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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일제가 훼철한 경복궁 월대 복원 위한 단서 확보... 오는 10월까지 복원하겠다.
문화재청, 일제가 훼철한 경복궁 월대 복원 위한 단서 확보... 오는 10월까지 복원하겠다.
[서울문화인] 2019년 1월,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현재 단절된 광화문광장을 북악산~한강으로 이어지는 역사경관축을 회복하겠다는 주요 골자로 한 광화문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8월,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는 광장으로 편입돼 광장 규모가 3.7배로 확장되고, 해치광장 등 세 곳으로 단절돼 있던 지하공간은 하나로 통합되어 시민을 위한 또 다른 광장이 생겼다. 특히 광장 전체 면적의 약 4분의1에 해당하는 9,367㎡가 녹색 옷을 입고 공원 형태의 광장으로 변모하였다. 당시 광화문광장 뿐만 아니라 광화문 일대의 훼손된 역사를 복원하고자 광화문 앞 월대를 복원해 경복궁의 위용을 되살리고 월대 앞을 지켰던 해태상은 원래 위치를 찾아 광장 쪽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을 밝혔다. 4월 25일,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먼저 월대 위로 일제강점기 때인 1917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전차 철로 일부가 발견되어 이미 시민에게 공개된 바가 있다. 이 철로는 1966년 세종로 지하도가 생기면서 땅속에 묻힌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후 문화재위원회는 전문가 회의와 논의를 거쳐 철로의 일부 구간을 경기 의왕시 철도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이날 문화재청 출입 기자를 대상으로 한 공개에서는 광화문 월대를 중심으로 설명회가 진행되었다. 밝혀진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cm, 너비 30~50cm, 두께 20~40cm)을 이용하여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음이 확인되었다. 월대의 남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계단을 조성하였는데, 그 중 어도(御道, 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계단의 좌·우측 양단을 장식하거나 마감하기 위해 놓이는 경사 부재)을 이용하여 동·서 계단과 분리하였다. 특히, 어도계단지의 경우 전차선로에 의해 일부 훼손되었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계단면석 또는 소맷돌을 놓기 위해, 지면에 놓이는 받침 돌)이 확인되어 월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월대(越臺, 月臺)는 궁궐의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로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덕수궁 대한문 등에서 확인되는데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른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고 한다.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의 기록과 1890년대 이후로 전해지는 사진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구조물이다. 그러나 광화문 월대는 태조(1395년, 태조 4) 때 건립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실록 권 51, 1431년 3월 29일에 따르면 <예조 판서 신상이 아뢰기를, “광화문(光化門) 문밖에 본래 섬돌이 없어서 각품 관리들이 문 지역까지 타고 와서야 말에서 내리오니, 이는 매우 타당치 못한 일입니다. 또 이 문은 명나라 사신이 출입하는 곳으로서 … 돌을 채취하여 계체(階砌)를 쌓고, 양쪽 곁으로 둘레를 쌓아야 하며…”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바야흐로 농사철에 접어들었는데, 어찌 민력(民力)을 쓰겠는가.” 하고 윤허하지 아니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광화문 월대는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중건공사 개시: 1865년, 중건공사 완료: 1867년 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의지로 다시 중건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경복궁 영건일기」 1866년 고종 3년 3월 3일(임술)자의 기록에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둔 잡토를 지고 왔는데, 실로 4만 여 짐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발굴된 월대 주변에는 민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270여 년 동안 경복궁이 방치되면서 경복궁 앞 대로에는 육조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의정부 앞에도 민가가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원장 김연수)에 따르면 이번 조사를 통해 고종년간 월대 축조 이후 크게 4단계의 변화과정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 1단계에서는 월대 축조 당시로 남쪽에 경계가 나누어진 3개의 계단이 존재했으며, 당시 월대의 평면형태는 역철자형이었다. ▲ 2단계에서는 중앙의 어도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화되고, ▲ 3단계에서는 경사로의 범위가 확장되고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되었으며, 이 시기에 처음으로 단선(외줄) 형태의 전차선로가 설치됐다. ▲ 4단계에서는 전차선로의 복선(겹줄)화로 월대가 파괴되면서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광화문의 이건과 함께 도로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경복궁 월대는 1923년 사진에는 등장하지만 이후 전차선로의 단선 및 복선화로 월대가 훼철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외에도 기단석 하부에 여러 매의 지대석을 놓고 적색점토로 보강한 기초시설, 철편과 점토, 석회를 이용한 장대석 사이의 수평맞춤, 장대석의 밀림 방지를 위해 점토와 깬 돌을 섞어 보강한 뒷채움방식 등을 통해 당시 조선시대의 건축기법도 확인하였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정성조)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난간석, 하엽석 등)를 재사용하고, ▲ 문화유산수리장인 등의 전문가와 함께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하여 월대 복원하여 오는 10월, ‘광화문 월대 복원 기념행사’를 궁중문화축전 등과 연계하여 개최할 예정이라 밝혔다. 또한, 서울시와의 업무협조체계를 지속 유지하여 월대 주변부 정비사업(삼군부 및 의정부 터 일부)과 함께 현재 분리되어 있는 동십자각도 향후 연결하는 복원도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동화속 토끼와 즐기는 체험형 전시, 국립민속박물관 《달토끼와 산토끼》
[박물관] 동화속 토끼와 즐기는 체험형 전시, 국립민속박물관 《달토끼와 산토끼》
