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조선 서원터에서 발견된 고려 사찰유물 및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 보물지정

기사입력 2021.08.30 14:49 조회수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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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국사터 청동동이 발굴 모습.png
서울 영국사터 청동동이 발굴 모습

 

 

 

 


 

[서울문화인] 고려 시대 금속공예 기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을 비롯해 조선 초기 음식조리서인 ‘수운잡방’, 불경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 등 총 3건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서원터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사찰유물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는 조선 시대 유학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봉서원(道峯書院)의 중심 건물지로 추정되는 제5호 건물지의 기단 아래에서 2012년 수습되었다. 이외에도 이곳에서는 총 67건 79점 출토된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이 중 매장환경을 알려주거나 명문이 있어 제작시기가 뚜렷한 것, 조형성이 우수한 작품을 선별한 결과, 금동금강저(金銅金剛杵) 1점, 금동금강령(金銅金剛鈴) 1점, 청동현향로(靑銅懸香爐) 1점, 청동향합(靑銅香盒) 1점, 청동숟가락 3점, 청동굽다리 그릇 1점, 청동유개호(靑銅有蓋壺) 1점, 청동동이(靑銅缸) 1점 등 총 10점을 지정하기로 하였다.

        

 

(보물) 서울 영국사지터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 01.jpg
보물로 지정된 서울 영국사지터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

 

 

금동금강령과 탁설, 금동금강령 세부- 오대영왕-1.jpg
금동금강령과 탁설, 금동금강령 세부- 오대영왕

 

 

 

금동금강저 01.jpg
금동금강저

 

 

 

 

지정된 10점은 명문을 통해 유물의 사용처와 사용 방식, 중량, 제작시기, 시주자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릇의 굽다리에 새겨진 ‘계림공시(雞林公施, 계림공이 시주함)’라는 명문은 1077년∼1095년 사이에 내려준 ‘계림공’의 작위명을 통해 고려 숙종(肅宗, 1054∼1105)이 시주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출토유물의 시대적 편년과 더불어 고려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역사‧예술‧학술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또한, 이 유물들은 출토지가 확실하고 완형의 묶음으로 발견된 불교의식구인 금동금강저와 금동금강령은 주조기술이 정교하고 세부 조형도 탁월해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 시대 금강저와 금강령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공예품으로 꼽힌다. 특히 금강령의 부속품인 물고기 모양의 탁설(鐸舌,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속에 둔 단단한 물건)은 국내 유일한 사례이자, 금강령 몸체 상단에 새긴 오대명왕(五大明王)과 하단의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과 사천왕(四天王) 등 11존상의 배치 또한 그동안 보기 드문 희귀한 사례로서 우리나라 밀교(密敎) 의식법구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 오대명왕(五大明王): 불교의 종파인 밀교(密敎)에서 숭상하는 다섯 명왕(明王). 중앙의 부동명왕(不動明王), 동방의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 남방의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서방의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북방의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을 일컬음

 

 

도봉서원 전경 01.jpg
도봉서원 전경

 

 

 

한편, 영국사지는 원래 조선 시대 도봉서원 터라고 알려졌으나, 2017년 추가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도중 고려 초기 고승 혜거국사(慧炬國師) 홍소(弘炤, 899∼974)의 비석(碑石) 파편이 발견되었고, 비문의 내용 중 ‘도봉산 영국사’(道峯山 寧國寺)라는 명문이 판독됨에 따라 이 지역이 고려 시대 사찰 ‘영국사(寧國寺)’의 터였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로써 도봉서원이 영국사 터에 건립되었다는 사실과 발굴지에서 수습된 금속공예품은 바로 영국사에서 사용한 고려 불교의식용 공예품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견주도봉산영국사 혜거국사비와 탁본.jpg
견주도봉산영국사 혜거국사비와 탁본

 

 

지금까지 88자의 비문만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1668)에 탁본으로 전해오면서 실물은 확인되지 않던 혜거국사비의 비편을 판독한 결과, 비석에 쓰인(비명, 碑銘) ‘견주도봉산영국사(見州道峯山寧國寺)~’글자는 지금까지 영동지륵산영국사로 잘못 알려졌던 혜거국사비의 출처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도봉서원 보존정비구역 발굴조사 출토유물일괄  01.jpg

