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가야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마주하다.

국립중앙박물관 2019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
기사입력 2019.12.06 16:14 조회수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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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모양 토기, 5세기, 창원 현동 387호묘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대규모 전시 가야본성-칼과 현특별전을 지난 3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가야는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삼국과 520여 년을 함께 하였지만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 이유에서일까 우리의 역사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삼국의 역사에 밀려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1991년에 문을 연 신비한 고대왕국 가야전시 이후 28년 만에 새롭게 대규모로 선보이는 전시로 그동안 동안 비약적으로 늘어난 가야 관련 고고학적 조사 성과로 가야사를 새롭게 인식하기에 충분한 자료를 축적되었다.

 

가야는 동으로는 낙동강, 서로 섬진강, 북으로는 지리산을 경계로 위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낙동강을 건너 부산 복천동고분에서 4~5세기 가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남으로 여수 고락산성, 서로는 지리산을 넘어 장수 삼봉리와 남원 두락리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도 가야 무덤이 발견 호남동부지역의 가야를 새롭게 밝혀내며 고고학적 새로운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이 외에도 가야는 삼국유사가 말하는 오가야를 넘어 여러 세력이 공존했다는 점과 가야의 유력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가라국(대가야)를 포함한 가야 제세력의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밝혀낸 점 등도 중요한 성과이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기항지로 번영을 누렸던 가락국(금관가야)이 삼국이 추구했던 통합을 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은 매우 흥미롭다.

 

이번 전시는 지난 1991년에 문을 연 신비한 고대왕국 가야전시 이후 28년 만에 새롭게 대규모로 선보이는 전시로 그동안 동안 비약적으로 늘어난 가야 관련 고고학적 조사 성과로 가야사를 새롭게 인식하기에 충분한 자료의 축적이 바탕이 되었다. 2019년 전시는 지금까지 발굴한 유적과 유물, 그리고 이를 토대로 새롭게 진전된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가야사의 역사적 의의를 새롭게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둔 전시로 삼성미술관 리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총 31개 기관의 가야 문화재 2,600여 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특히 이번 전시의 유물 50%는 새롭게 선보이는 유물로 꾸려졌다.

 

전시 개막에 앞서 배기동 관장은 가야가 우리 민족사에서 조금 덜 알려졌지만 500년을 지속하였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란다. 이번 전시는 화려함 보다는 우리 민족성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하지만 가야가 우리 문화의 흑진주로 보이게 준비했다.” 이어 가야 고분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가야의 실체를 인식하여 우리 문화의 화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가야본성加耶本性의 부제인 칼과 현은 가야의 존재 방식이었던 공존과 공존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을 상징한다. 전시구성은 먼저 가야의 존재 방식인 공존을 설명하고, 수 백년 동안 지킬 수 있었던 공존, 화합, , 번영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전시의 프롤로그에서는 김수로왕과 혼인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신화의 설화의 형태로 전하는 가야의 시작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허황옥이 무서운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이 제일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붉은색이 얼룩처럼 남아 있는 파사석탑의 암석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존재하지 않아, 머나먼 이국땅에서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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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석탑

 


이어 1부 공존에서는 최근 창원 현동과 함안 말이산 무덤에서 출토된 각종 상형토기를 비롯하여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중국을 비롯한 북방유목민, , 신라, 백제, 고구려 등과 교류하였음을 보여주는 각종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무덤에서 발굴된 다양한 가야 토기로 만든 높이 3.5m가야토기탑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야의 다양한 양식의 토기와 독특한 상형토기를 제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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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화합에서는 호남지역에서 새로이 소개된 가야 유적과 유물과 고령 지산동고분 금동관(보물 2028) 등 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주는 각종 금동장식품과 위세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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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국보 제138호), 6세기, 전 고령, 삼성미술관 리움

 

 

3부의 주제는 이다. 부제의 이 상징하는 철의 나라 가야의 힘을 여실이 보여주는 국보 275호 말 탄 무사모양 뿔잔과 철갑옷, 말갑옷, 각종 무구류를 통해 가야의 제철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사실적이면서도 새로운 디지인의 가야 무사상을 배치하여 가야를 지켜 온 중갑기병들을 생생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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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는 4세기대까지 번영했던 가락국(금관가야)이 왜 주변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국-한반도-일본을 잇는 동북아 교역의 중심인 가야에 여러 나라의 사신과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철과 여러 특산물을 교역한 모습을 번영이라는 핵심어로 전시하였다. 변한 시기부터 국제적인 교역망을 건설한 가야의 모습을 김해 대성동 고분 등에서 출토된 각종 교역품으로 보여준다. 창원 현동에서 출토된 배모양 토기는 당시 국제항로를 다니던 외항선 모습으로 가야인들의 해상 교역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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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에필로그는 최근 동해 추암동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들은 가야 멸망 후 신라 영역이었던 강원 동해 지역까지 옮겨가 살아야 했던 가야인의 디아스포라를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가야는 망했지만 가야의 유산을 안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즉 가야의 디아스포라(Diaspor)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가야의 가치를 간직한 가야금을 통해 가야가 망하면서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화합을 노래한 가야금 음악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가야의 여러 작은 나라들은 저마다의 자연발생적 조건들을 존중하면서 520여년을 이웃으로 공존해왔지만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었던 신라에 병합되어서 민족사로 편입되었다. 가야는 강자의 패권으로 전체를 통합하지 않았고, 언어와 문화의 바탕을 공유하면서 각국의 개별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야가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이었고, 한편으로는 멸망의 원인이었다. 이번 전시는 단순 가야의 역사와 유물의 조명을 넘어 가야의 운명을 통해 그들의 이념을 통해 국가란 무엇이고 평화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이번 특별전은 서울 전시에 이어 부산시립박물관(2020.4.1.~5.31.),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2020.7.6.~9.6), 일본 규슈국립박물관(2020.10.12.~12.6)에 순회전시 후 다시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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