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지도가 없다면 자신이 사는 지역이나 나라가 차지한 공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과거 정확한 측량이 어려웠던 시기 지도는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지도 전통을 이은 조선은 '지도의 나라'라 불릴 수 있을 만큼 풍성하고 방대한 지도를 남겼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지도는 그리 많지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조선시대 지도를 주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요 소장품 외에국내 20여 기관과 개인 소장가의 중요 지도와 지리지 260여 점(국보 1건, 보물 9건 포함)을 선보이 최초의 대규모 종합 전시 “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특별전을 통해 지도가 가진 내용과 쓰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총 400여 건의 지도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중 240여 건의 지도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이중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보물 제1538호)>, <청구관해방총도(靑丘關海防摠圖, 보물 제1582호)>, <大東輿地圖 목판(대동여지도 목판, 보물 제1581호>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19세기의 위대한 지도 제작자 김정호(金正浩, 1804?-1866?)가 제작한 대동여지도 목판은 현존하는 12매 중 11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 김정호의 목판본 <대동여지도>(보물 제1581호) 신유본(辛酉本)과 갑자본(甲子本)이 각각 한 질씩 소장되어 있고 <동여도(東輿圖)>도 한 질이 소장되어 있으며, 19세기에 제작된 필사본 <동여(東輿)>는 절첩(折帖) 분첩(分帖)식 대축척 전국지도의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유일본 지도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해좌전도(조선, 19세기 중반(1857~1859)), 조선방역지도(국보 제248호, 조선, 1557년(명종 12)), 천하대총일람지도(조선, 18세기 전반), 관동방여 중 울릉도·우산도(독도) 지도(조선, 18세기 후반) 등 이제까지 일반에 공개된 바 없는 중요 지도와 지리지가 대거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조선왕조는 일찍부터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리 정보를 축적해, 표준적인 전국지도와 지리지를 마련했다. 양난 이후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지도가 필요했는데, 행정 및 국방용 지도 외에도, 도시 지도, 휴대용 지도, 조상 무덤의 위치를 그린 산도山圖 등 다양한 지도가 제작되었다. 또한 정확성과 상세함을 겸비한 대축척 방안 지도가 등장하면서 조선지도는 더욱 발달했다.
전시에 소개되는 지도 중에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국보 제248호)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속에서 문명의 계승자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던 조선의 국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며,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보물 제1537-1호),〈일본여도日本輿圖〉(보물 제481-4호)등의 자료들은 경계 너머 외국의 사정을 살펴 국제정세를 파악하려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같은 천문 지도들은 하늘의 이치를 이해하고 받들어, 아래로는 백성을 잘 다스리고자 했던 조선의 통치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세계를 그린 지도인〈천하고금대총편람도天下古今大摠便覽圖〉나 전국지도인 〈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摠攬圖〉에는 지도 안에 역대 왕조의 변천과 역사적 사건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경주읍내전도慶州邑內全圖>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신라의 고도 경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으며, <청구관해방총도靑丘關海防摠圖>(보물 제1582호) 등의 국방지도나 <평양성도平壤城圖>, <전라도 무장현도全羅道 茂長縣圖> 등의 회화식 지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지도를 널리 사용하게 되면서 등장한 작은 크기의 <수진본 지도袖珍本 地圖>나 <명당도明堂圖> 등의 풍수 지도는 일상에서 사용된 지도의 실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조선 지도에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속에서 문명의 계승자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던 조선의 국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인간 사회의 다양한 소망과 가치의 반영과 함께 통치를 잘하려는 바람, 국방을 튼튼히 해서 국토를 지키려는 바람, 태평성대를 추구하는 바람 등 당시 조선 사회의 다양한 이상들이 드러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 아파트 3층 높이로 펼쳐진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를 감상할 수 있으며, ‘지도 연대기’를 통해 대표적인 지도 제작자들을 중심으로 조선 지도의 중요한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울러 증강현실(AR)을 활용한, 너비 14m의 <동국대지도> 체험 영역은 다양한 영상 매체로 지도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관람객의 흥미를 더한다. [허중학 기자]