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수원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조선의 22대 왕 정조와 18세기 조선사회의 상업적 번영과 급속한 사회 변화 그리고 기술 발달을 보여주는 건축물인 동시에 그의 정치적 이상을 담아 건축한 수원화성이 아닐까 싶다.
최근 복원된 화성행궁 옆에 자리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경기도 수원시미술관사업소, 소장 김찬동)은 수원화성과 이를 지휘한 정조의 혁신성을 동시대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2019 수원화성 프로젝트《셩 : 판타스틱 시티》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셩’은 적의 습격에 대비해 구축한 방어시설을 총칭하는 ‘성(城)’의 의미와 밝게 살면서 헤아린다는 뜻을 지닌 제 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의 이름 ‘셩/성((祘)’을 모두 담은 중의적 표현이다. 흔히 정조의 이름을 ‘이산’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1796년 정조 20년에 편찬된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에는 祘의 한글음이 ‘셩’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처럼 수원이라는 도시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두 개의 성인 ‘수원화성’과 ‘정조(셩)’를 김경태, 김도희, 김성배, 나현, 민정기, 박근용, 서용선, 안상수, 이이남, 최선 등 10명의 동시대 작가가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신작, 회화, 설치, 사진 미디어 등 총 22점을 소개하고 있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은 이번 전시는 “정조의 혁신성과 그것의 실체인 수원화성이 어떻게 현재를 위한 사유와 미래를 위한 기대감으로 바뀌는지 함께 살펴보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라 밝혔다.
전시는 수원이라는 도시가 정조가 꿈꾸었던 이상향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영원의 상징이라는 전제아래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공간인 왕릉(王陵)의 구성과 상징적 의미를 차용하여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전시의 시작인 1부는 왕릉의 도입부인 진입공간으로 정조의 실존적 삶과 그의 실존을 가능하게 했던 수원화성에 담긴 이념에 주목하고 있다. 민정기(b.1949-)의 <봉수당을 복원하다>(2019), <서장대에서 본 광교산>(2019), <유형원의 반계서당>(2019)은 수원 도심의 모습과 『봉수당 진찬도』, 『반계수록』 같은 지역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수채화 같은 맑은 색감과 자유로운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유형원이 쓴 ‘반계수록’은 ‘정조’가 “백 년 전에 마치 오늘의 역사를 본 것처럼 논설했다.”며 유형원을 높이 평가했는데 유형원은 이곳에서 수원에 성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용선(b.1951-)의 <화성 팔달문>(2019), <정조와 화성축성>(2019)은 인간 정조의 실존적 삶에 주목해 과감한 색채와 형상의 불균형이 불러일으키는 강한 긴장감으로 정조가 지나온 무거운 시간과 극복의 과정을 보여주며, 나현(b.1970-)은 개망초, 클로버 등 귀화식물을 활용한 작업과 16세기 서양 기술을 소개한 도서 『기기도설(奇器圖說)』을 결합해 책의 속성을 새로운 서사로 풀어낸 작업 <귀화 식물도설>(2019)과 영상작품 <선인문>(2019), <환경전>(2019)을 선보인다. 박근용(b.1958-)은 수원에서 버려진 간판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해 진실이 은폐되고 존재가 지워지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 <이젠, 더 이상 진실을 덮지 마시오.>(2019)를 선보인다. 이를 통해 공기처럼 만연한 현실의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사건들과 과정들을 환기시킨다.
2부에서는 개혁군주로서의 정조와 죽음 이후 미완의 군주로 남은 그의 면모를 살펴보고 있다. 최선(b.1973-)은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침대 시트로 만든 수원 팔달산의 형상인 <침대성>(2019>을 통해 인종, 성별, 언어,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실존과 숭고함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김도희(b.1979-)의 <만인융릉>(2019)은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붉고 누런 흙을 전시장 안에 쌓아올려 은폐와 엄폐, 현실과 비현실, 삶과 죽음이 켜켜이 누적된 여정을 표현하여 관객들이 축적된 시간, 남겨진 시간과 대면하게 한다.
3부는 신성한 공간인 왕릉의 능침(왕의 무덤)으로 정조의 이상향과 지향점을 통해 지금의 시간과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 이이남(b.1969-)은 미디어 작품 <다시 태어나는 빛>(2019)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응축된 수원화성의 시간을 뒤섞고, 과거의 도상과 기록을 현재와 병치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제안하며, 김성배(b.1954-)의 <셩_온새미로>(2019)는 7.5미터의 흰 원형 선반에 먹물로 흑백현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쪼개지 않고 사물의 생김새 그대로인 상태를 통해 실존과 영원을 어떻게 사유해나갈지 질문을 던진다. 안상수(b.1952-)는 정조의 어휘인 이성과 수원, 화성과 수원의 첫 닿자에서 추출한 ‘ㅇ’, ‘ㅅ’, ‘ㅎ’과 수원 화성의 이미지 배열을 통해 의미망을 재조합한 <문자도_이성. 수원>(2019)과 <문자도_화성. 수원>(2019)을, 김경태(b.1983-)는 적의 동향을 살피는 동시에 공격이 가능한 수원 화성의 군사 시설물인‘서북공심돈’의 사진 작업 <서북공심돈>(2019) 연작을 선보인다.
자세한 정보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홈페이지(sima.suwon.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