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국의 국새 ‘대군주보’와 ‘효종어보’. 기증환수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다.

기사입력 2020.02.19 20:11 조회수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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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 아래, 어보.jpg

 


 

[서울문화인] 조선의 자주국가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1882(고종 19)에 제작한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와 효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0(영조 16)에 제작한 효종어보(孝宗御寶)’를 지난 해 12월 재미교포 이대수(84) 씨로부터 기증 받아 국내로 환수 인도되었다.

 

조선 시대(대한제국기 포함) 국새와 어보는 총 412점이 제작되었으며, 이번에 돌아온 2점을 제외하고도 아직 73점은 행방불명 상태다. 국새와 어보의 유출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해방후 혼란기, 6.25전쟁 때 유출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국새와 어보는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으로 소지 자체가 불법인 유물로서, 유네스코 123개 회원국을 비롯하여 인터폴과 미국국토안보수사국 등에 행방불명 상태인 유물 목록이 공유되어 있어 그동안 국새나 어보의 환수는 주로 압수나 수사와 같은 강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이번 환수는 제3자의 도움과 소유자 스스로의 결심으로 이루어 낸 기증이라는 형식의 우호적 환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해방 이후 지난해까지 7차례에 걸쳐 협상·기증·수사 공조 등을 통해 국새 6점과 어보 8점이 미국에서 환수됐다.

 

이번에 환수된 대군주보는 일반적인 어보와 그 가치가 다르다. 어보의 경우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으로, 왕이나 왕비의 덕을 기리거나 죽은 후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되었지만, 국새는 국가의 국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외교문서나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된 도장이다.

 

 

국새 대군주보.jpg
대군주보는 높이 7.9cm, 길이 12.7cm 크기로 은색의 거북이 모양 손잡이(龜紐)와 인판(印板, 도장 몸체)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종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 등에 외교관련 업무를 위해 고종의 명에 따라 1882년에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새 대군주보_머리 위.jpg
조선 초기에는 거북이 모양이라면 대한제국 시기에는 용의 특징을 하고 있다.

 

국새 뒷면 영문이니셜.jpg
국새 뒷면 영문이니셜, 과거 소장자의 이니셜이라고 추정된다.

 


이전까지 조선은 명과 청에서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국새를 받아 사용했으나, 고종의 명으로 ()조선국대군주(大君主)’라는 글씨를 새긴 대군주보’(大君主寶)를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는 황제국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 전문가들은 대군주보는 고종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1882) 등의 당시 조선의 정세 변화에 발맞추어 중국 중심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의 전환을 꾀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해석했다.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1882(고종19) 외교용 총 6과의 국새가 제작되었는데 모두 분실되어 실물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1점이 유일하게 발견되어 기증환수 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여 99%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_각국과의-통상조약비준교환에-대한-전권위임장.jpg
각국과의 통상조약비준교환에 대한 전권위임장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대군주보의 공식적인 사용 시기는 1882년 제작 이후 1897년까지로 파악되었으며, 외국과의 통상조약 업무를 담당하는 전권대신(全權大臣)을 임명하는 문서(1883)에 실제 날인된 예를 확인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새롭게 제정된 공문서 제도를 바탕으로 대군주(국왕)의 명의로 반포되는 법률, 칙령(勅令), 조칙(詔勅)과 관료의 임명문서 등에 사용한 사실도 확인하였다.

 

 

효종 어보 1.jpg
효종 어보

 


함께 기증환수 된 효종어보는 높이 8.4cm, 길이 12.6cm 크기로 역시 거북이 모양 손잡이에 금색을 띤 어보로 영조 16(1740)에 효종사망 80주기에 효종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리며 제작된 것으로 효종어보는 효종 승하 직후인 1659(현종 즉위년)에 시호를 올릴 때, 1740(영조 16)1900(광무 4)에 존호를 올릴 때, 어보가 제작 총 3점이 제작되었다. 이 중 1900년에 제작한 어보(국립고궁박물관 소장)만 전해오고 있었는데 이번에 1740년 제작 어보를 환수함에 따라 1659년에 제작된 어보를 제외하고는 효종과 관련된 어보 2점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게 되었다.

 

한편, 기증자인 재미교포 이대수 씨는 1960년대 미국으로 유학 후 줄곧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경매 등을 통해 문화재들을 매입하던 중 1990년대 후반에 이 두 유물들을 매입하였고, 최근 국새어보가 대한민국 정부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고국에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기증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미주현대불교 발행인 김형근(64) 씨와 경북 구미의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 전 사무처장 신영근(71) 씨는 기증자와 문화재청 사이에서 국새어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증의 방법과 형식, 시기 등을 조율하는 등 조력자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여 두 유물이 돌아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이대수 씨의 아들 이성준 씨는 아버지가 역사적인 유물을 보면서 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입 후부터 한국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많은 국새와 어보가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늘 이 모습을 보고 많은 국새와 어보가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00.jpg
1882년(고종 19년)에 제작한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와 효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0년(영조 16년)에 제작한 ‘효종어보(孝宗御寶)’

 


 

이번에 돌아온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는 오는 20일부터 3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조선의 국왕실에서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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