노는 “사물은 관람객과 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소통하는 세계를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소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다. 전시장에는 작품마다 저마다 소리가 있다. 가까이서는 그 작품이 내는 소리를 또 어떤 곳에서는 여러 작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겹쳐서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다수의 목소리’는 작가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요소이자 작품과 전시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목소리(들)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다수의 목소리’를 하나의 공간으로 집결시키며 주체적 대상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한편, 전시기간 토크, 세미나와 함께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어린이 대상 <그림자 인형극 워크숍>이 열리며, 매주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자율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프로그램 참여 신청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8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점’과 ‘선’으로 이어가며 시.공간이 움직이듯 그려낸 도시의 야경, 윤협 《녹턴시티》
[전시] ‘점’과 ‘선’으로 이어가며 시.공간이 움직이듯 그려낸 도시의 야경, 윤협 《녹턴시티》
[서울문화인] 별빛마저 삼켜버린 도시의 야경, 화려함 보다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 마치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밤을 움직이는 차창에서 보듯 도시가 움직이고 있다. ‘점’과 ‘선’만으로 도시의 야경을 표현하고 있는 윤협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24일부터 롯데뮤지엄에서 선보이고 있다. 윤협(b.1982)은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 후 서브컬처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업을 시작했다. 스케이트보드를 기반으로 한 벽화, 라이브 페인팅, 그래픽 디자인, 음악 앨범 커버 작업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2010년 새로운 도시에 대한 꿈을 가지고 뉴욕으로 이주한 윤협은 2014년 패션브랜드 랙앤본(rag & bone)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뉴욕 맨해튼 하우스턴 가 소호에 벽화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뉴욕 예술계와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유니버설 뮤직 그룹(Universal Music Group), 바비브라운(Bobbie Brown), 유니클로(Uniqlo), 베어브릭(Be@rbrick), 허프(HUF), FTC, 나이키 SB(Nike SB) 등을 포함한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였다. 윤협의 작업은 나이키(Nike) 오레곤 본사와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뉴욕, 티파니앤코(Tiffany & Co.) 오렌지카운티, 페이스북(Facebook) 뉴욕, 와이덴 케네디(Widen&Kennedy) 뉴욕 등에 설치되어 있으며, LA와 뉴욕, 밀라노, 빌바오, 런던, 도쿄, 홍콩, 상하이 등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최된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다방면으로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오늘날 그를 상징하는 작업 방식은 2004년 라이브 페인팅을 하면서 그 공간과 순간의 감각의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점’과 ‘선’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 이후 점과 선은 작가 특유의 작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흥성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드러냈다. 작가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8년 정도 배웠다.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곡을 듣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더 즐겼다. 아마 당시 선생님은 싫어했을 것’이라 말한다. 작가는 ‘힙합, 펑크 등 다양한 인디펜던트 음악을 선호하고, 때론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이 가운데 재즈가 큰 흐름의 계획안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도시는 다양한 에너지로 가득찬 거대한 유기체로, 이를 표현하는 것은 도시 속 개성과 문화를 보며 직접 느낀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이번 전시 《녹턴시티》의 녹턴(nocturne)은 ‘밤’이라는 시간에 영감 받은 예술을 의미한다. 밤은 기억의 조각들을 상기시키며, 낮에는 보이지 않던 여러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시간이라 작가는 말한다. 모든 것이 멈춘듯한 고요한 ‘밤’, 《녹턴시티》는 도시와 작가 사이 무언의 대화 한 장면이자, 뉴욕에 사는 이방인으로서의 낯선 시선을 그대로 담아냈다. 밤의 옷을 입는 도시가 주는 적막함 그 고요하고 생경한 장면을 즉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시각언어로 조합, 선의 리듬과 색상의 화음은 관람자로 하여금 청각적 경험을 부여함과 동시에 21세기 시각 미술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은 맨해튼의 야경을 그려낸 16미터의 대형 파노라마 작품 <Night in New York>(2023)이다. 작가가 자전거로 브루클린에서 베어마운틴까지 왕복200km를 달리며, 허드슨 강에서 바라본 야경이 마치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보는 듯 했다고 회상하는 이 작품은 허드슨강 수면 위에 반사되는 도시 불빛을 보며,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을 떠올리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베어 마운틴에서 돌아오는 길 On the Way Back from Bear Mountain>(2023)은 베어 마운틴 정상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기록한 것으로, 작가가 브루클린 자신의 집에서부터 뉴욕 동부에 위치한 베어 마운틴까지 약 20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왕복한 순간을 다섯 개의 캔버스에 시간의 흐름 순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해가 질 무렵 주황빛으로 물든 가을 단풍 사이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하산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점점 어둠이 짙게 깔리는 화면에는 앞 자전거의 후미 등과 자동차 불빛에 의지하며 조지 워싱턴 대교 위에서 맨해튼으로 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색상의 자유로운 선들이 펼쳐지는 다음 장면에서는 도심 속 화려한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 사람들의 에너지가 가득한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사이를 질주한다. 