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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50여 년 간 수집한 다양한 고미술품을 만나다.
[전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50여 년 간 수집한 다양한 고미술품을 만나다.
[서울문화인] 보물 제1426호 <수월관음도>, 보물 제1559호 <감지금은니대방광불화엄경>, 보물 제1441호 <백자대호>, 보물 제1450호 <분청사기인화문사각편병> 등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50여 년 간 수집한 다양한 고미술품을 선보이고 있는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TWO - FROM THE APMA COLLECTION》이 올해 말(12/27)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하여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7월부터 관람객을 맞이하였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 휴관으로 약 두 달간(8/25~10/19) 중단되었다가 지난달 20일부터 관람을 재개하였다. 이번 전시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50여 년 간 수집한 고미술품을 선보이는 만큼 일곱 개 전시실에서는 도자‧회화‧금속‧목공예 등 여러 분야의 작품 1,500여 점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지난 2018년 고미술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명품 병풍 일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도자공예품은 삼국시대 토기부터 청자, 분청사기, 백자까지 커다란 테이블 위에 수백 점의 도자를 배치하여 천오백여 년의 도자역사를 한눈에 확인해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시대의 억압에 저항하는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준 바스키아 국내 회고전
[전시] 시대의 억압에 저항하는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준 바스키아 국내 회고전
[서울문화인]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생을 마감하기까지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팝아티스트 바스키아의 주요 작품 1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지난 10월 8일부터 열리고 있다. 1960년대부터 가속화된 산업화에 따라 미국 전역에는 상품 판매를 위한 신문, 잡지 등의 인쇄물들과 코믹북, 텔레비전, 영화 등 대중매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미디어에 기반한 이미지들은 도시의 시각문화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에 따라 대량생산과 복제의 방식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예술 경향이 나타나면서 1970년대 후반 뉴욕 미술계는 서로 다른 예술 경향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대상의 본질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미니멀리즘과 형식을 거부하고 작가의 사고 자체가 작품이 되는 개념미술은 새로운 시각문화의 큰 축을 형성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팝 아트는 영화, 광고,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차용하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또한 힙합과 그래피티 등 도시를 배경으로 성장한 거리 예술이 붐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 등이 혼합된 실험적 예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수작업을 극도로 배제하고 규격화된 산업재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미니멀리즘과 실크스크린, 사진, 복사 등 대량생산 기법을 도입해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팝아트가 미술계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팝아트는 미국 문화를 지배하는 물질만능주의를 거부하기보다는 소비문화를 찬양하면서도 조롱하는 양면적 가치를 띠며 상업미술과 소비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앤디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유명인들의 초상 작업을 대량으로 제작했으며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와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uerg)는 실제 사용하는 물건들을 화면에 붙여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뉴욕은 상업 미술과 소비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발원지로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예술과 유행을 창조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b. 1960-1988)는 시작과 동시에 최고의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며 지금까지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공화국(Republic of Haiti)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하던 바스키아는 이러한 대안공간에 머물며 예술을 실험하고, 소호와 이스트 빌리지 등지에 그래피티를 남겼다. SAMO©는 십대들의 장난처럼 시작됐지만, 그 속에는 주류 미술계와 사회를 향한 강력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무질서하게 휘갈겨 쓴 듯한 글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와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사회 전반의 모순적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조롱하는 강력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키스 해링(Keith Haring)과 케니 샤프(Kenny Scharf)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회화 작업으로 옮겨가고 SAMO©를 작품 안에 서명처럼 사용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바스키아는 1982년 아니나 노세이 갤러리에서 미국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바스키아는 대규모 그룹전 《더 타임스 스퀘어 쇼 The Times Square Show》와 《뉴욕/뉴 웨이브 New York/New Wave》 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고,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잡지 『아트 포럼 Art Forum』에 「더 레이디언트 차일드 The Radiant Child」 라는 기사로 소개되어 명실상부 미술계 슈퍼 루키로 등장한다.