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대한제국 황제의 전통 복식과 서양식 복식을 한자리에

덕수궁, 대한제국 황제복식 특별전 개최
기사입력 2018.10.15 23:24 조회수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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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공식석상에서 패용하는 브로치는 종종 여왕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로 활용되곤 한다. 조선시대 왕의 복식 또한 그 자체로서 왕의 지위와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이처럼 한 나라의 통치자가 착용하는 옷은 때로는 실용적인 의미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이념과 이상을 내포한다.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소장 오성환)대한제국 황실의 의에 관한 주제를 연차적으로 기획하여 선보이는 특별전의 첫 시작으로, 올해 ()’에 해당하는 대한제국의 황제 복식을 다루는 대한제국 황제 복식특별전을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1층 전시실에서 지난 13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대한제국 황제 복식특별전은 대한제국 황제의 전통 복식과 서양식 복식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전시로 고종의 생애 흐름을 따라 조선의 왕이 입었던 홍룡포, 대한제국 성립 이후 만들어진 대한제국 황제의 새 복식, 고종 퇴위 이후 만들어진 태황제 예복 등 고종의 복식 8종과 근현대 복식 유물 8종 등 총 16종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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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면복(冕服)이나 황룡포(黃龍袍) 등 전통적인 황제 복식은 그동안 고증 연구를 바탕으로 몇 차례 제작된 적이 있으나, 고종이 착용하였던 서양식 대원수복, 퇴위 이후의 태황제 예복은 사진으로만 전해질 뿐이어서 이번 전시의 시도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복장의 제식 등 관련 문헌 자료가 풍부하게 발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된 것인 만큼 한계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실물로 구현하지 못했던 황제의 서양 복식을 실견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만하다.

 

고종은 조선의 왕으로 등극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가 되었다가,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에 의해 침탈되는 과정에서 강제로 퇴위되며 태황제가 되었다. 그의 생애에 나타난 곡절은 그가 착용하였던 복식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고종은 황제에 오르면서 기존에 조선의 왕이 착용하였던 복식을 황제의 위상에 맞게 격상시켰다. 조선의 왕이 착용하던 홍색 곤룡포 대신 황제의 색인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였으며, 황제만이 착용할 수 있었던 12류 면관과 12장문의 면복을 입었다. 면복에 시문된 12가지 무늬는 유교 문화의 전통에서 군주의 덕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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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동양의 전통적인 황제의 모습을 구현하는 한편으로 서구식 대원수복을 제정, 착용하였다. 러시아와 독일 등의 군복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대원수복을 착용한 고종의 모습은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근대적 통치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동양의 전통적인 황제-서구식 대원수의 이질적인 두 모습은 고종이 지향했던 근대국가로서의 대한제국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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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제 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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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제 익선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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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제 통천관복

 


공적인 존재로서 국왕은 종묘와 사직 등에 제사를 지낼 때, 설날이나 동지의 하례 등 국가의 큰 행사에 면복冕服을 착용하였으며, 삭망朔望, 조강朝降, 진표進表 등 신하들의 조회를 받을 때에는 원유관복遠遊冠服을 착용하였다. 그리고 소규모의 공식적 의례와 평상시 집무를 볼 때의 시무복으로 익선관복翼善冠服을 착용하였다. 각각의 복식에는 왕을 상징하는 상징물을 시문하고, 장식을 갖추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었다.특히 익선관복은 왕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복식으로 재위 기간 중 가장 많이 착용하였으며 곤룡포, 익선관, 허리에 두르는 옥대玉帶와 흑화黑靴 등으로 구성되었다. 익선관복은 왕세자와 왕세손 등도 착용하였는데 신분에 따라 곤룡포의 색상과 곤룡포에 부착하는 보의 문양, 허리띠 등에 차이를 두었다. 조선의 왕은 붉은색[대홍색大紅色] 곤룡포를 입었으며,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보五爪龍補(발톱 수가 다섯 개인 용 무늬 보) 네 개를 가슴과 등, 양쪽 어깨에 달았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하여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 곤룡포를 정하기 전까지 붉은색 곤룡포[홍룡포紅龍袍]는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복장이었다.

 

 

새로운 복식 제도의 수용을 둘러싼 조선사회 내부의 진통 또한 만만치 않았다. 국가제도로서의 문무관복의 변화에는 그러한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1884년 이른바 갑신의제개혁의 실패에서 보듯, 기존 의복제도의 변화는 조선이 고수해온 유교 문명에 대한 훼손과 거부로 단정되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서구 문물의 수용과 근대로의 전환은 중요한 화두였으며, 대한제국 선포를 전후하여 서구식 예복이 수용되었고 본격적으로 서양식 관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95년부터였다.

     

변화는 무관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육군복장규칙陸軍服裝規則경무사이하복제警務使以下服制를 제정하여 서양식으로 제복을 정했다. 이후 원수부가 창설되고 황제가 대원수가 되면서 대원수복으로 황제의 양복형 군복도 제도화되었다. 1900문관복장규칙文官服裝規則을 반포함으로써 문관복도 서양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한제국의 서양식 문무관복은 기본적으로 서양 복식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오얏꽃이나 무궁화 같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문양을 통해 나라의 정체성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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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앞에서 영친왕과 대신들(1907년)

 

 

 

안타깝게도 대한제국 이후 험난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대한제국기의 복식 유물은 남아 있는 것이 풍부하지 않은 실정이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 황제 복식 성립 전후의 문무 관복의 변화상도 관련 유물과 사진 자료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실물이 확인되지 않았던 1906년 개정된 문관대례복 유물(한국맞춤양복협회 소장)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이 외에도 그동안 전시를 통해 만나기 힘들었던 각종 근대 복식 유물 8종과 훈장, 기념장도 만나볼 수 있다.

 

대한제국 황제 복식의 성립과 변화는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을 수용하여 국가의 제도를 새로 정비해 가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만큼 국가 제도의 차원에서 복식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전시라 하겠다.

 

한편, 덕수궁관리소는 이번 특별전이 마무리되면 재현 복식 중 일부를 석조전 내부에 상설 전시물로 활용하여 더 많은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 밝혔다.

 

전시는 오는 1212일까지 계속되며,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매일 9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마지막 입장은 오후 530분이다.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실은 예약 없이 입장이 가능하며, 해설사와 함께 하는 기존 석조전 관람은 종전과 같이 예약제로 운영된다. 자세한 사항은 덕수궁관리소 누리집(www.deoksugung.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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