이어서 마지막 장면에는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와 브루클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모습을 표현하며 긴 하루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번 서울에서 전시를 위해 고향을 찾아 서울에 대한 감정을 그려낸 <Seoul City>(2023), 런던에서 개인전 개최 후 방문한 파리의 기억을 표현 <Walking by the River>(2023)까지 뉴욕, 서울, 런던 등 다양한 도시의 야경을 그려낸 작품뿐만 아니라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DIY(Do It Yourself)문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한 작품과 회화에서 조각으로 탄생한 <저글러(Juggler)>와 새롭게 발전시킨 <리틀 타이탄(Little Titan)> 시리즈를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회화 작업 방식인 ‘점’과 ‘선’이 조각으로 발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스케이트보드는 윤협의 작품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작가는 9세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1995년 중학생 윤협은 이태원 스케이트보드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해외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의 로고나 페이지를 콜라주하고 드로잉하기 시작한다. 당시 스케이트보드 시설이 없어 벽돌이나 사물들을 모아 직접 스케이트보드 기물을 창작했다. 이러한 DIY 방식으로 버려진 물건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음악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박스 마스크도 디자인했다. 작가는 창작의 과정과 스케이트보딩은 정신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무언가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와 같은 인내력이 그 공통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오래된 스케이트보딩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윤협이 손으로 직접 빚어 도자기로 만든 자신만의 캐릭터 <저글러>와 함께 공상과학 속 로봇의 형태를 띈 새로운 캐릭터 <리틀 타이탄>은 그리스 아테네의 바위 지대에 있는 성과 요새, 전설 속 유적지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감정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작가의 호기심과 상상력으로부터 탄생한 저글러와 타이탄 시리즈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소망과 소중한 추억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흔히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가 국내 미술관에서 개인적으로 가지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롯데뮤지엄의 윤협 작가의 개인전은 신선함을 넘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롯데뮤지엄은 마지막 섹션에서 윤협의 작품을 미디어로 제작하여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와 함께 윤협 작가에게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 : 윤협>이 마련되었다. 2024년 3월 1일(금) 14시 롯데월드타워 31층 오디토리움에서 윤협 작가와의 대담이 진행된다. 김찬용 전시해설가가 사회를 맡아 윤협 작가와 함께 작품과 예술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며, 매일 3회(11시, 14시, 16시) 전문 도슨트가 전시장에서 무료로 전시를 해설해 준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18,000원, 청소년 15,000원, 어린이 12,000원이며, 만 4세 미만은 무료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관람권이 최대 40% 할인된 가격에 제공된다. 관람 시간은 매일 10:30-19:00이며 마지막 입장은 18:30까지다. 휴관일은 월 1회이며, 롯데뮤지엄 홈페이지에 별도 공지된다. [허중학 기자]
[갤러리] PKM 갤러리, 동시대 사진예술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최신작
[갤러리] PKM 갤러리, 동시대 사진예술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최신작
[서울문화인] “누가 보았을 때 이 사진은 이 작가의 사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아날로그식 사진을 찍었다. 이후 깨닫게 된 것은 사진도 기술적인 매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b. 1958)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면 변화무쌍하다. 그는 사진의 기술과 개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에 도전하며, 국제무대에서 그만의 독보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이행하고, 사진이 현실을 포착할 뿐 아니라 비가시적인 세계를 보이게 하는 매체로 전환되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잠재력과 한계를 가진 채 어떻게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키는지 탐색해 왔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사진에서 배포하는 사진으로’ 루프가 1970년대 후반부터 발표한 사진 시리즈는 고전적인 초상사진이다. 당시 사진에 대해 작가는 “당시는 찍으려고 하는 것을 조명, 의상 등 내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는 다큐스타일을 진행했다. 그러다 더 많은 사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과학, 야간투시 등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이후 작가는 인터넷에 떠도는 데이터를 수집·편집한 이미지, 인공위성 또는 매스 미디어에서 전송받은 형상, 알고리즘으로 생성한 디지털 작업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장르를 불문하고 25종류가 넘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40여 년 그의 작품세계는 20-21세기 현대 사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PKM 갤러리가 한국에서 20년 만에 선보이는 토마스 루프의 사진전 <d.o.pe.