[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 어린이박물관 상설전시실 1관이 4월 26일(수)부터 어린이들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자 옛이야기 속에서 지혜롭고 꾀가 많은 토끼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동화를 바탕으로 한 《달토끼와 산토끼》 전시관으로 새롭게 꾸며져 어린이들에게 선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아이들에게 익숙한 소재로 전시를 꾸며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번 전시는 귀여운 이미지로 아이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는 ‘토끼’를 소재로 한 동화를 바탕으로 꾸며졌다. 전시는 옛 그림이나 동요에도 자주 등장하는 방아를 찧는 달토끼가 신비한 약초를 찾아 지구를 내려오면서부터 시작된다. 1부(어서와! 숲속 마을에 온 걸 환영해)에서는 추석날 잔치를 열어 다함께 떡을 만들어 먹는 풍속을 소개하며 달토끼, 산토끼와 떡방아를 찧어보는 디지털 체험, 떡살을 찍어보는 아날로그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2부(약초를 찾으러 함께 가보자!)는 토끼의 언덕과 강, 숲속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인형 조형물 속에서 다양한 놀이를 통해 <토끼의 재판>, <토끼와 거북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3~4명의 친구들이 함께 힘을 모아 호랑이를 웅덩이에 빠트리는 게임은 토끼의 지혜와 용기, 친구들 간의 협동심을 배울 수 있게 꾸며졌다. 3부(안녕~ 다시 달나라로)는 정월대보름날 연을 날리며 액운을 쫓는 풍속과 함께 달토끼가 타고 갈 연을 친구들과 협동하여 만들어 날려보는 라이브 스케치 체험’(어린이가 직접 그린 그림이 실제로 영상에 구현되는 디지털 인터랙티브)으로 꾸며졌다. 특히 전시장 곳곳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인형으로 제작한 달토끼와 산토끼, 숲속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전시의 공간은 이전 주제에 따라 구분된 공간이 아닌 트인 공간으로 어린이와 동반한 부모님이 아이들의 놀이를 한 눈에 관찰 할 수 있게 조성되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체험과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마련되었다.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토끼와 관련한 3가지(토끼와 거북이, 달토끼, 토끼의 재판)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해 풀어낸 전시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토끼의 지혜와 용기, 아이들이 뛰어놀면서 친구들과 협력하는 협동심을 배울 수 있게 꾸몄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 구성은 토끼에 관련된 우화를 바탕이 되고 있지만 전시를 위해 새롭게 창작된 동화책 <달토끼 산토끼>(저자 박선주 어린이박물관 학예연구사)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된 만큼 어린이박물관은 창작 동화책 <달토끼 산토끼>가 별도로 제작하여 전시 관람을 돕고 체험했던 공간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린이박물관은 현재 예약제로 운영되며 하루 6회씩, 회당 50명이 관람할 수 있다. 관람객은 상설전시실 2관 <오늘은 어린이날, 소파 방정환의 이야기세상>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리움미술관, 국가지정문화재 31점 포함 국내외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서 소개
리움미술관, 국가지정문화재 31점 포함 국내외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서 소개
- 국가지정문화재의 59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 출품 - 일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34점을 함께 선보임 - 국내외 14개 박물관과 미술관 소장 총 185점 전시 [서울문화인] 리움미술관이 ‘23년 첫 전시로 선보이는 마우리치오 카텔란(b.1960)의 개인전 ≪WE≫가 전시계의 핫플레이스로 소문나면서 무료 전시임에도 예약이 힘들 정도로 관객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리움미술관에는 또 다른 전시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국내외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최대 규모 전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또 다른 전시는 바로 지난 2월 28일(화)부터 기획전시실에서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WE≫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하였다면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은 백자를 통해 조선시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전시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전시는 리움미술관이 2004년에 개관한 이래 도자기만을 주제로 기획한 첫 특별전으로, 국립박물관이 아닌 사립미술관에서 이래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 59점(국보18점, 보물 41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 21점)과 일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34점을 포함하여 총 185점을 선보이는 전시로 이처럼 다양한 조선의 백자를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특별한 전시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백자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가 31점이나 포함되어 있는 만큼 그 출처도 국내 8개 기관(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부산박물관,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동국대학교박물관)을 비롯하여 일본 6개 기관(도쿄국립박물관, 일본민예관, 이데미츠미술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야마토문화관, 고려미술관) 등이 참여하여 더욱 다채로운 백자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수한 한국 도자 컬렉션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특별협력기관으로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전시연출을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특별전에서 전시실 바닥에 여러 개의 독립적인 좌대를 세워서 창령사 나한상 32구를 배치하여 연출하는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1부 전시장은 들어서는 순간 최고의 조선백자 42점을 가벽없이 각각 독립된 쇼케이스를 사용하여 도자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연출하여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 이 외에도 한 점, 한 점 각각의 백자가 지닌 매력과 특징을 오롯이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움미술관은 이번 전시는 “그간 장식기법이나 주요 기종에 맞추어 소개되어온 조선백자 전시와 달리, 방대한 조선백자를 총괄하여 소개하는 동시에 그 안에 투영된 조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하였다.”