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국립한글박물관, 국민의 참여로 직접 뽑은 한글을 빛낸 인물. 《한글의 큰 스승》 특별전
기사입력 2019.09.30 16:00 조회수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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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후, ‘한글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국립한글박물관(관장 심동섭)은 개관 5주년 및 한글날을 기념하여 한글 관련 인물을 조명하고 한글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생각해 보고자 세종대왕 제외한 33명 후보 중 한글하면 누구를 떠올리는지 20193월부터 6월까지 1,700여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박물관은 한글 발전과 보급에 힘쓴 한글 관련 인물을 조명하고 한글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생각해 보고자 기획특별전 한글의 큰 스승을 통해 풀어내었다.

 

전시는 국민의 참여로 직접 뽑은 한글을 빛낸 5명의 스승과 더불어 각계 전문가와 관내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선정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글 발전의 숨은 조력자 7명을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다.

 

먼저 설문조사를 위해 박물관 관람객뿐만 아니라 초, , 고등학생, 대학생, 교사, 한글 관련 전문가 집단 등을 직접 찾아가 다양한 의견을 듣고 누리소통망(SNS), 박물관 누리집(홈페이지) 등을 통해 33명의 후보를 선정하였다. 설문조사 결과 한글을 빛낸 스승에는 주시경, 윤동주, 허균, 방정환, 성삼문(집현전 학사) 5명의 인물이 뽑혔다. 설문조사 중, 박물관 관람객 98(3명 선택)이 참여한 조사에서는 주시경(20%, 61), 윤동주(17%, 50), 방정환(9%, 27), 허균(8%, 24), 이육사(5%, 16)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1,659명 참여, 3명 선택)에서는 주시경(17%, 875), 윤동주(13%, 674), 허균(9%, 475), 방정환(6%, 340), 성삼문(5%, 283)이 뽑혔다.

 

이어 전문가들과 한극박물관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한글 발전에 힘쓴 숨은 주역으로는 공병우, 박두성, 장계향, 정세권, 최세진, 최정호, 헐버트 7명이 선정되었다.

 

이들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생 동안 한글 발전과 보급에 힘쓴 분들이 많이 있다. 먼저 일반인이 뽑은 인물 중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친 한글학자이다. 1896년 최초의 순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만드는 일을 도와 대중들을 깨우치게 하고, 1908년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하여 한글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1911년부터는 첫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집필을 주도했으며, 우리나라 글자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어 처음으로 퍼뜨리며 한글 보급에 힘썼다. 1914년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사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의외의 인물로 뽑혔다. 한글로 섬세한 감정을 담은 청년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쓴 때문일 것이다. 윤동주의 시는 일상에 많이 쓰이는 시어로 한글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섬세한 내면의 감정과 솔직한 고백을 담아냈다. 그는 연희 전문대학에서 한글학자인 최현배(1894~1970), 김윤경(1894~1969) 등의 가르침을 받으며 한글에 깊은 애정과 매력을 느꼈다. 그의 시에는 10대 시절 성장기의 좌절과 갈등을 겪었던 문학 소년의 모습부터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고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20대 지식인 청년의 모습이 있다.

 

허균(許筠, 1569~1618)은 현실의 부조리와 사회의 불평등을 비판하면서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아갔던 개혁가이다. 그가 남긴 소설 홍길동전은 조선 후기에 한글 소설로 널리 읽히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적서 차별, 불교계의 부패, 정치 관료들의 부정 등 사회 부조리를 과감하게 헤쳐 나가는 홍길동의 영웅적인 모습을 다루었다. 그의 한문 논설 <호민론>, <유재론> 등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 신분에 관계없이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면 등용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대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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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김민지 학예연구사

 

 

 

