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광화문광장 이전의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로 떠나는 여행

서울역사문화특별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기사입력 2022.01.03 15:44 조회수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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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세종로 일대는 조선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공간이다. 광화문이 세워진지 600년을 맞아,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협력전으로 광화문 일대의 역사와 공간을 탐색하는 서울역사문화특별전 광화문 600; 세 가지 이야기를 세 박물관이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한다.

 

먼저 서울역사박물관은 육조거리를 주제로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1116일부터 2022327),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하여 경복궁 발굴복원을 주제로 고궁연화古宮年華특별전(121()부터 2022227),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현대사로 보는 광화문을 주제로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1217일부터 2022228)을 진행한다.

 

 

광화문 홀로그램 01.jpg

 

 

[서울문화인] 육조거리는 오늘날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에 이르는 대로는 말한다. 조선왕조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건설하면서부터 그 앞의 육조거리에는 의정부, 사헌부, 한성부를 비롯하여 육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자리하면서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가로서 주요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이외에도 주변으로 궁궐에 물품을 조달하거나 핵심 관청을 지원하는 하급 관청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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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육조거리는 한양 최대의 관청가로 관원들의 출퇴근길이자 업무 공간이었다. 또한, 육조거리는 백성이 왕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폭이 약 60m에 달했던 육조거리에 행해진 왕의 행차와 사신을 위한 행사 등은 백성의 호기심을 자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백성을 위해 신문고가 설치되고, 격쟁과 상언이 이뤄지는 등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경복궁 중건 이후 육조거리 모습.jpg
경복궁 중건 이후 육조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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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세종로의 모습

 


조선왕조의 주요한 중앙 관청들이 자리하여 500여 년간 국가권력을 상징했던 육조거리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 이후 식민통치를 위한 광화문통으로 바뀌는 질곡의 역사를 겪었다. 광복 이후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세종로로 개명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서도 여전히 국가권력의 중심이었고, 다양한 국가 행사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80년대 민주화 시위의 장소로도 이용되었었지만 세종로가 국가의 상징거리에서 오늘날 시민의 광장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94년 지구의 날 행사를 시작으로 시민들에게 점차 개방되었고, 199년 의정부 터 자리에 광화문시민열린마당이 문을 열었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온 국민이 하나 되는 길거리 응원의 무대가, 2016년 겨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시위를 비롯하여 국민들이 정치적 주장을 펼치던 중심적인 공간으로 오랫동안 광장의 기능을 했다.

 

 

현재 광화문광장으로 바뀐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이래 국가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이 되어 온 역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고층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땅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진행하는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특별전은 600여 년 전 한양이 조성된 이래 핵심 관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온 육조거리와 그 사이를 오고 간 관원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전시 구성은 파트1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파트2 조선을 움직이는 육조거리의 관청들, 파트3 육조거리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에서는 한양의 건설과 함께 조성된 육조거리의 모습과 임진왜란 이후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있다. 또한, 육조거리 모형으로 제작한 하늘에서 본 육조거리의 관청들영상방(4×6m)에서는 육조거리의 관청들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다.

 

 

육조거리 영상.jpg


 

육조의 관청이 광화문 앞 좌우로 길게 들어서게 된 것은 1413(태종 13)이다. 이는 중국 주나라의 관직제도가 후대 중국 왕조의 도성 건설의 기본이 되었고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1592(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파괴되면서 17세기 이후 왕의 거처가 창덕궁과 경희궁으로 옮겨지면서 많은 관청들도 궁궐로 옮겨 갔다. 그러나 육조거리의의 관청들은 광해군 때 본래 위치로 복구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중인 육조거리 모형에 표시한 주요 관청.jpg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중인 육조거리 모형에 표시한 주요 관청

 

 


 조선을 움직이는 육조거리의 관청들에서는 육조거리에 위치했던 핵심 관청들과 각 관청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경국대전> ‘경관직을 기준으로 보면 한양에는 중앙 관청이 총 84개가 있다고 나온다. 이중에 육조거리에는 국정 운영의 핵심 관청이 자리했다. 이들 관청의 형태는 최근 발굴 조사된 삼군부 외행랑과 의정부 내행랑의 유구를 통해 관청의 내부는 크게 세 영역으로 확인되었다. 먼저 진입 영역인 대분은 육조거리를 향해 나 있었으며, 중문 안에 들어서면 업무 공간인 당상대청(3품 이상의 당상관이 근무하는 건물)과 아방(관원들의 공간) 등이 배치되었고, 세 번째 영역은 휴식과 접객의 영역으로 연못과 정자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숙천제아도의 호조, 한필교, 19세기,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jpg
숙천제아도의 호조, 한필교, 19세기,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

 

세종실록에 세종이 행랑은 10간마다, 개인집은 5간마다 우물 하나씩을 파고, 각 관청 안에는 우물 두 개씩을 파서 물을 저장하여 둘 것을 전교하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연못은 목조 건축물의 방화수를 비축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 공간에서는 육조의 업무역할을 살펴본다. 특히 코너 호조의 방에서는 속사의 업무를 자세히 살펴보고, 휴식공간인 불염정에서 청렴함이 요구되었던 관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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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육조거리 관원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육조거리로 출근하는 사람들에서는 관원의 출퇴근 시간과 휴가, 녹봉, 숙직, 모임 등을 통해 조선시대 관원의 일과를 살펴본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시대 관원들의 출퇴근 시간은 묘사유파(卯仕酉罷)’, 즉 묘시(오전 5~7시 사이)에 출근하여 유시(저녁 5~7시 사이)에 퇴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따라서 관원들은 원칙적으로 하루 12시간을 관청에 나와서 근무를 해야 했다. 특히 고위관원들은 각종 국가 의례와 왕실 행사에도 참석해야 했는데, 이런 날은 오전 3시에서 5시 사이에 궁궐로 출근해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관원들은 말을 타고 출근을 했으며, 출근길에는 구종(驅從)이라는 관청 노비 한 명과 집안 노비 한두 명이 동행하였는데, 이때 구종은 큰 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외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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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관원들의 출퇴근_영상

 


과거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관청들은 일제강점기 때 고층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땅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지난 2016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의정부 주요 건물의 배치와 규모가 최초로 확인되었고, 이어 2019년부터 진행된 조사에서는 삼군부와 사헌부 등 또 다른 관청의 유구가 드러나면서 육조거리의 흔적들이 100여 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육조거리의 관청들은 오늘날 광화문광장으로 탈바꿈되어 사라졌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간으로 여전히 서울의 중심부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공간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시에 앞서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최근 광화문광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광화문 앞 의정부 터가 작년에 사적 제558호로 지정되었고,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 속에서 진행중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내년 4월에 마무리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광화문광장의 유구한 역사성을 경험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및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은 휴관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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