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신년계획시리즈] 대전 이응노미술관, 조금 더 다채로운 시각으로 이 화백에 접근

기사입력 2020.01.20 15:48 조회수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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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이응노미술관(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57)은 서울 평창동에 개관하여 2005년까지 운영하다가 2007년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새롭게 완공되어 그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서울문화인] 2020년 이응노미술관은 현대미술사에서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이응노 화백을 조금 더 다채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자 전시뿐만 아니라 깊어진 학술연구 다양한 시민 친화적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시민과 함께하는 이응노 예술의 국제화의 비전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첫 전시로 이응노미술관 소장품전 <예술가의 방>으로 2020년을 문을 연다. 전시는 이응노작가가 예술적 영감을 받고 작품을 완성했던 아틀리에를 이응노의 방(공간)’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다. 특히 대전작가들의 창조적 재해석을 통해 고암 아틀리에 특유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그곳을 가득 채웠던 작품들을 주요 테마에 따라 4개 전시실로 나누어 설치, 이를 통해 유럽 미술의 중심에서 동양적 정체성이 담긴 조형언어를 창조하기까지 고암이 전개한 끝없는 실험과 도전, 그리고 창조에의 열정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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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방

 

 

4월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기획전 <종이>는 이응노가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인 종이에 주목한다. 1958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서구 현대미술을 체험한 이응노는 종이라는 전통 재료가 가진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았고 찢기, 붙이기, 자르기 등 새로운 접근 방식을 작품 창작에 실험했다. 이 전시는 이응노가 새롭게 발견한 종이의 다채로운 면모를 소개하는 동시에 종이와 유사한 솜과 섬유 작품도 포함해 재료의 물성을 다루는 작가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7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특별전 <이응노와 대가들: 루쉰>은 중국의 문학가 루쉰의 목판화 작품과 이응노의 예술 속에 살아있는 민중의 힘을 함께 조명한다. 이응노는 군상 시리즈를 통해 민중의 힘을 폭발적으로 나타냈고, 루쉰은 자신의 문학과 판화 예술을 통해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표현했다. 이 전시는 서로 다른 시대와 나라에 살았지만 두 예술가가 꿈꿨던 이상적 사회와 예술의 공통점을 살펴보고 미술과 문학을 폭넓게 논하는 자리이다.

 

연말인 10월부터 12월까지는 기획전 <박인경>이 개최된다. 박인경 화백(1926~)은 이화여대 동양화과 1기 졸업생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꾸준히 예술 활동을 지속해온 대표적 여류 작가이다. 이응노의 예술의 조력자로 활동하면서 자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 박인경의 70년 미술활동을 조망하는 전시로 이 전시를 통해 남성 중심의 근현대미술사 속에서 왜곡된 여성 예술가들의 지위를 회복하고 동양화단의 여류 미술가의 계보를 다시 세워 한국 미술사의 지평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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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경_무제_연도미상_종이에 수묵담채_66x85cm_이응노미술관 기탁

 

 

지역의 대표 청년작가 전시 프로젝트로 자리매김 한 <아트랩 대전>6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 전시에서는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 프로젝트룸에서 재기발랄하고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지역작가들을 해외무대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파리이응노레지던스>2020년 제7기 작가들을 모집한다. 파리 보쉬르센 지역에 위치한 이응노 레지던스에서는 세미나와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현지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들을 초청하여 참여 작가들이 현지 미술관계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울러 한국에서의 결과 보고전을 통해 참여 작가들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시민들에게 선보인다.

 

또한, 올해도 현대미술사에서 각광받는 해외 연구자들을 초청 학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술프로그램은 단순 논문 발표 형식의 학술 세미나에서 탈피, 강연과 대담 위주의 진행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문화 프로그램으로 전국 규모의 초등학생 대상, 어린이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한 <이응노미술대회>가 가정의 달 5월에 개최되며, 지난해 처음 개최되어 청년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청년 예술가들에게 양질의 무대를 제공한 <이응노 예술제>를 비롯해 2020 <문화가 있는 날> 연계프로그램도 올해 계속된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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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화백-파스퇴르 아틀리에(Pasteur Atelier)-70년대

 

 