며, “‘청화백자’에서 품격과 자기 수양의 의지를, ‘철화·동화백자’에서 곤궁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굳센 마음을, ‘순백자’에서는 바름과 선함을 찾아 조선백자 안에 조선 사람들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여기던 ‘군자(君子)’의 풍모가 담겨있다는 해석을 더하여 조선백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하며 이번 전시를 구성하였다.”고 한다. 전시를 담당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 또한 이번 전시에 대해 “조선백자의 최고 명품부터 수수한 서민의 그릇까지 백자의 다양한 면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이다.”며 “아름다운 문양과 같은 외적인 형식과 의식을 반영한 형태와 같은 내적인 본질이 잘 조화된 조선백자의 진정한 매력을 ‘군자’의 덕목과 연결시켜 새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장은 총 4부로 구성되어 다채로운 조선백자를 장식기법과 제작지역에 따라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럼 각 주제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자. <1부. 절정, 조선백자> 이곳 1부 전시장에 선보이는 42점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절반이 넘는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최고 명품을 한 공간에 모아 놓은 공간으로 조선 초기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진 <백자청화매죽문호>(국보), 고려의 매병에서 조선의 호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백자청화 홍치명 송죽문 호>(국보), 특유의 강렬한 색과 묵직한 힘으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백자철화 포도문 호>(국보), 조선의 절제된 화려함과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인 <백자청화철재동채 초충난국문 병>(국보), 조선초기 백자가 가진 순백의 아름다움과 품격 높은 기형을 두루 갖춘 <백자 개호>(국보), 생활의 미를 추구하며 티 없이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백자 달항아리>(보물) 등 조선시대 명품 백자를 만날 수 있다. <2부. 청화백자> 이곳에서는 하얀 바탕에 푸른색 안료로 장식한 청화백자에 나타나는 문양의 변화를 통해 위엄과 품격, 그리고 새로운 영향에 의해 변모해가는 혁신의 면모를 보여주는 백자가 소개되고 있다. 높이 60cm가 넘는 크기로 현존하는 용이 그려진 항아리 중 가장 큰 크기인 <백자청화 운룡문 호>, 상상의 꽃인 보상화를 백자의 형태와 장식 공간에 맞추어 적절히 변형한 <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 소나무와 매화의 세부적인 표현과 안료의 농담 활용이 뛰어난 <백자청화 송매문 호>, 청화를 바탕으로 동 안료를 더해 화려함 속에서도 품격을 읽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백자청화동채 모란문 호>, 민화의 대표적인 소재인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백자청화 송하호작문 호>, 각진 병을 차례로 포갠 듯한 특이한 형태의 <백자청화 서수문 각병> 등을 통해서 새로운 문양 소재와 형태가 도입되는 변화를 읽을 수 있다. <3부. 철화·동화백자>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일본, 중국과의 큰 전란으로 청화 안료의 수급이 어려운 상황속에서 등장한 것이 철화백자이다. 이 공간에서는 특유의 강렬함과 변화무쌍한 색 변화를 지닌 철화백자의 독특한 미를 만나볼 수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중앙에서 만든 ‘백자철화 운룡문 호’ 중 최대 크기로 힘찬 용의 표현과 박력있는 구름이 인상적인 <백자철화 운룡문 호>, 꽃 모양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리고 뒷면에 가지와 너른 잎들을 여백을 두고 표현하여 인상적인 <백자철화 초화문 호> 등은 이전에 보았던 청화백자와는 또 다른 느낌의 백자를 볼 수 있다. 특히 왕실 납품하거나 중앙에서 사용하던 백자와 달리 지방에서 제작된 철화백자와 동화백자는 정겨우면서도 소박한 정취와 해학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그림처럼 우스운 모습으로 용이 그려진 <백자철화 운룡문 호>는 중앙에서 만든 위엄 있는 용 그림의 항아리와 비교되어 재미를 더한다. 지방의 동화백자는 동 안료만으로 전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채색하는 방식으로 주로 연꽃이나 포도 등을 소재로 사용했는데 <백자동화 연화문 팔각병>은 중앙에 연잎을 시원스럽게 그리고 꽃잎마다 끝부분을 채색해 화려함을 더해 강렬한 안료의 색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4부. 순백자> 흰 눈같이 맑고 청명하다가 우윳빛 같기도 하고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벽옥 같은 색을 응축한 고요한 순백자를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백자 호>는 눈처럼 흰 빛깔로 단정하고 산뜻한 순백을, 조선 후기의 <백자양각 연판문 병>는 몸체를 깎아 표현한 3중의 연꽃잎과 음각선으로 표현한 잎맥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청초한 색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서 만들어진 백자는 생활용기를 중심으로 제작되다보니 중앙에서 만든 백자의 담백한 흰색과 다르게 회색이 서려 있거나 갈색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 백자에 담긴 색은 거친 바탕과 수수한 겉모습으로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장 입구와 내부에 설치된 리움 DID를 놓치지 말자. 리움 DID는 한 눈에 보기 어려운 백자의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서 보여줄 뿐만 아니라 360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좀 더 색다른 감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전시는 5월 28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서울시립미술관,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
서울시립미술관,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