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하려는 신생 갤러리들은 바스키아의 독보적인 행보에 주목했으며, 바스키아는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시 중 하나인 《카셀 도큐멘타 7 Kassel Documenta 7》에 작품을 출품하며 뉴욕을 넘어 전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개최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새로운 시각예술의 형태이자, 모든 가치를 대체하는 바스키아의 SAMO©는 자신을 알리는 로고이자 브랜드로서 이후 작품 활동에 근간이 되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을 존경했던 바스키아는 1982년, 앤디 워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바스키아는 워홀과 인사를 나눈 뒤 작업실로 돌아가 워홀의 초상화를 그리고 바로 다시 가져와 워홀에게 보여주었다.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본 워홀은 바스키아와 함께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바스키아는 워홀을 의지하고 존경했으며 워홀에게 바스키아의 젊은 에너지는 새로운 예술적 동력이 되었다. 1983년 바스키아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비쇼프버거의 제안으로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 워홀과 협업한 전시를 개최한다. 하지만 1985년 워홀과 함께한 전시가 미술계의 혹평을 받으면서 워홀과의 공동작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들은 1985년까지 2년간 15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공동으로 제작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하지만 1987년 아버지와도 같았던 앤디 워홀이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바스키아는 큰 충격을 받는다. 바스키아는 삶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고 그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Abidjan)으로 방문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바스키아는 방문을 엿새 앞둔 8월 12일 유명을 달리한다. ‘거리의 이단아’에서 ‘세계 화단의 유망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바스키아는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000여 점이 넘는 드로잉, 회화와 조각작품을 통해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새로움을 대변하는 문화 전반의 아이콘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거리’, ‘영웅’, ‘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바스키아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 그리고 사진 작품 등 150 여점을 선보인다. 먼저, 뉴욕 거리에서 시작된 SAMO© (세이모)시기를 기록한 사진 작품을 중심으로 바스키아의 초창기 예술세계를 시작으로 창조한 영웅의 다양한 도상과 초상화를 통해서 삶과 죽음, 폭력과 공포, 빛과 어두움이 투영된 시대상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 모습을 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제작 방식이자 구성요소인 텍스트와 드로잉, 콜라주와 제록스 기법이 혼합된 작품들을 통해서, 함축적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이미지들이 생성되는 과정뿐 아니라 앤디 워홀과 함께한 대형 작품을 전시해 서로 다른 두 거장이 교류하며 새롭게 발전시켜 나간 예술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만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보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창조함으로써, 현재까지도 삶의 부조리한 가치에 의문을 던지며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누구보다 긴 여운을 남긴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21년 2월 7(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티벳의 탱화, 사천성 덕격인경원의 불화 탕카판화 150여점 국내 최초 공개
티벳의 탱화, 사천성 덕격인경원의 불화 탕카판화 150여점 국내 최초 공개
[서울문화인] 사천성 장족자치구에 위치한 덕격인경원에는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함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티벳 대장경 판목 30만장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유명화가들의 초본으로 만들어진 대형 불화 판화 200여장의 판목이 남아 있는 인류문화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곳 대형 불화 판화(탕카판화) 150여장이 명주사 고판화박물관(한선학 관장)에서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종교, 정치, 역사, 문화, 천문 역산, 전통 의약 등 소재가 다양해 ‘티베트족 고전 문명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탕카(Thang-Ka)는 불교미술의 한 장르로 그림으로 쉽고, 아름답게 판각하여, 불교를 사찰에서 서민생활 속 서민의 품으로 이끄는 중요한 방편으로 우리나라 사찰의 벽면을 장식하는 탱화(幀畵)의 어원이 바로 티베트 