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20세기 마지막 구상화의 거장, 베르나르 뷔페

베르나르 뷔페의 회고전 <나는 광대다_베르나르 뷔페 展 : 천재의 캔버스>
기사입력 2019.08.22 05:25 조회수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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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미술이 사람들을 즐겁게 할 필요는 없다.(Great painting has never produced laughter)”는 그의 말처럼 괴기스럽기도 하지만 강렬한 그의 작품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20세기 프랑스의 마지막 구상회화 작가인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의 국내 최초 대규모 단독 회고전 <나는 광대다_베르나르 뷔페 : 천재의 캔버스>이 열리고 있다.

 

나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릴 뿐이다.”

I don’t believe in inspiration. I just keep working. -베르나르 뷔페,

 

어쩌면 이 말은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의 구상회화가 탄생하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베르나르 뷔페는 약관 20세에 프랑스 최고 비평가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는 파리 최고의 갤러리 중 하나인 드루앙-다비드와 전속 계약을 맺으며,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고 30대 초반에는 이미 구상회화의 대표 주자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당시의 뷔페는 피카소와 견줄 만큼 명성이 드높았다. 이후 1971년에는 프랑스 문화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 받았고, 1992년에는 프랑스 최고의 미술지 보자르100호 기념 여론 조사에서 앤디 워홀베르메르를 뛰어넘어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위대한 예술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과 그릴 것만 찾아 다녀야 했다

 

이른 나이에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초기 작품부터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뷔페는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 메마른 사람들 그리고 좌절의 초상을 그려냈다. 황량했지만 자유로웠던 세상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색상과 스스로 창작해낸 방법으로 그려낸 캔버스는 많은 이들의 외롭고 지친 감성을 대변해 주며 공감을 자아내었다.

 

피카소? 그가 아무리 위대한 화가라도 나한테는 아무 의미 없다. 마티스는 그저 장식가일 뿐이다.” -베르나르 뷔페

 

50년대 이후, 한 때 피카소의 대항마로까지 지목받았던 그의 명성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너무 이른 성공 때문에 명성을 누린 기간이 길어지자 호사가들이 그의 작품보다는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며 떠들기 시작했고, 수시로 평단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 있었다. 칭찬에도,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작업을 지속하며 죽는 날까지 실험과 노력을 거듭했다.

 

그는 약에 취해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는 비평을 들을 정도로, 뷔페는 폭풍처럼 그림을 그렸고, 스스로 그림에 파묻혔다고 술회하듯, 8천점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그 어두운 시기에 자신의 영원한 뮤즈인 애나벨을 만나 그녀에게 영감을 얻어 많은 작업을 하고, 여러 나라를 돌며 도시의 풍경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세계 내에서 실험을 거듭하며, 순수 회화 외에도 카뮈의 이방인과 프랑수아즈 사강의 독약의 삽화를 그렸고, 롤랑 쁘띠 발레단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초연하게 자신의 재능을 펼쳤다. 그는 언제나 세상의 유행과는 관계없이 그저 그릴 뿐이었다.

 

내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위대한 화가는 뷔페다.”

My favorite artist would be the last big artist in Paris, the last famous painter. Buffet. -앤디워홀

 

그의 작품은 대서양을 건너 헐리우드까지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어떤 혹평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화단의 흐름을 거스르는 진정한 화가였지만 구상회화가 저물어 가던 당대의 흐름에 따라 외면 속, 파킨슨병으로 인하여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1999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 추상회화 일색이었던 화단이 뷔페를 외면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추상회화와 구상회화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논하기 어렵다. 또한 뷔페가 그림을 팔기 위해 구태의연한 스타일의 작업만 지속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꾸준히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을 지향하였다. 흔들림 없이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유지하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던 뷔페의 삶과 예술에 대한 자세는 이 시대에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비운의 천재, 베르나르 뷔페가 오늘날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라 하겠다.

 

살아생전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베르나르 뷔페는 모르겠어요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이 그렸던 광대나 서커스의 테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에 대한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일 것이다. 뷔페는 5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작품 활동을 하며 본인이 마주하는 일상속의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본인의 초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나는 광대다_베르나르 뷔페 : 천재의 캔버스>

 

이번 전시가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을 소개하는 첫 전시는 아니다. 가장 근래에는 2016년 한가람미술관에서 20세기 미술을 화려하게 꽃피운 거장 3인을 소개하는, <거장 vs 거장 : 샤갈, 달리, 뷔페 특별전>을 통해 총 29(판화 1, 유화 28)이 소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쉬킨 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의 회고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비롯하여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4-5미터에 이르는 대형작품을 포함하여 총 92점의 유화작품들과 영화 같은 그의 삶을 소개하는 영상 및 사진 자료들로 구성되었다.

 

전시는 베르나르 뷔페의 시대별 주요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 초반에는 유명해지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1950년대의 대표적인 정물화와 인물초상화 그리고 평생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아나벨과 서커스 테마가 등장하는 1960년대의 대표작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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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반은 거친 직선으로 표현한 잔혹한 아름다움을 가진 건축 풍경화와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인물화 그리고 오디세이와 같은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대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1990년대의 작품들로 구성되며 뷔페가 죽기 전까지 작업하였던 화려한 색상의 광대시리즈와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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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빛나는 천재성과 눈에 보이는 성공에 열광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뷔페를 통해 진정한 예술과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는 오는 915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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