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산업화 속 인천사람들과 인류학자 오스굿의 시선으로 본 근대 인천

기사입력 2019.05.15 23:04 조회수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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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메이드Made 인천특별전과

두 시대의 두 관점 인류학자 오스굿의 시선, 강화 선두포특별전

 

 

[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은 인천광역시와 함께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원년 사업으로 2017년에 인천 민속의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인천광역시를 대표하는 지역을 선정하여 민속조사를 실시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들은 옹진군 연평면, 강화군 길상면 선두2, 인천공단을 8개월 이상 마을에 상주하며 심도 있게 조사하였다. 그 결과물로 어촌농촌공단 주민의 삶을 기록한 민속지 6권과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6명이 집필한 주제별 조사보고서 6권을 출간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학술조사보고서 중 인천 공단과 노동자들의 생활문화’(안정윤, 김나라, 정연학 학예사)를 토대로 인천광역시와 공동으로 메이드Made 인천특별전을 열었다. (안정윤 학예사)

 

인천은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이다. 개항을 통해서 제물포항에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신문물과 외국인이 유입되는 관문으로서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군수물자를 만드는 창고로 활용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이북 피난민들의 정착지였으며, 공단이 형성된 후에는 현대 산업화를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항 이후부터 현대 산업화시기에 이르는 인천의 역사와 함께 인천 공단 노동자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전시로 ‘1부 개항과 산업화‘2부 공단과 노동자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먼저 프롤로그에서는 예로부터 매우 중요한 수도의 인후지지(咽喉之地)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교역의 관문이었던 인천의 역사와 행정구역의 개편과정을 통해 인천의 근대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이어 1개항과 산업화에서는 개항 이후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조계가 설치되고 제물포에 개항장이 형성되면서 박래품(舶來品) 등 서구의 신문물이 들어온 이야기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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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관문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산업도시로 성장하였다. 산업화의 상징인 공산품이 생산되는 공장들은 간척을 통해 바다를 메운 땅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960년대 이후부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단지대로서 산업화를 주도하며, 주요 수출 창구의 역할을 하였다.

 

2공단과 노동자에서는 인천 공단과 노동자들의 생활문화학술조사에 기반하여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산업화의 격동기를 헤쳐 온 노동자 22인의 개개인의 특별한 이야기들을 통해 공단 노동자의 생활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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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인천의 산업화의 흐름을 세창양행 상표조선인촌 성냥’, ‘경인고속도로 개통 초청장’, ‘동일방직 작업복’, ‘제미니자동차’, ‘삼익피아노’, ‘용접바가지(마스크)’ 등의 유물과 사진자료, 인터뷰 영상 등 600여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인천의 두 여성이 50년 세월을 뛰어 넘어서 함께 길을 걷는 내용의 애니메이션과 짠 내음 가득한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땀 밴 작업복을 이용하여 설치한 성효숙 작가의 바닷바람에 걸린 작업복”(2019)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땀이 밴 작업복이 곧 인천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자취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인천 공단 노동자의 삶은 우리 가족, 이웃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또 다른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갔던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노동이었다. 한 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이지만 내 삶은 최저인생은 아니다라고 삶을 회고한다. 산업화와 더불어 인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운동이 싹튼 곳이기도 하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현재 우리가 이번 전시를 또 다른 관점으로 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적 성장 속에 노동자의 고민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이날 개막식은 찾은 정의당의 이정미 의원도 인사말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인천 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시대의 두 관점 미국인 인류학자 오스굿의 시선으로 본 47년 강화 선두포

국립민속박물관, “인류학자 오스굿의 시선, 강화 선두포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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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2에서 미국인 인류학자 코닐리어스 오스굿(Cornelius Osgood, 1905~1985)은 한국의 농촌 마을을 조사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는 인류학자 오스굿의 시선, 강화 선두포특별전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194777, 코닐리어스 오스굿은 한국의 농촌 마을인 강화도 선두포를 비롯한 한국 여러 곳을 조사하고, 자신이 목격한 모습을 토대로 1951<한국인과 그들의 문화(The Koreans and Their Culture)>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 만약 누군가가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한국 문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어, 그가 한국을 조사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수집한 한국 유물 342건은 미국 예일대학교 소속 예일피바디자연사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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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인류학자 코닐리어스 오스굿(Cornelius Osgood, 1905~1985)

 

 

 

국립민속박물관이 인천민속조사를 진행하면서 오스굿의 책을 기반으로 2017년에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강화 선두포를 70년 만에 다시 조사하고, 2018년에 두 권의 조사 연구 보고서(정연학, 우승하, 손정수, 황동이, 변윤희 학예사)를 발간하였다. 이 전시는 1947년과 2017, 70년 간격으로 조사한 강화 선두포의 연구 성과와 함께 1947년 강화 선두포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타임캡슐과도 같은 예일피바디자연사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64건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로 짚으로 만든 축구공’, ‘등잔대’, ‘파리채’, ‘빨랫방망이등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지만 지역 색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유물들이기도 하다. (윤현정 학예연구사)

 

전시의 1(선두포를 바라보다)에서는 그의 연구 기록을 토대로 복원한 사랑방·안방·대청·창고·마당과 수집품을 통해 외국인 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당시 한국인의 삶을 보여준다. ‘윷판’, 옥수수 속대로 만든 등긁개’, 낱알이 고스란히 달린 수수비’,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 가리’, ‘등잔대’, ‘빨랫방망이등의 자료는 70여 년 전 선두포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 가운데 당시에는 너무 흔해서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던 가리처럼 현재에는 사용되지 않고 사라져, 박물관에서조차 거의 볼 수 없는 유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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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두포를 기록하다: 1947, 그리고 2017’)에서는 1947년과 2017년 두 시기의 기록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1947년 오스굿이 2개월간 강화 선두포에서 수집한 자료를 중심으로, 2017년에 국립민속박물관이 7개월간 진행한 선두포의 주민 생활과 살림살이를 기록한 결과를 함께 보여준다. 특히 두 시기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호미’, ‘파리채’, ‘조리를 비교하였는데, 이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질이나 기능이 이어지거나 바뀐 생활 용구로, 이를 통해 선두포 주민들의 삶에 있어서 지속되고, 또 변화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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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찾은 강화도 선두포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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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굿이 기록한 선두포 사람들의 일상

 

 

 

이날 개막식에는 선두포의 주민들이 함께 했다. 주민들은 여느 전시보다 굉장한 호기심을 드러내면 전시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생활품과 그들의 삶터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오스굿이 1947년 기록한 사진이 그래픽 영상으로 나올 때 한 마을 어르신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며 주변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박물관은 박제된 유물만을 전시하는 곳은 아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선보이는 메이드Made 인천특별전과 함께 두 전시는 아직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록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세대와 세대 간의 삶의 환경은 너무나 다르게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 땅 속 오래된 유물은 수십 년이 지난다고 그 용도나 형체가 급격히 달라지거나 사리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는 지금 기록하지 않는다면 후대에 우린 더 많은 비용을 들여서 연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것들을 기록해 둔다면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한 지역을 한 민족의 이어주는 문화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그러한 의미로 미래세대에 대한 우리의 기록이라 하겠다. 전시는 818()까지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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