>는 작가가 카펫을 사진의 지지체로 처음 사용한 작업으로, 다채로운 프랙털(fractal) 패턴을 거대한(최장 290cm) 융단 위에서 황홀경처럼 펼쳐내었다. ‘프랙털’은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 1924-2010)가 1975년에 제시한 용어로 기본적인 형태요소가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반복적으로 증식되는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 자연 및 인공의 세계 모두에서 발견되고 있다. 프랙털이미지는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루프는 2000년대 초반 프랙털 구조의 다차원적인 아름다움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으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했고, 20년이 지난 시점인 2022년에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더불어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다. 사진예술이 테크놀로지와 불가분리한 관계임을 인정하는 그는 <d.o.pe.>에서 신기술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추출하고 이를 부드러운 직물 위에 심도 깊게 투사해냈다. 루프는 ‘d.o.pe.’라는 제목은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의 『지각의문』(The Doors of Perception, 1954)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 책은 인간이 화학적인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본 헉슬리의 자전 에세이로, 루프는 이번 작업에서 컴퓨테이션(computation)으로 산출한 이미지를 통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함으로써 이에 화답하였다. “내 작업은 사진과 회화의 중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선보이는 화면에는 잎사귀, 깃털, 조개껍질 등 주변의 익숙한 자연 형상으로 읽히는 동시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세한 세포, 광활한 우주의 예측 불가능한 현상을 연상하게 하며, ‘프랙털’의 사이키델릭한 가상공간으로 관람자를 빠져들게 한다. 이것이 사진인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그가 밝힌 망델브로의 수학과 헉슬리의 문학 사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과 만들어진 실제의 모호한 경계에서 사진의 경지를 다시금 개척한 루프의 이번 신작은 인식의 문 너머, 시각적인 초월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 같다. [허중학 기자] 토마스 루프는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 1931-2007)에게 사진을 사사한 후, 1980년대부터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1955-),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1944-) 등과 함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주요멤버로서 세계 사진계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뉴욕현대미술관, 런던 국립초상화박물관, 뒤셀도르프 K20,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타이중 국립대만미술관 등의 저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런던 테이트 모던,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바젤현대미술관 등에서 그룹전을 개최하였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의 대표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사진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워싱턴 D.C. 허쉬혼미술관, 파리 조르주 퐁피두센터 등을 포함한 전 세계 유수 미술기관에서 루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용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전
서용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전
[서울문화인] 표정 없는 얼굴로 정면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하고 있지만 컬러감이 주는 색체에 마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며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듯하다. 풍경, 역사, 신화, 자화상 등 폭 넓은 인문학적 주제를 회화로 풀어내는 서용선(1951~ ) 작가가 그의 다양한 작업 가운데에서 ‘자화상’만을 보여주는 전시를 인사동 포토하우스에서 선보이고 있다. 특히 작가는 사람-도시-역사라는 커다란 주제로 역사의 파편들을 다시 조립해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며 정치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기도 급성장하는 자본주의 도시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도시-역사는 서용선 작품 세계의 여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키워드라 말할 수 있다. 삶의 반영으로써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 “자화상은 실제로 그리는 순간 실패하는 그림이에요. 선을 긋는 순간부터 안 닮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은 절대 안 나와요. 그래서 화가로서 가장 비극적인 그림 중의 하나가 자화상인 거죠. 그런 점에서는 앞서 애기했던 시지프스 신화와 같은 점이 있어요. 실패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계속 그려나가는 거죠. 그래도 먼저 그린 그림과 다음에 그린 그림은 차이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뭔가가 담겨 나가는 느낌이 있어요.” (이영희, ‘화가 서용선과의 대화’ 중에서) 서용선 작가의 여러 주제 가운데 ‘자화상’을 빼놓을 수 없다. 작가는 미술대학에 합격하고 처음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라고 한다. 1995년 첫 해외 레지던시(Vermont Studio Center)에 참여한 이후 주된 작업 영역으로 발전했으며, 1980년대 청년기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매진해온 장년기까지 동시대의 시간을 거친 모습이 기록하고 있다. 캔버스 앞에 당당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의 자화상은 점차 세상을 응시하고, 대면하고, 좌절하며, 받아들이며, 또한 흥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 모습은 격렬하게 그리는 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이 해체되고 다시 결합되며 새롭게 탄생하였다. “자화상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갖고 있는 운명의 핵심이 자아이고, 이것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까… 인간 연구를 하는데 자화상은 기본 단위이다.”자신을 그림 그리는 노동자라 말하는 서용선은 이번 전시의 자화상은 변화하는 정체성이자 자기비판과 고백이 아닌가싶다. 이번 전시에는 1995년부터 2024년까지의 자화상을 그린 회화 작품 27점, C 프린트 8점, 입체 1점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는 오는 3월 17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호림박물관,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 사용하였던 토기 특별전
