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가야도기, 조선시대 함경도 지도 등 새롭게 보물로 지정

기사입력 2020.02.28 15:10 조회수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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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 거북장식 부분.jpg
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 거북장식 부분

 

 

 

[서울문화인] 1,500년 전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파손되지 않고 완벽한 한 짝으로 출토된 거북장식 가야도기 1건을 비롯해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안에서 발견된 고려~조선 초기 불상 4, 함경도 지역의 주요 요충지를 그린 조선 시대 지도(관북여지도)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먼저 보물 제2059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釜山 福泉洞 十一號墳 出土 陶器 龜裝飾 圓筒形 器臺 短頸壺)’는 가야 시대 고분 중에서 도굴 당하지 않은 복천동 11호분의 석실 서남쪽에서 출토되어 출토지가 명확한 5세기 유물로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도기는 대부분 깨지거나 훼손된 채로 발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도기는 한 쌍의 기대(그릇받침)와 항아리가 완전한 모습으로 발굴되어 이 시대 도기의 제작수준을 확인하는 기준이 되는 유물이라 하겠다.

 

복천동 11호분은 19801981년까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석실분으로, 5세기 경 부산에 있었던 가야 세력의 수장급 인물의 무덤으로 인근의 복천동 10호분과 함께 주곽(主槨)과 부곽(副槨)을 이루는 대형 고분임이 밝혀졌으며, 11호분은 가야 고분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되어 보존 상태는 물론, 특히 중앙 기대에 거북이 토우 한 마리가 붙어있는 것은 삼국 시대 토우(土偶) 중 유일하다.

 

손상되지 않은 완전한 형태와 거북이의 조형성, 안정된 조형 감각과 세련된 문양 표현 등으로 볼 때,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도기로 꼽을 수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할 충분한 학술예술적 가치를 지녔다 하겠다.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_금동보살좌상, 금동지장보살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관음보살좌상.jpg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_금동보살좌상, 금동지장보살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관음보살좌상

 

  

보물 제2060호 지정된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4는 무량사 오층석탑에 봉안됐던 금동보살좌상(1)과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3)으로서, 19718월 오층석탑 해체 수리 과정에서 2층과 1층 탑신에서 각각 발견되었다. 1구는 고려 시대의 금동보살좌상이며, 3구는 조선 초기의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 탑신(塔身)에서 발견된 금동보살좌상은 발견지가 분명한 고려 전기 보살상으로, 자료의 한계로 인해 지금까지 자료가 부족한 고려 전중기 불교조각사 규명에 크게 기여할 작품이며, 1층 탑신에서 발견된 아미타여래삼존상은 조선 초기의 뚜렷한 양식적 특징을 갖추고 있어 이 시기 탑내 불상 봉안(奉安) 신앙 및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발견된 탑 봉안 아미타여래삼존상 중 구성과 도상이 가장 완전하고, 규모도 크며 상태도 양호하다.

 

부여 무량사 극락전 앞 오층석탑 01.jpg
부여 무량사 극락전 앞 오층석탑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은 조성 배경을 알려 줄만한 기록과 명문이 없으나 발견지가 분명한 불상들이라는 점,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조형적으로도 조각기법이 우수하다는 점, 당시 불교 신앙 형태의 일면을 밝혀준 준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예술적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되었다.

 

 

관북여지도_1면 길주목.jpg
관북여지도_1면 길주목

 

 


보물 제2061관북여지도(關北輿地圖)’는 조선 시대 관북 지방인 함경도 마을과 군사적 요충지를 총 13면에 걸쳐 그린 지도집으로, 지리적 내용과 표현방식 등으로 보아 1738(영조 14)~1753(영조 31)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이 2007~2008년 옛지도 일괄공모를 거쳐 신청 작품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실시해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는 역대 지도 35점을 보물로 지정한 이후,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가치를 평가받은 고지도이다.

 

*관북여지도에 그려진 지역: 1면 길주목(吉州牧), 2면 명천부(明川府), 3면 경성부(鏡城府), 4면 부령부(富寧府), 5면 무산부(茂山府), 6면 회령부(會寧府), 7면 종성부(鍾城府), 8면 온성부(隱城府), 9면 경원부(慶源府), 10면 경흥부(慶興府), 11면 함관령(咸關嶺), 12면 마운령(磨雲嶺), 13면 마천령(磨天嶺)

 

관북여지도1719(숙종 45)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한 무관 이삼(李森, 1677~1735)의 지시로 제작된 함경도 지도집의 계보를 잇고 있는 작품으로, 1712(숙종 38) 조선과 청나라 정계(定界)를 계기로 함경도 지역 방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각 지역마다 한양으로부터의 거리, 호구수(戶口數), 군사수(軍士數), 역원(驛院, 여관의 일종) 등 관련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지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봉수(烽燧, 전통시대 통신제도) 사이의 연락 관계를 실선으로 직접 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함경도 지도 뿐 아니라 기타 지방지도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참신하고 새로운 방식이다. 아울러 봉수 간의 거리를 수치로 제시하여 이용자의 편의를 극대화하였다. 화사한 채색의 사용, 회화적으로 그려 실제감을 살린 지형(地形)의 모습, 강물 표현 등은 도화서 화원의 솜씨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특히 관북여지도는 현존하는 북방 군현지도 중 정밀도와 완성도가 뛰어나고 보존상태도 매우 좋은 작품으로 봉수(烽燧) 간의 거리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점, 봉화(烽火)의 신호법 등을 자세하게 표시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지도 발달사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국내외 현존하는 약 8점의 관북여지도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힌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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