-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이래 최초로 미술작품과 더불어 미술자료를 공식 수집, 활용하는 체제 확립 - 2017년 사전 수집 단계부터 현재까지 총 22개 컬렉션, 57,000여 건의 미술아카이브 수집 - 소장자료 기획전을 비롯한 전시, 교육, 공공 및 연구 프로그램 등 아카이브미술관의 특색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 소장자료의 온라인 열람, 검색에 더해 다양한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열린 연구를 자극하는 디지털미술아카이브 운영 [서울문화인] 서울시립미술관이 종로구 평창동에 현대미술의 중요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는 아카이브 전문 분관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Art Archives, Seoul Museum of Art, 이하 ‘미술아카이브’)를 개관하였다. 미술아카이브는 2014년부터 건립 준비를 시작해 2017년 진행한 설계 공모에서 총 125팀(국내 69팀, 해외 56팀)의 경합 중 최종 선정된 ㈜건축사사무소 아크바디(김성한 소장)의 ‘Decentering the Center(탈중심: 수평차원의 다원적 미술문화복합공간)’ 디자인이 채택되어 2019년 9월 착공, 공사비 총 267억 원을 투입하여 종로구 평창동에 대지면적 7,300㎡, 연면적 5,590㎡(1,691평) 규모로 건립되었다. 2022년 9월 완공된 미술아카이브는 주요 기능에 따라 △모음동 △배움동 △나눔동을 갖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모음동은 미술아카이브의 보존과 연구, 전시를 위한 공간이다. 1~2층에는 전시실 및 책과 함께 휴식하는 공간인 ‘레퍼런스 라이브러리’가 있고, 3층에는 예술기록을 열람하는 ‘리서치랩,’ 2~4층에는 보존서고가 있다.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옥상에는 미술관 소장품이 주변의 경관과 함께 어우러진다. 배움동에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배움 활동이 이루어지는 ‘모두의 교실’이 있다. 홍제천을 마주한 나눔동의 1층에는 카페가 있고, 2층에는 학술행사와 공연 등 공공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다목적홀’이 있다. 미술아카이브의 라운지에는 미술도서를 자유롭게 열람하고 책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레퍼런스 라이브러리’를 조성하였다. 총 좌석은 50여 석으로, 전 세계 주요 출판사와 작가, 기획자 등 다양한 생산자가 제작한 가치 있는 책을 선보이기 위해 2019년부터 국내외에서 출판된 미술도서를 조사해서 4,500여 권을 수집했다. 일반도서관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전시도록, 아티스트북, 소규모 독립출판물부터 어린이책까지 다양한 주제와 유형의 책을 소개한다. ‘리서치랩’은 원본(실물)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총 좌석은 12석으로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술아카이브 컬렉션 57,000여 건 중 2년여 간의 아카이빙 공정을 완료한 2만여 건의 열람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을 준비하며 2017년부터 현재까지 총 22개 컬렉션, 57,000여 건의 아카이브를 수집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가노트, 드로잉, 육필원고, 일기, 서신, 메모, 사진, 필름, 소장도서 같은 창작자와 비평가, 기획자 등 매개자의 예술기록을 중점적으로 수집했다. 수집한 미술아카이브는 목록화, 디지털화, 보존처리 및 배가, 등록, 해제연구, 심화 콘텐츠 제작 등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21년 12월부터 ‘디지털미술아카이브’에서 예술기록 9개 컬렉션을 공개하고 있다. 사전 공개된 ‘디지털미술아카이브’는 사용자 참여형 콘텐츠와 연구자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사용자 참여형 콘텐츠에는 아카이브 필사, 아카이브 스토리가 있으며, 연구자를 위한 전문 기능인 분류·전거레코드·시소러스 검색, 연구가이드, 아카이브 정책 등을 제공한다. 한편, 개관 기획전으로 비평, 연구, 번역, 교육 등 미술의 제반 매개활동에 평생을 헌신한 최민(1944~2018)의 컬렉션 연구를 통해 미술 매개활동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환기하는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을 비롯하여 창작자의 1차 자료를 살펴보는 《아카이브 하이라이트: 김용익, 김차섭, 임동식》, 옥상정원과 유휴공간을 활용한 《SeMA-프로젝트 A》, 아카이브를 매개로 한 교육․공공․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허중학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과거 전시 4개를 재해석한 기획전 《전시의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과거 전시 4개를 재해석한 기획전 《전시의 전시》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연간 약 20건, 1986년 개관 이래 현재까지 800여 회의 전시를 개최하며 수많은 담론을 생성하고 전시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특히 올해는 서울관 개관 10주년, 미술품수장센터의 특성화 미술관으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개관 5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3월 29일 청주관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난 전시 중 ‘기념’을 위해 개최되었던 4개 전시를 다시 전시하며 전시를 통해 무엇인가를 기념한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는 기획전 《전시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다양한 활동 중 ‘전시’자체에 주목하고 이미 종료된 전시를 소장품을 전시하듯 다시 전시함으로써 소장품 수집과는 다른 전시의 수집과 활용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진행되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전시의 전시: 기술’에서는 전시를 완성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요소들을 살펴본다. 완성된 전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전시의 과정과 고려해야 할 기술적 요소들을 전시함으로써 하나의 전시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과 결과를 공유한다. 특히 전시를 이루는 단계적 구성요소로 공간 및 시각 디자인, 공간 설계 및 공사, 홍보 등 일반화된 과정과 기준 혹은 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꾸며졌다. 미술관에서는 개관 기념, 광복, 작가의 탄생과 죽음, 국가 간의 수교 등 다양한 목적의 기념 전시가 개최되었다. 두 번째 ‘전시의 전시: 기념’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지난 전시 중 ‘기념’을 주제로 한 4개 전시를 다시 살펴본다. 이 공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여러 기념 전시 중에서 광복 60주년 기념 《한국미술 100년(1부)》(2005)전, 미술관 개관 40주년 기념 《신호탄》(2009)전, 덕수궁관 개관 20주년 기념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2018)전, 청주관 개관 기념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2018)전 등 4개 전시를 선정하여 재구성하였다. 