방정환方定煥(1899~1931)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주역인 아동의 계몽을 위해 힘쓴 아동 운동가이자 문학가다. 어릴 적부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천도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당시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아동의 권리를 세우고 그들을 교육하는 데 앞장섰다. 1923년 아동 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문인들을 모아 아동 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일제 강점기 당시 십만 명이 넘는 독자를 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던 아동 잡지 어린이를 발행했다.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시기였지만, 한글의 역사와 맞춤법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와 <성냥팔이 소녀>, <황금거위> 등과 같이 외국 동화를 쉽고 재미있게 한글로 번안한 작품들을 실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1931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 갑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만든 어린이날은 오늘날까지도 아동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인지(鄭麟趾, 1396-1478),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성삼문(成三問, 1418-1456) 8명의 집현전 학사들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세종이지만, 그것이 널리 퍼지는 데에는 집현전 학사들의 공이 컸다. 이들은 세종(世宗, 1397-1450)의 명으로, 새로 만든 28자의 제자 원리, 사용법 등을 훈민정음(1446) 해례본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고, 이후 한글을 이용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등 다양한 책들을 편찬했다. 또한 고려사, 농사직설, 삼강행실도등을 편찬하는 등 15세기 학문 발전과 문화 부흥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학술적 역량과 노력을 바탕으로 세종이 새로 만든 문자인 한글을 사람들이 익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널리 퍼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뽑은 인물 중 공병우(公炳禹, 1906~1995)는 타자기로 한글 사랑을 꽃피운 안과의사로 한글 기계화와 정보화의 초석을 놓은 장본인으로 1949년 한글을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세벌식 타자기를 발명하여 우리나라와 미국의 특허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자신의 연구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발전시켜 더 빠르고 편리한 타자기를 만들고자 노력, 1980년에는 최초로 세벌식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으며, 1988년 한글문화원을 설립하여 젊은 프로그래머의 활동을 지원하고 남북한 자판 통일 문제도 연구했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박두성(朴斗星, 1888~1963)은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시각장애인의 교육에 헌신했다. 1913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기관인 조선총독부 내 제생원 맹아부에 부임한 이후 시각장애인 교육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이 일본어 점자책으로 공부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1926년 세종대왕과 같은 마음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운 한글로 된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많은 한글 점차책을 만들어 보내고, 해방 이후 한글 점자 투표를 승인받아 시각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을 남긴 여성이자 사회자선가로서 그가 1670년경 일흔이 넘은 나이로 지은 음식디미방은 한사람의 일생을 통해 터득한 살림 철학을 담은 책이다. 책 제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국수, 만두, 떡 등의 면병류를 비롯해 생선고기류, 채소 등 146가지의 조리법과 식재료 보관법이 상세히 실려 있다. 이 책은 여성이 한글로 쓴 조리서이자 우리나라 전통음식 연구의 교과서이며, 17세기 우리말 실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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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을 세운 건축왕 정세권(鄭世權,1888~1965)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경성 개발에 맞서 조선 사람이 살 수 있는 대규모 한옥 지구를 북촌에 건설했으며 부동산 개발을 통해 많은 부와 명성을 축적하여 경성의 3대 왕 중 건축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27년부터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여 침체기에 머물러 있던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재개시키고 한글학자 이극로(1893~1978)와의 인연을 계기로 조선어학회에 건물을 기증하는 등 조선어학회의 다양한 활동을 후원했다. 1942년 그는 조선어학회 사건에 휘말려 갖은 고문을 당했으며 1940년대 초반 일제에 의해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일대의 토지를 강탈당하기에 이른다. 1965년 세상을 떠날 때에 그가 남긴 것은 쌀되와 큰사전, 밥공기, 수저 한 벌뿐이었다. 정세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민족과 국가를 위해 아낌없이 베푼 그의 삶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최세진(崔世珍, 1468~1542)은 한글로 외국어를 가르친 역관으로 한글 자모의 명칭과 순서의 효시가 된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집필하였다. 그는 역관의 집안에 태어나 신분 차별의 설움을 학문 연구로 풀어내었다. 그가 집필한 훈몽자회는 어린이들을 위한 한자 학습서로 기역, 니은, 디귿등의 오늘날 한글 자음과 모음의 이름이나 순서가 이 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또한, 명나라와 주고받은 외교문서를 모아 놓은 책 이문에서 어려운 어구를 뽑아 풀이하여 이문집람을 편찬하기도 했다. 중국 한자음인 한어음漢語音과 우리의 한자음인 동음東音을 구별하고 정리하여 중국음을 한글로 정리한 운서 사성통해를 저술했고, 중국어 회화 학습 교재인 노걸대, 박통사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했다. 그는 당시 지식사회의 근본을 이루었던 한자나 중국어의 학습을 위해 한글을 사용하여 한글의 대중화와 보편화에 기여했다.

 

최정호(崔正浩, 1916~1988)는 오늘날 쓰이는 디지털 한글 글꼴에 큰 영향을 끼친 분으로, 명조체, 고딕체 등 30여 종의 한글 글꼴의 원형을 만들어낸 1세대 글꼴 디자이너로 1957년 그가 만든 첫 원도인 동아출판사체를 시작으로 일본에서 도입된 사진식자 한글 원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글 글꼴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가 제작한 글꼴은 높은 가독성과 뛰어난 완성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88년 그는 마지막 원도인 최정호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평생 동안 남긴 작업과 노력은 한글 글꼴 디자인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헐버트(H.B. Hulbert, 1863~1949)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188623세의 젊은 나이에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한국에 와서 학생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으며, 고종황제의 특사로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으며, 또한 한국의 훌륭한 문화와 역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889년 한글로 쓴 최초의 세계지리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하며 세계의 지리지식과 문화를 알렸고, 한국 역사를 다룬 책을 저술하여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는 이유를 서술했다. 1907년 그는 일제의 탄압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광복 이후 1949년 그는 국빈으로 초청되어 그토록 원하던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았다. 안타깝게도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여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에는 한글을 빛낸 12명의 인물들과 관련된 주요 자료 138195점이 전시되고 있다. 주시경과 그 제자들이 집필한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 말모이’(1910년대), 박두성이 창안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1926), 헐버트가 집필한 최초의 한글 지리교과서 사민필지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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