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20세기 후반, 우리는 어떤 해외작품을 수집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국제미술 소장품 기획전 《미술로, 세계로》
기사입력 2022.03.11 16:11 조회수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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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지금은 정보화로 인해 전 세계가 네트웍으로 연결된 사회이지만 2000년대 이전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당시 세계에 자국의 문화정체성을 알리는데 올림픽만한 행사도 드물었다.

 

1988년 우리나라에 처음 개최되었던 제 24회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기억보다는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려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서울올림픽의 전과 후로 나눌 정도로 국제화라는 변화의 변곡점이었다.

 

특히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답게 그 기간에는 스포츠 행사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공연 등 다채로운 국제 예술행사가 펼쳐지면서 산업화에 매진하던 정책 일변도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국제화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이는 미술계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한편, 해외미술의 국내 유입도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국제미술 소장품 기획전 미술로, 세계로

국내 최초 수장형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미술품수장센터가 1970년대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국제미술 소장품의 수집활동과 전개를 살펴보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에서는 1978년부터 수집해온 다양한 국적의 해외작가 96명의 조각, 드로잉, 회화 등 104점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1980-90년대를 관통했던 세계화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국제미술 소장품의 수집배경과 의의를 찾아가는 데 주력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초창기 수집 작품 등 절반 이상의 작품이 수집 이후 처음 관람객에 공개됨은 물론 마지막으로 전시된 지 30년여 만에 처음으로 수장고를 벗어나 전시에 출품되는 것도 상당수 소개되고 있다.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 IOC(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이 개회선언으로 외쳤던 구호이다. 이는 당시 우리국민들의 열망을 잘 나타내는 구호이기도 하다.

 

이러한 열망은 미술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전시 또한 이 구호처럼 한국미술의 국제교류 양상과 국립현대미술관 국제미술 소장품 수집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한국 방문 해외미술’, ‘미술교유, 미술교류’, ‘그림으로 보는 세계’,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미술, 세상을 보는 창5부로 구성하여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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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국제화는 한국미술의 해외진출해외미술의 국내 유입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기 위한 공통의 목표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까지 해외미술의 국내 유입은 해외공보관이나 재외작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움직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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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의 초기 국제미술 소장품의 주된 특징은 한국적인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1년까지 수집된 8점의 작품 가운데 4점은 미국 국적의 재외작가의 작품이고, 나머지 4점은 모두 한국의 인상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외국 작가에게 한국은 여전히 이국적인 풍물과 문화를 지닌 동북아시아의 한 국가로서 호기심의 영역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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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발데모어 (필리핀, 1947– ) <새마을 운동>, 1981, 비단에 수채, 126×88cm, 1981년 작가 기증

 

 

이런 가운데 백남준은 1980-90년대 한국미술의 세계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이슈와 연결고리를 낳은 장본인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울올림픽은 국민들에게 백남준을 인식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많은 양의 판화 작품이 기증되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당시 부대행사로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했던 세계현대미술제90억원의 예산과 국제적인 규모, 단기간의 추진일정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졸속운영과 편파성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대대적인 반발을 초래했고, 조율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논란과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한편, 당시 행사 홍보물에는 전시 참여 작가들에게 1점은 전시하고 1점은 기증하는 것을 독려하는 조항이 있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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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국제조각심포지어움 포스터

 


더불어 세계현대미술제에서 국제현대회화전을 개최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은 회화 전시와 올림픽공원 야외조각 심포지엄 참여 작가들로부터 조각 39점과 대형회화 62점을 기증받으면서 국립현대미술관 국제미술 소장품 수집에도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기증작품 중 지방순회전시(1990)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회화 16점과 조각을 공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전시에서는 서울올림픽 이후 미술국제교류가 확장됨에 따라 1990년대 국제미술품 수집(구입)과 양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서양 현대미술사의 다채로운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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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중심 미술사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가 대두되었다고 하나 전 세계의 동시대미술에서 작가의 국적이나 민족, 문화적 특성을 배제하고 작업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다원주의적 관점이 도입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비서구권 작가들에 대한 제한된 인식은 해외 작가가 80년대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처럼 우리도 여전히 비서구권의 작품은 제한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화의 반쪽짜리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80-90년대 미술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미술사를 바라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전시는 오는 612()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5층에서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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