탕카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당에 거는 탱화가 불교회화의 주류를 이루지만, 티베트나 몽골 불교에서는 법당에 거는 탕카와 함께 판화 탕카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수를 이루는 유목민의 특성상 대량으로 제작되어 쉽게 가지고 다니며 종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신앙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탕카 작품은 국제 경매장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에 낙찰되기도 했다. 199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명나라 영락제 때 제작된 대형 <자수홍야마탕카(刺繡紅夜魔唐卡)>가 처음으로 등장, 당시 이 탕카는 100만 달러라는 고가에 낙찰됐다. 2002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 이 탕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3087만4100홍콩 달러에 낙찰돼 가격이 8년 만에 30배 이상 상승했다.이후 소장가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2006년 중국의 1차 무형문화재 목록에 탕카가 편입됐고, 2009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소장 붐이 일었다. 통계에 따르면 탕카의 시장 가격은 2000년 대비 12배 올랐다. 이번에 소개되는 탕카판화는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이 지난 2018년 덕격인경원을 조사한 후 교류협력을 약속하고 대형 불화판화 200여장을 수집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이를 국내에서는 최초로 공개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200여점 중 150여점을 선별하여 3개월간 1달에 50점씩 교체 전시된다. 먼저 11월 말까지 열리는 1차 전시는 부처님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불보살 탕카 판화 50여점이 선보이고, 12말까지 열리는 2차 전시는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과 티벳불교를 전파하고 발전 시킨 티벳 조사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어 내년 1월 말까지 열리는 3차 전시에는 티뱃 불교의 독특한 소재인 밀교의 탄트리즘을 중심으로 한 작품과 히말리아 고원에 휘날리는 기도부적 깃발인 타르초를 중심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 150여점은 대부분 국내에 처음으로 실물이 소개되는 불화판화로 티벳의 유명한 화사들의 작품이 고스란히 목판화로 남아 있어 불화를 공부하는 연구자나 불화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불화초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눈 여겨 보아야 할 작품으로는 티베트 불화 3대 화파중의 하나인 멘탕파 유명한 화사인 주포포프(竹巴甫布) 우리나라 팔상도라고 할 수 있는 불타12홍화도 9점이며, 2부에서는 티벳 불교를 일으킨 연화생보살, 종카파등 조사 판화와 16나한 판화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부에서는 티벳의 독특한 탄트리즘 판화와 기도깃발인 타르초를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인도와 티벳 탄트리즘 관련 전시회 대영박물관에서도 지금부터 내년 초까지 진행되고 있어 온라인으로 비교해 보면 좋은 연구가 될 것이다. 한편, 지난 24일 개막식에는 전통 목판화 작가인 정찬민선생과 현대 목판화 작가인 배남경선생, 홍승혜선생, 이언정 선생이 박물관 교육을 위한 전통 현대 판화 시연회와 함께 사립박물관들의 지속 박전가능성에 대해 타진해보는 ‘수집과 사립박물관’이란 주제로 윤열수(한국박물관협회장), 강순형(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슌규(정신과전문의), 박도화(문화재청 감전관살장), 김태식(연합뉴스기자), 남권희(경북대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허중학 기자]
[미술관] 20세기 대표 여성작가 박래현의 편견을 씻다.
[미술관] 20세기 대표 여성작가 박래현의 편견을 씻다.
박래현의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작품 총 138점 공개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미술가 박래현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이 지난 9월 29일부터 개최 중이다. 근대 화가를 조명하는 덕수궁관에서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수많은 미술가를 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하였지만 여성미술가를 단독으로 조명하는 전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시대적으로 남성미술가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박래현(1920-1976)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될 만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대중들에게 낯선 미술가이다. 또한 과거 가부장제 시대는 ‘박래현’이라는 이름대신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화가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으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초기 작품을 보면 먼저 ‘운보’의 작품과 비교하는 생각이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박래현은 식민지시기 일본화를 수학하며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에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이른 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였고 1960년대 추상화의 물결이 일자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다. 