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시초, 야수파와 입체파의 걸작들을 만나다.

세종미술관, 야수파 걸작展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기사입력 2019.07.01 19:44 조회수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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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현대미술은 1839년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발생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메라의 등장 이전에는 화가들이 사물을 재현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사의 역할을 했다면 카메라의 등장 이후에는 더 이상 사물을 재현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화가들은 과거, 고유의 색체를 파고하고 자신의 철학을 담은 작품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1905년 가을, 진보적인 화가들의 전시인 <살롱 도톤느>가 앙리 마티스의 기획으로 열렸다. 살롱 도톤느 측에서는 젊은 화가들에게 7전시실의 방을 하나 내 주었는데, 거친 붓 터치에 타오를 듯한 강렬한 색채를 담고 있는 그들의 그림은 아무리 진보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하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비평가들은 강렬한 원색의 물감 덩어리와 거친 선이 난무하는 충격적인 회화에 ‘비난’과 ‘조롱’을 담아 “야수”라고 칭했다.
 
1908년 가을, 조르주 브라크(1882-1963)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에 영향을 받아 ‘에스타크의 집’을 출품했으나, 강렬한 색채로 사물을 분석함과 동시에 자연이라는 대상을 조각내 다시 재구성한 이들의 형식을 큐비즘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짐승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야수파’와 괴상한 사각형의 의미를 가진 ‘입체파’라는 단어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현대미술사에 가장 위대한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입체파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는 생각이 달랐다. 1905년 파리 그랑팔레, 앙데팡당 전에서 앙리 미티스(1861-1954)의 작품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당시 그는 마티스의 <호사, 평온, 관능>(1904)을 보고 “밑그림이 초보 수준이야. 어린애 그림만도 못하지, 원근에 깊이도 없고 구름은 노랗고 피부는 보라색이야. 그래 다 틀렸어. 그런데 말이야. 너무나도 훌륭해. 말이 안 되지만 생명력이 넘쳐. 게다가 이 그림은 재능이 아니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잖아. 난 여태껏 이렇게 혁명적인 작품은 한 번도 못 그려봤어....”는 생각을 밝혔다.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 앙리 마티스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 파블로 피카소
“난 오늘부터 우리 아버지보다 고흐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야수파 이번에는 세잔, 고흐, 고갱 등으로 대변되는 후기인상주의로 대변되고 있다. 하지만 ‘세잔’의 모든 대상을 원통, 공, 원추로 구현하는 방식은 입체파에, ‘고흐’의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색체의 표현은 야수파로, ‘고갱’의 원시로의 회귀가 주는 회화의 순수성은 야수파와 입체파의 모두에게 전수되었다.
 
“왜 하늘이 꼭 ‘파란색’이어야 하는가, 풀은 반드시 ‘초록색’이어야 하는가.” - 앙리 마티스
“나는 색채로 숲 전체를 모조리 태워 버리겠다.” - 모리스 드 블라맹코
“나는 ‘보이는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생각한 형태’를 그린다.” - 파블로 피카소
 
이렇게 20세기 초 야수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스 , 입체파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후안 그리스 등 이들은 대상의 고유색을 무시하고 원색을 사용한 과감한 표현, 단순화되고 생략적 형태, 과장되고 원근이 파괴된 미술의 새로운 규칙을 전개하며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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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파리시립근대미술관의 주요소장품들로 이뤄진 입체파 화가들의 대규모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Picasso & Cubism)”전에 이어 최근 세종미술관에서는 20세기 현대 미술의 시초가 된 야수파와 입체파의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야수파 걸작展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전이 개최되고 있다.
 
‘야수파 걸작전’은 프랑스 트루아 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Troyes)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전시이다. 트루아 현대 미술관은 1976년 의류브랜드 라코스테 그룹의 소유주인 피에르 레비와 데니스 레비가 40여 년간 수집한 약 2천점의 예술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1982년 개관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국가 유적지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물이기도 한 미술관이 2년간의 개보수 공사가 진행되면서 진행하게 된 전시로 한국과 독일, 단 두 곳에서만 전시가 진행된다.
 
전시에는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파블로 피카소를 중심으로 모리스 드 블라맹크, 라울 뒤피(1877-1953), 조르즈 브라크, 키스 반 동겐(1877-1968), 알베르 마르케(1875-1947), 후안 그리스(1887-1927), 로베르 들로네(1885-1941) 등 화가들의 회화, 사진, 조각, 영상 등 총 140여 점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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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en (빅벤), 1906 Huile sur toile (캔버스 오일) Derain, André (앙드레 드랭) © Laurent Lecat / Troyes, musée d’Art moderne, collections nationales Pierre et Denise Lévy

 

 
 
특히 이번 전시에는 20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작이자 야수파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빅 벤’를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속도를 내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자와 미래의 찬란한 기대가 녹아져 있는 이 작품은 세잔, 마티스, 피카소의 첫 개인전으로 열 정도로 안목이 탁월했던 유럽 최고의 화상인 앙부르아즈 볼라르(1866-1939)가 살롱 도톤느에서 앙드레 드랭(1880-1954)의 그림에 이끌려 런던의 풍경을 그려달라며 의뢰한다. 볼라르는 단순히 풍경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그려달라는 혁신적인 주문을 하고, 드랭은 전에 없던 시각으로 ‘빅 벤’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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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역사적인 미술 혁명의 장소 살롱, 야수파와 입체파가 탄생한 1905년 살롱 도톤느 7번방을 그대로 재현되었으며, 야수파 창시자 마티스와 입체파 창시자 피카소 특별관도 마련되어 있다.
 
전시는 9월 15일(일)까지이며, 입장료 1만 5천원~1만 원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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