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20세기 대표 여성작가 박래현의 편견을 씻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래현, 삼중통역자’전,
기사입력 2020.10.21 18:17 조회수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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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 단장, 1943년.jpg
박래현, 단장, 1943년, 박래현이 도쿄 여자미술학교 3학년이던 1943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박래현이 거주하던 하숙집의 딸을 모델로 하였다. ‘거울을 보는 여성’이라는 소재는 일본 미인도에서 즐겨 다루어지던 것인데, 박래현은 일본화를 학습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소재를 접했을 것이다. 박래현은 배경이 없는 큰 화면에 검은 옷의 소녀와 붉은 화장대만 마주 보도록 대담하게 구성하면서도 화장대 위의 화장솔과 소녀의 손에서는 섬세한 세부묘사를 놓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인물화에서 탄탄한 기초를 쌓은 박래현의 기량을 잘 보여준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해방을 맞이한 박래현은 일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여성 인물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박래현의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작품 총 138점 공개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미술가 박래현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이 지난 929일부터 개최 중이다. 근대 화가를 조명하는 덕수궁관에서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수많은 미술가를 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하였지만 여성미술가를 단독으로 조명하는 전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시대적으로 남성미술가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박래현(1920-1976)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될 만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대중들에게 낯선 미술가이다. 또한 과거 가부장제 시대는 박래현이라는 이름대신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화가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으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초기 작품을 보면 먼저 운보의 작품과 비교하는 생각이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박래현은 식민지시기 일본화를 수학하며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에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이른 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였고 1960년대 추상화의 물결이 일자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다. 특히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하여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후 7년 만에 귀국하여 개최한 1974년 귀국판화전은 한국미술계에 놀라움을 선사했으나, 1976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제대로 이해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태피스트리와 다양한 동판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70년대에 그가 선보인 판화 작업들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번 전시명인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표현한 명칭이다. 미국 여행에서 박래현은 여행가이드의 영어를 해석하여 다시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표현했다. 박래현이 말한 삼중통역자는 영어, 한국어, 구화(구어)를 넘나드는 언어 통역을 의미하지만, 이번 전시에서의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지었던 그의 예술 세계로 의미를 확장하였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자주 선보이며 익숙한 초기 작품에서 벗어나 박래현의 예술의 도전을 따라, 1부 한국화의 현대’, 2부 여성과 생활’, 3부 세계여행과 추상’, 4부 판화와 기술로 구성되어 폭넓은 그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1부 한국화의 현대에서는 박래현이 일본에서 배운 일본화를 버리고, 수묵과 담채로 당대의 미의식을 구현한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미전 총독상 수상작 <단장>, 대한미협전 대통령상 수상작 <이른 아침>,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 <노점>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2부 여성과 생활에서는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박래현이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어떻게 모색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여원, 주간여성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지에 실린 박래현의 수필들이 전시되어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박래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박래현, 이른 아침(좌), 노점(우), 1956년,.jpg
박래현, 이른 아침(좌), 노점(우), 1956년

 

 

2부 생활.jpg

 

 

3부 세계 여행과 추상은 세계를 여행하고 이국 문화를 체험한 뒤 완성해 나간 독자적인 추상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그의 새로운 도전 이면에 1960년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의 고대 유물들을 그린 스케치북들을 통해 박래현의 독자적인 추상화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4부 판화와 기술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판화와 동양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박래현의 마지막 도전을 조명하고 있다. 또한 박래현이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동양화 다섯 작품이 한자리 소개되고 있다.

 

 

판화작품.jpg
박래현의 다양한 판화작품

 

박래현, 작품, 1970-73, 태피스트리, 119.2x119cm, 개인 소장.jpg
박래현, 작품, 1970-73, 태피스트리, 119.2x119cm, 개인 소장

 

 

4부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동양화 다섯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jpg
4부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동양화 다섯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전시를 만나기 전 박래현은 그의 초기작품들로 인해 운보라는 그늘이 함께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운보의 그늘은 물론 서구 모더니즘의 조형 어법을 자기화한 추상회화와 판화는 물론 테피스트리 작품을 통해 동양화의 굴레까지 벗어던진 화가로 조명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또한 이번 전시에 대해 오랫동안 박래현의 작품을 비장(秘藏)했던 소장가들의 적극적 협력으로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으로 외출했다, “열악했던 여성 미술계에서 선구자로서의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래현 예술의 실체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은 202113일까지 덕수궁관 전시 종료 후 내년 126일부터 5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순회 개최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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