특히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하여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후 7년 만에 귀국하여 개최한 1974년 귀국판화전은 한국미술계에 놀라움을 선사했으나, 1976년 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제대로 이해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태피스트리와 다양한 동판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70년대에 그가 선보인 판화 작업들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번 전시명인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표현한 명칭이다. 미국 여행에서 박래현은 여행가이드의 영어를 해석하여 다시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표현했다. 박래현이 말한 ‘삼중통역자’는 영어, 한국어, 구화(구어)를 넘나드는 언어 통역을 의미하지만, 이번 전시에서의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지었던 그의 예술 세계로 의미를 확장하였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자주 선보이며 익숙한 초기 작품에서 벗어나 박래현의 예술의 도전을 따라, 1부 한국화의 ‘현대’, 2부 여성과 ‘생활’, 3부 세계여행과 ‘추상’, 4부 판화와 ‘기술’로 구성되어 폭넓은 그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1부 한국화의 ‘현대’에서는 박래현이 일본에서 배운 일본화를 버리고, 수묵과 담채로 당대의 미의식을 구현한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미전 총독상 수상작 <단장>, 대한미협전 대통령상 수상작 <이른 아침>,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 <노점>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2부 여성과 ‘생활’에서는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박래현이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어떻게 모색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여원』, 『주간여성』등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지에 실린 박래현의 수필들이 전시되어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박래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3부 세계 여행과 ‘추상’은 세계를 여행하고 이국 문화를 체험한 뒤 완성해 나간 독자적인 추상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그의 새로운 도전 이면에 1960년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의 고대 유물들을 그린 스케치북들을 통해 박래현의 독자적인 추상화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4부 판화와 ‘기술’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판화와 동양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박래현의 마지막 도전을 조명하고 있다. 또한 박래현이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동양화 다섯 작품이 한자리 소개되고 있다. 전시를 만나기 전 박래현은 그의 초기작품들로 인해 ‘운보’라는 그늘이 함께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운보의 그늘은 물론 서구 모더니즘의 조형 어법을 자기화한 추상회화와 판화는 물론 테피스트리 작품을 통해 동양화의 굴레까지 벗어던진 화가로 조명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또한 이번 전시에 대해 “오랫동안 박래현의 작품을 비장(秘藏)했던 소장가들의 적극적 협력으로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으로 ‘외출’했다”며, “열악했던 여성 미술계에서 선구자로서의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래현 예술의 실체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은 2021년 1월 3일까지 덕수궁관 전시 종료 후 내년 1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순회 개최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우리의 문화재 빛의 과학으로 새롭게 만나다.
우리의 문화재 빛의 과학으로 새롭게 만나다.
[서울문화인] 자연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인 가시광선을 비롯하여,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등과 같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빛을 통해 사물을 분별하고 그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은 빛은 세월이 품은 새로운 열쇠를 가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통해 우리의 문화재 속에 숨겨진 제작 기술의 비밀을 풀어보는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에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을 비롯한 국가지정문화재 10점을 비롯하여 청동기시대 <청동거울>에서부터 삼국시대 <금귀걸이> 그리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까지 전체 57건 67점과 함께 적외선과 엑스선을 활용하여 조사된 <경복궁 교태전 부벽화>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번 특별전은 세 가지 이야기로 선보인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선조들의 삶 속에 스며든 빛과 색에 대한 내용을 담은 ‘보이는 빛, 문화재의 색이 되다’이다. 빛을 통해 들여다보는 청동기시대 고대인들이 사용하였던 청동거울의 후면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비롯하여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빛깔의 <유리구슬>,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국보 제193호 <유리로 만든 잔>과 <앵무조개로 만든 잔>, 그리고 수많은 비단벌레를 사용하여 만든 경주 금관총 출토 <금동 말안장가리개>, 전복껍데기를 두께 0.3mm의 정도로 얇게 가공하여 장식한 <고려나전향상>, 오방색의 <활옷>과 <수장생문오방낭> 등 한국 전통의 빛과 색을 만나 볼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빛,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이다. 