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개관 40주년을 기념하여 호림박물관은 걸어온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며 '기억'이라는 테마로 특별전 <기억>을 지난 2월 15일부터 신사동 소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호림박물관은 1982년 10월 20일, 故호림 윤장섭 선생이 출연하고 기증한 기금과 유물을 바탕으로 개관한 국내의 대표적인 사립박물관으로 국보 8건, 보물 54건 등을 비롯한 1만 8천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현재는 신림동의 본관과 신사동의 분관체제로 운영되고, 전시를 통해 다양한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유산을 꾸준히 선보여 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문화 속 ‘기억’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도자기, 토기, 철기, 회화 등 다양한 재질의 고미술품 170여점과 더불어 현대작가 조덕현, 이주용, 임민욱의 작업이 고미술품과 어우러져 한 공간에서 선보임으로써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선조들의 기억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각자의 기억을 소환하여 과거와 현재의 교집합을 느껴볼 수 있다.
전시는 모두 3개의 전시실에서 이루어진다. 먼저 제1전시실에서는 ‘崇(숭) 마음이 우러나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의식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기억을 대상으로 삶의 시작을 알리는 태지석과 생전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 그리고 조선시대 다양한 제기 등이 전시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아기의 태(胎)를 함부로 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왕실에서는 아기씨의 태를 태항아리에 담고 안태의식에 따라 태지석과 함께 묻었다. 태지석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의 시작인 셈이다. 그에 반해 묘지는 삶의 마지막 기억을 위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후손들은 조상에 대한 업적을 기리고 정신문화를 계승하고자 경건하게 예를 차렸다. 더불어 숭모의 대상이기도 한 조상에 대한 기억과 감사는 제사를 통해 나타난다. 이러한 의식은 죽은 자와 산 자, 세대와 세대 간의 관계가 기억되고 이어져 내려오게 한다.
제2전시실에서는 ‘連(연) 삶이 이어지다’란 주제로 고대인들의 현세에 대한 기억의 간직을 위해 함께 묻은 부장품이 전시된다. 전시장 첫머리의 고대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무사로서 자부심과 정신을 기억하고자 함께 묻힌 갑옷과 함께 죽은 영혼을 사후세계로 연결시켜주는 의미로 새모양토기가 소개되고 있다.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 새모양토기가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것은 죽은 사람의 안식과 영혼의 승천과 같은 사후세계에 대한 상징적 기원을 표현하고 있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이러한 새모양토기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임민욱(1968년~ )의 <새가 날아가서, 나무가 된 나무>가 사운드와 함께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현세와 사후의 또 다른 세계,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 낸 기억이 어두운 전시 공간에 들어오는 한줄기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 새들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마지막 제3전시실에서는 ‘眞(진) 참이 드러나다’라는 주제로 훗날의 기억의 근거로 삼고자 시각적 이미지로 남긴 계회도와 초상화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계회도는 만남의 장면과 주변 경관을 그려 넣고 표제와 참가자의 명단을 기록했으며 별도의 여백에 시를 적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조선시대 의금부의 신참신고식의 장면을 담은 금오계첩을 함께 전시한다. 이러한 기록화는 일상에 대한 기억으로 공간적 시간적 정보를 담고 있으며 오늘날의 기념사진이나 방명록의 기능을 하였다.
사람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는 한 인간이 기록되고 기억되는 또 다른 방식의 하나이다. 조선의 초상화는 성리학적 사상과 윤리의 관계 속에서 조상을 공경하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제작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초상화가인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의 부부초상 2건, 7미터에 달하는 조덕현(1957년~)의 <사람>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초상화 13점이 소개되고 있다.
채용신은 전통 초상화 기법과 동시에 사진술과 서양화법을 적용하여 한국 근대 사실주의 초상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근대적 미술품 유통 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대변화에 따라 '채석강도화소'에 주문 제작 체계를 갖추고 미술품의 상업화를 시도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부부초상 2건은 이곳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초상화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진이 점차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조덕현(1957년~)의 <사람>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작가가 새롭게 편집하여 사진과 같이 그려낸 초상 작업이다. 호림박물관 소장의 조선시대 초상화들과 근대의 사진 속 인물을 그려낸 현대 작품이 서로 마주 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대들과 소통을 이끌어낸다.
전시실의 마지막에는 이주용(1958년~)의 <천연당 사진관>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김규진(金圭鎭, 1868∼1933)에 의해 개업한 사진관으로 조선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운영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작가가 재현한 천연당사진관은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시공간을 뛰어넘어 특별한 공간에서의 체험을 기록함으로써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