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 180호 추사의 세한도, 국가 품으로 기증되다.

기사입력 2020.08.21 16:36 조회수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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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80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서울문화인]심사숙고 끝에 내어놓았다.”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세한도를 기증 의사를 전달하시며 한 말씀이다.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제180호 세한도가 국가 소유가 되게 되었다.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금전으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무가지보, <김정희필 세한도>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손창근 선생의 세한도기증은 201811손세기손창근 컬렉션 202304점 기증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로써 손창근 선생이 2005년부터 두 번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한 203305점의 문화재 전체를 기증하게 되었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 올곧은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최고의 문인화의 걸작이다. 유배시절 추사 김정희가 59세 때 그렸던 것으로 당시 추사가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달픔과 메마름을 건조한 먹과 거친 필선으로 사실적인 표현으로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에서 서화일치의 경지를 보여준다. 상당히 고된 유배생활을 근근이 버티던 그에게 세한도속 소나무는 인간으로서 힘든 시간을 견디어내는 추사 본인이었으며, 잣나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썼을 선비정신, 그 기개를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스승 추사를 위해 그의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은 새롭게 들어온 중국의 문물 자료를 모아 스승에게 보내주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김정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선물한 것이 바로 세한도이다. 이 선물을 받은 제자는 이를 청나라 문인 16인에게 선보여 그 작품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의 글을 받아 남겼다. 그리고 그 외에도 오세창, 이시영 등 여러 주요 인물들의 글이 함께 남아있어 세한도를 통해 그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그 마음과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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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완당세한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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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김준학 반증위 풍계분 등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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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조무견 등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세한도가 국가 소유가 되기까지 다양한 소장자들이 있었다. ‘세한도장축은 이상적 사후 이후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에게 넘어가 그의 아들 김준학이 이 시를 읽으며 공부했던 감상기를 두루마리 끝에 적어놓았다. 그 뒤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의 아들 민규식이 매물로 내놓아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쓰카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 서예가이자 추사 작품의 최고 컬렉터였던 소전 손재형이 전쟁 중에 후지쓰카를 찾아가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으니 세한도를 양도해 주십사하고 부탁했다. 그러나 후지쓰카는 자신도 추사를 존경하므로 이를 고이 간직하겠노라고 거절하고 이듬해 여름 후지쓰카는 경성제대를 정년하고 세한도를 비롯한 추사 관계 서화·전적을 모두 갖고 도쿄로 돌아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전은 나라의 보물이 일본으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고 몹시 안타까워 하다가 거금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후지쓰카의 집을 찾아가서 세한도를 넘겨 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소전은 뜻을 버리지 않고 매일 후지쓰카를 찾아가 석 달을 넘게 졸랐다. 그러다 12월 어느 날 후지쓰카는 마침내 소전의 열정에 굴복하여 맏아들 아키나오에게 당신이 죽으면 소전에게 넘겨주라고 당부했으니 안심하고 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소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로 양도해준다는 말만 기다리며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이에 후지쓰카는 선비가 아끼던 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보상도 받지 않겠다며 잘 보존만 해달라며 세한도를 건냈 다. 그리하여 세한도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당시는 미군의 도쿄 공습이 한창인 때였다. ‘세한도는 국내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19453, 미국의 도쿄 대공습 때 후지쓰카의 서제가 공습으로 인해 추사의 서예 작품과 일부 유품을 비롯하여 많은 소장품이 소실되었다.

 

소전은 일본에서 돌아온 뒤 세한도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5년이 지나 이 사실을 위창 오세창, 추사 학술 연구의 제일인자 위당 정인보, 당시 부통령으로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던 성재 이시영 선생 세 분에게 알리고 발문을 받았다. 위창은 <세한도>에 발문을 쓰면서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소전의 열정적 행동을 이렇게 칭찬했다. “세계에 전쟁 기운이 가장 높을 때 소전 손재형 군이 훌쩍 대한해협을 건너가 많은 돈을 들여 우리나라의 진귀한 물건 몇 가지를 사들였는데 이 그림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이다. 폭탄이 비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어려움과 위험을 두루 겪으면서 겨우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감탄하노라. 만일 생명보다 더 국보를 아끼는 선비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잘하고 잘 했도다.”

 

그러나 훗날 소전 손재형이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선거 자금에 쪼들리면서 그의 수장품 중 겸재의 <인왕제색도>금강전도> 당시 삼성물산 이병철 사장에게, <세한도>는 사채업자에게 저당잡히고 말았다, 소전은 끝내 돈을 갚지 못해 소유권을 잃었다, <세한도>는 이후 미술품 수장가인 손세기에게 넘어갔고, 다시 그의 아들인 손창근씨 소장품에서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평소 근검절약하여 수집한 문화재들을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없이 기증하겠다는 손창근 선생은 세한도기부 이전에도 그동안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 1억원 기부, 2012년 경기도 용인 소재 200만평 산림 국가 기부(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7KAIST 건물 및 연구기금 총 51억원 기부 등 끊임없는 기부 활동으로 사회 공익에 이바지해왔다. 2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와 사재를 국가와 교육기관에 기증하며 그 동안 보여준 손세기·손창근 선생의 그 큰 뜻이 세한도기증을 통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온전히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후손에게 다시 돌려주는 소임을 다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손창근 기증자와 배기동 관장 01.jpg
손창근 기증자와 배기동 관장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창근 선생의 기증 의사를 존중하여 <세한도> 기증과 관련된 모든 제반 업무 절차를 진행중이며, 공식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추어 <세한도>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국민 모두가 세한도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올 11월에 세한도를 공개하는 특별전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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