호림박물관,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 사용하였던 토기 특별전
[서울문화인] 신라와 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매장법과 체계적인 제사법이 등장, 확산하면서 새로운 토기가 나타난다. 새롭게 등장하는 토기는 항아리[壺], 그릇받침[器臺]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은 삼국시대 새롭게 등장한 토기들과 매장과 관련된 여러 유물을 통해서 죽은 이를 보내고 추모하던 의례의 중심에 섰던 항아리와 그릇받침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는 특별전 <공경과 장엄을 담은 토기>를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신사분관 3개의 전시실에서 소개되고 있다. 먼저 4층 제1전시실 ‘공경(恭敬)을 담은 토기_항아리’을 시작으로 제2전시실은 ‘장엄(莊嚴)을 더한 토기_원통모양 그릇받침’, 제3전시실은 ‘위엄(威嚴)을 받든 토기_화로모양, 바리모양 그릇받침’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제3전시실 마지막 공간에는 가상의 무덤을 조성하여 당시의 매장문화와 부장품으로 같이 매납된 토기의 모습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제1전시실 : 공경은 담은 토기_항아리 역사기록과 발굴성과를 보면 삼국시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장례를 후하게 지냈다.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생활할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무덤에 껴묻거리[副葬品, 죽은 자를 매장할 때 함께 묻는 물건]로 토기와 철기, 금은옥(金銀玉)으로 만든 장신구 등을 풍부하게 묻었다. 이를 보면 무덤이 사후세계의 거주지로 생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 묻고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상장의례(喪葬儀禮)를 행하였다. 신라와 가야 등이 고대국가로 발전하면서 덧널무덤[石槨墓·木槨墓, 지하에 구덩이를 파거나 지상에 덧널을 짜 놓고 그 위에 돌무지와 봉토를 덮어 봉분을 만든 무덤양식]과 같은 새로운 매장법과 체계적인 제사법이 등장하고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제사용 토기가 나타난다. 제사에 사용된 토기는 굽다리접시[高杯], 항아리[壺], 그릇받침[器臺]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굽다리접시와 항아리는 그 안에 동물 뼈, 생선 뼈, 조개껍데기, 곡식, 과일 씨 등의 음식물의 흔적과 쇠방울, 작은 칼 등 금속제품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 죽은 사람을 위한 공헌물(供獻物)을 담는 그릇이나 제기(祭器)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닥이 편평한 항아리를 주로 사용하였던 고구려와 달리 백제와 가야, 신라는 바닥이 둥근 항아리[圓底壺]를 많이 만들어 사용하였다. 5세기를 전후한 시기 이후에 가야의 항아리는 목이 길고 둥근 바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바닥이 둥글기 때문에 그릇받침과 짝을 이루어 출토된다. 신라의 항아리는 굽다리가 붙은 것이 많다. 항아리에 장식과 상징을 부여하는 톱니무늬[鋸齒文], 고리무늬[圓文], 줄무늬[集線文]와 같은 다양한 무늬를 새기고, 토우(土偶)를 붙여 장식하기도 하였다. [신라와 가야의 원저호,대부장경호 등 토기 항아리 30여점, 신라와 가야의 금관, 금동관, 금제귀걸이 등 장신구 40여점] 제2전시실 장엄을 더한 토기_원통모양 그릇받침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바닥이 둥근 항아리를 받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주로 지역의 우두머리[首長] 무덤에서 출토되며 화려한 무늬와 장식으로 꾸민 것이 많다.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으뜸덧널[主槨, 하나의 무덤 안에 있는 여러 곽(槨) 중에서 주인공의 주검을 넣은 곽]과 딸린덧널[副槨, 으뜸 덧널에 딸려 있어 대개 껴묻을 거리를 넣어 두는 곳]이 같이 있으면 주인공이 묻힌 으뜸덧널에, 딸린덧널이 없으면 주인공의 머리맡에 놓였다. 대부분 1점이 출토된 경우가 많지만 황남대총 남분, 부산 복천동 고분군과 같은 대형의 무덤에서는 여러 점이 나온 예도 있다. 그리고 무덤 근처 제사와 관련된 유구(遺構)에서도 출토된다. 이것으로 볼 때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대형 무덤의 껴묻거리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덤 주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기(祭器)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형의 크기와 엄정하고 화려한 장식은 제례 의식에서 장엄함을 더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양식이 다르다. 가야 양식은 각종 문양과 세로띠, 투창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그릇을 받치는 부분이 접시나 항아리모양이며, 굽다리가 바리[鉢] 또는 장고모양이다. 특히 대가야 양식의 원통형 그릇받침은 뱀 모양의 세로띠 장식을 붙인 것이 특징이다. 금관가야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몸통의 중앙이 공처럼 불룩하며, 아라가야의 원통그릇받침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돋을띠가 강하게 둘러지며 5세기말 이후 백제의 영향을 받아 장고모양을 하여 백제의 원통형 그릇받침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소가야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신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접시모양의 그릇받침부와 나팔처럼 벌어진 굽다리가 신라의 것과 비슷하다. 원통모양 그릇받침의 변화만을 보아도 백제와 신라가 이 지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였던 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 양식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은 그릇받침부가 곧게 밖으로 벌어지고 굽다리는 직선적인 사다리꼴이며 가야 양식의 원통모양 그릇받침에 비해 장식이 간략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각종 토우와 무늬로 장식한 것들도 보인다. [신라와 가야의 원통모양 그릇받침 40여점] 제3전시실 위엄을 받든 토기_화로모양, 바리모양 그릇받침 화로모양 그릇받침과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원통모양 그릇받침과 같이 바닥이 둥근 항아리를 받치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나 그 자체로도 그릇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놓이는 곳은 딸린덧널이나 묻힌 사람의 발치이며, 여러 점이 하나의 무덤에 부장된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대형 무덤뿐만 아니라 일부 중·소형 무덤에서도 출토되어 원통모양 그릇받침보다는 그 중요도에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로모양 그릇받침과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무덤의 껴묻거리로 사용되었으며, 무덤에 제사를 지낼 때의 제기나 제사를 지낸 후 무덤 주위에 공물을 바치는 등의 공헌품으로도 사용되었다. 