과거의 전시를 다시 펼쳐 보이기 위해 각각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인터뷰와 각 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 일부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제작되었던 전시 포스터, 초청장, 도록 등 인쇄물과 문서, 사진, 영상 등 남겨진 기록 자료를 활용하여 과거의 전시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마지막 ‘전시 이후’에서는 전시 이후에 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분야의 전시 참여자들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들어봄으로써 전시에 대한 다른 각도의 시선을 생각해본다. 또한 전시는 개최된 이후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알려지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전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전시는 어떤 변화를 맞을 것이며, 전시를 기획하고 보는 방식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상상해보기 위해 VR 전시 영상과 전시를 주제로 한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와의 대화 영상을 소개한다. 최근 서울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 간 서울미술관에서 소개되었던 국내외 작가들의 주요작품을 다시 소개함으로써 그동안 서울미술관을 찾았던 관람객에게 추억을 선사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번 전시 또한 이미 진행했던 전시를 다시 펼쳐 보이는 것은 단지 작품을 다시 보여주는 것을 넘어 전시의 의미와 목적, 역할 등 전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전시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봄으로써 전시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게 한다. 전시는 오는 7월 30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와 1960년대 영국의 팝 아트 운동을 이끈 대표 아티스트들...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와 1960년대 영국의 팝 아트 운동을 이끈 대표 아티스트들...
[서울문화인] 한영수교 140주년을 맞아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과 함께 영국 초기 팝아트를 이끈 14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1960s Swinging London> 특별전이 지난 3월 23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 뮤지엄 전시1관(지하2층,배움터)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 등이 팝아트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불리지만, 현대미술사에서 팝아트의 시작은 영국으로 알려졌다. 1956년 영국 작가 리처드 해밀턴의 작품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가 팝아트의 시초라고 한다. 전시의 타이틀 ‘Swinging London’은 1960년대 사회적, 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의 활기차고 에너지 가득한 영국 런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당시 역동적이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광고, 영화, 사진 같은 대중문화의 요소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드리며, 전통적인 가치와 태도에 도전하고자 하였다. 그들의 대담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은 그 시대를 정의할 뿐만 아니라, 오늘 날의 대중문화와 예술계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 팝아트의 성장 배경이 된 1960년대 ‘스윙잉 런던’ 시기 작품부터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 60여점을 포함해 비롯한 영국 팝아티스트 14인의 오리지널 작품, 판화, 사진, 포스터, 영상 등 150여점이 다. 10개 섹션으로 선보이고 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작품뿐만 아니라 배경이 된 자료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로 당시의 시대상도 엿볼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섹션인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에서는 1960년대 초반 역동적이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광고, 영화, 사진 같은 대중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전통적인 가치와 태도에 도전한 작품을 보여준다. 그들의 대담하고 다채로운 작품은 시대를 정의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예술계에도 영감을 준다. ‘브리티시 팝 아티스트’에서는 영국의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피터 블레이크, 앨런 앨드리지, 데렉 보쉬어 등 영국의 팝아트를 이끈 14명의 팝 아티스트 작품을 소개하고 1960년대 영국 팝아트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위밍 풀’과 ‘데이비드 호크니와 물’은 작가가 사랑한 물을 소재로 한 전시 공간으로 호크니의 작품에는 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물을 형상화해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 특히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위밍 풀’은 물의 상징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의 물은 삶의 에너지와 운동성, 인간의 삶과 순환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서 ‘스위밍 풀’은 마치 수영장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특별한 포토존으로 꾸며졌다. 이 밖에도 1960년대 영국의 대중매체와 합작한 작품도 소개되고 있다.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에서 찾아낸 소재를 사용해 만들어진 작품은 예술과 문화, 소비와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과 동시에 당시 팝아트에 대한 사회적 평판과 각종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엑스씨아이 유창원 대표는 “현대 미술의 역사인 데이비드 호크니와 영국의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의 작품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2023년 서울에서도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기준 2만원이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문화재] 울릉도 뱃길의 출발지까지 좀 더 상세한 지리정보를 담은 ‘대동여지도’, 일본에서 환수
[문화재] [문화재] 울릉도 뱃길의 출발지까지 좀 더 상세한 지리정보를 담은 ‘대동여지도’, 일본에서 환수