빛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과 볼 수 없는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등을 통해 들여다보는 우리의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의 글씨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적외선으로 촬영하면 나무의 표면 속에 스며있던 먹을 인식하기 때문에 글씨를 판독할 수 있다. 경주 안압지 출토 목간에서는 어패류를 절여 발효시킨 젓갈의 이름이 쓰여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부여 쌍북리와 김해 봉황동 저습지에서 출토된 목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백제시대 구구단과 통일신라시대 논어 공야장편이 쓰여 진 목간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목간들의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 음식과 교육 문화를 알 수 있었으며 적외선 조사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고 형광(螢光) 작용이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자기나 금속 문화재 등의 수리된 부분을 찾는데 많이 이용된다. 특히 도자기는 파손 부분을 새로 붙이거나 성형한 후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들 정도로 유약 층 복원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 자외선 조사로 복원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자외선 조사는 손상된 문화재의 원형을 확인하고 올바른 복원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엑스선은 다른 빛에 비하여 파장이 훨씬 짧기 때문에 물체 투과력이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 물질의 종류나 두께에 따라서 투과력이 달라진다. 따라서 엑스선 촬영 결과로 다양한 재질의 문화재의 내부 구조나 상태 그리고 성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문화재의 단면 조사 등에 컴퓨터 단층촬영 장치(Computed Tomography)를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결과물은 문화재의 원형 복원과 다양한 전시 콘텐츠로 활용되기도 한다. 1924년 경주 금령총(金鈴塚)에서 발견된 국보 제91호 <기마 인물형 토기>는 컴퓨터 단층촬영 결과, 내부에 물을 넣어 따르는 주전자 구조를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하였고 그 속에 담을 수 있는 액체의 양이 약 240㏄라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그리고 국보 제95호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금강산모양 연적>과 <계영배>등의 내부 구조 또한 알아냈다. 원형, 다각형, 산형(山形) 등 다양한 형태의 연적은 내부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고 컴퓨터 단층촬영 결과로 물을 넣고 물이 나오는 물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과도한 음주를 경계하라는 뜻에서 만든 조선시대 계영배가 관형과 종형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과 계영배에 채워지는 술이 가득 채워지지 않는 이유가 사이펀의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우리들은 선현들의 지혜와 장인의 기술을 엿볼 수 있다. 한편, 평양 석암리 9호분 출토 낙랑시대 <금장식 철제 환두 소도>에서는 철의 부식으로 가려진 슴베부분에서 지름 약 0.2㎜의 두 줄의 금선으로 식물의 줄기와 화려한 문양을 찾아내었고, 임진왜란 때 사용한 신식 무기 <비격진천뢰>의 구조와 원리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빛, 문화재를 진찰하다’이다. 사람들은 건강검진을 위해 종합검진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문화재도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등 여러 가지 빛을 이용한 검사 과정을 거쳐 보존 상태를 점검하고 진단한다. 상시 점검을 위해 활용하는 빛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진단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쌍영총 고분의 널길 동벽 벽화편에 대한 적외선 촬영으로 우차(牛車) 2대와 개마무사(鎧馬武士) 그리고 30여 명의 고구려의 남녀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후기 궁중장식화를 대표할 수 있는 <경복궁 교태전 부벽화> 2점 또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자료로서 가시광선, 적외선, 엑스선 촬영 그리고 X선 형광분석 자료 등 흥미로운 내용을 보여준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보물 제331호 <금동반가사유상> 등 7점의 불상에 대한 컴퓨터 단층촬영(CT), 엑스선 조사, 성분 조사로 밝혀진 불상의 제작방법, 내부 구조와 상태 등 종합조사를 하고 항구적인 보존대책 마련을 위한 박물관 보존과학자의 노력을 문화재와 함께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11월 15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조선왕실 밤잔치에 쓰던 사각 유리등 문화상품으로 발매
조선왕실 밤잔치에 쓰던 사각 유리등 문화상품으로 발매
[서울문화인] 조선왕실에서 밤에 열리는 잔치 연회장을 밝히기 위해 걸었던 조명 사각 유리등이 문화상품으로 개발되어 판매된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동영)과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은 조선왕실 밤잔치를 밝힌 이 ‘사각 유리등’ 문화상품을 궁중문화축전(10.10.~11.8.) 기간 중 궁중문화축전 누리집(https://www.royalculturefestival.org)에서 3차례(1차 신청(10. 9.~12.), 2차 신청(10. 16.~19.), 3차 신청(10. 23.~26.))에 걸쳐 신청자를 모집하여 이중 1,000명에게 무료 배포하고, 이후에는 유료로 전환해 박물관과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화상품 매장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가격 미정) 사각 유리등이 사용된 첫 밤잔치는 1828년 시작됐지만 유리로 만든 등은 1829년 밤잔치 때부터 사용되었고, 특히, 1848년 열렸던 밤잔치에 사용된 사각 유리등의 그림과 설명은 의궤에도 기록되어 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은 새롭게 변화한 왕실의 잔치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로 가치가 있는 이 사각 유리등을 전시하고 있고, 유사한 형태의 다른 등도 소장하고 있다. 