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고려주자(高麗注子),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속에 깃든 고려인의 삶을 엿보다.

호림박물관 신사 분관 특별전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
기사입력 2021.08.19 14:48 조회수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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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A.jpg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이 G20 정상회의와 용산 이전 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진행했던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특별전(2010), 1989년 <천하제일 비색청자-고려청자명품>특별전,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고려청자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2012),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였던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2018)은 개인적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한국문화재를 주제로 한 전시에 있어 손꼽을 정도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전시이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 ‘고려시대’의 예술을 조망한 전시라는 점이다.

  

당시 <고려불화전>은 전 세계 흩어져 있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품으로 손꼽히는 ‘고려불화’를 한자리에 만날 수 있었던 전시가 끝나고 전문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언제 ‘최고의 예술작품’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음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던 전시로 기억되며, <천하제일 비색청자-고려청자명품>전은 속된말로 현대의 주부들이 왜 아름다운 식기에 빠지는지를 알게 함은 물론 말 그대로 중국에서 고려청자를 ‘천하제일 비색청자’라 평가한 그 의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시였다. 특히 <대고려>특별전은 특별했다. 88일 동안의 전시 기간 동안 17만 2천여 명의 관람객이 고려의 명품을 찾았다. 이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 문화재를 주제로 한 전시의 하루 평균 관람객이 957명이었지만 이 특별전은 하루 평균 1,955명이 전시를 관람하여 관람객 수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록을 갱신했다. 그만큼 우리국민들은 정교하고 세밀한 공예 문화의 절정기로 평가받는 고려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시기의 예술품보다 크다고 하겠다.

 

서두를 길게 한 것은 ‘고려청자’로 대변되는 고려 ‘자기(瓷器)’의 아름다움과 당시의 삶을 마주볼 수 있는 전시를 소개함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전시는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신사 분관에서 2021년 두 번째 기획전시이자 고려주자(高麗注子)를 소개하는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전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주전자(酒煎子)’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옛 문헌에는 ‘주자(注子)’라는 단어가 주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 사전에서 주자는 ‘술 따위를 담아 잔에 따르게 만든 주전자’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주자나 주전자는 물이나 술 따위의 액체를 담아 따르기 위한 그릇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이러한 기능을 가진 주자가 어느 시기보다 활발하게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고려는 주자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는 고려만의 독특한 음식문화와 뛰어난 제작기술이 뒷받침되었다.

  

이번 기획전시에는 다양한 재질의 고려주자 133건과 주자와 함께 사용된 술잔과 찻잔 등 전시 보조 작품 85건, 중국의 백자주자 9건 등 모두 210여 건이 선보이는 전시로 국내에서 고려시대 주자를 주제로 선보이는 전시로는 최대 규모로 특히 소개되는 절반이 넘는 작품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유물들이다.

  

 

청자 상감 운학국화문 병형 주자, 13세기, 보물 1451호 01.jpg
청자 상감 운학국화문 병형 주자, 13세기, 보물 1451호

 

 

전시의 주제인 주자는 액체를 담아 따르는 그릇을 통칭하는 말로 이러한 용도의 토기 혹은 도기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했지만 옛 문헌 기록에 의하면 주자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9세기 초반 당(唐)나라 때이다. 그 이전에는 술을 담아 따를 때 항아리[樽]과 국자[杓]를 썼다. 술을 담아 따르는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만든 것이 주자라 할 수 있다.

  

주자는 고려 이전에도 이후에도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만큼은 아니었다. 고려 때는 국가, 사원, 개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술을 빚을 만큼 술이 보편화되면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제향(祭享)이 있을 때, 왕이 신료와 연회를 베풀 때, 사원이나 개인이 손님을 맞이하여 접대할 때 중요하게 소비되었다.

  

그러나 주자는 다른 그릇에 비해 구조가 복잡하여 만들기가 까다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만들어졌으며 시기에 따라 형태와 장식도 다채로웠다. 고려청자의 또 다른 아이콘인 매병(梅甁)과 비교해도 유행 기간도 훨씬 길다. 또 주자의 형태 또한 금속기를 본 떠 만든 것에서부터 과형(瓜形)‧구형(球形)‧표형(瓢形)‧병형(甁形)‧상형(象形) 등 훨씬 다양하여 당시 청자제작기술의 최고 정점에 주자가 있다고 해도 손색없다. 이러한 이유로 주자는 오늘날은 훌륭한 감상의 대상인 예술작품이자, 고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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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대고려전>에서 선보였던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 고려 12세기, 보스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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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음각 당초문 주자 및 승반, 12세기

 

호림박물관은 자기(磁器) 제작기술이 보편화된 조선시대보다 고려시대에 더 많은 주자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다면 고려 사람들은 주자에 무얼 담아 사용했을까? 이와 같은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준비되었으며, 주자는 고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창(窓)이라고 보고 주자가 가진 본래적 기능 즉 술과 차를 담아 따르는 용도 이외에도 그것을 사용하는 행위에 주목하였다.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전

첫 번째 전시공간(4층)은 ‘고려 공예의 꽃, 주자注子’라는 소주제 아래에 고려 초기인 10세기 무렵부터 고려 말기인 14세기까지 고려청자 주자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15세기 상감분청사기와 백자 주자를 한 공간에 전시되어 고려의 주자 전통이 조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 하겠다.