[서울문화인] 3월 3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 이하 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전문 출판자인 김정호(金正浩, 1804 추정〜1866추정)가 1861년에 처음 제작·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의 병풍식 전국 지도첩으로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는 1864년 제작된 목판본에 가필(글이나 그림 따위에 붓을 대어 보태거나 지워서 고침), 색칠하고《동여도》에 기술되어 있는 지리정보를 필사(筆寫)해 추가한 것으로,《동여도》와 《대동여지도》가 하나의 지도에 담겨져 있다. 《동여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의 저본(底本, 개정, 번역 따위를 하기 전 본디의 서류나 책)으로 삼았던 것으로 볼 수 있는 조선전도로, 조선시대의 교통로와 군사시설 등의 지리 정보와 약 1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는 채색 필사본이다. 이에 반해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새겨야 하는 한계 때문에 많은 지명들과 주기(註記, 지도의 여백에 영토의 역사, 지도제작법, 지도사용법 등을 적어놓은 것)가 생략되어 있다. (*동여도: 필사본(筆寫本) / 23첩(목록 1첩, 지도 22첩)) 현재 《대동여지도》의 판본은 국내외 35점(국내 21점, 해외 14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 판본은 신유본이 26점, 갑자본 7점, 미상 2점이다. 이번에 공개된 《대동여지도》는 국내에서 최초 확인된 《동여도》의 주기 내용이 필사된 《대동여지도》 판본으로 1864년 목판본(갑자본)에 필사된 것으로 23첩(목록 1첩, 지도 22첩) 완질이다. 1첩의 크기는 각 30cm × 20cm로 전체 개첩시 약 6.7m × 약 4m에 이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의 한계를 ‘동여도’의 주기 내용을 필사해 보완한 최초의 사례로 확인되며, ‘대동여지도’가 보급되면서 변용된 형태로 추정했다. 국내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와는 다른 구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환수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전했다. 또한, “국내 소장된 ‘대동여지도’ 갑자본과 ‘동여도’가 희소하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조선의 지도 제작과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 연구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지리 정보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유물”이라 밝혔다.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는 “삼척부와 울릉도의 첩배치 차이가 확인되어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대동여지도》는 목록이 따로 없으며 22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번 환수 유물은 총 23첩(목록 1첩, 지도 22첩)으로 구성, 이는 《동여도》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120리 간격으로 구분하여 22층을 만들고, 각 층을 병풍식으로 접을 수 있는 첩으로 만든 것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가 같다. 무엇보다도 가장 주목할 것은 《동여도》의 주기 내용이 대부분 필사되어 상세한 지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백두산 일대가 묘사되어 있는 제2첩의 경우 《대동여지도》판본에는 없는 ‘백두산정계비’와 군사시설 간의 거리가 필사되어 있다. 또한 울릉도 일대가 묘사되어 있는 제14첩에는 《대동여지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울릉도로 가는 배의 출발지 등의 내용이 필사로 적혀 있다. *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는 1712년(숙종 38년) 백두산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표시한 경계비이다. 세부적인 구성에서도 그동안 국내에서 확인된 《대동여지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대동여지도》의 지도유설(地圖類說, 제작 목적, 지도의 중요성 등을 밝힌 글)은 1첩에 간인(刊印, 판을 새기어 간행물을 인쇄함)되어 있으나 이번 유물은 지도의 빈 공간에 필사되어 있으며 그 내용도 동여도의 것과 같다. 또한 《대동여지도》 판본에서는 2면에 걸쳐 인쇄되어 있던 강원도 삼척부와 울릉도 일대가 1면으로 축소되어 배치되어 있는 점은 《동여도》의 배치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환수는 해당 유물 소장자가 매도 의사를 밝히면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정보 입수 이후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수차례에 걸친 재단의 면밀한 조사, 관계자간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올해 3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매입자금은 복권기금으로 추진되었다. [허중학 기자]
[전시] 박생광과 박래현,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재해석 되어야만 하는 2인의 만남
[전시] 박생광과 박래현,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재해석 되어야만 하는 2인의 만남
[서울문화인] 2019년 ‘박생광 회고전’을 기획했던 대구미술관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박생광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있어 의미 있게 재해석 되어야만 하는 작가다.”, 2020년 ‘박래현 회고전’을 기획했던 국립현대미술관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섬유예술이 막 싹트던 1960년대에 박래현이 선보인 태피스트리와 다양한 동판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70년대에 선보인 판화 작업들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박래현은 낯설다. 가부장제 시대는 ‘박래현’이라는 이름대신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화가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을 부각되었다.”고 밝혔듯 두 화가는 이들이 이룩한 성과에 비해 뒤늦게 평가받기 시작했다. 《한국화 대가 박생광 · 박래현 2인전 - 위대한 만남, 그대로 · 우향》 최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한국화 대가 박생광과 박래현을 조망하는 2인전 《위대한 만남, 그대로 · 우향》전이 아이프앤코와 주영갤러리의 공동 주최로 진행되고 있다. 전시 제목처럼 이 전시는 ‘시대를 대표한 한국화 남녀 대표작가의 위대한 만남’이다. 박생광과 박래현 화백은 해방 이후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과 새로운 입지를 다진 역사적 성과’에 비해 오랫동안 매우 평가절하 되어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 만남이다. 이번 전시에는 박생광 181점과 박래현 88점 등 총 269점이 선보이고 있다. 작가별로 200호(약 가로 240, 세로 180cm)가 넘는 대작부터 대표적인 중소품까지 150여 점의 원화가 출품되었다. 특히 평소 만나기 쉽지 않은 박생광의 스케치 100점이 포함되어 더욱 주목할 만하다. 전시는 크게 작가별 특성을 고려해 관람 동선을 설정되었다. 박생광은 작품의 소재별로 구분했고, 박래현은 시대순으로 작품의 변모 과정을 보여준다. 