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에서 썼던 서양식 식기류는 어디서 제작되었을까.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도록 , 발간
기사입력 2020.02.06 15:37 조회수 56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서울문화인] 근대기 문호 개방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서양식 생활 문화가 유입되었으며 조선 왕실 및 대한 제국 황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양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식생활 문화가 전해졌고 서양식 요리 와 예법에 맞는 식기류, 서양 요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주방도구 등이 사용되었다. 그러한 변화의 흔적들이 국립고궁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아있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대기 서양에서 들어온 생활 유물들을 정리한 <서양식 생활유물>과 함께 2012년 발간되었던 궁중서화Ⅰ』의 후속편으로 조선시대 어진, 관리 초상화 등의 궁중 회화 유물 60점을 살펴볼 수 있는 <궁중서화> 2종의 도록으로 발간하였다.

 

서양식 생활유물 도록.jpg
서양식 생활유물 도록

 


<서양식 생활유물> 도록에는 근대기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에서 썼던 서양식 식기와 장식용품, 욕실용품, 주방도구 등을 주로 소개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도록 발간을 위해 2016년부터 이들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제작국가나 회사 등의 정보를 상당수 확인하였다.

 

특히, 서양식 생활유물 중에는 식기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당시에 유입되었던 서양식 식문화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식기류 유물은 프랑스의 필리뷔(Pillivuyt)나 일본의 노리다케(Noritake)와 같은 유명 도자기 회사에서 주로 제작되었으며,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대형 꽃무늬 화병은 1888년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Sadi Carnot)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1888년 프랑스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꽃무늬 화병.jpg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Manufacture nationale de Sères)에서 만든 꽃병으로 안쪽에는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마크가 찍혀있다. 이 꽃병에 대해서는 프랑스 대통령이 고종에게 프랑스 도자기를 봉헌했다는 내용의 외교 문서를 토대로 문서에서 지칭하는 봉헌 도자기일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제기된 바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 현지 조사를 통해 이 꽃병이 1888년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Sadi Carno)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것임을 최초로 확인하였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의 1888년 기록에 따르면 1878년에 제작된 살라민 꽃병Vase de Salamine 1점이 1888년 8월 한국의 왕에게 보내기 위해 출고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필리뷔에서 제작한 식기.jpg
프랑스 필리뷔에서 제작한 식기, 특정 회사의 제품을 주문해서 구입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된 바 없지만, 1902년의 황성신문 기사에 따르면 고종의 즉위 40년 기념 진연(進宴)을 위해 프랑스에 양식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욕실용품이나 주방도구들은 영국, 독일, 스웨덴, 미국 제품 등이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어 근대기의 국제 교류 양상을 생생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근대기 영국 메이플 앤 컴퍼니Maple &amp; Co에서 제작한 침실용 변기.jpg
근대기 영국 메이플 앤 컴퍼니Maple & Co에서 제작한 침실용 변기

 

 

근대기 독일 빌레로이 앤 보흐(Villeroy &amp; Boch)에서 제작한 대야.jpg
근대기 독일 빌레로이 앤 보흐(Villeroy & Boch)에서 제작한 대야이다. 주로 발을 닦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야의 바닥면에는 숫자 “70”, “L”이 압인押印되어 있다.

 

 

스웨덴의 볼린더(Bolinder)에서 제작한 고기를 다지는 용도의 조리기구.jpg
스웨덴의 볼린더(Bolinder)에서 제작한 고기를 다지는 용도의 조리기구

 

 

차를 마실 때 물을 끓이는 용도로 사용했던 러시아식 온수통(사모바르).jpg
차를 마실 때 물을 끓이는 용도로 사용했던 러시아식 온수통(사모바르), 원통형의 몸통 아래로는 불을 지필 수 있는 장치가 있고 몸통 안쪽으로 연관煙管이 통과하여 몸통에 채워진 물이 끓도록 하는 구조이다. 형태와 기능으로 봤을 때 러시아식 온수통으로 판단할 수 있으나 제작회사 등에 대한 단서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어디서 제작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식기류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노리다케(Noritake), 동양 도기주식회사,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 후카가와 세지(深川製磁), 오쿠라도엔(大倉陶園) 등의 회사에서 만들어졌다. 일본의 도자기 회사 중 단연 주목되는 곳 은 노리다케이다. 노리다케는 수량 면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필리뷔와 마찬가지로 디너 세트를 구성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기가 남아있다.

