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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고종 황제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 승하 직후, 고종이 일본인이나 친일파에게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이는 나라를 잃고 억눌려 왔던 사람들의 울분을 폭발시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오는 3월 31일까지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을 되돌아보고 있는 전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을 통해 당시의 상황속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고종 황제의 국장은 조선총독부가 주관하여 일본식으로 진행되면서 기존 국왕의 국장에 비하여 절차가 축소되고 변형된 장례로 진행되었다. 비록 장례절차는 일본식에 따라 치러야만 했지만, 능의 조성과 매장은 대한제국 황실관리 기관인 이왕직이 ‘옛 조선식’으로 진행하면서 행열은 조선왕실의 전통인 신연 행렬로 별도로 움직여 흥인지문(동대문) 밖에서 기다려 국장식을 마치고 나온 대열 행렬과 합류하여 남양주 홍릉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홍릉 건설은 고종이 생전에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고종은 황실의 위상에 맞는 능을 조성하기 위해 중국 명대 황제릉을 참조하여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함께 잠든 남양주 홍릉(洪陵)이 조성되었음을 사진과 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1층 전시실에서 작은 전시로 선보이지만 ‘고종의 승하’, ‘고종의 국장’, ‘고종의 영면’ 등 총 3개의 주제로 국장 때 촬영된 당시 사진과 의궤 등에 남겨진 기록,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의 사진 등 총 15건의 작품이 소개하고 있다.
특히 당시 이런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사진첩 「고종 황제 국장 사진첩(이태왕전하어장의사진첩)」(서울대학교박물관)을 통해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종 황제의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 「이태왕전하어장주감의궤(李太王殿下御葬主監儀軌)」, 고종 황제의 국장 때 대여를 맨 민간단체의 기록 「덕수궁인산봉도회등록(德壽宮因山奉悼會謄錄)」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며, 고종 황제의 승하와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순종황제실록 부록(純宗皇帝實錄 附錄)」, 「영친왕비(英親王妃) 일기」와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제작된 어보(御寶)와 옥책(玉冊)으로 여전히 남아 있던 당시 왕실 의례의 면모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한편, 3월 21일 오후 2시에는 이번 전시와 연계한 특별 학술강연회가 ‘고종 국장과 1919년의 사회’라는 주제로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개최된다. 강연은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되며, 제1강연에서는 이욱 선임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고종황제의 국장(國葬) 과정을 분석하여 대한제국 황실 의례가 국권피탈 이후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제2강연에서는 윤소영 연구원(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이 고종 국장으로 인한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권피탈 후 억눌린 민족의 한이 3.1운동으로 폭발하는 과정을 발표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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