그대로 박생광(乃古 朴生光, 1904~1985)의 경우 말년에 해당하는 1980년대 초반, 민화, 불화, 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전통적 이미지를 화폭에 많이 담았는데 오방색을 사용한 강렬한 색채와 수묵, 채색을 혼합한 독창적 기법으로 한국 화단에 새로운 바람과 충격을 불러일으킨 박생광은 생애 말 걸작을 쏟아내며 한국 채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화가로서 85세의 일생을 살아오면서 나이 75세가 되도록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1981년 백상기념관 개인전, 1984년 미술회관 개인전, 그리고 사후 개최된 1986년 <박생광 화백 사후 1 주기 유작전> 등 단 세 번의 전시회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새겨놓았다. 우향 박래현(雨鄕 朴崍賢, 1920~1976)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에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을 그리고 1960년대에는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다. 그러다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하여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7년 만에 귀국하여 개최한 1974년 귀국판화전은 한국미술계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지었던 그의 예술 세계를 따라 선보이고 있다. 한국화의 새로운 비전을 재조명한다는 취지도 담고 있는 이번 전시에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과 협력해 작가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존도 운영되고 있다. 전시는 3월 29일(수)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 세계 4점 남아있는 조선 16세기 나전함 1점, 국내로 돌아왔다.
전 세계 4점 남아있는 조선 16세기 나전함 1점, 국내로 돌아왔다.
[서울문화인] 국외에 있던 조선시대 나전함 1점이 환수되어 11일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에서 공개되었다. 이 나전함은 조선 16세기 나전칠기 공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수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회(회장 윤재륜) 젊은친구들(위원장 조현상)이 구입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번 기증 나전함과 매우 유사한 조선시대 나전함으로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전함 1점과 동경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중요문화재 나전함 1점 등 4점정도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될 정도로 이 시기에 제작된 나전칠기는 전해지는 수량이 많지 않아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환수 기증된 나전함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1년 크리스티경매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경매에 나올 당시 소장자는 일본 오우츠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유물로 당시 또 다른 일본소장가가 경매로 구입하였으나 최근 다시 경매에 나오게 되어 낙찰을 받게 되었다. 1991년 당시 경매 도록에 16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나전함이라는 기록을 통해 제작 시기를 추정했다. 이 나전함은 31.0(세로)×46.0(가로)cm 정도로 귀중품이나 문방구 등을 보관하는 용도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칠을 하기 전 함을 직물로 싸, 습기로 나무가 변형되는 것을 방지했다. 이는 주로 고급 칠기를 제작하는 데에 사용된 기법이다. 상자 전체에 여러 모양의 나전 연꽃들이 꽉 차게 배열되어 있으며, 각 꽃 장식을 동그랗게 감싸듯 배치된 넝쿨 줄기, 잎사귀 그리고 띄엄띄엄 들어간 칠보문이 그 화려함을 더한다. 나전함 뚜껑의 네 변과 각 모서리는 촘촘한 나전 장식으로 마무리하여 정돈된 느낌을 준다. 장식을 위해 나전 조각을 이어붙이는 타찰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밝은 갈색 빛의 바탕 칠색이 조선시대 나전칠기의 자연스러운 멋을 보여준다. 참고로 북송 황제 휘종(재위 1100-1125)이 고려에 파견한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 방문 이후 저술한 『고려도경(高麗圖經)』(1123)에 ‘극히 정교하고(極精巧),’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라고 저술한 것이 있다. 우리가 흔히 고려를 대표하는 예술품을 꼽으라면 고려청자와 고려불화를 꼽는다. 그럼 서긍이 정교하고 솜씨가 세밀하다고 밝힌 것은 무엇일까... 고려청자? 아님 고려불화? 아니다. 바로 고려를 대표하는 또 다른 공예품 고려 나전공예품을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칠기공예는 당시에도 인정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나전칠기의 기술을 이어받은 조선의 나전칠기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공예품이다. 고려시대 제작된 나전칠기는 무늬가 촘촘한데 반해 조선시대 나전칠기는 좀 더 여백을 두고 제작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고려 나전칠기 또한, 현재 전 세계 약 22여 점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완형은 약 15점이 남아있다. 국내에는 2019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환수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나전합) 포함 총 6점이 남아있으며, 완형은 단 2점(경함 1점, 불자 1점) 뿐이다. 당시 경매를 통해 환수된 ‘나전합’은 모자합(母子盒, 하나의 큰 합 속에 여러 개 작은 합이 들어간 형태)의 자합(子盒) 중 하나로, 전 세계에 단 3점(미국, 일본)만이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상황에서(대영박물관에 손상된 1점, 국립중앙박물관에 일제강점기 출토품 2점이 불완전한 잔편으로 소장) 유일하게 매입 가능했던 개인 소장품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은 미국과 일본의 주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매입이 불가능하다. 한편, 이번 나전함을 기증한 국립중앙박물관회는 1970년 박물관 후원자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탄생해 1981년 사단법인으로 정식 발족했다. 현재는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인 윤재륜 서울대 명예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다. 그 중 ‘젊은 친구들’이라는 이름을 내 건 YFM(Young Friends of the Museum)은 2008년 당시 50세 미만의 젊은 후원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소모임으로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회장 등이 주축이 됐고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남수정 썬앳푸드 대표, 이정용 가나아트 대표 등 현재 100여명이 활동 중이다. 50세가 넘으면 자연스럽게 YFM의 이름을 내려놓고 일반 기부회원이 된다. 지금은 조현상 효성 부회장이 YFM 위원장을 맡고 있다. YFM은 2009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내 ‘청자정(靑瓷亭)’에 7천452점의 청자기와를 기증했을 뿐만 아니라 2014년에는 ‘고려나전경함’을 900년 만에 일본에서 들여왔으며, 2018년에도 일본에 유출됐던 고려 시대 불감을 구입해 기증했으며, 이 외에도 현재 박물관에 상설전시 중인 인도 간다라불상,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경매에 올랐던 보물 금동불상 등을 구입하여 기증함으로써 연간 유물구입 예산이 30억 원 안팎의 국립중앙박물관에게 YFM의 활약은 매우 요긴하였다. [허중학 기자]