듬직한 크기와 화려한 무늬 등으로 의례의 위엄을 더 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로모양 그릇받침은 앞 시기인 원삼국시대의 와질(瓦質)토기에서 기원한 것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인 3세기 후반부터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경주의 신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대가야 양식의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그릇받침부가 얕고 곡선적이며 굽다리는 팔자모양으로, 물결무늬와 솔잎무늬가 주로 새겨졌다면 신라 양식의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그릇받침부분이 깊고 직선적이다. 굽다리는 사다리꼴로 폭이 비교적 넓고 몸통과 굽다리에 물결무늬·문살무늬·줄무늬·톱니무늬·고리점무늬 등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야와 신라 모두 크고 높은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풍부한 껴묻거리를 같이 묻었다. 무덤의 규모가 커지고, 무덤을 만드는데 많은 인원과 물품을 동원하는 것은 그러한 장례 행위를 통해 권력을 과시하고 사회적 통합과 지배를 이루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2층 전시실의 마지막 공간은 가상의 무덤을 조성하여 당시의 매장문화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신라와 가야의 화로모양,바리모양 그릇받침 등 110여점] 전시는 5월 31일(금)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기준 10,000(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무료)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한국의 장례문화와 발효문화에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관찰
[전시] 한국의 장례문화와 발효문화에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관찰
[서울문화인] 노란색으로 염색한 직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직물 사이로 들어서면 익숙한 옹기와 옹기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새끼줄, 천장에는 국화가 달려있고 내부의 바닥에는 짚들과 그리고 그 사이사이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전시장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에 새롭게 설치된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계 브라질인이자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댄 리(Dan Lie, b. 1988 / 과거 작가명: 다니엘 리 (Daniel Lie))의 <상실의 서른 여섯 달>이라는 작품이다. 댄 리는 박테리아, 곰팡이, 식물, 동물, 광물, 영혼 및 선조와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장소와 시간 특정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로 그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물성의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이것이 인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런 경험을 통해서 관객과 소통을 한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관람객에게 어떻게 느꼈는지를 여쭤본다고 한다. 한국 첫 개인전을 위해 방문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리서치를 하였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여 만난 짚풀공예 장인,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정관 스님, 전 국립민속박물관 이관호 과장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고 밝히면서 그는 그 가운데 특히 삼년상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한국의 삼년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침 작가의 아버지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째(1,000일) 되는 날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더해지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댄 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은 부패와 발효, 즉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는 것이다. 댄 리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삼베, 면포, 국화와 같은 한국 전통 장례문화에서 온 모티브들을 비롯하여 댄 리가 조성한 생태시스템에는 벌써 파릇하게 자라난 새싹 이외에도 버섯종자가 뿌려져 있다. 그리고 쌀과 누룩이 발효되고 있는 옹기들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전시가 계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형태가 바뀌며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게 된다. 또한 부패와 발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곰팡이, 박테리아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은 이 순환과정을 촉진시키는 협업자로 활약을 하게 된다. 중정에 위치한 한옥 안에서도 댄 리의 또 다른 생태시스템이 펼쳐지고 있다. 부정을 막기 위하여 걸어 놓는 금줄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는 새끼줄, 국화 그리고 옹기를 사용하여 대들보에서 내려오는 설치작업이다. 이 작품 또한 점점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품은 열린 해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유일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전시가 끝나는 5월 도시의 건축물 안이라는 환경에 어떤 생명이 태어나고 또 어떻게 소멸하는지 그 모습이 어떨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댄 리의 변화하는 작품들은 5월 12일까지 진행되며, 3월 7일까지는 무료로 만나볼 수 있고 이후는 유료 관람으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보스턴미술관 소장 14세기 고려시대 사리와 사리구, 100년 만에 우리 땅을 다시 밟게 된다.
[문화재] 보스턴미술관 소장 14세기 고려시대 사리와 사리구, 100년 만에 우리 땅을 다시 밟게 된다.
