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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12일 덴마크를 대표하는 작가 아스거 욘(Asger Jorn, 1914-1973)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을 개최하였다.
아시아 최초 개인전이다 보니 이번 전시 이전에 사실 그에 대한 자료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일반인에게는 낯선 작가였다. 덴마크 출신 아스거 욘은 혁명적 행보를 걸은 예술가로 1940년대 결성된 코브라(CoBrA) 그룹의 창립 회원으로 활약했다. 코브라는 20세기 중반 중요한 추상화가 그룹을 배출한 유럽의 도시, 즉 코펜하겐, 브뤼셀,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첫 글자를 따 명명된 미술 그룹으로 코브라 그룹의 작가들은 자발성 혹은 충동성과 같이 어린 아이 같은 본능을 강조하는 작품을 그리는 데 관심을 가졌다. 또한 그는 예술이 나이, 지위, 인종, 지식과 무관하게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주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급진적 정치 혁명을 일으킨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이후 북유럽 전통 예술을 연구하여 미국과 소련이 양립하는 세계 논리에 제3의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1963년 12월 구겐하임 재단이 자신을 구겐하임 국제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상을 거부하며 재단 이사장 해리 구겐하임에게 전보를 보낸 일화는 그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전보에서 "그 돈 가지고 지옥에나 가라. 상금을 거절한다. 상을 달라고 한 적도 없다. 나는 품위 없는 작가들에 반대하고 당신의 홍보에 협조하는 그들의 의지에 반대한다. 당신들의 어처구니 없는 시합에 내가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길 바란다"고 썼다.
상당히 직설적인 그의 표현에는 “어떤 미술관도 어떤 제도도 나의 예술의 가치를 평가할 순 없다. 내 예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관객뿐이다.”라고 말한 그의 생각의 반영으로 그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아스거 욘이 자신의 모든 작품을 기증한 덴마크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1965년 설립)과 협력하여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출판물, 도자, 직조, 아카이브 등 90여 점을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대안적 세계관, 북유럽 전통’ 세 가지 주제로 선보이고 있다.
첫 번째 주제에서는 고전적 미술 언어의 틀을 깨는 아스거 욘의 초기 작업(1930~40년대)을 살펴보고 있다. 욘은 예술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욘은 피카소나 미로 등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한 ‘전환’을 시도하며 다양한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두 번째 주제에서는 아스거 욘의 사회적,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는 그룹 활동‘코브라(CoBrA)’,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SI)’ 등을 소개한다. 1948년 결성된 코브라는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앞 글자에서 따온 명칭으로, 여기서 욘은 공동체 활동과 연대, 창의성에 바탕을 둔 대안적 문화를 실험하고자 했다. 1957년 결성된 SI는 예술의 상품화를 지양하고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며 예술적 창의력을 일상생활에 접목시키고자 했다.
세 번째 주제에서는 북유럽 전통으로부터 대안적 이미지를 탐구한 아스거 욘의 연구를 살펴보고 있다. 욘은 SI를 떠나 1961년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the Scandinavian Institute for Comparative Vandalism, SICV)을 설립했다. SICV는 스칸디나비아 중세 예술 연구를 통해 북유럽 문화가 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미술관 중앙에 기존의 축구장과 다른 독특한 축구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곳의 골대가 있는 <삼면축구>장은 아스거 욘이 고안한 경기 방식으로, 세 팀이 동시에 경기를 진행하여 실점을 가장 적게 한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골득실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일대일의 경기와 달리, <삼면축구>는 세 팀의 공격과 수비가 균형을 이뤄야 승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스거 욘이 냉전시대 미·소 양국의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예술을 통해 찾고자 한 대안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전시명 ‘대안적 언어’는 서유럽 중심 미술사에서 벗어난 대안적 미술사 보여주는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은 2017년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크지스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요나스 메카스: 찰나, 힐긋, 돌아보다》에 이어 2018년 《아크람 자타리: 사진에 저항하다》에 이르기까지 서구 주류미술사 편중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의 보다 다양한 시점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힘써왔다. 이번 전시 역시 주류가 아닌 ‘지역의 서사’가 바탕이 된 대안적 시각으로 보여주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8일(일)까지 MMCA서울 5전시실과 서울박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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