[전시] 봉준호 감독 작품으로 다시 돌아온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
[전시] 봉준호 감독 작품으로 다시 돌아온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
[서울문화인] 2021년, 마이아트뮤지엄에서 5만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맥스 달튼의 국내 첫 개인전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Max Dalton, Moments in Film)>이 새로운 신작으로 돌아왔다. 맥스 달튼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로서, 20년 동안 영화, 음악, 책 등의 대중문화를 모티프로 빈티지한 색감과 함께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뛰어난 색감과 미장센으로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로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 외에도 <스타워즈>, <이터널 선샤인>, <쥬라기 공원> 등 SF영화, 로맨스, 액션 등 80~90년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장르 영화들을 모티프로 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섬세하고 정교한 구조 속에 녹여내었다. 특히 영화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영화의 배경, 영화 속 인물들을 한 화면에 압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여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재미를 주면서도 소위 작품의 ‘덕후’를 자극하는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63빌딩 63아트에서 진행되는 두 번째 전시는 이러한 여러 주제별 영화 모티프로 한 주요 인기 작품을 비롯하여 ‘비틀즈’와 ‘밥 딜런’과 같은 음악적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린 LP 커버와 동화책 일러스트, 화가의 시리즈 등 작가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다양한 작품 13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지난번 전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작업으로 시작된 인연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괴몰>, <옥자> 최근작을 포함하여 <마더>,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 등 이번 전시만을 위한 신작 일러스트를 최초 공개하고 있다. 또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최신작 <프렌치 디스패치>의 컬렉션 북 완결판을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 공개하고 있다. 또한, 지니뮤직과의 함께 관람객들에게 영화 OST를 감상하며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 더 풍부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63아트 전시를 위해 맥스 달튼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 전시장을 둘러보며 곳곳에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깜짝 드로잉과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전시는 63빌딩에 위치한 63아트에서 올 10월 29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15,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맥스 달튼(Max Dalton, b. 1975)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이며, 이따금 뮤지션이나 작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웨스 앤더슨 컬렉션 (The Wes Anderson Collection)』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문라이즈 킹덤>, <프렌치 디스패치 >등 웨스 앤더슨 감독이 만든 영화라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담았다. 유대계 오스트리아인과 오키나와인 부모님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고 자랐다. 3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래픽 아트는 대부분 독학으로 공부했다. 1992년 6개월간 영국계 아르헨티나인 화가 케네스 켐블 (Kenneth Kemble) 지도 아래 그림을 공부했으며, 1994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음악 대학에 입학했다. 지금도 기타, 피아노, 더블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고 음악은 달튼의 작품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4년, 파리로 옮겨가 정식 화가가 되었지만 가끔씩 재즈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2006년 사이 실험적 포토그래피로 파리 파스칼 반호크 갤러리 (Galerie Pascal Vanhoecke)와 프랑스 아트페어 슬릭 SLICK에서 전시 기회를 얻었다. 또한 〈천국의 개 Le Chien du Ciel〉 (2002), 〈에어 Air〉 (2002), 〈리즌 The reason〉 (2003), 〈시크릿 The Secret〉 (2006) 등 여러 실험적 영화 대본의 작가로도 활동했다. 2008년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 여러 책 출판사, 잡지사와 신문사, 그리고 디즈니, 유로스타, 토리 버치 등 광고 회사에서도 일러스트레이터로 근무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영감은 영화,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에서 온다. 50년대 만화에서부터 애니메이션까지 섭렵하며, 작가는 지난 20년 동안 독특한 일러스트 스타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주로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영화들을 주제로 하여 보는 이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특유의 물 빠진 듯한 빈티지한 색감과 유머러스한 디테일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