[서울문화인] 보스턴미술관 소장 14세기 고려시대 사리와 사리구가 기증과 임시 대여 형식으로 100년 만에 우리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해당 사리구의 정식 명칭은 <은제도금라마탑형 사리구(銀製鍍金喇嘛塔形 舍利具)>로, 원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던 14세기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정수를 담은 불교공예로 평가받고 있다. 사리구 내부에는 <은제도금팔각당형 사리구(銀製鍍金八角堂形 舍利具)> 5기가 안치되어 있다. 사리구에 적혀있는 명문에 따르면 각각 석가모니불 5과, 가섭불 2과, 정광불 5과, 지공선사 5과, 나옹선사 5과의 사리가 담겨있었지만, 지금은 석가모니불 1과, 지공선사 1과, 나옹선사 2과 등 총 4과의 사리만이 현존하고 있다. 고려 말 나옹선사 입적 이후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스턴미술관에서는 양주 회암사를 원 소장처로 추정하고 있다. * 가섭불(迦葉佛)은 석가모니 이전에 출현한 과거칠불(過去七佛) 중 6번째의 부처이며, 정광불(錠光佛)은 석가모니에게 미래에 성불하리라고 예언하였다는 부처이다. * 지공선사(指空禪師, ?-1363)는 고려시대 양주 회암사를 창건하는 등 활동한 인도 출신의 승려이며,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는 고려시대 지공선사로부터 불법을 배우고, 공민왕의 왕사(王師)로 활동한 명승이다. 보스턴미술관 소장 사리 및 사리구 관련 논의는 지난 2009년부터 약 15년간 지속돼온 현안이었다. 2월 5일(현지시간) 최응천 문화재청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하 조계종) 문화부장 혜공 스님이 미국 보스턴미술관(관장 테이틀바움, 이하 미술관)을 방문하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리 및 사리구의 국내 반입을 위해 미술관 관장 등 주요 관계자와 협상을 추진하였다. 이번 협상에서는 사리는 사리구와 별개로 불교의 성물로서 2024년 부처님오신날(음력 4.8./양력 5.15.) 이전에 조계종에 기증되고, 사리구는 상호 교류 전시 및 보존처리 등을 위해, 미술관 내부 검토를 거쳐 일정 기간 동안 임시 대여하는 것을 조속히 추진하기로 미술관 측과 합의했다. 이번에 기증되는 사리는 한국 불교사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고려시대 지공선사와 나옹선사의 사리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사리구의 임시 대여 추진은 국외로 반출된 지 약 한 세기만에 첫 국내 반입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전시를 통해 우리 국민이 그 우수함을 최초로 향유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은 사리구가 국내 임시 대여가 되는 동안 보존처리를 추진할 예정이여서 고려시대 공예품에 대한 국내 학술연구 진흥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사리 기증 및 사리구 임시 대여 추진이라는 협상 성과를 통해, 사리는 불교의 성물(聖物)로서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되돌아가고, 사리구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문화유산으로서 약 10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와 국민에게 공개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조계종, 보스턴미술관과 긴밀한 업무협력 하에 남은 과제의 일정들을 착실히 추진해나감과 동시에, 이번 계기로 보스턴미술관과의 상호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계종 문화부장 혜공스님은 “부처님과 선사들의 진신사리(眞身舍利)는 불교의 성물이자 존귀한 예경의 대상으로, 환지본처의 의미를 새기며 사리를 최대한 존중하여 여법하게 모실 것”이고, “보스턴미술관 측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 깊이 감사드리고 문화재청을 비롯한 정부 측의 적극적인 노력과 지원에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 [허중학 기자]
[전시] ‘정상’과 ‘비정상’ 고착화된 개념으로부터의 자유, 국제갤러리, 김홍석 개인전
[전시] ‘정상’과 ‘비정상’ 고착화된 개념으로부터의 자유, 국제갤러리, 김홍석 개인전
[서울문화인] “서구의 미술은 정상적인 미술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서구적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 사실주의, 인상주의.., 서구의 미술은 모두 형식이다. 서구의 것을 비서구인이 모방을 하려는 과정에서 비서구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서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주변인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서양에서 말하는 물질 그 주변에서 얘기했다.”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범주를 넘나들며 사회, 문화, 정치, 예술에서 나타나는 서구의 근대성,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비서구권의 독립적 저항 간에 발생하는 애매모호한 인식의 질서를 비판해온 김홍석(b.1964) 작가가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를 타이틀로 서울점(K2, K3)에서 진행하고 있다.(3월 3일까지) 특히 이번에 소개되는 33점 가운데 5점을 제외하고 모두 2024년 신작이다. 앞서 말한 작가의 말을 짧은 시간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말하고 하는 것은 ‘뒤엉킴(entanglement)’이라 한다. 그러나 ‘뒤엉킴’은 오히려 작가가 아니라 어쩌면 이를 이해하려는 관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내려놓고 보아도 작가의 세계관을 보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예술은 각자의 생각으로 읽는 것이 아닌가... 작가의 생각대로 보려면 K2 1층, 2층 그리고 K3로 여정을 따라가 보자. “뒤엉킨 세계는 이원론적 사유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실천의 시작이다. 