사각 유리등은 옻칠을 한 나무틀 사방에 유리를 끼웠고, 유리에는 꽃, 나비, 나무 등의 그림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틀에는 철사나 줄을 연결하고, 고리를 이용해 궁궐 지붕 처마에 걸어 사용하였다. 이번 문화상품은 사각유리등의 이런 특징을 잘 살리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직접 조립해서 완성할 수 있는 조립용품 상품(DIY KIT, 디아이와이 키트)으로 만들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앞으로 사각 유리등을 소재로 한 야외등과 가로등도 개발해 왕실문화를 상징하는 궁궐, 왕릉의 야간 조명으로 설치할 예정이며,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별빛기행 등의 문화재청 야간행사와 지방자치단체 주관의 문화재 야행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예정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방탄소년단 RM, ‘아름다운 미술 책’ 전국 보급을 위해 1억 원 기부
방탄소년단 RM, ‘아름다운 미술 책’ 전국 보급을 위해 1억 원 기부
[서울문화인] 평소 미술관을 자주 찾던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본명 김남준)이 ‘아름다운 미술 책’ 읽는 문화 확산의 뜻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을 통해 1억 원을 후원 기부했다. 이번 기부는 RM의 생일인 9월 12일을 기념한 선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출간한 미술 도서를 중심으로 특히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운 도서 및 재발행이 필요한 도서 제작에 후원된다. 제작된 도서는 도심에서 먼 전국 400곳 공공도서관 및 도서산간지역의 초·중·고 학교도서관에 기증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책방에 비치하여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도서는 한국작가 도록 7종(김환기, 이중섭, 변월룡, 유영국, 박래현, 윤형근, 이승조)과 전시 도록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중 각 1권을 묶어 한 세트 8권으로 구성되어 총 4,000권이 마련된다. RM의 지원 도서는 도서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책방에 오는 10월 중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RM씨가 평소 영감과 휴식을 얻은 미술 분야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며, 본인이 책을 통해 미술을 더 깊게 이해하는 것처럼 미술관 접근이 어려운 청소년들도 쉽게 미술을 접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와 기쁘고 놀랐다”며, “바쁜 스케줄에도 미술관을 종종 찾아 미술 관심 확대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RM씨와 함께 우리 미술 책 읽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중학 기자]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은허리띠 등이 묻힌 상태대로 출토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은허리띠 등이 묻힌 상태대로 출토
[서울문화인] 지난 5월 27일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瓔珞, 영락) 일부가 확인되었던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추가로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구슬팔찌, 은반지 등이 피장자가 착장한 상태 그대로 확인되었다. 이번에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가 대거 발굴된 곳은 황남동 120호분의 봉토를 파괴하고 축조된 120-2호분으로 발굴된 유물은 피장자가 머리부터 발치까지 전신에 착장하였던 금동관 등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로 피장자는 금동으로 만든 관(冠)을 머리 부분에 착장하였고, 굵은고리귀걸이(太環耳飾, 태환이식)를 양쪽에 하고 있으며, 금동신발을 신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신발을 착장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년∼19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며, 이렇게 피장자의 장신구를 착장 상태 그대로 전체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도 처음이다. 금동 달개 일부가 5월에 먼저 노출되었던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최종적으로 금동관이 확인되었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帶輪, 대륜, 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으며,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樹枝形 立飾, 수지형 입식) 3개와 사슴뿔모양 세움장식(鹿角形 立飾, 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이다. 관테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의 끝 부분에도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금동관의 관테에 장식용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첫 사례이다. 금동관의 관테에는 곱은옥(曲玉, 곡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金製垂飾, 금제수식)가 양쪽에 달려 있다.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데, 세움장식의 상단에서도 투조판의 흔적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 투조판이 관모(冠帽)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는지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금동관 아래에서는 금으로 제작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胸飾, 흉식)가 확인되었다. 