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가장 규모가 큰 객사 ‘나주 금성관’ 보물이 되다.

기사입력 2019.10.25 16:51 조회수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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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 전경 01.jpg
나주 금성관

 

 

 

[서울문화인] 전남 나주시에 있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인 나주 금성관(羅州 錦城館)’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37호로 지정되었다.

 

나주 금성관은 조선 시대 지방관아의 하나인 객사 건물로 객사란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마다 임금에 대한 예(망궐례)를 올리거나, 지방에 오는 사신이나 관원을 접대하는 공간이다.

 

전패(殿牌)는 임금을 상징한 나무 패로 殿자를 새겼으며, 궐패(闕牌)는 임금을 상징한 나무 패로 자를 새겼다. 망궐례(望闕禮)는 궁궐이 멀리 있어서 직접 궁궐에 나아가서 왕을 배알하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유교의례이다.

 

금성관(정청) 01-1.jpg
금성관(정청)

 

 

금성관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금성관중수상량문망화루중수기등 각종 문헌 기록으로 볼 때, 조선 초기부터 지금의 자리에 존재하였고, 현재의 규모와 골격은 1617년 이전에 갖추어 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775년과 1885년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군 청사로 사용되다가 1976년 보수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성관의 중심 건물인 정청은 조선 시대 객사 건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팔작지붕(양 측면에 삼각형 모양의 합각면이 있는 지붕)을 하고 있어 맞배지붕을 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객사의 정청과 대비되는 특징을 갖는다. 이 점은 인근에 있는 나주향교 대성전도 일반적인 향교 대성전의 지붕 형태인 맞배지붕과 달리 팔작지붕을 한 점에서 지역 특수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건물의 양식은 주심포(柱心包, 기둥위에 짜 놓은 공포)계 익공식(翼工, 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모양을 내고 초각(草刻)한 공포재) 공포(栱包, 처마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를 사용하여 일반적이나 정청 전면에 설치된 월대 그리고 건물 내부의 천장과 용문양 단청은 궁궐 건축의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일반적인 객사와 다른 특징이다.

 

이처럼 나주 금성관은 나주 읍치(邑治, 조선 시대 지방 고을의 중심 공간)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원래 자리에 원형을 잘 지키고 있으며, 규모와 형태면에서 다른 객사와 뚜렷한 차별성을 띤 격조 높은 건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역사건축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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