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신비의 도시 요르단 페트라

기사입력 2020.03.09 10:28 조회수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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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즈네

 

 

 

[서울문화인] 코로나19로 많은 외부 일정이 취소 혹은 연기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많은 시간 자가 격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오래전 여행 사진을 보면서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여행기를 써본다.

 

요르단은 90%가 사막지대인 나라로 50%가 수도 암만에 모여살고 있다. 더욱이 요르단은 중동 여느 나라처럼 석유가 나지 않기 때문에 관광사업이 주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이 때문에 상당히 개방적인 나라이며, 이 중에 페트라는 황금이나 석유와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존재로 생각한다.

 

당시 터키에서 육로를 통해 시리아를 거쳐 암만에서 하루를 묵고 페트라가 있는 와디무사로 향했다. 당시 내가 가진 것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부록으로 나온 지중해 동쪽의 지도 한 장이 전부였다. 페트라는 여행 중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무작정 이곳에 가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중간 경로인 시리아로 넘어가는 비자를 발급 받는데 조금의 어려움이 있었다. 국경검문소에서 노숙을 하면서 며칠을 기다리는 분도 있었다.

 

페트라는 암만에서 왕의 대로를 따라 250Km 내려가야 한다. 이 길은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군단이 원정을 떠났던 길이기도 하다. 25인승 정도의 승합버스로 가는 내내 풀 한포기 없는 바위 사막이 펼쳐졌다. 옆자리에 현지인 청년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며 와디무사에 도착하면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권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숙박업을 하던 청년이었다.

 

늦은 오후 와디무사라는 마을에 도착, 청년을 따라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곳에는 숙소가 많이 있어 이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새벽에 페트라를 들어가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약 1.5Km 내려가면 페트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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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새벽 6시인가? 오픈 시간에 맞춰서 도착 아마 첫 입장객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걷다보면 회색빛의 계곡이 나온다. 드디어 페트라 유적으로 첫 발을 내딛는 곳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협곡의 윗부분부터 회색 사암의 협곡이 붉은 색으로 변신을 시작 천천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듯 협곡이 붉게 물든다. 이 광경 때문에 새벽에 이곳을 방문해야 한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마치 그리스 신전을 모습을 한 알 카즈네가 협곡 틈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이때가 아마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아닌가 싶다. 알 카즈네는 페트라에서 바위를 깎아 만든 건물로,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와 헬레니즘 예술 전통 간의 배타적 유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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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즈네란 이름은 2층 꼭대기에 있는 항아리 모양에서 유래되었는데 아랍어로 보물창고라는 뜻으로 이곳에 보물 있다고 여겨 이를 꺼내려고 파괴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보물은 없었다. 알 카즈네는 2층으로 이뤄졌으며, 6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많은 조각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기원전후 지중해 지역에서 널리 숭배되는 이시스 여신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 건물의 용도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는데 2003년 이곳 지하에서 왕이나 귀족으로 여겨지는 50대 남성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장례의식 행하였던 곳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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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경기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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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비 40m에 이르는 이곳은 거대한 바위를 그대로 깎아서 만든 원형경기장, 3천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공연장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다.

 

페트라를 처음 서방에 알린 사람은 스위스 탐험가 부르트하르트(1784~1817)1812년 시리아 여행 중 페트라에 관한 소문을 듣고 현지의 안내원을 통해 이곳에 들어왔다. 이후 1926년 첫 발굴이 시작되어 많은 것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유적이 땅 속에 묻혀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유적 80%는 모래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 한다. 내가 다녀 온 이후에도 비잔틴 시대 로마의 모자이크가 발견되기도 했다. 페트라에는 8천개의 건축물과 2만 명 이상의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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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는 아라비아 사막을 누비며 대상무역을 하던 유목민 나바테안들이 기원전 4세기 무렵 나바테안 인들은 이곳에 정착하며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기원전후 아라비아 일대의 무역을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하던 부족으로 그들은 아라비아 남부의 향료나 인도의 후추를 아라비아 북부로 운송하던 집단이었다. 특히 이곳은 이집트와 아라비아, 시리아와 페니키아 사이의 중요한 교차로에 위치하여 교역의 중심지로 나바테안 인들은 이곳을 통과하는 대상들로부터 통행세를 받았는데 그 통행세는 상품가격의 25%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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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사막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수문제인데 이곳은 연 강수량이 150mm 밖에 되지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중요한 식수공급은 외부 수원에서 수로를 통해 집수지에 모여 다시 도시 곳곳으로 공급되었다. 그러나 서기 2세기 로마가 무서운 속도로 정복전쟁을 벌이면서 로마군이 이곳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무적의 로마군도 좁은 협곡과 험준한 산들로 정복의 애를 먹었으나 상황을 반전 시킨 것은 바로 로마군이 이 수로를 막으면서 결국 서기 106년 로마에 합병되고 만다. 이후 교역도 로마로 넘어갔으며 로마가 교역 길을 바닷길로 바꾸면서 상업도시로의 기능을 점점 상실하였다. 그러던 중, 서기 363년 치명적인 지진이 발생 도시 대부분을 파괴하고 폐허로 만들어 버렸고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게 되었고 도시는 서서히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636년에 아랍인이 다시 이 도시를 정복했지만 메카로 향하는 순례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12세기에 십자군이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여 페트라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지만 그들은 곧 철수했고, 19세기 스위스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이곳을 탐사했던 까지 지역 주민들의 차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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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데이르 수도원

 


페트라 알데이르 수도원은 아마 페트라의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 아닌가 싶다. 평지에서 바위산을 1시간 정도 올라온 듯하다.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내부 벽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부근은 기독교인들이 바위 굴 속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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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데이르 수도원을 마지막으로 다시 하산하여 왔던 길을 서둘러 되돌아갔다. 사실 시리아에서부터 환전할 시간이 없었고 이곳에 들어오기 전 이른 시간이라서 환전을 못해서 소액이 없었으며, 가져온 물은 500mm 페트병 하나가 전부였다.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 보다 당시 혼자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곳을 가려는 계획이 없다보니 정보의 부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늦은 오후에 페트라를 나와서는 공복의 배고픔보다 갈증으로 2리터 가량의 생수로 갈증을 해소하였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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