 

고려 시대 하층유구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의 기와(중판선문 기와)와 건물지 기단으로 보아 영국사가 통일신라 시대에는 창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영국사 혜거국사(慧炬)가 갈양사 혜거국사(惠居, 고려 최초의 국사)와 동일인물로 혼용되어 왔으나 동시대를 함께한 동명이인인 것도 명확해졌다.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수운잡방(需雲雜方)’은 경북 안동의 유학자 김유(金綏, 1491∼1555)에서부터 그의 손자 김영(金坽, 1577∼1641)에 이르기까지 3대가 저술한 한문 필사본 음식조리서로 ‘수운잡방’은 즐겁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라는 의미로, 음식 조리서가 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첫 사례이다.

 

 

(보물)수운잡방 02.jpg
수운잡방

 

 

* 제목의 ‘수운(需雲)’은 『주역(周易)』의 “구름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수(需, 즉 수괘需卦)’이니, 군자가 이로써 마시고 먹으며, 잔치를 벌여 즐긴다(雲上于天, 需, 君子以飮食宴樂)”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회를 베풀어 즐긴다는 의미

 

이 책은 김유가 지은 앞부분에 86항, 김영이 지은 뒷부분에 36항이 수록되어 모두 122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14종의 음식 조리와 관련 내용이 수록되었다. 항목을 분류하면 주류(酒類) 57종, 식초류 6종, 채소 절임 및 침채(沈菜, 김치류) 14종, 장류(醬類) 9종, 조과(造菓, 과자류) 및 당류(糖類, 사탕류) 5종, 찬물류 6종, 탕류 6종, 두부 1종, 타락(駝酪, 우유) 1종, 면류 2종, 채소와 과일의 파종과 저장법 7종이다. 중국이나 조선의 다른 요리서를 참조한 예도 있지만, ‘오천양법(烏川釀法, 안동 오천지방의 술 빚는 법)’ 등 조선 시대 안동지역 양반가에서 만든 음식법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수운잡방’은 조선 시대 양반들이 제사를 받드는 문화인 ‘봉제사(奉祭祀)’와 손님을 모시는 문화인 ‘접빈객(接賓客)’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자 우리나라 전통 조리법과 저장법의 기원과 역사, 조선 초‧중기 음식 관련 용어 등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의의가 있다. 아울러 저자가 직접 쓴 원고본이고 후대의 전사본(傳寫本, 베낀 글)도 알려지지 않은 유일본으로서 서지적 가치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음식 문화를 담고 있어 오늘날 한국인의 음식문화 기원을 찾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예념미타도량참법’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아미타부처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모든 죄업을 참회하며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집) 권1∼5(禮念彌陀道場懺法 卷一∼五)’는 부산 고불사(古佛寺) 소장으로, 1474년(성종 5년)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발원으로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개판한 왕실판본(王室版本) 불경이다. 10권 2책의 완질 중 권1∼5의 1책에 해당한다.

 

 

(보물)예념미타도량찹법 권1-5 01.jpg
예념미타도량찹법 권1-5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가장 오랜 판본은 1376년(고려 우왕 2년)에 고려의 승려 혜랑(慧朗) 등이 간행한 책이 전하며, 이번 지정된 고불사 소장본은 1474년경에 찍은 판본으로 추정된다. 이 판본은 간행 이후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태가 되는 자료로서 조선 전기 불교사상과 인쇄문화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자료이다.

 

고불사 소장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는 인수대비와 인혜대비를 비롯해 공주, 숙의(淑儀), 상궁(尙宮) 등 여인들과 월산대군(月山大君)‧제안대군(齊安大君) 등 왕실 인사들, 신미(信眉)‧학열(學悅)‧학조(學祖) 등 당대 중요 고승들이 참여한 정황이 명확하고, 판각과 인쇄에 참여한 장인들의 이름이 모두 나열되어 있어 조선 초기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가적인 불경 간행사업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책 앞머리에 수록된 과거‧현재‧미래 삼세불(三世佛) 도상은 화원(畵員) 백종린(白終麟)과 이장손(李長孫)이 그린 것으로, 연대와 작가가 확실한 조선 초기 판화라는 점에서 당시 불교사, 인쇄사, 회화사 연구에도 의의가 크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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