아마도 현대성은 곧 모든 것의 ‘뒤엉킴’일 것이다.” – 김홍석 ‘뒤엉킴’ 그 속에 보편적 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작가가 말하고 하는 ‘뒤엉킴’은 K2 1층에서 잘 드러나는 듯하다. 눈앞에 펼쳐진 작품에 시선이 빼앗겨 서너 걸음 걷다보면 발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느껴져 언능 발을 빼면 그 존재가 흔히 건물 내부에 놓여있는 양탄자다. 무언가 실수한 것이 아닌가.. 느껴지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 발 밑의 무게〉라는 이 작품은 의도적인 것이니 놀라지 않아도 된다. 바닥에 놓인 카펫 조각, 돌멩이를 든 손, 하이힐 높이로 제작된 슬리퍼, 조커의 얼굴에 고양이 몸을 한 조각, 픽토그램처럼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된 불꽃 조각, 다섯 손가락을 표현했다는 <다섯 손가락>, 찌그러진 별... 단순 시각적으로도 정형, 비정형이 뒤엉겨 친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을 선사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조커의 얼굴에 고양이 몸을 한 조각은 조커가 고양이 털옷을 입은 것인지, 고양이가 조커의 탈을 쓴 것인지 분간할 수 없으며, 돌, 손, 카펫 등은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에도 불구, 그 모습과는 모순되는 성질의 재료로 구성되었다. 실제 무거워야 하는 돌멩이는 레진을 사용해 매우 가볍게, 가벼워야 하는 카펫은 브론즈를 활용해 아주 무겁게 제작되었다. 작가는 실재-허구, 정상-비정상, 옳고-그름의 대립항들이 뒤엉킨 상태, 즉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진정한 현대성, 즉 보편적 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완전한 자유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착화된 개념으로부터의 자유', 동서양의 ‘뒤엉킴’ K2 2층에는 1층에서와 달리 한국인에게는 낯설지 않지만 1층의 작품과 비교하면 왠지 낯설다. “나는 곧 60세가 되지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동양 미술을 실습할 기회가 없었다. 미술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의 산업, 사유의 혁명이 일어난 후 서구는 모든 종류의 산업과 사유체계를 정립했다. 독일 유학 시절, 내 눈을 뜨게 한 교수의 질문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서구 미술에 더 깊숙이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내게 한 조언은 “너는 한국적 현대미술을 보여주어야 한다.”였다. (…) 그러나 나는 한국적 정체성보다는 사회적 문제와 미술의 효용과 역할에 관심을 쏟고 싶었다.” 이 공간의 작품은 작가의 최근작 가운데 올해 제작한 ‘사군자’라 명명한 작품이다. 작가는 “내 인생의 첫 번째 사군자 회화이다.”고 말하는 이 작품은 총 4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시 배열을 동양적으로 하지 않았다. 또한, 사군자 페인팅을 필두로 연꽃, 대나무, 잡목 등을 그린 회화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사군자의 묵향 대신 돋보이는 두터운 마티에르(matièe)는 동양의 군자(君子) 정신과 태도를 서구 모더니즘의 개념으로 지워버리고, 현대 동양인의 정신분열적 물질성을 보여준다. 동양화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그에 대항하는 개념인 서양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아크릴과 캔버스를 재료로 한지가 아닌 캔버스에 사군자를 그려내었다. 미술관 지붕을 뚫고 떨어진 거대한 운석 국제갤러리 K3에서는 가끔 관람객이 상상할 수 없는 연출로 놀라움과 동시에 즐거움을 준다. 이번 K3에는 그동안 보아온 작품들에 비해 유쾌한 광경을 마주한다. 전시장 중앙에는 천장을 뚫고 떨어진 거대한 운석을 마주하게 된다. 중력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깨진 모습의 이 운석 사이로는 지구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불문율적으로 합의한 ‘별’이라는 기호를 띤 두 개의 물체가 관찰된다. 작가는 한때는 별이었으나 현재는 하나의 돌에 지나지 않는 본체와, 그 내부에 보이는 별의 표상의 조화를 통해 ‘실재적 존재’와 ‘해석적 존재’의 개념을 뒤엉키게 만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운석 앞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것인지 아님 이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인지 책상 위에는 ‘A STAR IS BORN’ 글씨와 별이 떨어진 모습을 바라보는 남여의 그림이 놓여 있다. 한편, 전시장 내부에는 공공장소에서 흔히 들리는 음악에서 착안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작가는 어릴 적 백화점에서 들었던 조용하면서도 세련된 음악의 존재를 인식한 후로 줄곧 기차역, 공항, 쇼핑몰과 같은 공적 공간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중적인 배경음악은 관람객의 무의식에 도달해 갤러리가 고급스럽고 특수한 곳이 아닌 공공적 공간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한다. [허중학 기자]
[전시] 파리지앵 작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그려낸 1930년대 아름다운 파리로 여행
[전시] 파리지앵 작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그려낸 1930년대 아름다운 파리로 여행