그 아래에서는 은허리띠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되었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되어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되었는데, 왼손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키기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면 왼손 부분에서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으며,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 금동신발은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였다. 참고로 1960년 의성 탑리 고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키는 170㎝ 내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피장자의 성별 등을 포함해 추가로 더 밝힐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鐵鼎, 철정)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자료가 많아서 추후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논의가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허중학 기자]
울주 암각화 주변서 발견된 4족 발자국 주인은 ‘코리스토데라’
울주 암각화 주변서 발견된 4족 발자국 주인은 ‘코리스토데라’
[서울문화인] 2018년 6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주변 학술발굴조사 중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4족 보행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이 신생대(마이오세 전기)에 멸종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인 것을 밝혀졌다. 당시,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난 18개의 발자국(앞, 뒷발자국의 평균 길이는 각각 2.94cm, 9.88cm)이 하나의 보행렬로 발견되어 주목 받았다. 이는 그동안 국내에서 보고된 4족 보행 척추동물의 발자국 화석들(공룡, 익룡, 거북, 악어, 도마뱀과 기타 포유동물의 발자국 화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였다. 연구결과, 전기 백악기 지층에 남겨진 이 발자국은 중생대(쥐라기 중기, 약 1억7천4백만 년 전)에 출현하여 신생대(마이오세 전기, 약 1천6백만 년 전)에 멸종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의 발자국으로 밝혀졌는데,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자 세계에서는 두 번째 보고다. 1995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처음 보고된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 화석(캄프소사우리크누스 파르페티/Champsosaurichnus parfeti)은 매우 불완전한 2개의 발자국으로 앞‧뒷발의 구분이 모호하고 코리스토데라의 발자국인지도 불분명하다. 따라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앞발 9개, 뒷발 9개)은 완전한 형태로 남겨진 코리스토데라 발자국 보행렬 화석으로는 세계 최초이며,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코리스토데라의 보행 특성과 행동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화석으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에 발견된 코리스토데라 발자국 화석은 ‘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발자국’이라는 뜻의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로 명명되었다.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를 남긴 코리스토데라는 생존 당시 몸길이 약 90~100cm 정도로 추정되며, 앞‧뒤발가락이 모두 5개이고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뒷발에는 물갈퀴가 있어 물에서도 잘 적응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보행 특성에 있어서도 공룡이나 도마뱀과는 달리 악어처럼 반직립한 걸음걸이로 걸었다는 사실이 세계 최초로 확인되었다. 또한,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는 중국의 전기 백악기 지층에서 보고된 골격화석 ‘몬쥬로수쿠스(Monjurosuchus)’의 발 골격구조와 형태 및 크기가 일치하고 있어 유사한 종류의 코리스토데라가 남긴 발자국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로 우리나라 중생대에는 공룡‧익룡‧새‧도마뱀‧악어‧거북‧포유류 등의 척추동물들과 함께 새로운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가 서식하였음을 최초로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일원은 탁월한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 외에도 빼어난 자연경관과 중생대의 공룡‧새‧수생 파충류 화석 등 세계적인 자연유산이 공존하고 있는 복합유산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지난 2일 국제 저명학술지(SCI)인 Nature(네이쳐)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되었으며, 이번 연구 성과는 대전 천연기념물센터 전시관에서 2021년에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세계 근현대사
[전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세계 근현대사