  

전시의 대표작으로는 보물 1453호 <청자주자>(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를 시작으로, 중국 월요청자의 영향이 보이는 10세기 무렵의 <청자주자>, 고려 특유의 비색과 상감 문양이 보물 1540호 <청자표형주자>(12세기)와 보물 1451호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13세기), 고려 후기 청자주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국화문표형주자>와 <청자상감연학문병형주자>(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품들로 구성하여 주자의 조형미를 감상하는 동시에 전개 과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전시실 마지막 코너에서는 보물 1540호 <청자표형주자>와 국보 281호 <백자주자>(조선 15세기)를 나란히 전시하여 고려와 조선 주자의 조형적 특징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청자 표형 주자, 12세기, 보물 1540호, 백자 주자, 15세기, 국보 281호.jpg
청자 표형 주자, 12세기, 보물 1540호, 백자 주자, 15세기, 국보 281호

 

 

두 번째 전시공간(3층)은 ‘주자, 술[酒]을 따르다’라는 소주제 아래에 고려주자 가운데 주기(酒器)로 사용된 유물들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고려 왕실을 중심으로 국가 의례에 용된 주자들을 선보인다. 특히 고려 때에는 조선과 달리 개인은 물로 사원과 국가에서 주점(酒店)을 직접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에 전시실 안에 주기로 사용된 각종 청자들을 선별하여 고려시대 주점의 풍경의 재현과 더불어 술잔으로 사용된 각양각색의 청자잔들을 고려 때의 주시(酒詩)와 함께 선보여 관람객들이 당시 고려의 술 문화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전시의 대표작에는 12세기 무렵 고려 왕실이 의례에서 사용한 <청자 음각반룡문 주자>와 <청자 상감국화문 신선장식 주자와 승반>(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을 비롯하여 술과 관련된 시(詩)가 새겨진 <청자표형주자>(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 호화스러웠던 고려시대의 음주 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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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시명 주자(12~13세), 청자 상감 당초문 시명 주자(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시명 표형 주자(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마지막 전시공간(2층)은 ‘주자, 차茶를 따르다’라는 소주제 아래에 고려주자 가운데 다기(茶器)로 사용된 유물들을 통해 고려의 수준 높았던 차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전시의 대표작품으로는 고려의 대문호인 이규보(李奎報)가 ‘남쪽 사람이 보낸 철병(鐵甁)을 얻어서 차(茶)를 끓여보다’라는 시(센 불이 강한 쇠 녹여 내어 / 속을 파 둔하고 단단한 것 만들었다 / 긴 부리는 학이 돌아보는 듯 / 불룩한 배는 개구리가 벌떡거리는 듯 / 자라는 뱀 꼬리 굽은 듯 / 모가지는 오리 목에 혹이 난 듯 / 입 작은 항아리처럼 우묵하고 / 다린 긴 솥보다 안전하다)에서 노래한 철병을 연상시키는 청동주자(11세기~12세기)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에 다양한 신분 계층의 사람들이 주자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인 청자‧흑자‧도기 등 다양한 재질의 주자가 소개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백자주자를 통해서 고려주자의 독창적인 조형미를 살펴볼 수도 있다.

  


(위)청자 음각 연화문 화형 탁잔, (아래)청자 음각 화문 화형 탁잔, 12세기.jpg
(위)청자 음각 연화문 화형 탁잔, (아래)청자 음각 화문 화형 탁잔, 12세기

 

 


“통하고 만나다, 다반향초茶半香初”전

한편,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전의 연계 전시로 “통하고 만나다, 다반향초茶半香初”전은 ‘소통’의 현대적 해석으로 백남준과 이수경의 작품을 선정, 백남준의 <W3>(1994년 작)와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2012년 작)을 소개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의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연결’과 ‘소통’이다. <W3>는 www(월드 와이 웹), 즉 인터넷 세상을 의미하는 뜻이자, 주역의 64괘를 상징하는 64대의 모니터를 2개의 X자 모양으로 배치한 작품이다.

  

또한,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는 버려진 도자기 파편들을 화려한 금(金)으로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원래의 모습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깨어진 조각은 작가의 번역과 해석을 통해 예술로 승화되어 관람객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한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2012년), 백남준, W3(1994년).jpg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2012년), 백남준, W3(1994년)

 

 

옛 유물의 가치는 그 유물 자체가 가진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그 시대를 읽고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대게 연구자의 몫이라 생각하며 대중들은 예술적 아름다움에 심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러한 틀에서 그 유물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색다르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전시라 하겠다. 전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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