고암 이응노 화백은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현대식 교육보다 주로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배우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고암(顧庵)’ 이라는 호는 193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그 이전에는 스승인 해강(海岡) 김규진으로부터 받은 죽사(竹史)’를 사용했다. 서화가가 되고 싶었던 고암은 19세가 되던 해인 1923년 서울로 올라가 당시 묵죽(墨竹)의 대가' 해강 김규진의 문하에 입문하여 문인화를 배웠고, 이듬해인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출품한 <청죽(晴竹)>이 입선하면서 미술계에 등단하게 된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하는데, 1931, 대나무 숲이 비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제작한 <청죽(晴竹)>으로 특선을 수상하면서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1935년 일본 동경 유학길에 오른 고암은 가와바타 미술학교와 혼고회화연구소를 거쳐 일본 '남화(南畵)의 대가' 마쓰바야시 게이게쓰(松林桂月)를 사사했다. 동경 유학시절 서양화의 사실적인 표현방식을 접한 그는 점차 문인화의 관념성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다. 해방 후 그의 풍경화는 대상을 강조하기 위한 과감한 생략과, 핵심만을 강조하여 전달하는 특유의 표현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향은 점차 사의(寫意)적 표현 방식으로 변화되어 1958년 도불 직전에 이르러서는 반추상화에서 완전 추상화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1945년 해방 무렵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온 고암은 장우성, 배렴, 김영기 등과 함께 일본미술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한국화를 강조하는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을 조직한다. 1948년에는 홍익대 교수로도 활동하는 한편 개인 교습소인 고암화숙(顧菴畵塾)’을 개설하여 제자들을 양성했다.

 

1957,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에 출품한 그의 작품 <출범><>이 록펠러 재단을 통해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되면서 세계무대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1958년 그는 세계미술평론가협회 프랑스 지부장이었던 자크 라센느(Jacques Lassaigne)의 초청을 받아 54세 중년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이후, 파리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고암 이응노 도불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시를 열게 되어 큰 주목을 받기 시작, 1962년 파케티 화랑에서의 첫 개인전 당시 고암은 붓과 물감 대신 손을 사용하여 잡지를 찢어 붙여 만든 콜라주(Collage) 작품을 선보이면서 또 다시 큰 주목을 받았다. 1964년에는 세르누쉬 파리시립동양미술관(Musée Cernuschi) 내에 파리동양미술학교(Académie de Peinture Orientale de Paris)를 설립하여 한국작가로는 유일하게 유럽인들에게 한국화와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 파리동양미술학교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던 유럽인들에게 한국화를 보급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아가던 고암은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 반 동안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감옥에서도 멈추지 않아, 간장과 된장을 재료삼아 화장지에 데생을 하고 밥풀과 종이로 조소 작품을 만드는 등 약 300여점에 이르는 주옥같은 옥중화를 남겼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암은 문자추상이라는 새로운 조형적 실험에 몰두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서당에서 익힌 서예를 토대로, 자연의 형태를 추상화하거나 음과 뜻을 획과 점이라는 조형적 형태로 표현한 한자에서 또 다른 동양적 추상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70년대 후반부터 1989, 고암이 타계하기 직전까지는 군상 시리즈를 작업했다. 초기 군상작품은 후기 문자추상에서 보이던 도식화된 양식이 기하학적으로 단순해지거나 혹은 장식화 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이른바 군상 시리즈로 불리는 후기의 군상 작품에서는 마치 붓으로 서체를 쓰듯, 인간 형상을 무수히 나열한 전면 구도의 작품이 두드러졌다. 고암의 군상은 한 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이 무한히 반복되어 나타난 것으로, 한지 위에 그려진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암의 연륜과 탈속(脫俗)한 필력에 의해 마치 살아 숨 쉬는 인간과 같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상 작품은 고암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고암 예술의 대미(大尾)’라 할 수 있다.

 

구성, 1979, 180x154cm, 한지에 수묵담채.jpg
구성, 1979, 180x154cm, 한지에 수묵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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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 1982, 185x522cm, 종이에 먹, 병풍

 

 

 

파리시립 페르 라셰즈(Pèe Lachaise) 묘지에 안장된 서거 이후,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추모전이 세르누쉬 파리시립동양미술관과, 대만 타이페이 시립미술관, 도쿄 아사히 갤러리 등 국내·외 각지에서 열렸고, 현재 그의 작품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프랑스 파리의 국립장식미술관을 비롯한 이탈리아, 영국, 스위스, 덴마크, 대만, 일본 등 전 세계 각국에 소장되어 있다.

 

 

 

 

 

[김진수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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