[서울문화인]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사진보다는 분명 영상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찰나의 순간 이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그 결말은 존재하고 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에는 결말지어지지 않은 드라마처럼 각 개인마다 자기만의 결말을 상상하게 만든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위축된 상태에도 길게 줄이 늘어선 전시가 있다. 바로 세계 근현대사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는 저널리즘의 노벨상이라 불려지는 <퓰리처상 사진전>이다. 1998년, 2010년, 2014년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퓰리처상 사진전>은 일반적인 사전전과는 달리 전 세계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차례의 전시를 통해 서울에서만 유료관객 50만 명을 동원한 바 있는 인기 전시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는 설정이 아닌 전 세계의 이슈와 인간의 다양한 사회상과 삶을 그대로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내어 그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찾은 사진은 ‘슈팅 더 퓰리처’라는 타이틀로 1942년부터 지난 5월 4일 발표된 2020년까지 퓰리처상 사진부문의 모든 수상작 134점을 만나볼 수 있다. 국가와 언론은 그 운명을 함께 합니다. 언론은 능력 있고, 객관적이며,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국가의 미래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언론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조지프 퓰리처 (Joseph Pulitzer) 퓰리처상의 시작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가 컬럼비아 대학에 2백만 달러를 기부하며 시작되었다. 그는 이 기부금을 컬럼비아 대학 내 언론 대학 신설과 장학제도의 설립, ‘공공봉사, 공공윤리, 미국문학, 교육진흥을 장려하는 상’을 만드는 데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지프 퓰리처는 미국 대중 매체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장본인으로서, 미국의 언론을 대량소비의 수단이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그는 미국 오리건 주의 일간신문인 <더 월드(The World)>와 미주리 주의 지역신문인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St. Louis Post-Dispatch)>를 인수하기도 했다. 1917년 조지프 퓰리처의 유지로 제정된 퓰리처상은 ‘기자들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이다. 언론인은 물론, 문학인이나 음악인에게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가 주어졌다. 역대 유명 수상자로는 문학 · 희곡 · 음악 부문의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유진 오닐(Eugene O’Neill),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등이 있고, 언론 부문의 케빈 카터(Kevin Carter), 닉 우트(Nick Ut), 캐롤 구지(Carol Guzy) 등이 있다. 뉴욕 시 컬럼비아 대학에 위치한 퓰리처상 위원회는 매년 2천 명이 넘는 후보자 중 언론 분야의 14개 부문을 포함해 총 21개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4월에 발표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미화 10,000달러를 지급한다. 퓰리처상은 보통 매년 5월 말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상자들을 초대하여 오찬을 연다. 문학 · 희곡 · 음악 부문의 경우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해당 부문의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으나, 언론 부문의 경우 미국의 신문, 잡지, 뉴스 보도 사이트 등에 본인의 저작물이 등재되어 있다면 국적과 무관하게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사진은 관객들은 역대 수상작과 사진기자들의 인터뷰로 구성한 작품 설명 패널을 통해 세계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필름과 퓰리처상 주요 수상작을 미디어 아트로 구성한 영상 콘텐츠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 사진부문을 수상한 로이터통신 김경훈 기자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김경훈 기자는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규모 이민자 행렬인 카라반(Caravan)을 취재하며, 미국 국경지대에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모녀의 사진을 찍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제 3전시실에서 대중이 놓치고 있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안야 니드링하우스(Anja NiedringHaus)를 기념하는 특별전도 만나볼 수 있다. 안야 니드링하우스는 2005년 이라크 전쟁 당시 현장 취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성 종군기자로 2014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 도중 사망했다. <퓰리처상 사진전>의 제작자이자 큐레이터인 시마 루빈(Cyma Rubin)은 토니 영화제, 에미 영화제, 런던 영화제 수상 프로듀서이자 감독, 작가고 “퓰리처상 수상작은 전 세계의 사진기자들의 영감과 정신을 대변하며, 진실을 좇는 그들의 헌신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한국의 관객들에게 “우리는 곧 목격자입니다. 그렇기에 세계 곳곳에서 국제적으로 겪고 있는 일들을, 이를테면 코로나-19 사태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시민운동을 볼 것입니다. 그 최전방에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사진기자들입니다. 그들은 후추 스프레이, 최루 가스,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에 부상을 입고, 나아가 희생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는 용기를 가지고 헌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며 전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18일(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첨부된 사진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조치 이전에 찍은 사진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