[서울문화인]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파리를 문화 예술의 도시 이미지로 크게 확산시켰다. 1851년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지만 이후 파리에서는 1867년부터 1900년까지 매 11년마다, 즉 1867년, 1878년, 1889년, 1900년에 만국박람회가 개최되면서 산업뿐만 아니라 새롭게 들어서 건축물은 도시의 풍경을 바뀌게 하면서 많은 예술가들도 몰려들었다. 이렇게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려낸 파리의 모습이 현재까지 파리를 문화예술의 도시의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높이 솟은 건물, 흩날리는 눈송이, 그 아래 올망졸망 들떠 있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지만 모두들 행복해 보인다. 파리지앵(Parisien)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그려낸 파리의 풍경은 마치 어린 시절 접하던 아름다웠던 풍경으로 가득한 연말카드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1930년대 후반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대였으니까요. 물론, 저에게도 역시 아름다운 시기였습니다. 저는 행복한 어린아이였으니까요. 제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살았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최고의 시작과도 같았습니다.” 미셸 들라크루아 제2차 세계대전 전 193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파리의 풍경과 생활상을 그리다. 미셸 들라크루아(b. 1933년 파리)는 열 살부터 그림을 그렸다. 마흔 살이 된 1970년대부터 어느 날 불현듯 파리의 옛 풍경을 그려내며 지금의 화풍을 완성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상처를 남긴 전쟁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는 가족에게 전해들은 얘기와 또 자신이 겪은 전쟁 이전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섞어 자신만의 옛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그려오고 있다. 미셸은 교육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부족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은 농민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어머니와 나비를 채집하거나 나무 아래서 노을을 바라보는 등 많은 추억들이 가득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학생 시절, 고등학교가 있던 파리의 거리를 수 킬로미터씩 걸어 다녔고, 이 당시 걸어 다니며 본 풍경은 그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가 살았던 몽파르나스에서 학교가 있던 노트르담 성당 주변까지의 거리를 매일 걸으며 보고 축적된 풍경들이 30년 후, 그가 40대가 되어서야 캔버스 속에 살아날 수 있었다. 미셸의 아내 바니 들라크루아(Vany Delacroix)는 “미셸의 그림의 모든 것은 그의 정신적인 유산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그가 그려낸 풍경은 1930년대에 대한 사진이나 기록이 아니라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파리에 대한 인상에 가까우며, 그런 인상들의 모음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오리지널 페인팅 200점 미셸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통해 1930년대 파리로 여행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특별전에는 미셸 들라크루아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파리를 기억하듯 반대편의 우리들에게도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듯 많은 관람객들이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에 빠진 듯하다. 전시는 그가 사랑한 도시 ‘파리’와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파리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을 그려낸 오리지널 페인팅(200점 이상)은 그가 75세부터 90세(2008~2023년)까지 그린 작품들을 통해 1930년대 파리로 안내한다. 특히 작가는 대작보다는 작은 작품들 속에 이야기를 가득 담아내었다. 하지만 작은 그림 속에서도 소소하고 재치 있는 삶의 순간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흰색얼룩무늬의 강아지는 그가 어린 시절에 기르던 강아지 ‘퀸(Queen)’이다. 작품마다 등장하는 퀸의 존재 그 곁에 있는 대상, 때로는 소년 시절 작가의 모습 혹은 어른의 모습을 발견하는 묘미가 있다. 들라크루아는 작품을 완성했다 생각하면, 퀸을 그리고 서명을 한 후 작품을 마무리를 한다고 한다. 전시는 마차를 타고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 하는 콘셉트로, 각 섹션을 정거장으로 구성되었다. 파리의 명소를 지나 파리지앵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 파리를 수놓은 낭만적인 연인의 모습, 겨울을 맞이한 파리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이야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고향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순간들을 각각의 정거장으로 표현하였다. “저는 긴 삶의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저의 소박한 그림들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처럼 큰 만족, 몇몇 기쁨 그리고 많은 잊을 수 없는 슬픔, 때론 짊어지기엔 무거운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림만큼은 언제나 저를 놓지 않았어요, 저에겐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M.D 마지막 에필로그로 90세를 맞이한 작가가 그린 최신작들을 만나며,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작가의 마지막 다짐을 만나게 된다. 아울러 전시장 오른쪽 공간에서는 작가의 판화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2448 Artspace가 주최하고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3월 3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