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신라 자장율사가 건립한 정선 정암사의 모전석탑 ‘수마노탑’, 국보로 지정

기사입력 2020.06.25 14:30 조회수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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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32호로 지정된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서울문화인] 삼국유사에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받아 귀국한 후, 643(선덕여왕 12)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정선 정암사의 수마노탑(水瑪瑙塔)’이 국보 제332호로 지정되었다.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은과 함께 7보석 중의 하나인 마노(瑪瑙)와 관련이 있으며,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의 도력에 감화하여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 해서 물 ()’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水瑪瑙塔)’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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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32호로 지정된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상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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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32호로 지정된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전경

 

 

 

수마노탑은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전석탑으로 전체 높이가 9m에 달하며,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1층 탑신에 감실(龕室)을 상징하는 문비가 있고, 그 위로 정교하게 다듬은 모전(模塼)석재를 포개어 쌓았으며, 옥개석의 낙수면과 층급받침 단 수를 층별로 일정하게 쌓았다. 석회암 지대라는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고회암(苦灰巖)으로 제작되었고, 쇠퇴한 산천의 기운을 북돋운다는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과 사리신앙을 배경으로 높은 암벽 위에 조성된 특수한 석탑이다.

 

특히 1972년 수마노탑 해체 당시에 함께 나온 탑지석(탑의 건립 이유,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로 탑 안에 넣어 둠)은 조성역사, 조탑기술 등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국보 제21), 다보탑(국보 제20)을 포함해 탑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희소한 탑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수마노탑은 탑지석을 비롯한 자료에서 수리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고,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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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068호로 지정된 안동 봉황사 대웅전

 

 

안동 봉황사 대웅전(安東 鳳凰寺 大雄殿)’, 보물 제2068호로 지정

더불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1안동 봉황사 대웅전(安東 鳳凰寺 大雄殿)’는 보물 제2068호로 지정되었다.

 

안동 봉황사 대웅전(이하 대웅전)’은 건립 시기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지만, 대웅전의 내력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사찰 내 각종 편액(扁額)과 불상 대좌의 묵서, 그 밖에 근래 발견된 사적비와 중수기 등을 종합해 보면 17세기 후반 무렵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삼존불을 봉안한 정면 5칸의 대형 불전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3칸 불전에 맞배집이 유행하던 것에 비하여 돋보이는 형식이다. 또한, 전면의 배흘림이 강한 기둥은 조선 후기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이다.

 

 

안동 봉황사 대웅전 내부 01.jpg
안동 봉황사 대웅전 내부

 

 

 

대웅전의 외부 단청은 근래에 채색되었지만, 내부 단청은 17~18세기 재건 당시의 상태를 온전하게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내부 우물반자에 그려진 용, 금박으로 정교하고 도드라지게 그려진 연화당초문 등이 17~18세기 단청의 전형을 보이며 전면의 빗반자에 그려진 봉황은 연꽃을 입에 물고 구름 사이를 노니는 모습으로, 봉황사라는 사찰의 유래와도 관련된 독특한 것으로 평가된다.

 

봉황사 대웅전은 17세기 말에 건립된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정면 5칸의 당당한 격식을 간직한 조선 후기의 불전이다. 공포부를 비롯한 세부는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수리 흔적을 담고 있으며, 전면과 옆면, 뒷면 공포가 서로 달리하고 있는 것은 조선 말기 어려웠던 안동지역 불교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천장의 우물반자에 그려진 오래된 단청과 빗반자의 봉황 그림 등 뛰어난 실내장엄 등이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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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운사 연수전

 

 

의성 고운사 연수전’(義城 孤雲寺 延壽殿), 보물로 지정 예고

의성 고운사 연수전’(義城 孤雲寺 延壽殿)은 경북 의성군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0호이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유서 깊은 사찰로 연수전은 사찰중심공간에 인접하여 자리하고 있다. 연수전은 1902년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여, 1904년에 세운 기로소 원당이다. 고운사 내에 있던 영조의 기로소 봉안각의 전례를 따라 세워진 대한제국기의 황실 기념 건축물이다. 기로소(耆老所)70세 이상의 정2품 이상의 문관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국왕의 경우 60세를 넘으면 기로소에 입소하는데 조선시대에 걸쳐 기로소에 입소한 왕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 4명에 그친다.

 

 

의성 고운사 연수전 02.jpg

 


연수전은 정면3칸 옆면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기둥머리 이상의 부분에 화려한 금단청을 하였고, 천장에는 다른 곳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용과 봉, 해와 달, 학과 일각수(一角獸, 유니콘과 비슷한 상상 속 동물), 소나무와 영지, 연과 구름 등 다양한 주제의 채색 벽화가 가득하다. 규모가 작지만 황실 건축의 격에 어울리는 격식과 기법, 장식을 가지고 있는 수준 높은 건축물이며, 그 기능과 건축 형식의 면에서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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