 

 

궁중서화Ⅱ 도록.jpg
궁중서화Ⅱ 도록

 


<궁중서화> 도록에는 <태조어진>을 포함한 왕의 초상화인 어진이나 관리를 그린 초상화 등 인물화를 비롯한 왕실 회화를 묶어 정리하였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왕과 조종(祖宗)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제작과 봉안이 국가적인 의례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진의 제작과 봉안에는 다양한 정치적 의미가 투영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어진 48점이 전해져 오고 있었지만,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옮겨 보관하던 중 1954년 불의의 화재가 발생하여 상당수가 소실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훼손된 상태로 전해지던 어진들에 대한 보존처리를 마치고 11점은 이번 도록을 통해 최초로 그 전모를 공개하고 있다.

 

연잉군 초상과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착용한 반신상의 영조 어진.jpg
연잉군 초상과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착용한 반신상의 영조 어진, 좌) 연잉군 초상, 왼쪽 상단에는 “처음에는 연잉군에 봉해졌고 호는 양성헌이다.(初封延礽君古號養性軒)”라는 표제가 있어 즉위하기 전인 연잉군 시절에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초상화는 영조의 나이 21세 때인 1714년 숙종의 명에 따라 그려진 것이다. 당시 병상에 있었던 숙종을 위해 밤낮으로 시중을 들었던 연잉군과 연령군延齡君(1699~1719년)을 기특하게 여겨 화원 박동보朴東普(1673~1744 년 이후)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하사하였다고 한다. 우)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착용한 반신상의 영조 어진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영조대 왕의 어진이다. 1900년(광무 4)에 옮겨 그렸다.(英祖大王御眞 光武四年庚子移摸)”라고 쓴 표제가 남아있어 1900년에 모사한 영조의 어진임을 확인할 수 있다. 51세 영조의 모습을 담고 있다.영조어진을 포함하여 1900년에 그려진 일곱 왕의 어진 모사 에 대해서는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摹寫都監儀軌』(1901년)에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고종어진 추정, 통천관을 쓰고 강사포를 입은 고종 황제의 전신 좌상.jpg
고종어진 추정, 통천관을 쓰고 강사포를 입은 고종 황제의 전신 좌상, 서양화풍을 연상시키는 채색 방식, 옷감이나 휘장의 질감 표현, 어좌의 형태, 그리고 배경에 드리워진 휘장 등 전통적인 어진과는 전혀 다른 양식을 보여준다. 이 어진은 1966년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한국과의 관계에 우호적이었던 사토라는 일본인이 미국인으로부터 사들여 한국에 기증한 것이다.



더불어 도록에는 화재 피해를 입은 조선후기 관료들의 초상화 33점도 이번에 함께 수록하였다. 비록 손상되기는 했지만, 궁중 회화의 수준 높은 화격(畵格)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기증을 통 해 소장하게 된 <오자치 초상>, 종묘에서 전래된 <전 고려 공민왕부부 초상> 등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상화, 인물화 범주의 회화를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고 있다.

 


조선 전기 세조~성종 연간에 활동한 무관 오자치(1426~1476년 이후)의 초상.jpg
조선 전기 세조~성종 연간에 활동한 무관 오자치(1426~1476년 이후)의 초상, 오자치는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이 초상화는 바로 적개공신으로 책록 되면서 하사받은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적개공신 초상화는 총 3점으로 이 초상화 외에 <장말손張末孫 초상>과 <손소孫昭(1433~1484년) 초상>이 있다.

 

 

고려 공민왕부부 초상.jpg
종묘宗廟 공민왕恭愍王 신당神堂에 봉안되었던 그림으로 공민왕(재위 1351~1374년)과 그의 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미상~1365년)를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 주인공은 서로 마주보듯 중앙을 향해 몸을 틀어 앉아있다. 공민왕 신당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조선 국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한 켠에 왜 공민왕을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는지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도록에 실린 서양식 식기와 욕실용품, 주방도구 일부를 대한제국실에서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어진 모사본과 고종의 친형 이재면의 초상화 등은 조선의 국왕 전시실에서 공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조선왕실의 도자기와 서양식 유물(가제)’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하여 소장 유물을 더 폭넓게 국민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국립고궁박물은 이번에 발간한 소장품 도록을 국공립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며, 더 많은 국민이 쉽게 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www.gogung.go.kr)에서도 제공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저작권자ⓒ서울문화인 & sculturein.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0
이름
비밀번호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